사진의 뒷면을 닮았다.
■ 생활의 발견 + 나쁜 사람

나는 조용필이 < 그 겨울의 찻집 > 에서 "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 고 했을 때 무릎을 탁, 치며 아, 했다. < 코미디 >란 기본적으로 희비극'을 담고 있다. 평생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던 찰리 채플린은 "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 " 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빙판에 넘어지는 사람을 멀리서 보면 웃기지만 그 사람이 코앞에서 넘어지면 화들짝 놀라서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뻗어 도우려고 한다. 채플린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웃기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카메라와 사람은 먼 거리를 유지했다. 반면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클로즈업했다. 영화 < 라임라이트 > 에서 채플린은 유성영화와 컬러영화에 밀려 한물 간 코미디언을 연기한다. 카메라는 무례할 정도로 채플린에게 접근해서 확대된 얼굴을 보여준다. 늙고 초라한 얼굴을 말이다.
결국 코미디'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켜보는 막간'이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멀리 가도 안된다. 이 거리 조절이 좋은 콩트와 나쁜 콩트를 만든다. 좋은 코미디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칸트는 < 순수이성비판 > 에서 " 팽팽한 기대가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화했을 때 " 웃음이 나온다고 말했다. 작은 것을 기대했는데 예상보다 큰 것을 보여주면 < 감탄 > 이 되지만, " 스펙타클 "을 기대했는데 꾀죄죄한 결과를 보여주면 웃음이 나온다. < 깐죽거리 잔혹사 > 에서 개그맨 조윤호는 최고수 무술 유단자'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개그맨치고는 불량스러운 외모는 기대에 부응한다. 그는 항상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상대방에게 묻는다. " 유단자'인가 ? " 훤칠한 키에 무뚝뚝한 얼굴 표정, 낮은 목소리, 조롱이 섞인 음흉한 입꼬리,
조심스러운 몸짓에서 시청자들은 무림 고수의 품격을 기대한다. 쏟아내는 말들도 그렇다. " 후회하지 않을거면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는게 좋아 " 라거나 " 넌 내 안에 있는 악마를 깨웠어. 지옥으로 안내해 주지 " 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나면 그는 항상 기대 이하'다. 결국에는 꼬리를 내리며 "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 라고 말한다. 이 모든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 두목(안일권)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다는 소리가 " 애들이 많이 다쳤어 ! " 가 전부다. 팽팽한 기대가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하자 터지는 것은 < 웃음 > 이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웃음에는 어느 정도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웃음에는 실망, 허탈, 슬픔, 연민, 적의, 열정, 우울 따위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기도 하고, 보잘것없어서 웃기도 하고, 터무니없어서 웃기도 하며, 뜬금없어서 웃기도 한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 세상에서 인간보다 큰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웃음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 좋은 코미디'는 웃음과 함께 비극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 라디오스타 > 는 거침없는 입담과 악담으로 폭소를 유발하지만 그것을 두고 웃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라디오스타 식 폭소는 웃음이 아니라 말장난 섞인 조롱'이다. 조롱'이란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다. < 생활의 발견 > 은 매우 뛰어난 콩트'다. 여기에는 가난한 서민의 뼈아픈 비애가 숨어 있다. 그들은 시간적 여유도 없고 경제적 여유도 없다. 그래서 항상 돼지껍데기집이나 포장마차에서 허기를 채우면서 이별을 선언한다. 이별 앞에서도 침이 고인다. 이 엇박자에서 웃음이 나온다. 시청자가 이 부분에서 웃는 이유는 공감 때문이다. 나도 이별 앞에서 침이 고인 적 있다는,
그런 공감 말이다. 상갓집에서 먹은 홍어무침이 맛있어서 행복한 경험 또한 있으리라. 식욕은 죄 없다. 다만 민망할 뿐이다. 그래서 웃는다. 씁쓸한 웃음이니 낙담을 위로하기 위한 처방'이지 않을까 ? 반면 < 나쁜 사람 > 이라는 코너는 마초 남성의 흔한 허세'를 다룬다. 피도 눈물도 없는 마초 형사 같지만 이웃의 슬픈 사연에 무너져서 결국 " 나쁜 사라암~ 나쁜 사라암~ " 을 외치게 만든다. 사나이 울리는 위악 때문에 관객은 웃지만 웃고 나면 쓸쓸해진다. 이처럼 좋은 코미디'는 조롱이 아닌 웃음을 생산한다. 그런 의미에서 < 후궁뎐 > 이라는 콩트는 나쁜 코미디'다. 명나라에서 시집 온 타나미실리(오나미)는 조롱의 표적이 된다.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이다. 외모 비하'로 웃음을 선사하는 것에 대한 지적은 늘 있었지만 이 콩트는 그 대상이 외국인'이라는 측면에서 불편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못생긴 외국인 여성에 대한 차별'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웃는 사람은 백치'다. 백치'가 가장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이 백지'이기 때문이다. 마음 속이 심란한 사람은 크게 웃지 않는다. 행복하게 웃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소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웃음은 사진의 뒷면을 닮았다. 시인 이순현은 시집 < 내 몸이 유적이다 > 에 수록된 시 < 사진의 뒷면은 백지이다 > 에서 사진 속 풍경을 본다. " 강과 산과 하늘 " 을 본다. 하얀 구름도 보고, 퍼런 강물도 보고, 그 옆에 핀 개망초도 본다. 이 컬러풀한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진의 뒷면을 본다. " 뒷면은 비어 하얗다 풍경을 저토록 가두어두는 힘은 뒷면의 백지에서 나온다 " 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어처구니, 보잘것, 터무니, 뜬금 " 은 " '없다'와 인연을 맺어야 살아나는 / 우리말의 몇 안 남은 허파꽈리 ( 이순현, 詩 염주를 만지작거리다가 ) " 라고 이순현은 지적한다. 결국 어처구니없이, 보잘것없이, 터무니없이, 뜬금없을 때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웃음이 < 없다 > 와 관계가 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마음을 백지 상태로 두어야 건강한 웃음이 그려진다. 웃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힘은 마음의 백지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