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의자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인간은 의자를 만들었지만 의자는 인간에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의자를 보면 인간의 삐딱한 성정'이 보인다. 그래서 재미있다. 우리는 흔히 < 의자 > 와 < 자리 > 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자리(지위)가 높을수록 의자'는 화려하다. 포장마차에서 흔히 보는 스툴60 스타일 의자는 주로 서민이 앉는 의자'이다. 등받이도 없고 팔걸이도 없다. 반면 지위가 높은 양반은 등판과 팔걸이'를 갖춘 고급 회전 의자'에 앉는다. 360 도 회전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돌아가는 판옵티콘이라 할 만하다. 루이비통이 여성의 계급을 말해주는 징표라면 팔걸이가 달린 회전 의자'는 남성의 명함을 나타낸다. 자리가 낮은 계급에게는 팔걸이'가 부착된 의자를 제공하지 않는 법이다. 멀리 볼 것 없다. 초중고 학교 교실 의자'를 보면 답이 나온다. 학생에게는 팔걸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5월이 되면 아이는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뻥이다
- 다 자빠트려 中
의자 따위가 감히 !
꾀죄죄한 짓거리'에 관심이 많다. 궁상맞고, 좀스러우며, 지저분한 짓'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좀 유식하게 말하자면 일상성에 대한 탐구열'이라고 해두자. < 일상성 > 이란 말 그대로 다람쥐 첫 바퀴 돌듯 변함없이 지루하게 순환되는 생활'이다. 동요 " 둥근해가떴습니다 " 는 현대인의 일상성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아침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는다. 윗니 아랫니 닦고, 세수할 때는 깨끗이 이쪽 저쪽 목 닦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거울을 본다. 그뿐이랴. 모래알 같은 밥알을 꼭꼭 씹고, 가방 메고 인사하고 아이는 유치원에 가고, 어른은 직장에 간다. 일상성'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보면 애나 어른이나 하는 짓은 똑같다. 나는 이 일상성'이 재미있다. 그래서 티븨'는 거의 안 본다. ( 논란이 되는 장면은 주로 유투브를 통해서 보는 편이다. ) 드라마'는 평범한 이웃의 평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 스페셜 " 한 이야기들이다. < 내 이름은 김삼순 > 은 볼품없는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시청자가 소비하는 방식은 볼품없는 여자를 연기하는 볼품있는 배우'에 방점을 찍는다. 김삼순을 연기하는 김선아를 소비하는 것이다. 드라마가 아무리 평범한 주인공의 일상을 다룬다고 해도 모든 서사는 그 주인공에게 촛점을 맞추기 때문에 스페셜할 수밖에 없다. 홍상수 영화가 일상성을 다룬다고 해서 리얼하다고 할 수 있을까 ? MBC 주말 예능 < 진짜 사나이 > 는 " 진짜 " 라는 타이틀로 리얼리티를 강조하지만 사실은 " 가짜 " 다. 연예인이 < 진짜 사나이 > 를 연기한다는 측면에서 < 가짜 사나이 > 다. 연예인 병영 생활 체험'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조작된 리얼리티'다. 그들은 일상성'을 연기하거나 일상성을 체험할 뿐이다. 티븨 속에는 일상성이 없다.
티븨 밖에서만 존재하는 게 바로 일상성'이다. 나를 둘러싼 꾀죄죄한 주변을 관찰한다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말 대신 행동에서 나타나는 증후들이다. 행동은 말을 하지 않을 뿐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공공 화장실 로비에 다른 사람이 없으면 손을 씻지 않고 나온다. 하지만 사람이 있으면 씻는다. 여기서 손을 씻는 행위는 " 나는 평소에 깨끗한 사람이다 " 라는 몸짓 신호'다. 나부터가 그렇다. 집에서는 손을 잘 씻지 않지만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손을 열심히 씻는다. 이처럼 허투루 흘려보내도 될 몸짓을 관찰하다 보면 일상 속에서 흔히 보는 물건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관찰하는 물건은 의자'다. 의자를 보면 그 조직의 서열이 보인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팔걸이가 없는 의자가 제공된다.
이 글은 일상에 대한 글이니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는 팔걸이 없는 의자를 떠올려보자. 그렇다, 학교에 있는 의자가 전형적인 " 팔걸이 없는 의자 " 다. 흔한 의자'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학창 시절에 < 자신이 앉은 의자에 왜 팔걸이가 없을까 > 를 곰곰 생각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꾀죄죄한 생각을 할 바에는 차라리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것이 도움이 되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을 제대로 보면 꽤 흥미롭다.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으면 건방져 보인다. 옛날 왕들은 대부분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고 신하들은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앉는다. 시대극을 다룬 영화를 찾아서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즉, 학생이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으면 건방져보이기 때문에 팔걸이 있는 의자'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이 얼마나 꾀죄죄죄한 어른의 속셈인가.
그뿐이 아니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의자에 앉는 꼴을 매우 싫어해서 의자에 앉지 말라고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 < 팔걸이 > 부위는 말 그대로 팔을 걸이에 걸쳐서 쉬는 부분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팔걸이가 없는 의자를 제공하는 이유는 다리는 쉬어도 좋다. 하지만 손을 편히 쉬면 안된다는 메시지'다. 마찬가지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의자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는 쉼없이 일하라, 라는 메시지'다. 이처럼 의자는 단순한 물건에 지나지 않지만 일상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파악하면 꽤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일상'을 관찰하는 재미'다. 일상을 관찰하게 되면 하찮은 것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얻게 된다. 나처럼 성정이 곱지 못한 놈은 의자를 통해서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발견하지만 시인은 다른 눈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시인은 시 < 의자 > 에서 의자'라는 물건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의자를 의지依支 로 이해한다. < 의자 > 는 다른 것에 몸이나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거나 그렇게 하는 대상'이다. 허리가 아픈 이'에게 의자는 의지가 되는 대상이고, 지푸라기와 똬리 또한 좋은 의자'다. 그에게 있어서 좋은 의자는 디자인이 좋거나 가죽 원단이 비싼 의자가 아니다. 그리고 팔걸이'가 달린 의자도 아니다. 아픈 이의 무게를 오롯이 받아주는 의자'다. 시인은 의자가 < 곁 > 을 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문득 시인이란 일상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 보아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