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시,
한 지붕 네 남매가 살 때 이야기다. 누나는 책을 살 때 열에 아홉은 수필집(에세이)을 샀다. 나머지 하나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이었다. 그래서 누나가 결혼을 해서 책장을 분리하기 전까지 책장에 꽂힌 책 가운데 9권은 수필집이었고 나머지 1권은 수상집'이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한국판 리더스 다이제스트'여서 한 권만 읽어도 그해 문단 돌아가는 꼴에 대해 이런저런 군말을 할 수 있으니, 그 용도로 구입하는 것 같았다. 누나는 가끔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수록된 작가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이가 있으면 그가 쓴 소설집을 따로 구매하기는 했으나, 그런 열정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반면 비소설 분야는 수필집으로 때우자는 야심찬 계획을 실천했다. 문학적 교양을 뽐내고는 싶으나 열정은 없을 때 선택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구사한 것이다. 집도 좁아터져 옥작복작거리는 데 집에 온갖 " ~집 " 이 들어앉았으니 더욱 복잡했다. 하여튼 집에 뒹구는 수필집이 구 할이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수필집을 읽게 되었는데 대부분은 유안진이나 신달자 류의 감성 에세이'였다. 소소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구슬 같은 깨달음을 담고 있었다 - 라고 내가 말할 줄 알았다면...... 당신은 착각했다. 내가 보기엔 이런 식의 에세이'는 뻔뻔했다. 그들은 소소한 서민적 삶을 예찬하며 정이 오가는 시장 풍경을 찬양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기 자랑이 팔 할'이다.
예를 들면 수필집에서 단골로 나오는 소재가 라면 박스 줍는 할머니나 청소부'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새벽에 묵묵이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가 없었다면 이 사회는 얼마나 지저분해질까 라고 반문하며 가끔 거리에다 쓰레기를 버렸던 자신이 부끄럽다는 소리를 하는데, 이런 글이 내포하고 있는 속내는 결국 자신을 향한 소박한 겸손'이다. " 적어도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지식인 " 이라는 계산이 깔린 장치'다. 그들은 소박한 가난을 예찬하지만 궁극적인 것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소박한 겸손이다. 물론 이 겸손은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지만 자화자찬하는 수필집을 굳이 돈을 주고 사서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있어 신달자 수필집은 느낌 없는 에세이'였다. 수필( 隨 따를 수, 筆 붓 필 )이 아무리 붓 가는 대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장르'라고는 하지만
자화자찬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隨筆이 아니라 단순히 手筆이거나 自筆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깊이 있는 사유가 없는 글은 잡문이지 수필이 아니다. 신달자가 시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시인 협회 회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작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인 협회 기획 시집 < 사람 > 논란'을 통해서 였다. 그동안 나는 신달자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내 눈에는 그저 그런 통속적 신파 에세이나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 사람 > 이라는 시집에 수록된, 재벌을 향한 용비언천가는 그렇다고 쳐도 박정희를 두고 " 당신은 날이 갈수록 빛나는 전설 " 이라거나 "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을 우리의 횃불 " 이라고 제대로 된 용비어천가'를 박근혜 취임에 맞춰 출간한 것을 보면 기획력 하나는 끝내줘여~ 그런 그녀가 이번에 시집을 냈다. < 살 흐르다 > 이다.
읽지 않았으므로 이 시집에 대한 군말은 하지 않겠다. 좋은 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기를 바란다. 좋은 수필은 숲을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신영복 에세이'가 그렇다. 그의 에세이는 어떤 대상에 대해 감성적이지도 않고 동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서 좋다. 그는 < 나무야 나무야 > 에서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무 너머 숲을 보게 만든다. 종종 < 수필 > 이란 단어를 빠르게 타이핑하면 < 숲일 > 이 되고는 한다. 사람들에게 숲을 보도록 하는 일'이 수필이 아닐까 싶다. 억지를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