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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랜드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 조이랜드 > 를 두 번 읽고 두 번째 리뷰를 올리다.
유치원 교사가 학부모를 초청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가 < 봄-여름-가을-겨울 > 에 대한 개념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 봄이 지나면 오는 게 뭐죠 ? " 아이들은 일제히 " 여름이요 ! " 라고 외친다. 여름이 지나면 ? 가을'이요 ! 가을이 지나면 ? 아이들이 겨울'이라고 합창을 한다. 그런데 유독 한 아이'만 시무룩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의 엄마도 덩달아 시무룩하다. 눈치 빠른 선생이 그 아이에게 묻는다. " 애린아, 겨울이 지나면 ? "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한다. " 고드름이 녹아요. " 정확한 기억의 복기'는 아니지만 내 이웃이 학부모 참관 수업 때 겪었던 에피소드'였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그 아이는 겨울이 지나면 녹아서 사라져버릴 고드름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한글 받아쓰기 수업 때 교사가 " 동그라미 " 를 쓰라고 명령했다.
유치원에서 선행학습을 거쳐 올라온 아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 열심히 받아썼다. 물론 한 아이만 빼고 말이다. 그 아이는 < 동그라미 > 이라는 문자 대신 < ○ > 를 그렸다. 교사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에 당신이 빨간펜 선생님이라면 두 아이가 한 말'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 정답인가, 오답인가. 아래 댓글창에 메모를 남겨달라. < 어른 > 입장에서 보면 " 고드름 " 과 " 동그라미 " 는 정답이 아니다, 어리석은 대답일 뿐이다. 겨울 다음에는 봄'이 와야 하고 동,그,라,미'라고 받아써야 한다. 그게 어른이 정한 게임의 법칙'이니깐 말이다. 무조건 점수 포인트가 올라가는 게 정답이다. < 어린이 > 는 원래 " 어리석은 이 " 라는 뜻이었는데 현재에 와서는 < 愚 : 어리석을 우 > 에서 < 幼 : 어릴 유 > 로 뜻이 변화하였다. 우리가 흔히 " 어리석은 사람/무식한 사람 " 을 표현할 때 강조하는 감각은 시각'이다.
어리석은 사람에 속하는 무리는 대부분 한치 앞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문맹文盲이거나 까막눈'이다. 그러므로 < 어린이 > 라는 말 속에는 < 愚 > , < 幼 > 와 함께 < 盲 > 의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다. < 盲 : 눈 멀 맹 > 은 눈(目: 눈 목)을 잃어버린 자(亡 : 잃을 망)이다. 종합하면 어른은 어린이'보다 많은 것을 보는 존재이고, 어린이는 어른보다 적은 것을 보는 존재'가 된다. 동의합니까 ?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훈육을 통해 길들여졌기에 어린이 또한 훈육해야 될 대상'이라고 생각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 NO ! " 라고 대답한다. 스티븐 킹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어른이 보지 못한 것을 보거나 너무 많은 것을 본다. 아이들은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처럼 유령이 보인다고 말한다. 인간 타자기'를 넘어 인간 복사기에 가까운 총알 타자수 스티븐 킹의 최신작 < 조이랜드 > 에서 다루는
주제는 " 어른의 문맹과 어린이의 심안 " 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대부분 맹盲'에 가깝다. 반면 근육위축증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열 살배기 마이클 로스'는 심안'을 가진 영매'다. 아이는 너무 많은 것을 본다. 엄마인 애니는 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난 항상 마이크가 너무 걱정스러워요. 아이는 너무 많은 것을 보는데 그 수많은 것들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니까 (267쪽) " < 조이랜드 > 는 60대에 접어든 < 나 > 가 21살 때에 조이랜드'라는 놀이공원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회상 형식으로 회고하는 후일담'인데 매 단락마다 < 나 > 는 " 그땐 그랬어야 했다는 걸 몰랐 " 고 " 그때 그게 마지막이 될 줄 꿈에도 몰랐 " 으며 " 결국엔 그게 착각이었음을 나중에서야 " 알게 되었다고 후회한다. 후일담'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코드 진행이기는 하지만
스티븐 킹은 감성적 소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다. 화자인 " 나 " 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은 볼 수 있었으나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화자인 나의 후회는 본질적으로 盲에서 오는 무지다. 그는 꿰뚫어 보는 눈(目)을 잃어버린 (亡) 주체'다. 반면 마이크는 마음을 꿰뚫는(心) 눈을 소유한(眼) 아이'이다. 盲과 眼은 연쇄살인범을 잡을 때에도 적용된다. 화자인 < 나 > 를 비롯한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범인의 손에 새겨진 새 문신'만 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신이 아니라 ○○○ 이었다. 부분에 집중하면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블라인드 스팟'이다. 맹점*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달을 보는 게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끝을 보고 있다. < 조이랜드 > 는 7,80년대 전성기 이후 주춤했던 킹의 21세기 후기 작품 가운데 최고 걸작'이다.
* 마이크의 할아버지'는 세속화된 상업 대형 교회의 목사'다. 그는 혹세무민으로 신도를 미혹한다. 그는 맹신자들의 교주다. 그는 손가락으로 천국을 가리키고, 맹신자들은 손가락 끝만 쳐다본다. 한국 성장 소설과는 달리 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가족은 봉합되지 않는다. 아버지와 딸은 끝끝내 화해하지 않는다.
달달한 사랑 이야기와 칼칼한 살인 이야기'를 성장 소설로 풀어내는 솜씨는 킹이 왜 킹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레이몬드 챈들러이거나, 대쉬 해밀이거나, 제임스 엘로이 가운데 한 명이 아닐까 싶다. 독자가 지루하다 싶으면 무조건 < 총 > 을 등장시키라고 말이다. 그래야지 무거워진 눈꺼풀 때문에 책을 덮으려다가 소설 속 총소리에 놀라 다시 책을 읽게 된다고, 비록 총이 느닷없이 등장해서 스텝이 꼬여도 어쩔 수 없다고 ! 하지만 스티븐 킹은 < 총 > 을 등장시키지 않아도 독자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 단락이 끝나는 마지막 문장에 총잡이 대신 궁금증을 자아내는 문장을 선보인다. 예를 들면 " 조이랜드는 평화로웠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 이런 식이다.
그것은 마치 헨델과 그레텔이 떨어뜨리고 간 빵 조각'과 비슷해서 궁금한 독자들은 킹이 흘리고 간 빵 조각을 야금야금 주워 먹게 된다. 뒤돌아보면 꽤 먼 길이지만 결정적 단서라고는 아직 공개도 하지 않는다. 독자는 순간 배신감에 치를 떨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가재미 눈이 되어 책을 덮으려는 순간 느닷없이 킹이 날린 펀치에 토끼 눈이 되고는 한다. 그리고는 새벽에 오면 부엉이 눈이 되기 일쑤다. 킹은 독자를 가재미 눈에서 토끼 눈으로, 토끼 눈에서 부엉이 눈으로 만드는 조절 능력이 탁월한 작가'이다. 소설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번 읽고 나면 다시는 읽지 않은 소설과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읽게 되는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고전이 최소한 두 번 이상 읽어야 할 소설 목록'이라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훌륭하다. 두 번째 읽고 나서 다시 두 번째 < 조이랜드 > 리뷰를 쓴다.
다시 읽었더니 놓친 부분이 많다. 암시와 복선을 찾아내는 깨알 같은 재미가 상당하다. 오, 오오 ! 킹이여, 가는 길에 영광있으라 ! 당신 때문에 산다.
킹 리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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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aladin.co.kr/749915104/6732782 : 11/22/6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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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ㅣ
곰곰 생각하니 첫 번째 에피소드는 겨울이 지나면 고드름이 녹아요, 가 아니라 눈이 녹으면 어떻게 되나요 ? 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어른이 듣고 싶은 대답은 " 눈이 녹으면 물이 돼요 ! " 인데, 아이는 " 봄이 와요. " 라고 했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여튼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시선이 참 아름답다. 그래, 겨울이 지나면 고드름이 사라지고, 눈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게 아니라 봄이 온단다. 아, 이제 곧 꽃샘잎샘하는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