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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허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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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 앞에 고깃집'이 있었다. 손님은 없고 파리만 날아다녔다. 가게는 꽤 큰 규모였는데 손님이 없다 보니, 지나치는 나 또한 그 가게'를 보면 한숨만 나왔다. 장사했다 하면 90%는 망한다는 자영업자의 비애'가 저런 것이구나 했다. 어느 날, 친구가 연락이 안 된다면 내가 사는 집까지 차를 끌고 왔길래 소주 한 잔 하려고 동네 거리를 걷다가 그 가게 앞에서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파리만 날리던 가게는 웬일인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북적거리면 눈길이 가기 마련. 자세히 보니 오늘 하루만 모든 가격이 절반'이었다. 소주 또한 천 원이었다. 속으로 이런 것이 말로만 듣던 " 사장님이 미쳤어요 - 세일 " 이거나 " 눈물의 쫑파티 " 인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어수선하다 ! 어디선가 카메라'가 등장한다. 아, 방송을 타는 날이었던 것이다. 장사가 안 되서 파리만 날리던 가게'에 방송국이 쳐들어오니 기분이 찜찜했다.
하지만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마땅히 술 마실 곳도 없었던 터'라 자리를 잡고 술을 마셨다. 인터뷰 요청을 하면 뭐라 해야 하지 ? 아, 아아. 아아아... 양념 소스'가 독특합니다 ( 독특하기는 개뿔 ), 가격도 저렴하고요 ( 저렴하기는 개뿔 ) 고기가 신선해요 ( 신선하기는 개뿔 ) 내 근심과는 달리 카메라와 방송국 스탭들은 우리 테이블 근처에는 얼씬도 안했다. 카메라는 내가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있는 단체석 두 테이블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연출을 담당한 피디'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손님'에게 몇 번이나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했다. 귀를 쫑긋 세워서 들어보니 마산에서 왔다느니, 고기가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느니, 맛이 끝내준다는 소리만 계속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
고기가 질겨서 고기를 껌처럼 씹고 있던 나는 이 방송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저런 식으로 홍보를 해서 장사가 된다면 굳이 내가 초를 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촬영은 2시간 넘게 진행된 것 같았다. 촬영이 종료되자 사장은 일일이 테이블을 돌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알고 보니 바글바글했던 손님들은 모두 사장의 친척이거나 친구들, 혹은 사장 아들이 데리고 온 단체 손님들이었다. 마산에서 왔다는 넉살 좋아보이는 청년은 바로 사장 아들의 친구였다. 이거, 참... 난처했다. 남의 집 잔치에 눈치도 없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 ?! 그리고 얼마 후에 < 트루맛 쇼 > 라는 다큐가 극장에 걸렸다.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은 모두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쇼'에도 불구하고 그 고깃집은 1년을 버티지 못했다.
2, 여전히 맛집 프로그램은 이 시스템을 고수한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듣도 보도 못한 메뉴 하나 선보인다. (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은 음식 대신 푸드'를 선호하게 되었다. 같은 요리라고 해도 푸드'라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 푸드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며 퓨전'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 헷갈리게 만드는 음식도 있다. 막걸리에 꿀을 타서 만든 " 꿀값하는 막걸리 " 나 양꼬치와 갓김치를 곁들여서 " 노는 양이 갓잖은 꼬치 " 라고 짓는다. 제목이 재미있으니 광고 효과를 노린 것이다. 최강 보양식을 강조하기 위해서 육해공'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름도 기가 막히다. 예를 들면 " 날지( 낙지) 못하는 닭의 한이 서린 전복 삼계탕 " 이라는 식으로 작명하는 경우다. 설명은 주인이 아니라 항상 손님이 입에 게거품 물고 말한다. " 닭은 하늘이요, 삼은 땅이 품은 보석이니, 바다를 대표하는 전복에 낙지가 더하니 임금께 진상하던 불도장과 비교할 바가 아니오. 육해공을 대표하는 보양식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오늘밤은 아내와 함께 운우지정을 나누며 방사할 참이요. " 이에 일당 십오만 원을 받고 출연한 아내는 부끄러운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호호 웃는다. 그리고 날지 못하는 닭이 품은 전복 삼계탕을 먹으러 마산에서 왔다는 소리 또한 빠지지 않는다. 침이, 고인다. " 진생 치킨 스프 " 그렇게 상품으로 팔린다. 그것은 일종의 광고효과를 위한 미끼 상품이다.
3. 강신주의 < 감정수업 > 은 마치 " 날지 못하는 닭의 한이 서린 전복 삼계탕 " 같다. 육, 해, 공을 섞으니 맛은 오묘하다. 구미에 당길 만한 요소는 모두 있다. 스피노자가 베이스로 깔리니 스피노자는 닭(空)이다. 세계 문학은 전복(海)이고, 그림 감상은 인삼(陸)이다. 여기에 철학자의 어드바이스'가 있으니 낙지 추가'는 덤'이다. 이렇게 섞으면 오묘한 맛이 날까 ? 순댓국에 파스타를 넣으면 맛이 날까 ? 내가 보기엔 1타 4피 같'다. 책은 1권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스피노자 입문서, 세계 문학 서평집, 그림책, 힐링 서적'으로 볼 수도 있다. 마치 유니클로 전천후 다용도 아우터 같다. " 팔을 떼면 조끼가 되고요, 비가 오면 방수 처리된 모자가 달렸으니 우비가 되고요, 봄에는 내피를 벗기면 봄옷이 된답니다. 그리고 때가 탔다 싶으면 뒤집어 입으세요. 옷 한 벌로 두 벌 기분을 내십시요. 호호호호호. 비비드한 컬러와 아방가르드한 라인이 라이브하게 살아 있는, 이 놀라운 기능을 갖춘 제품이... 여러분 절대 놀라지 마세요. 19990원 !!!! "
강신주는 항상 자본주의가 상품을 소비하는 야만적인 방식'을 지적했지만, 이 책이야말로 출판 자본이 얼마나 매끈하게, 이음새 없이, 강신주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상품으로 뽑아낼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신주가 소개한 48권의 고전 목록은 마치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목록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민음사가 왜 이 책을 기획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20권 넘게 책을 냈지만 민음사와는 처음으로 작업한 책이 왜 하필이면 (국내 소설이 배제된) 48편의 세계 문학 소개일까 ? 강신주 입장에서는 좋은 문학을 소개하고픈 신파 역할을 하고 싶었겠지만 민음사 입장에서 보자면 이 책은 독자의 구매욕을 부추겨서 자사의 세계문학전집 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구실을 하는 책이기도 하다. 윈-윈 전략인가 ? 민음사는 강신주가 소개한 고전과 이에 해당하는 자사 세계문학을 세트로 묶어서 할인 판매를 할 것이 분명하다. 감정수업'과 함께 이 책에 소개된 자사 세계문학전집'을 구매할 경우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벌써부터 누군가는 < 감정수업 > 에 수록된 책 목록을 보관함에 담아두었을 것이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이 상술은 얼마나 지적인가 ! 인간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던 그는, 자기 스스로가 대형 출판 자본의 상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이다. 마당 쓸고 동전 줍고, 도랑 치고 가재 잡자는 기획력으로 보자면 이 책은 훌륭하다. 하지만 깊이'는 없다. 강신주는 누누이 교과서 같은 책은 독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이 책이야말로 교과서 같다. 아니, 친절하게 어드바이스'까지 해주는 것을 보면 참고서 같다. 역설적이지만 그는 책'이 아니라 이것 저것 섞인 교과서'를 내놓은 것이다.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날을 나누어서 하루는 삼계탕을 파는 가게에서 삼계탕을 먹고, 하루는 전복집에서 전복을 먹고, 마지막 날은 낙지집에서 낙지를 먹는 것이다. 국밥은 따로 국밥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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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개 함 칩시다. 내일 시간 되시면 모입시다. 수다맨 님 시간되시면 비밀덧글 부탁드립니다. 엄동 님 보실려나 ?! 행인 님도 참석 가능하면 덧글 부탁드리고, 아, 야무 님 있었지 ? ㅎㅎ. 시간 되시면 조촐하게 한 잔 합시다. 다른 분도 시간 되시면 한 잔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