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겠지만 소설은 공교롭게도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처럼 보인다. 데카르트가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라고 주장했다면, 라캉은 " 타자가 나를 보고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라고 주장한다. Alibi란 결국 존재 증명이다. < 나 > 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진술이 아니라 타자의 진술에 의해서이다. 예를 들어 무인도에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사회로부터 사라진 사람이거나, 실종된 사람, 잊혀진 사람, 죽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가 nothing에서 thing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어야만 가능한다. 타자가 그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된다. 늑대인간, 설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들'이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91705,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12명의 크레타 사람들 中
잘 표현된 살인'
< 스타워즈 > 시리즈는 한두 편 보다가 접었다. 내 취향은 아니다. 현존하는 국가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은 나라에 속하는 미국이 < 스타워즈 > 를 통해 아스트랄的 창세기'를 기록한다는 것이 웃겼기 때문이다. < 할로윈 >이나 < 13일 밤... > 시리즈도 몇 편 보다가 접었다. 하지만 < 나이트메어 > 시리즈'는 모두 챙겨 보았다. 그렇다, 나는 나이트메어 열혈팬'이었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창의적인 죽음 앞에서 나는 오금이 저렸고, 사지가 절단되는 죽음 앞에서 낄낄거렸다. 시리즈 캐릭터'에 쉽게 등을 돌리던 내가 왜 이 영화 속에 나오는 프레디 크루거'에게는 흥미를 가졌을까 ? 이 글은 내가 왜 프레디 크루거'라는 살인마를 사랑하게 되었나, 에 대한 고해성사'다. 일단 이 캐릭터는 꿈속에서만 나타난다. 그러니깐 꿈속에서만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알리바이'는 alius ( 다른 ) + ibi ( 거기에 ) 를 합친 것으로 " 다른 + 장소에 " 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용의자가 살인이 일어난 장소'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알리바이'다.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을 위해서는 타소존재증명/ 他所存在證明'을 해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 살인이 일어난 장소A에 내가 없었음/부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내가 다른 장소에 있었음/존재'를 증명 " 하면 된다. 살인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프레디의 현장부재증명'을 증언할 수 있다. 목격자들은 피해자가 몽유병 환자처럼 혼자서 어슬렁거리다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프레디 크루거는 언제나 무죄'다. 왜냐하면 프레디 크루거는 " 이곳에 없는 남자 " 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나의 실존 > 은 누가 증명하는가 ? < 나 > 인가 ?! 아니다, 나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타인의 진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살인 현장 A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목격자(타인)의 진술이 필요하다. < 이곳 (살인현장) > 에 없거나 < 저곳 >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타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실존이다. 그러므로 < 나 > 는 오롯이 타인의 응시에 의해서만 실존을 증명할 수 있다. 무인도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않은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헛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 타자의 응시 " 에 노출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無 다. 영화 < 나이트메어 > 에서 " 프레디 " 는 이곳'에는 없고 저곳'에는 있는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존재'이다. 여기서 다른 장소( alius 다른 + ibi 이곳 )는 곧 이승 밖의 세계'이다. 그는 이승이 아닌 저승'에 있는 존재'다. 그가 살인을 할 때마다 눈을 반짝거리며 호탕하게 웃는 이유는 성정이 지랄같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순결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에게는 죄의식이 없기에 죄책감'이 따르지 않는다. 그는 본성'에 가깝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프레디 크루거'를 상징하는 특징(들)이다. 그것은 불과 철'이다. 얼굴에 드리운 화상흔'은 그가 불속에서 태어나고 불속에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칼을 장착한 쇠장갑'은 중절모와 함께 그의 상징이 되었다. 결국 프레디 크루거는 불과 철이라는 원소가 결합된 존재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레디 크루거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와 연결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올림푸스 12신 가운데 한 명이기는 하지만 올림푸스 신 가운데 가장 볼품없었고 왜소했으며 절름발이'였다. 그는 추(醜) 를 대표하는 신'이었다. 헤파이스토스를 프레디 크루거와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면 영화 < 나이트 메어 > 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어머니인 헤라로부터 발길질을 당해 불구가 된 추(醜)의 복수라 할 만하다.
그는 매끈하게 잘빠진 이승'에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캐니(CANNY)한 이승에 대한 언캐니의 역습'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다. 나는 항상 살인마 프레디'를 응원했다. 잘빠진 이승은 재미가 없었고, 캐니한 사회 또한 이음매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어서 똥침을 날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프레디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는 맞춤형 살인'을 창시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천식을 앓고 있는 사람은 몸속 공기를 모두 흡입해서 호흡 곤란으로 죽이고, 마약을 하는 자에게는 헤로인을 과다 투여해서 죽인다. 어디 그뿐인가 ? 폭주족을 상대할 때는 오토바이 몸체가 되어서 죽음의 질주를 함께 한다. 잘 표현된 살인 앞에서 나는 오금이 저렸다. 잘난것들과 엄친아'가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승에서 한 번쯤은 추한 것이 지랄을 하는 것에 대해 눈감아 줄 필요'가 있다. " 잘생긴 것들아 ! 너희들도 한 번 된통 당해봐라 !!! 예쁘면 모든 게 다 용서되냐 ? 신발들아 ! 췌.... "
< 나이트메어 > 는 영화 < 링 > 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잠을 뜻하는 < 수면 睡眠 > 에서 " 眠 " 은 잠을 잔다는 뜻도 있지만 본다는 뜻도 있다. 그러니깐 < 나이트메어 > 에서 십대 청소년들이 잠을 잔다는 것은 다른 것을 " 본다 " 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영화는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영화 < 링 > 에서 혼령이 깃든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목격하는 것이 이승 너머의 것이었듯, 영화 < 나이트메어 >에서 잠이라는 통로를 통해 목격하는 것 또한 이승 너머의 것'이었다. 악몽은 일종의 모니터링'이다. 그들은 모두 억울하게 죽은 자가 꿈이라는 소재로 만들어진 스크린(모니터)를 통해서 죽음'을 재현한 연극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죽음'은 전염성이 강한 독성'이다. 전자는 프레디라는 남성과 불이 결합한 공포를 다룬다면, 후자는 사다코라는 여성과 물이 결합한 공포를 다룬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레디'가 헤파이스토스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나이트메어 > 와 < 링 >의 구조적 유사성'을 연결시키면 < 링 > 의 사다코'는 판도라와 유사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판도라는 헤파이스토스가 물과 흙을 섞어 형상을 만든 인류 최초의 여자'였다. 다들 아는 내용이지만 인류의 재앙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자는 사실 상자가 아니라 항아리'였다. 둥그런 항아리 말이다. 엘 그레코가 조각한 한 쌍의 남녀는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인데 엘 그레코는 에피메테우스의 손에 둥근 항아리를 들게 해서 판도라를 표현했다. 영화 < 링 > 에 나오는 사다코는 판도라'와 유사한 점이 많다. 우물은 항아리와 유사하고, 헤파이스토스가 물과 흙으로 형상을 빚었다는 부분은 우물 속 검은 물과 진흙과 겹친다. 우물은 판도라의 항아리'이다. 그들은 모두 보면 안 되는 것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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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aladin.co.kr/749915104/6265610 : 애타게 공포영화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