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다이하드 > 에서 빌딩 밖에서 순찰을 하던 흑인 형사’는 백인 형사의 멘토이자 멘티이다. 그들은 모두“ 간댕거리는자지”를소유한 거세 직전’의 불쌍한 형사들이다. 흑인 형사 알 파웰’은 실수로 13살 소년을 쏘아 죽인 후, 더 이상 권총/페니스’를 발사/사정’하지 못한다. 그 또한 거세 직전의 형사다 ! 이들 짝패는 서로 멘토와 멘티가 되어서 서로를 위로한다. 무전기’라는 상징성’이 말하듯, 존 맥클레인 형사’는 5,60년대 포드주의’에 대한 향수를 대표하는 노동자 인물이다. 그는 오로지 육체의 힘으로만 디지털 악당들을 제압한다. 악당들이 최첨단 무기로 싸울 때, 그는 맨발로 싸운다. 나카토미 빌딩에 설치된 완벽한 방재와 보안 시스템은 위험을 방지하기는커녕 디지털 악당들의 훌륭한 요새'로 작용한다. 이 영화는 최첨단 " 디지털 사회와 그 적들 " 과 맨발로 싸우는 노동자를 다룬 영화이다. 어쩌면 인류의 희망은 아이폰 따위가 아니라 존 맥클레인 형사처럼 단순한 인간의 손과 발이 아닐까 ? 씩씩한 맨발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아이폰> 이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 페니스보다는 2배 작은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엿먹어라, 를 외치고 싶다.클린턴이 부시에게 “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 라고 말했던 것처럼,나 또한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멍청아, 문제는 하이테크’야 ! "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5043, 다이하드 : 디지털 사회와 그 적들 中
그때 나는 맨발이었다
뉴스에서 종종 " 우발적 살인 사건 " 을 접하고는 한다. 심장이 두근거리고는 한다. 범죄가 창궐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뛰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타자의 폭력'이 아니라 내 안에 감추어진 우발적 폭력 성향 때문이다. 나에게는 충동 조절 장애'가 있다. 자가 진단이 아니라 정신 상담을 받은 결과'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뉴스 속 < 우발적 살인 사건 > 의 주인공이 내가 되는 악몽에 시달리고는 한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어머니가 쓰려지신 적이 있었다. 집에는 어머니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으니 달리 연락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혈압이 올라간 것 같으니 약국에 가서 약을 사오라고 하셨다. 서랍을 뒤져 어머니가 복용하던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을 향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었고 일요일이어서 문을 연 약국은 보이지 않았다.
점점 걱정이 되었다. 정신 없이 달리다가 우연히 문을 연 약국을 발견했다. 여자 둘이 운영하는 약국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뛰어들어가서 자조지종을 설명하고는 어머니가 복용하던 약을 달라고 했다. 약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처방전을 보더니 주문대로 혈압약을 가지고 나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갑 속에는 백 원짜리 몇 개가 전부였다. 지갑을 가지고 나온다는 게 그만 동전 지갑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내가 돈이 없으니 일단 낱개로 두 개만 사겠다고 말하자 약사는 나를 차갑게 내려다 보더니 낱개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상황이 다급해서 그러니깐 다시 와서 살 테니 일단 낱개로만 달라고 사정했으나 약사는 내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개정된 약사법으로 인해 묶음 판매가 아닌 낱개 판매는 약사법을 어기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는 옆 동료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까르르르, 웃음이 터졌다. 빨간 양말 ! 정말 웃기지 않아 ? 까르르르르르르..... 나는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찬 바람이 불었다. 무작정 뛰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래를 보니, 나는 슬리퍼에 맨발이었다. 그때였다, 그때였다 ! 내 맨발을 보자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잠시 생각했다. 집으로 뛰어가서 어머니를 살핀 뒤 119를 부를 것이냐, 아니면 조용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 약국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다시 그 약국을 찾아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들어오자 두 약사는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내가 낮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 야, 시발년아 ! 내 말 똑똑히 들어. 내가 집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면 칼 들고 찾아오마. 묶음으로는 파는데 낱개로는 안 팔겠단 말이지 ? "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아마 그런 말투였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어머니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했다. 내가 이 사건을 통해서 절실히 깨달았던 것 가운데 하나는 감정 통제 불능'이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좋은 놈은 될 수 없다는 절망이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나는 나쁜 놈이 되었다. 꾀죄죄한 사업장에서 파업을 주도했으나 최후 통첩 앞에서 나는 납작 엎드려 동료를 배신한 채 살아남았고, 이별 앞에서 사랑하던 여자의 뺨을 다섯 대나 때린 적이 있었다. 떳떳하지 못한 태도였다. 그 사건 이후로도 나는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우발적 사건을 다룬 소식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그때 일이 계속 떠오른다. 생각한다. 그때 나는 왜 살의'를 느꼈을까 ? 그 살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 정확히 말하자면 효심'은 아니었다. 난 효자는 아니었으니깐 말이다. 내 곤경을 외면한 사회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한겨울 맨발로 거리로 뛰쳐나온 한기 때문이었을까 ? 그때의 경험은 매우 강렬해서 악몽을 꿀 때마다 꿈 속에서 나는 늘 맨발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꾀죄죄한 발바닥을 숨기기 위해서 늘 곤혹스러웠다.
신발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나 신발을 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철도 노조 파업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때가 자꾸 오버랩된다. 철도 노동자는 한겨울 거리에 맨발로 서 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대부분의 언론과 방송은 낱개로는 판매를 안 한다며 차갑게 외면한 약사가 연상된다. 어젯밤 드라마 얘기를 하며 까르르르 웃던 반지르르한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