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그런 시기, 대부분의 해석 작업이 반동 행위에다 숨통을 조이는 행위가 되고 만 그런 시기다. 도시의 공기를 더럽히는 자동차와 공장의 매연처럼, 예술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뱉어놓은 말들은 우리의 감성에 해독을 끼친다. 정력과 감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지식인의 존재가 이미 해묵은 딜레마가 되어버린 문화권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 아니, 그 이상이다.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다. 해석한다는 것은 '의미'라는 그림자 세계를 세우기 위해 세계를 무력화시키고 고갈시키는 짓이다. 이는 세계를 이 세계로 번역하는 것이다('이 세계'라니! 다른 세계가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세계, 우리가 사는 세계는 충분히 고갈됐고, 충분히 허약해져 있다. 세계를 복제하는 짓 따위는 집어치워라. 우리가 가진 것을 또 다시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을 때까지.
- 해석에 반대한다 中
홍보 수석 이정현論 :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양승조 발언 전문
홍보 수석 이정현이 주군을 향한 눈물의 소야곡'을 연주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니,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캄캄하다. 오호통재'라 ! < 소야곡 > 과 같은 말인 < 세레나데 > 라는 쉬운 말도 있지만, 나는 소야곡'이란 어감이 좋아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다. 작을 小에 밤 夜, 그리고 굽을 曲'이다. 밤에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에서 낮게 읊조리듯 노래를 한다는 뜻이다. 夜 앞에 小 가 있으니 아기자기하다. 문제는 이 " 눈물의 소야곡 " 이 슬프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오직 이정현만 슬픈 감정에 몰입되어서 눈물이 앞을 가렸을 뿐이다. 그가 브리핑실'이 아니라 슈퍼스타 케이나 케이팝스타 무대'였다면 심사위원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승철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이정현 씨 ! 관객은 울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는데 혼자 울컥하면 안 됩니다. 제 점수는요. 0.9점 ! " 반면 박진영은 양 미간에 내 川 자를 새기며 말할 것이다.
" 슬픈 발라드는 관객이 울어야지 먼저 가수가 울면 안 됩니다. 울면 호흡 조절에 실패해서 공기 반 소리 반이 나오질 않아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아요. 목소리는 우는데 눈은 심사위원 눈치나 살살 살피고 있잖아요. 제 점수는요. 0.0001점 " 그렇다, 이정현이 부른 소야곡'은 관객들에게 대성통곡'을 유도하기는커녕 수많은 논객들로부터 시일야방성대곡'을 뽑아내기에 이른다. 노래 한 곡이 이렇게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적은 임재범이 < 나는가수다 >에서 부른 " 여러분 "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조인성의 " 주먹 울음 " 이야 워낙에 조각같은 배우가 울었으니 모든 것이 용서가 되지만, 이정현의 " 울먹 울음 " 은 보기에 민망한 것이 사실'이다. 조인성 따라한답시고 입에 주먹 물고 오열하다가는 주먹 날아오기 십상이다. 노래 실력도 후졌고, 무대 매너도 후졌고, 오열 연기도 안쓰러웠다. 오호통재라. 그가 주군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지 말고,
국민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면 감동적인 무대가 연출될 뻔했다. < 에비타 > 코스프레는 집어쳐라. 여기는 코리아'이지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이지 에바 페론'이 아니다. 뮤지컬보다는 차라리 신명나는 마당극이 어울린다. 그날 브리핑실 논평 분위기만 보면 마치 국상이라도 치루는 정국 같다. 그럴수록 국민은 울상이 된다는 사실을 그대는 정녕 모르는가 ? 오호, 통닭이 먹고 싶구나. 도대체 이 기상천외한 격정(스펙타클 빅 사이즈 마시)멜로'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아...... 모르겠다. "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 네에 ?! " 이 질문에 제발 "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 " 라고 말하지는 맙시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 충성 > 으로 승부를 보려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충성이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충성이 과해도 문제가 된다. 충성이 부족한 놈은 배신을 때리지만,
역설적으로 총성이 과한 놈도 배신을 때린다. 그 수많은 조폭 영화'에서 보스를 찌른 놈은 사실 믿었던 놈이 아니었던가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세계가 바로 보스와 시다바리의 관계이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지나치게 충효'를 강조한 나머지 의(義)와 예(禮)를 상실했다. 공익을 위한 공익제보자'는 배신자'가 된다. 헬싱키나 스톡홀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라스베가스에서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날마다 일어나는 소동극이다. 공익제보자를 손가락질하는 내부 조직 사람들은 < 공익 > 에 반대하는 인물이니 < 공해'> 에 해당된다. 새누리당 의원 155명 전원이 양승조, 장하나 의원 제명안을 제출했다. 위에서 하라고 하니 억지로 한 티'가 나긴 하지만 그것은 충성이 아니다. 비겁한 것이다. 밑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른 반찬을 먹으면 되는데,
밑반찬으로 나온 시금치 무침'이 맛이 없다고 김치찌개 백반 값을 환불해 달라고 어깃장을 부리는 진상과 다를 것이 같다. 뻔뻔함이 지나치면 철면피가 되고, 철면피가 SF적 감수성을 만나면 아이언맨'이 된다. IRON MAN'이니 철갑을 두른 자이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짓은 갑질'이라 ! 시바, 오호, 통닭이 먹고 싶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충성 따위는 필요 없다. 충'이라는 것은 그리 환영할 만한 덕목이 아니다. 義보다 忠을 높이 살 때, 그것은 단순히 양아치 세계에서 말하는 의리'일 뿐이다. 바른 사회라면 당연히 忠보다는 義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래도 나는 이정현 홍보 수석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가 흘린 눈물이 가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게 마무리하련다. 안 그러면 국정원이 이 글을 보고 내 이메일을 샅샅이 훑을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을 담아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정현 홍보 수석을 좋게 생각한다.
물론 눈물의 소야곡은 빵점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충성 따윈 개나 줘라. 끝으로 존경하는 수전 손택의 문장을 패로디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가장 탁월한 에세이스트'를 뽑으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전 손택을 선택하겠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단어 몇몇을 고쳤을 뿐이다. 고친 부분은 붉은 글씨로 표시했다.
" 오늘날은 그런 시기, 대부분의 해석 작업이 반동 행위에다 숨통을 조이는 행위가 되고 만 그런 시기다. 도시의 공기를 더럽히는 자동차와 공장의 매연처럼, 정치(예술)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뱉어놓은 말들은 우리의 감성에 해독을 끼친다. 정력과 감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지식인의 존재가 이미 해묵은 딜레마가 되어버린 문화권에서, 해석은 이정현(지식인)이 양승조(예술)에 가하는 복수다. 아니, 그 이상이다. 해석은 이정현(지식인)이 한국 사회(세계)에 가하는 복수다. 해석한다는 것은 '의미'라는 그림자 세계를 세우기 위해 세계를 무력화시키고 고갈시키는 짓이다. 이는 세계를 이 세계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 세계'라니! 다른 세계가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 세계, 우리가 사는 세계는 충분히 고갈됐고, 충분히 허약해져 있다. 세계를 복제하는 짓 따위는 집어치워라. 우리가 가진 것을 또 다시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을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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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려고 서재를 뒤졌으나 < 해석에 반대한다 > 를 찾을 수가 없어서 모 서재에서 책갈피로 인용한 부분을 긁었다. 이 책이 도대체 어딜 간 것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