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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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옛날 일이다. 어느 날 아침 사장이 전 직원을 소집했다. 뒤숭숭한 소문이 돌던 때라 대충 짐작은 했지만 회사가 이렇게 빨리 문 닫을 줄은 몰랐다. 사장은 개정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쥐새끼 같은 정치가 흉내를 내며 당당하게 폐업 선고를 한 후 사라졌다. 일주일 후면 문을 닫는 것이다. 그날 점심은 그동안 모아둔 영춘각 쿠폰과 지각할 때마다 모아둔 벌금으로 배가 터지도록 중화요리를 먹었다. 팔보채도 원없이 먹었고, 탕수륙도 먹고, 군만두도 먹었다. 호기로 고량주 한 병 시켜서 깠다. 캬, 좋더라. 소풍 온 기분이 들었다. 야호 ! 점심 먹었으니 그동안 사장 눈치 보느라 제대로 낮잠도 못 잤는데 낮잠이나 푸지게 잡시다 ! 하하하. 그런데 웬걸 ! 잠이 오기는커녕 눈만 말똥말똥 또렷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남아서 외근을 핑계로 맞은편 대한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거래처이므로 공짜로 볼 수도 있었으나 이것저것 물어볼 것 같아서 표를 끊고 몰래 들어가서 보았다. 영화관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좋구나 ! 이런 것이 바로 여유로운 삶이로구나.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에스에프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다음달부터는 무엇을 하지 ?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영화 상영 도중에 영화관을 나왔다. 거리는 텅 비어 있고 평소 본 적이 없던 사람들만 쓸쓸하게 걸어다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후 3시에 영화 보는 놈들은 대부분 직장이 없거나 프리랜서'겠구나. 드문드문 보이는 행인들 얼굴을 보니 모두 초라하고 궁상맞았다. 누군가도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겠지 ? 오후 3시의 거리를 채우는 것은 우울한 것들이었다. 점심 시간 때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거리는 오후 3시가 되자 그 거리를 절뚝거리는 것들이 채웠다. 

 

그들은 낙원동 뒷골목이나  돈의동 쪽방촌 그늘에  숨어 있다가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오후 6시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명랑한 것들이 거리를 채웠다. 그렇다. 오후 3시는 우울한 것들이 거리를 채우고, 오후 6시는 명랑한 것들이 거리를 채운다.  오후 3시는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늦거나 혹은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러니깐 3시는 어정쩡한 시간이다. 어정쩡하기는 새벽 3시도 마찬가지다. 잠을 자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잠을 깨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오묘한 순간이다. 나는 밤 9시에 불 켜진 동네 이웃집 창문을 보면 하나도 궁금하지 않지만 새벽 3시에 불 켜진 이웃집 창문을 보면 그때부터 궁굼해진다. 잠들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일찍 깨어난 것일까 ? 3시라는 벡터'에 위치한 사람은 대부분 우울한 사람이다. 오후 3시에 공원이나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낡고 둥근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오후 3시가 주는 몽환적 나른함'은 영화 < 아비정전 > 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는 매점 여직원에게 자기와 함께 1분 간만 시계를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시계는 막 2시 59분을 지나 3시 정각을 향하고 있다. 이 1분은 둘이 함께 한 1분이 되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된다.  왕가위 감독은 이 장면을 촬영할 때 소프트 필터를 사용해서 나른한 꿈 같은 효과를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기도 하다. 이 애매모호함은 새벽 3시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새벽 3시에 잠들지 못한 이 또한 불안한 사람일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오후 3시에 거리를 걷지 않고, 새벽 3시에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소설가나 시인은 불안한 사람들이다. 시간에 비유한다면 소설가나 시인은 3시에 가까운 인간형'이다. h 씨는 내 오랜 이웃이었다. 성정이 고와서 내가 가끔 술 먹고 주사를 부려도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다른 이'였다면 " 곰곰발, 짜져 개새야 ! 호호호 " 라고 했을 터인데, h는 묵묵히 이 지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h는 지방 작은 도시에서 식당을 한다. 오랫동안 운영한 걸 보니 음식 솜씨가 좋은 듯했다. 술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새벽이 되어서야 식당 일을 매조지하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 나는 오후 3시에 집을 나와서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갑니다. 결국 3시 인생이에요. "  

 

그녀의 말은 내게 어떤 울림을 던져주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오후 3시에 만났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거나, 새벽 3시에 불 켜진 창문에 사는 한 명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위로했던 시간은  항상 FM이거나 AM인 3시였고, 나를 위로했던 이도 FM이거나 AM인 3시에 거리에서 마주쳤던 이거나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3시는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애매모호한,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후 3시는 재방송만 틀어주는 별 볼 일 없는 방송국 시간대도 아니었다.  오늘도 그녀는 이 글을 손님이 뜸한 새벽 2시나 3시 사이에 읽을 것이다. 그녀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이 켜놓은 불 켜진 창문 때문에 나 또한 작은 위로가 되었다고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르트르의 < 구토 > 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려다가 이리 되었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하지만 솎아내야 할 글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르트르는 < 구토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3시다. 3시, 이 시간은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항상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각이다. 오후의 어정쩡한 시간. 오늘은 참을 수 없다. " 아마도 사르트르는 이 문장을 새벽 3시에 썼을 것이 분명하다. 사르트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만큼은 좋다. 그리고 이 문장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사르트르는 오늘은 참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오늘 참을 수 있다. 언젠가는 참을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옛날처럼 새벽 3시에 실정맥을 풀어서 파란 실을 붉게  물들일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참겠다. 새벽 3시에 불 켜진 그녀의 창'을 보아야 하니깐 말이다. 나는 가끔 자상하다. 항상 자상했으면 좋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시집에 들어 있는 시가 모두 좋을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시가 처음부터 마지막 연까지 다 좋을 필요도 없다. t 씨가 말했다. " 말을 잘하는 사람은 침묵을 잘하는 사람이고, 책을 잘 읽는 이는 잘 잊는 사람이다. "  책을 읽고 나면 다 잊고 한 문장만 기억하면 된다. 이정록의 시집 [ 의자 ] 에 수록된 < 머리맡에 대하여 > 라는 긴 시'에서 내가 기억하는 문장은 단 하나였다. " 성년이 된다는 것은 머리맡이 어지러워지는 것 " 이라는 문장이었다. 다 잊고 하나만 기억하자. 모두 다 덤벼라. 하지만 명심해라. 나는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만 죽을 때까지 팬다,  라는 건달 정신으로 말이다. 한 문장만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면 된다. 수적천석/水滴穿石,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이 아니다. 물방울'이다. 이 페이퍼의 잡문과 사르트르의 문장은 잊어도 좋다. 하나만 기억하자. 오후 3시에 집을 나와 새벽 3시에 집에 가는 사람에 대하여. 여자여,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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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1-2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창 젊을 때는 오줌을 싸도 오강이 깨지낟고 하더니만

요즘은 글빨이 살아서 그냥 썼다 하면 글이 되는구나. 오호 통재다. 시바....

오늘도 집에 가서 술이나 마셔야 겠다.

즐거운인생 말 믿고 고량주 잔뜩 샀다가 낭패만 봤다.


독해서 더이상 못 먹겠다.

소주와 맥주 한 병 사가지고 마셔야겠다.

과일 안주에는 양주고,

탕슉에는 고량주고,

김치 안주에는 소주다 !!!!


새벽 2013-11-29 22:2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음.. 진짜 구토할 정도로 술 마셔본 게 언제인지.. :)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9 23:16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구토를 안 하고 술을 마셔본 게 언제인지....-_-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에 두 번 마시기로 했는데 어제까지 4번 마셨다. 결심을 한 게 지난 일요일이었으니 결심하고 나서 날마다 마신 꼴이다.
에라이... 빌어먹을....... 새끼야...

어제도

술 처먹고 여기저기 지랄을 했더구만... 왜 사냐.. 진짜...

나에게 하는 말이다.



저녁 손님 맞을 준비나 해야겠다.


남은 생선이나 어서 팔자...



생선 싸게 사고 싶으신 분들은 인왕시장 어수선'으로 찾아오십시요. 제가 있는 상호명입니다.
어수선에서 어윤부를 찾아주세요.. 꽁치 한 토막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새벽 2013-11-29 22: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인왕시장이 홍제역에 있는 곳 맞죠..?

어수선이라.. 흠..!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9 23:17   좋아요 0 | URL
어때요 ? 기가 막한 작명 아닙니까 ? 고기魚 + 수산 = 어수선'입니다...
작명 하나 마음에 듭니다.

2013-11-29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9 16:45   좋아요 0 | URL
그럼요. 갈치 사시면서 8토막 내주세요. 라고 말하세요.
우리 둘만의 암호입니다.

2013-11-29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rtour 2013-11-29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디, 진짜 생선 팔아요? 나 생선 좋아하는데. 탕슉 시켜서 고량주 드삼.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9 23:18   좋아요 0 | URL
네에, 저 생선 팔아요. 다음 모임에는 싱싱한 생선 한 마리 가지고 가겠습니다.
글찮아도 냉동 탕육 하나 사가지고 와서 냉동해서 먹어야겠어요.
이건 뭐... 고량주에 어울리는 게 하나도 없슴... 괸히 샀어, 괸히 샀어.....

Forgettable. 2013-11-30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3시 이론. 제게도 매우 잘 맞아 떨어지네요. 아 술.. 저도 이번주 연일 달리네요. ㅠㅠ 힘들어라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3-11-30 12:51   좋아요 0 | URL
왜 거짓말하고 그러십니까. 마치 이번 주만 달린 것처럼 날마다 달렸으면서.............................

rtour 2013-11-30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알라딘 어플을 깔았어요. 여긴 좀 술 먹고 젠틀하게 깽판치기 어려운 감은 있으나..뭐, 깽판치기에 제일 마음 놓이는 이 중 하나가 페루니 머. 여유가 생김 홍제 인왕시장 어수선에 들려보리다. 시장표 국수나 같이 한 사발? 솔까말, 상회 이름이 어수선이라고 하니, 이거 뻥이다 싶습니다만. ㅋ 너무 멋진 이름이잖수? 페루가 신장개업한 거면 또 몰라도.

곰곰생각하는발 2013-11-30 16:38   좋아요 0 | URL
제가 늘 깽판치는 주제에 어딜 감히 남이 깽판친다고 잔소리를 하겠습니까.
모든 깽판 다 받아줍니다. 깽판을 넘은 개판 혹은 난장판, 이판사판으로 지랄을 해도
다 받아줍니다.

시장표 잔치국수 참... 좋아해요. 제가.
독특한 맛이 있음........

그나저나 알리던 어플 깔았으니 자주 오시겠네요. 신난다...

핍희 2013-12-0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세시에 울고,
다섯시에 자서
세시에 일어날 때가 많은데
그럼 눈이 퉁퉁 부어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1 01:01   좋아요 0 | URL
세 시에 울고 다섯 시에 자서 세 시에 일어나니
당신은 울보이면서 잠보이니 울잠보'입니다.
다음부터는 비로그인으로 덧글 다실 때 반드시 울잠보'로 해주십시요....


잠깐... 혹시 피비 님 ?!

2013-12-02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2 0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정록 2013-12-02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이 삼삼하네요. 소설가시군요. 뵙고 소주 한잔 찌끄리고 싶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2 21:03   좋아요 0 | URL
역시 술은 찌그려야죠 ?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