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환장할 만한 소설 목록 7편

 

 

 

 

 

 

 

 

 

 

 

 

 

 

 

 

1.

■ 손창섭, 단편소설 : 내가 내린 손창섭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손창섭'이라고 말하면 < 어 ? > 하다가 잉여 인간'이라고 말하면 < 아 ! > 하게 되는 작가. 나 또한 <어?> 하다가 <아!> 하게 되는 경우였다. 3년 전, S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니체가 휘두르는 망치와 카프카가 찍어내리는 도끼 그리고 큐피드가 쏘아올린 화살'에 제대로 찍혔다. 손창섭 단편소설에는 부서지고, 베어지고, 박히는 아픔'만이 공존한다. 희망은 없다. 고독을 빗대어 멜랑콜리'를 이야기하려는 겉멋도 없다. 그리고 벗어나려고 하는 몸짓도 없다. 그들은 온종일 서서 비를 맞는다. 내 기준에 의하면 손창섭 단편소설'은 " 흥미진진한 독서 " 도 아니고 " 고진감래 " 도 아니다. 굳이 사자성어로 구획을 짓자면 " 오르가슴 " 이라고 짓겠다. S가 손창섭 소설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 어 ? > 라고 답했다. 생경스러운 이름이었으니깐 말이다. 그녀가 다시 < 잉여 인간 > 이라고 보충 설명을 했을 때 비로소 < 아 ! > 라고 말했다. " 손창섭의 잉여인간 " 이라고 연결이 되어야지만 알 수 있는 독특한 전후세대 작가 ! 영화제가 끝난 다음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단편집을 읽었다. 아, 아아아아아 ! 손창섭은 전후세대 작가'가 아니라 전무후무한 작가였다. 아! 로 시작해서 아아아아아 ! 로 끝나는, 어떤 몰입. 손창섭 소설에는 그런 힘이 있다.

 

 

2.

■ 찰스 부코스키, 치나스키 시리즈 : 나는 체질적으로 헤르만 헤세의 < 데미안 >이나 생텍쥐페리의 < 어린왕자 >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인간은 알을 깨고 나와야 성장한다는 허황된 성장 담론을 믿지 않는다. 박혁거세 신화를 믿는다면 모를까, 인간이 난생(卵生)이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그리고 다 큰 어른이 동화책 한 편 읽었다고 자랑스러워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습도 웃긴다. 하여튼, 작가가 독자에게 훈계하듯이 교훈을 주려고 하는 짓'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 짓은 꼰대나 하는 짓 !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작가에게 외친다. 너나 잘해라 ! 물론... 속으로만 외친다. 안 그러면 따귀를 맞을 테니깐.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 펙토텀 > 에서 " 좆이 안 선다 ! " 라고 끝나는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쾌감을 느꼈다. 많은 소설을 읽었고, 또한 수많은 소설의 엔딩'을 숱하게 읽어왔지만 < 좆이 안 선다 > 라는 문장보다 천박한 문장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긴, 술과 도박 그리고 섹스가 인생의 팔 할인 주인공에게 좆이 안 서는 것만큼 고민스러운 것도 없었으리라. 하루 종일 술과 도박과 섹스 생각만 하는 주인공이 느닷없이 끝날 때가 되니 인류애를 걱정하는 시늉을 한다면 그보다 꼴사나운 짓도 없을 것이다. 내가 찰스 부코스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겉멋이 없기 때문이다. 걸레 스님으로 유명했던 중광이 좆에 붓을 달아서 그림을 그렸듯이, 찰스 부코스키는 좆에 붓을 달아서 소설'을 썼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의 소설은 온통 섹스 이야기'로 도배를 하지만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 이상하게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에 울컥하게 된다.

 

 

3.

■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 스티븐 킹이 보스턴 레드삭스 팬으로써 <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 를 쓰고, 박민규가 인천 변두리 삼미 슈퍼스타즈 팬으로써 < 삼미 슈퍼스타즈 마지막 팬클럽 > 을 썼다면,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한신 타이거즈 팬으로써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 를 썼다. 이로써 한,미,일 베이스볼 삼국지'는 완성되었다,    는 뻥이고......    

유감스럽게도 찰스 부코스키는 < 여자들 > 에서 주인공이 외부 세계도 지루하고, 역사도 지루하고, 동물원도 지루하고, 그리고 " 야구도 지루하다 " 고 했지만 나는 야구만큼은 지겹지 않다. 요즘은 대한민국과 미국이 밤낮 없이 가을 야구를 진행해서 밤낮없이 야구를 보고 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야구는, 재미있다 ! 야구는 본질적으로 실패를 다루는 미학'이다. 좋은 투수는 정직한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볼을 잘 던지는 사람이고, 좋은 타자는 내야 땅볼을 치고도 전속력을 향해 달리는 선수'다. 베리 본즈'처럼 홈런 쳤다고 거들먹거리며 그라운드'를 느릿느릿 걷는 놈은 양아치 취급 받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 메이저리그 역사상 홈런 기록을 갈아치운 베리본즈'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가장 닮고 싶지 않은 이기적 타자로 회자되고 있다.  베리 본즈보다는 허슬플레이어 닉 푼토 같은 타자가 좋은 타자이다. 전공투 세대인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 는 야구'라는 소재를 빗대서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언어 유희와 해체가 목적이다. 최루탄과 화염병 속에서 구속과 도피를 반복하면서 느껴야 했던 기성 세대'에 대한 반감은 고스란히 언어 해체에 따른 유희'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가 이 소설에서 노리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

스티븐 킹, 사계 : 앙드레 지드'가 보기에 조르주 심농'은 천재'였다. 1만 명이나 되는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심농의 여성 편력이 부러웠던 것이 아니라 작품 하나에 평균 한 달에 못 미치는 집필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작품성을 유지하는 필력'을 부러워한 모양이다. ( 심농이 자랑스럽게 말한 1만 동침설'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1년이면 365일이니 그는 평균 27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새로운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 그는 여자와 섹스 그리고 자신이 이룩한 성공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타자기 앞에 앉아서 쪽파를 다듬듯이  문장 나부랭이'나 다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냥 본능에 의해 자동기술법으로 써내려갔으니 탁월한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그가 남긴 소설은 대략 400권이나 된다. 과연 심농에게 도전장을 내밀 현대 작가'가 있을까 ? 생산성과 작품성 모두를 충족시켜주는 작가 말이다. 심농에게는 못 미치지만 그에게 대적할 유일한 적수는 스티븐 킹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작품성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심농보다 한 수 위'다. 그 또한 자동기술법으로 소설을 작성하는 소설 기계'이다. 네 개의 중편 모음으로 이루어진 < 사계 > 시리즈'는 스티븐 킹'이 장편도 아니고 단편도 아니어서 출판하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그래서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가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고 한다. 킹 소설이라면 침 흘리지 않을 편집장이 어디 있을까 ?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킹이 이 네 편의 중편'을 버렸다면 문학사적으로 큰 재앙이 되었을 것이다. < 사계 > 는 스티븐 킹이 쓴 소설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

 

 

5.

코멕 메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맥 매카시가 내놓은 소설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문장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피의 자오선 > 에서 보여준 고딕형 만연체'는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와 최근작인 < 로드 > 에서는 단문 위주로 문체가 바뀌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성 작가들이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일관성을 유지했던 것과는 달리 코멕 메카시'는 작품마다 문체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나는 그의 변화가 반갑다. 그 정점에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가 있다.  어떻게 하면 마침표를 가장 멀리 던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초기작과는 달리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에서는 문장의 첫 번째 단어와 마지막 구두점 사이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더니 결국에는 따옴표와 쉼표 그리고  마침표까지 생략하기에 이른다.  그가 간결한 문장을 통해 남기고자 했던 것은 (등장인물 간의) 행위과 결과'였고, 도려낸 것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집요한 생략이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시거가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 점원과 나누는 대화와  시거'에게 쫓기는 모스가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소녀와 나누는 짧은 선문답'은 이 소설의 백미'다. 유감스럽게도 코헨 형제가 만든 영화에서는 모스와 소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 영특한 코헨 형제가 이 소설의 백미를 놓쳤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코헨 형제가 완성한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는 마치 춘향가에서 " 사랑가 " 를 생략한 완창 같다. 그렇다고 영화가 후지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소설은 영화보다 좋다는 사실은 진실'이다. 그는 헤밍웨이와 허먼 멜빌 사이를 가로질러서 그만의 묵시록을 이룩했다. 거룩한 소설이다.

 

 

6.

■ 김훈, 칼의 노래 : 플로베르의 앵무새' 라는 소설은 좋아하지만  플로베르의 보봐리' 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플로베르 특유의 만연체'에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나는 길게 늘어진 장식적 수사'에 대해 체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형용사(구)와 부사(구)가 잔뜩 낀 문장은 기름기'가 많은 비계덩어리 같다. 차라리 형용사(구)와 부사(구)가 최대한 억제된 문장이 읽기에 좋다. 간결한 문장은 맑은 대구탕' 같다. 싱싱한 대구에 일체의 양념 없이 소금만으로 간을 맞춘. 아... 바로 그 맛 !  원래 식감이 좋은 고급 식재료일수록 양념을 최소화하는 법이다. 반면 비린내가 많이 나는 값싼 생선일수록 독한 양념으로 냄새를 지운다. 문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뛰어난 문장가는 장식적 요소'를 버리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문장가가 바로 김훈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 칼의 노래 > 가 있다. 책 띠지'가 제공하는 설레발을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책에 대한 " 벼락 같은 축복 " 이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텍사스 주 엘파소에 코맥 매카시가 있다면, 경기도 일산에는 김훈이 있다. 그는 풍경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는 동시에 아픔-다운 것을 본다. 이러한 양가적 사고 방식은 인간을 바라보는 감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 그에게는 가여움과 무서움, 살고자 하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아름다움과 통증'은 하나로 겹친다. 김훈이 보기에 인간이란 귀한 놈도 없고 비천한 놈도 없다. 

 

 

7.

로맹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 10년 전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 자기 앞의 생 > 이란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아동 청소년 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꽤나 어려운 소설을 읽었다. 로브그리예, 사르트르, 까뮈,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읽기 어려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마치 구하기 힘든 영화'만 찾아다니는 (필사의) 탐독 목록'처럼 말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 자기 앞의 생 > 을 읽었다. 그러다가 그만 눈물을 쏙 빼게 되었고, 그 후 며칠 동안 도서관에 비치된 로맹가리가 쓴 소설'은 모두 읽게 되었다.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모모는 오후 3시 같은 인물이었다. 점심 약속을 하기에는 늦고, 그렇다고 저녁 약속을 하기에는 이른 오후 3시 말이다. 모모는 아이'라고 하기에는 어른스럽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이'이다. 정성일 말투를 흉내 내자면 " 그러니깐 이 소설은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다가온 애매모호한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다.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다운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어른다운 어른에게도 끌리지 않는다. 그것은 생장 기간을 생애 주기'에 따라 짜맞춘 방학 생활 계획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른다운 아이와 아이다운 어른'에게서 인간적인 희노애락을 본다. 내가 로맹 가리 소설에 끌리는 이유는 조숙과 미숙 사이에 놓인 불완전한 반숙(半熟)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경계인은 자신이 가진 몸보다 정신이 너무 빠르거나 늦은 경우이다. 혹은 자신이 가진 정신보다 몸이 너무 빠르거나 늦게 성장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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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0-16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벽이 이 글에 끝까지 덧글을 달지 않은 이유는 나으 헤르만 헷세를 디스했기 때문..! :)

그런데 다른 분들은 이 재미난 포스트에 왜 피드백 안 하셨을까요? 공감만 잔뜩이넹..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6 15:58   좋아요 0 | URL
오홋.... 책 좀 읽는다는 사람에게 하루키와 헤세 디스하는 짓은
한국인이 김연아 디스하는 꼴이죠...... ㅎㅎㅎㅎㅎㅎ.
제가 좀 과장되어 말하는 버릇이 있지 헤세 그리 나쁘지 않아요.
다만 극적 긴장감을 주기 위해 헤세 디스핬습니다.

새벽 2013-10-1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헷세가 데미안에서 쓴 아브락사스 우화는 정신적인 성장통을 뜻한다고 봤어요.
또한 인식적인 깨침에는 뼈아쁜 아픔이 따르기도 한다는 생각..! 가끔은 공짜로 자각을 얻을 때도 있지만 :)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6 15:59   좋아요 0 | URL
네에... 그냥 웃자고 쓴 표현입니다.
전 이상하게 헤세 글이 지루하더라고요. 별다른 감흥이 없는 독서였어요.
하지만 그게 매우 고운 성품을 가진, 존경할 만한 지식인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솔라리스 2013-10-16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은 오후 일정이 비어서 일찍 귀가했으나 행복감도 잠시, 아이들도 마나님도 없는 집안에서 지금 뭘 할까 멍 때리고 있습니다. 간만에 독서를 해볼까 하여요.

한가지 닉넴으로만 글남기기 뭐해서 먼먼 옛날의 닉넴을 써봤습니다.. 누구일까요? (읭? )

+ 아, 얼른 운동이나 다녀와야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6 16:00   좋아요 0 | URL
읭?! 요거 보고 누군지 알겠습니다. 새벽 님..
아니 이제부터는 솔라리스 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일찍 귀가하고 아이들 없으면 뭐 불 다 끄고 영화 보는 게 짱이죠..
치맥 사가지고 들어가셔서 관람이요 ~~~

2013-10-16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18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3-10-17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 전에 손창섭이 88세로 별세했죠. 국민일보 정철훈 기자가 2009년에 그를 찾아내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생사조차도 모를 뻔했습니다.
수를 부족하게 누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초라한 말년과 최후를 보니 정말로 눈물 나더라구요. 이 대작가가 왜 바다 건너 타국에서 이토록 쓸쓸히 생애를 접어야 했는지... 작가의 인생이 그가 쓴 소설과 그대로 포개지는 것 같아 참 심란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8 21:15   좋아요 0 | URL
네에.... 제가 소창섭을 읽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손창섭 보고 소식을 들ㅇ니 기분 묘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그냥 일종의 연락 두절이었는데 병실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분 묘했습니다.
좋은 작가에 대한 문단에 대접이 형편없었죠..

히히 2013-10-17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름아름하게만 느꼈던 작가를 청아하게 끄르셨네요.
'내가 로맹 가리 소설에 끌리는 이유는 조숙과 미숙 사이에 놓인 불완전한 반숙(半熟) 때문이다.'
이런 명쾌한 해석은 곰...발님만 가능합니다. 완전 공감입니다.
눈 쌓이는 날 [남한산성]을 읽었는데 정말이지 갇히고 싶더라구요.
이후에 읽은 [칼의 노래]가 엉거주춤할 정도로요.
김훈쌤 글의 제철은 겨울이던데...
봄,여름은 문체와의 편차가 너무 심해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8 21:17   좋아요 0 | URL
글죠 ? 모모'로 대표되는 아이는 조숙과 미숙 사이에 놓은 반숙입니다.
ㄱ렇기 ㄸ문에 우리가 끌리는 거예요.
김애란의 < 두근두근 > 이 개 실패한 이유는 너무 조숙 쪽으로만 밀었어요.
마치 어린아이를 성인군자처럼 묘사하잖아요.
굉장한 실패죠....


ㄱㄱㄱㄱ 공감합니다. 김훈의 문체는 겨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