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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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발표되었다. 풍문으로 들은 깜냥'으로 보자면 조이스 캐롤 오츠'나 토마스 핀천 그리고 필립 로스'가 눈에 익숙했으나 노벨 위원회'가 선택한 작가는 앨리스 먼로'였다. 그녀가 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내게는 생소한 작가'여서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문학사상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무척 아쉬워했을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학사상사는 하루키 때문에 팔자가 핀 출판사'다. 잘 키운 스타 한 명이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직원 전체를 먹여살리는 꼴이니, 하루키라면 항상 예의주시하지 않을까 ?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아이유가 부럽지 않다. 그러니 슈퍼스타 대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덥다 하면 문학사상사 싸장님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손부채질이라도 할 태세'다.
" 하루키 님, 재즈 들으며 열기 좀 식히고 가실게여 !!! "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노벨 문학상'이 북 마켓 버라이어티 쇼'라는 생각 이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헤르타 뮐러'에서 시작한 의외성은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정점을 이룬다. 노벨상이 서서히 대중성에 눈을 떠 후한 점수를 주기로 선정 기준을 변경했다면 스티븐 킹에게도 눈길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벨상은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정치적 입장과 대륙별 지역 안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 세력 간의 물밑 지원'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이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는 꾸준히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지만 중동 정세'를 보면 아모스 오즈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 세계 여론은 중동에서 독불장군처럼 전횡을 휘두르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높으니 앞으로 노벨상 위원회가 지역 안배 차원에서 중동 지역에 한 표를 선사한다면 아모스 오즈'보다는 반 이스라엘 중동 국가 출신 작가들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노벨상은 오로지 작품성 자체만 가지고 왕중왕전을 치르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작품에 대한 명성만 놓고 보자면 보르헤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에 속하며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로 보자면 토마스 핀천은 노벨상을 세 번은 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살만 루시디'는 어떤가 ? 노벨상이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20세기 기라성 같은 조이스, 톨스토이, 체코프, 입센, 에밀 졸라 그리고 마크 트웨인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새물결에서 나온 토마스 핀천의 < 중력의 무지개 > 가 십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서점에 나왔을 때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소설이 지나치게 난해해서 팔리지 않을 소설이니 박리다매'보다는 후리소매(厚利小賣) 로 명품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속셈'인데 막말로 이 바닥 상도를 감안하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는 전략'이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새물결이 보기에는 한길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와 지만지 시리즈는 경영 마인드'가 형편없는 출판사'다. 어려워서 안 팔리는, 그것도 소설도 아닌 인문학 책들만 뚝심 있게 출판하니 말이다. 보아하니 < 중력의 무지개 > 는 초판 700부에 가격이 100,000원 안팎이면 손익분기점은 넘기는 모양이다. 700부가 다 팔리면 그때 가서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천명하기도 했다.
" 1000억불 수출 달성 기념 특별 세일 이벤트. " 라도 열겠다는 마인드다. 오, 맙소사 ! 책을 단순히 신라면 블랙'으로 생각하는 싸장님의 공격적 경영 전략 !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vip를 겨냥해서 비싼 가격으로 소량을 팔겠다는 것인데, < 책 > 은 유감스럽게도 주머니가 넉넉한 사람보다는 가난한 자를 위한 필수품이 아니던가. 차라리 니체처럼 자비로 10부만 찍어서 어장 관리 차원에서 새물결 단골들에게 선물했다면 나 같은 사람은 그 마음에 감동하여 영원한 지지자'가 되었을 것이다. 좋은 책 내서 욕 먹고, 높은 가격 책정으로 계급 간 위화감만 조성하는 꼴이다. 소설 한 권 사서 읽을 돈 없을까마는 주인장 하는 꼴이 괘씸하오. 옛날에 책 도둑은 가난한 학생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 눈 감아주는 미덕이 있었거늘.... 아이고, 배 아파서 나는 못 읽겠소 !
토마스 핀천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내심 그가 떨어지기를 바랐다. 토마스 핀천 수상 소식에 희희낙락거릴 싸장님 생각을 하니 배가 아픈 탓이다. 농담이다. 그냥, 책값이 더럽게 비싸다는 소리를 구질구질하게 길게 늘어놓았다.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코멕 메카시나 필립 로스 그리고 토마스 핀천 같은 북미 작가들은 수상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가 이번에 수상했으니 말이다. 노벨 문학상'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 손창섭 " 이 생존해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를 했다. 손창섭'이라고 하면 < 어 ? > 라고 반응하지만, 잉여인간이라고 하면 < 아 ! > 라고 반응하게 되는 전후세대 작가 말이다.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 잉여 " 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그 원조'가 손창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는 손창섭이라는 위대한 작가를 소설 제목'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고전이라는 정의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고 한다면, 손창섭의 < 잉여 인간 > 이야말로 고전 중에서도 고전에 속할 것이다. 손창섭에 비하면 고은이나 황석영'은 한 수 아래'이다. 그가 절필 선언을 하지 않고 현해탄을 건너지 않았다면 한국 문학판은 180도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가 현해탄을 건넜다고 해도 한국 문단이 그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꾸준히 보냈다면 머나먼 타관에서 쓸쓸히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집불통인 노 작가'는 후에 빛나는 걸작을 내놓아서 한국문단의 타는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갈시켜 주었을 것이다. 손창섭 소설은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파격적이다. 대한민국에 손창섭 만한 작가 없다.
어쩌면 손창섭의 죽음은 가장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 한 명을 잃은 것과 같다. 얼마 전 손창섭이 잡지에 발표한 단편 하나가 최근에 발견되어서 < 연인 > 이라는 문예지'에 그 단편이 실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처럼 발표된 작품도 모르고 지나갔으니 미발표 작품들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답답할 뿐이다. 마음 넉넉한 출판사 하나 있어 손창섭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한데 모아서 고급스러운 양장본으로 손창섭 전집 하나 내줬으면 좋겠다. 토마스 핀천에 피똥 싸지 말고 손창섭에 투자하자 ! 비싸도 좋다, 구매할 의사 있다. 걸작에 대한 예감, 그 느낌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