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과 시멘트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7월 말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 눈물이 앞을 가렸으나 울면' 안 되어서 짜장면'을 먹으면서 웃으면서 코 팠다. 나는 군대 가기 전까지 공사판에서 일했다. 근사한 홈시어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돈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성능 좋은 스피커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감상하리라 ! < 귀 > 가 호강하기 위해서는 < 좆 > 이 고생하면 된다. 간단하다, 그래서 노가다판에서 < 좆 > 나게 고생했다. 당시 공사판에서 같이 일했던 형이 있었는데, 그는 완도 출신이었다. 배 타다가 서울로 상경해서 공사판에서 일하던 형'이었는데 걸죽한 남도 사투리를 섞은 욕은 가히 입말의 장관이었다. 그는 레미콘 차를 뺑뺑이 차'라고 불렀다.
개미 엉덩이 같이 생긴 게 빙글빙글 쉬지도 않고 돌아가니 그리 틀린 표현도 아니었다. " 왜 쉬지 않고 뱅글뱅글 돌아가죠 ? " 내가 묻자, 그는 신나게 대답했다.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국어 사전 뜻풀이에 의하면 < 레미콘 > 은 " 콘크리트 제조 공장에서 아직 굳지 않은 상태로 차에 실어 그 속에서 뒤섞으며 현장으로 배달하며 콘크리트가 굳지 않도록 개면서 운반하도록 장치한 트럭 " 인데, 그 형은 장장 한 시간 동안 일하는 틈틈이 " 레미콘이라는 녀석의 운명 " 에 대해 입말을 풀었다. 굉장한 말빨이었다.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저토록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있게 만드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 입' > 은 문득 펜을 쥔 밀란 쿤데라의 < 손' > 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7월 무더위가 정점을 찍던 날에 나는 훈련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 형은 현대 아파트 완공을 끝내고 완도로 돌아갔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퇴소하자마자 전화를 했더니 광어 양식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내가 < 뭍 > 에서 일하는 것보다야 < 물 > 에서 일하는 게 낫다고 하니 그는 늘 한결같은 소리로 화답했다. " 아야 ! 힘들어 뒈져불것다. 나처럼 부모 잘못 만나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놈은 뭍이나 물이나 다 똑같다야. 니나 나나 뺑뺑이 인생 아니냐. 흐미, 시부랄 놈 ! 주인 새끼, 승질이 고약해서 잠시도 내가 쉬는 꼴을 못 본다야. 휴가 때 함 놀러오니라. 알았제 ? 바빠서 끊는다잉 ! "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말한 < 뺑뺑이 인생 > 이란 아마도 < 뺑뺑이 레미콘 차 > 를 두고 한 소리였을 것이다.
뱃속에 있는 시멘트를 굳게 하지 않으려면 쉬지 않고 돌려야 하니 레미콘 인생이나 주인 눈치 보며 맘껏 쉬지도 못하고 일해야 하는 인생이나 엇비슷한 것이다. 곰곰 생각하면, 레미콘과 시멘트'는 형질이 정반대'이다. 레미콘은 동적인 형질을 가진 수다쟁이요, 시멘트는 정적인 형질을 가진 과묵한 내성적 사내'다. 소설도 두 부류로 나뉜다. 전자를 페이지 터너'라고 한다. 내용이 흥미진진하니 책장 넘기기 바쁘다. 반대로 시멘트처럼 정적인 성질을 가진 소설도 있다. 내용이 따분하면 문장이라도 읽는 맛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한 문장 읽으면 졸음이 쏟아진다. 문장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은 지 오래...... < 꼴 > 에 소설가랍시고 항상 거창한 주제만 다룬다. 고독, 소외, 절망, 구원'에 대한 이야기만 하니 잠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늘 아버지와 불화한다. 한국 소설에 나오는 여성 주인공만 놓고 보면 팔 할은 아버지에게 매 맞는 여성'처럼 보인다. 문장은 대부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기보다는 평론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쓴다. 그러니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책장을 넘기기에 바쁠 턱이 있나. 엉엉 울거나 깔깔 웃다가 빠질 턱이 있나. 바쁠 턱도 없고 빠질 턱도 없으니 문장은 퍽퍽한 닭가슴살 같다. 그 이유가 < 독자 우선 > 보다는 < 평론가 우선' > 을 선언하다보니 스토리보다는 플롯에 목숨을 걸고, 고급스러운 상징'으로 아부를 떠니 평론가보다 읽는 눈이 낮은 독자 입장에서는 정교한 플롯과 고도로 압축된 상징으로 이루어진 글은 팍팍한 문장처럼 읽힌다. 졸립다, 졸립다, 졸립다.
눈꺼풀이 무겁다. " 시멘트 문장 " 이다. 이런 소설을 2시간 동안 억지로 읽는 것보다는 완도 형이 쉴 새 없이 들려주던 잡설을 듣는 게 더 재미있다. 그 아름다운 육두문자들...... < 시멘트 문장 >으로 이루어진 소설이 재미없다면 < 레미콘 문장 > 으로 이루어진 소설을 읽으면 된다. 어릿광대가 되어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공 위에서 신나게 재주를 부리는 작가가 쓴 책 말이다. 우선 ① 찰스 부코스키 소설을 추천한다. 술 마시며 놀고 여자와 섹스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주인공은 술 마시며 놀고 여자와 닥치는 대로 섹스를 하며 쉴 새 없이 떠든다. 그것이 부코스키 소설의 특징이다. 곰곰생각하는발은 10분마다 코 파며 잇힝 하지만, 부코스키는 10분마다 똥구멍 이야기'를 한다.
그의 소설에는 한국 소설가들이 지긋지긋하게 고뇌하는 척하며 밑밥을 까는 인간의 고독, 인간의 절망, 인간의 소외, 인간의 구원, 인간의 불안따위'가 없다. 한국 소설가들이 고약한 점은 소설을 통해서 독자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 지루한 문장으로 말이다. 부코스키'는 적어도 독자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순수하게 배설할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의 소설을 낄낄거리며 읽다 보면 인간의 고독과 인간의 절망과 인간의 소외'가 전해진다. 아,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것이다. 단언컨대, 부코스키 소설은 편혜영, 천운영, 배수아, 윤대녕 소설보다 10배는 훌륭하다. 부코스키, 진정한 페이지 터너'이다 ! 무진장 재미있다.
레미콘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문장을 구사하는 대가는 역시 ② 스티븐 킹과 ③ 밀란 쿤데라'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펄프 픽션 작가라고 스티븐 킹을 얕잡아보다가는 큰 코 다친다. 그만큼 문법적으로 바른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도 드물다. 밀란 쿤데라의 경우는 위대한 작가 대우를 받으니 그를 얕잡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가진 장기는 재미없는 플롯을 기똥차게 재미있게 서술한다는 점이다. 이 두 작가'는 소설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소설이 아닌 산문도 매우 뛰어나다. < 유혹하는 글쓰기 > 를 읽고 나서 킹에게 반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소설 작법서를 가장한 에세이 < 소설의 기술 > 또한 밀란 쿤데라의 뛰어난 산문 실력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소설가가 산문으로 글을 쓰면 뭔가 밋밋한 맛이 있는데, 킹과 쿤데라'는 소설과 에세이에서 모두 환상적인 문장력을 과시한다. 정말 무시무시한 인간들이다. 반면 노벨 문학상 수상작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소설을 뽑으라면 주저없이 < 파리 대왕 > 을 뽑겠다. 읽는 내내 손과 불알에 땀이 찼다. 노벨상 위원회'가 ④ 월리엄 골딩에게 문학상'을 수여한 것은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만큼은 끝내준다. 월리엄 골딩은 어쩌다가 좋은 작품 하나 건진 것이다. 얼굴과 가면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엮는 것은 골딩의 재주'다. 내가 출판사 사장이라면 이 소설책에 대한 띠지에 다음과 같은 광고문을 삽입하겠다.
"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재미있는, 판타스틱하며 서프라이즈한 소설 ! " 이라거나 " 제임스 조이스가 잘난 척하느라고 버린 < 재미 > 를 윌리엄 골딩이 냅다 주워서 소설 속에 재미를 삽입한 작품 ! " 끝으로 한 권 더 뽑자면 ⑤ 코멕 메카시의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이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코맥 메카시의 소설은 생각보다 술술 읽힌다. 내용은 둔중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으나 미문을 읽는 맛은 짜릿할 정도로 자극적이어서 취하게 된다. 스티븐 킹은 < 유혹하는 글쓰기 > 에서 코멕 메카시라는 작가를 예로 들며 비아냥거렸으나,아... 어쩌란 말이냐 !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니 말이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와 < 로드 > 를 읽을 때에는 아쉬워서 일부러 야금야금 속도는 늦추며 읽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코멕 메카시 소설이 지루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단문 위주로 문장을 구성힌 코멕 메카시 작가 특유의 건조체'에 뻑이 갔다. " 할 말 못 할 말 가려 하지 않고 할 말 못 할 말 다 하는 " 어설프고 이상한 만연체에 질린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