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no.2
허풍선이 곰곰생각하는발 씨'의 믿을 수 없는 인생유전.
나,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이 되기 전에 나는 가문비나무였고, 층층나무였으며 한때 넓은 파초였다. 나는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다. 방울뱀 한 마리'가 호수에 떨어진 낙엽처럼 모래 위를 둥둥 떠다녔다. 나는 수면에 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5일을 머물렀다. 그리고는 모래를 파서 내 몸의 절반을 묻었다. 낮이 되면 얼굴과 팔과 심장은 태양의 불꽃으로 고통스러웠으나 모래 속에 묻힌 발바닥은 물길이 지나가는 자리여서 부드럽고 촉촉해서 간지러웠다. 낮과 밤이 빠르게 지나갔다. 바람이 불면 물결처럼 흔들리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빠르게 경화되어서 가시'가 되었고, 울음에 지친 성대는 울대 없는 꽃대'가 되어서 입은 줄기의 한 부분이 되었다. 가장 먼저 퇴화된 감각은 눈이었다.
낮이 와도 캄캄한 어둠이 전부였다. 낮과, 밤이 또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 날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던 예쁜 계집아이'가 선인장을 보고는 소리쳤다. " 엄마 ! 저 선인장의 그림자를 봐 ! 꼭 사람 같아 ? " 여자는 아이가 소리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말없이 다가왔다. 여자는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지금은 선인장 줄기가 된 내 손을 잡았다. 날카로운 가시'가 여자의 보드라운 손바닥을 찔렀다. 낯익은 손의 감촉'이었다. 여자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는 이내 멀어졌다. 멀어지는 틈틈이 여자는 고개를 돌려서 선인장'을 바라보았다. 낮과 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고슴도치였다. 고슴도치가 되기 전에 나는 사막의 선인장이었고, 가문비나무였으며 층층나무였다. 그리고 한때 넓은 파초였다. 온몸에 가시가 돋친 사내'는 " 유랑 극단 " 에서 일했다. 나는 코끼리사나이, 늑대인간, 비단뱀여자, 샴쌍둥이 자매 등이 주축이 된 " 프릭쇼 " 에서 인간 고슴도치'로 등장했다. 둥둥둥, 북이 울리면 철장에 갇힌 인간 고슴도치는 검은 천이 열리면서 관객들 앞에 전시되었다. " 신사 숙녀 여러분 ! 온몸에 선인장 가시'로 뒤덮인 인간 고슴도치'를 소개합니다. " 우우우우, 와와와와. 놀라움과 탄성의 외마디'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사육사가 다가와서 철장을 열고 가시가 돋힌 사내'를 끌어내렸다.
사육사가 힘차게 목줄을 당길 때마다 나는 몸이 휘청거리며 중앙 무대'로 향했다. 이어 난쟁이 곱추 피터 씨'가 우스꽝스러운 원숭이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이 쇼는 공타기 묘기를 선보이는 피터와 나 곰곰생각하는발 씨'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피터는 공타기 묘기를 선보이며 나를 향해 바나나를 던졌다. 바나나는 내 몸에 난 가시에 박혀서 떨어지지 않았다. 우, 우우우와와아아아아하하하하. 놀라움인지 웃음인지 모를 관객의 소리가 이어졌다. 사실 이 쇼는 칼 던지기'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재현이었다. 피터 씨는 칼 대신 바나나를 던졌고, 나는 바나나를 무서워하는 아가씨 흉내를 낸 것이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괴물이란 둘 중 하나다. 무섭거나 우스꽝스럽거나 !
난쟁이 곱추 피터'는 구르는 무지개 공 위에서 사과, 배, 복숭아 등을 더 던졌다. 우, 와, 하하하하. 마지막으로 커다란 수박을 던졌을 때는 관객들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왜냐하면 수박은 가시에 박히지 않고 내 얼굴에서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내 몸은 온통 깨진 수박의 잔해들로 가득했다. 얼핏 보면 배에 총상 입은 군인의 상처처럼 보기 흉했지만 관객들은 즐거워했다. 나는 온몸에 과일을 주렁주렁 매단 채 괴물처럼 객석을 향해 어슬렁거렸다. 탄성들, 즐거움에 대한 탄성들. 낯선 것에 대한 즐거움과 볼거리로 전락하지 않은 평범한 자신의 육체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들, 그런 것들. 마지막 이밴트'는 물풍선 던지기'였다.
게임 참가 신청자에 한해서 몇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즐거운 듯 아이 하나가 폴짝폴짝 뛰었다. 아이가 힘껏 물풍선을 던졌다.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춰 수염이 변한 가시로 물풍선을 터뜨렸다. 펑 !!! 얼굴에 물풍선이 터지는 순간, 잠시 동안 숨쉬기가 거북했다. 잠시 동안의 무호흡. 아이가 까르르르 웃었다. 그날의 쇼는 그렇게 끝났다. 무대 뒤에서 난쟁이 곱추 피터'가 다가왔다. 그가 내 몸에 달린 사과를 뽑아서는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 수고했어! "
" 고마워요. 피터 아저씨 ! "
" 우린 이제 명콤비군. 어딜 가도 굶어죽지 않겠어. "
이곳저곳에서 단원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은 없었다. 내 몸에 난 가시는 곧 상처이므로, 내 가시는 무시무시한 칼이기에 ! 유랑 극단 단원들은 오늘도 무사히 쇼가 끝난 것을 축복하며 서로를 끌어안거나 가벼운 입맞춤을 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곰곰 생각에 빠졌다. 한때, 내 가시'는 부드러운 층층나무의 이파리였다. 3월 파릇파릇 솟아난 연초록 이파리였다. 솜털보다 부드러운 유년이, 있었다.
나는 장미였다. 한때 나는 선인장이었다, 고슴도치였다, 가문비나무였으며 넓은 파초였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쇠똥구리였으며 한여름의 뿔매미였다. 지금 나는, 장미로 태어났다.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업보의 삶을 살았으나 지금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생은 처음이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장미가 된 내 아름다움과 장미 향에 취했다. 종종 술에 취한 시인이 와서 장미를 꺾고는 했다. 장미 가시에 찔린 시인은 시처럼 곱게 누웠다. 풍장이 그를 가볍게 하리라. 낮과 밤이 빠르게 지나갔다. 장미는 피고 졌다. 다시 낮과 밤이 지나갔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청년이 다가와 편백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돌담의 가시 장미를 호기롭게 꺾었다.
" 나의 사랑이 되어 주오 ! 아름다운 여인이여. " 청년은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를 했다. 가난한 고백이었다. 여자는 그 꽃을 받고 행복해 했다. 한때 나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선인장이었다, 고슴도치였고, 개망초였으며 쇠똥구리였다. 한때 한여름의 뿔매미였지만 지금은 장미였다. 여자는 그 꽃을 받고 행복해 했다. 가난한 고백이었으나 그 사내의 프로포즈'에 눈물을 흘렸다. 청년은 호방했다. " 아름다운 여인이여 ! 나의 사랑이 되어 주오. "
여자는 장미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장미 꽃을 받았다. 순간 장미가 된 나는 자신을 감싸쥔 낯익은 가느다란 손의 감촉을 통해서 이 아름다운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렸다. 한숨보다 고요한 바람이 불었다. 이내 장미 꽃잎이 미풍에 떨어졌다. 나는 선인장이었다, 고슴도치였고, 개망초였으며 쇠똥구리였다. 거듭되는 윤회 속에서 나는 한여름의 뿔매미였고 장미였다. 하지만 한때 나는 인간이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유독 붉은 장미를 좋아했다.
나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한때 인간이었다. 장미였으며 선인장이었다. 그리고 고슴도치였다. 시간을 더 거슬러올라가면 한때 문비나무였으며 넓은 파초였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쇠똥구리였다, 한여름의 뿔매미였다. 내가 인간이었을 때 나는 모서리 같은 여자를 사랑했다. 그들은 날마다 섹스를 했다. 나는 침엽수의 잎'처럼 숱이 없는 그녀의 거웃이 좋았다. 가슴은 잘 익은 복숭아 같아서 그 여자의 젖꼭지를 핥을 때는 여름 볕에 잘 익은 복숭아 향이 났다. 종종 그녀의 긴 혓바닥이 내 목구멍 속 깊숙이 들어와 심장을 핥았다. 사랑한다고, 당신 없는 세상은 넓은 사막에 홀로 자라는 선인장과 같다고, 이토록 뜨거운 속정이라면 지옥불이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이 열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자는 떠났고 나 또한 한계령을 넘어 속초'를 향했다. 2월 한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추웠고, 속초는 봄마다 폭설이 내렸다. 눈이 내릴 때마다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던 전령은 게으른 발걸음을 옮겼다.누군가가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여자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여자의 남편이 된 남자는 길을 가다가 담 아래 핀 탐스러운 장미를 꺾어 프로포즈를 했다고 했다. 간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한때 나는 뿔매미가 벗어놓은 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