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콘서트'로 읽는 책.
1. 생활의 발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시장의 법칙‘이다. 골목 또한 마찬가지다. 흩어져서 제각기 경쟁하는 것보다 같은 업종의 가게들이 모여서 골목을 형성할 때’가 더 유리하다. 골목 형성‘이 효율적인 상권’을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벌집처럼 오밀조밀하게 모인 군집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광고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단, 가고 본다 ! 가장 좋은 책은 종이책이지만 그래도 최선책이 아니면 차선책’이 있지 않은가 ? 풍전옥이 문전성시‘라면, 그 옆의 전주집은 어떤가 ? ** 골목의 장점’은 상황에 대처할 피드백‘이 공존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터들이 좋은 상권을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이 영광은 < 원조 > 들의 <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난의 서사‘ > 를 밑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가난했던 그들이 그곳’에 터를 잡은 까닭은 그곳이 변두리‘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골목의 큰 판‘이 바로 시장’이다. 이 시장도 원조들의 가난한 성공담‘을 바탕으로 한다. 변두리’는 어느새 이들의 부지런한 노력으로 상권의 중심‘이 된다. 땅값이 오른다. 재주는 상인이 부렸는데, 상금은 건물 입대 주인이 주워 먹는 꼴’이다. 최초의 시장‘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시장 근처’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달동네’가 형성되는 것이다. 할렘의 한국 버전‘이 바로 달동네다. 할렘의 탄생이다. 처음에는 값 싼 지역으로 출발했지만 시장의 범위’가 커지자, 땅 값은 치솟는다. 이 치솟는 집값을 마련할 여지가 없는 사람은 좀 더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이라는 것이 대충 이런 식이다.
지금부터‘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다. 시장 밖 주거지’로 옮긴 ( 더 싼 방‘을 위해서 ) 시장 노동자’는 시장 중심에서 멀어진 만큼 더 많은 노동 시간‘을 할당받는다. 왜냐하면 출퇴근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장 안 노동자'보다 1시간은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집이 없는 시장 노동자는 이래저래 지친다. 그런데 문제는 더욱 꼬인다. 시장 중심‘을 장악했던 외지인’은 배가 부르자 복잡한 주거 복합 상권에서 벗어나 전원 생활을 즐기고자 한다. 퇴직연금자나 건물 임대업자 그리고 성공한 자영업자들의 출퇴근 시간'이야 엿장수 마음대로가 아닌가 ?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쫓아냈던 원주민이 사는 곳‘으로 옮긴다. 땅값은 오르게 되어 있다. 이에 시장 노동자‘는 쫓겨나듯이 다시 더욱 먼 곳으로 옮긴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악순환. 악순환이다. 이제는 서울에 직장을 둔 경기도 외각 거주자’가 탄생한다. 그들은 출퇴근 왕복 세 시간’을 거리‘에 버리는 것이다.
초기 < 생활의 발견 >서사는 바로 가난 때문에 자신의 주거지’를 빼앗긴 가난한 외각 거주자의 씁쓸한 풍경을 다룬다. < 생활의 발견 > 이 주는 웃음‘은 장소와 사연 ( 둘 중 하나는 이별을 통보한다. ) 의 엇박자’가 주는 골 때리는 장면에서 쏟아진 페이소스'다. 그들은 그곳에서 이별을 통보한다.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과 마늘‘을 상추에 싸서 한 입 가득 입에 물고는 “ 우리 헤어져 ! ” 를 진지하게 말한다. 이별과 식욕의 관계는 마치 < 금각사 > 의 미시마 유키오’와 < 인간실격 > 의 다자이 오사무’의 관계만큼이나 어색한 상극‘이다. 이별 앞에서의 왕성한 식욕이라니 !
하지만 호탕하게 웃다 보면 왠지 모를 비애‘가 느껴진다. 그것은 슈퍼맨이 아닌 소시민의 비애이리라. 이별’에 어울리는 장소는 어디일까 ? 비 내리는 풍경이 보이는 창 넓은 커피숍 정도가 적당한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콩트 속 주인공은 대부분 식당’이다. 왜 그들은 커피숍이 아닌 식당‘을 선택할까 ? 보아하니, 콩트의 배경은 저녁인 것 같다. 퇴근길이거나, 수업을 끝내고 만난 것이다. 그들은 식당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 밥도 먹고, 자판기 커피도 마시며,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한다. 그들은 한곳에 앉아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것이다. 부자들이야 밥은 식당에서, 술은 술집에서, 이별 통보는 마지막에 들린 찻집‘에서 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럴 수가 없다. 돈도 돈이거니와 시간‘도 없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그놈의 퇴근길은 지옥 같다. 걸레처럼 지친 몸으로 잠이 들고, 다시 걸레처럼 늘어진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상황이 그러하니 마음먹고 제대로 이별을 통보할 수도 없다.그냥 한곳에 앉아서 오늘 해야 될 모든 코스’를 해결하는 것이다. 내가 이별 고백을 했던 감자탕 집 < 풍전옥 >은 식당이었으며, 술집이었고, 커피숍이었다. 짬짜면이었다. 이렇게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이렇게 왁자지껄하는 웃기는 짬뽕 같은 식당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 생활의 발견 > 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사는 찌르레기‘가 한 마리가 찌르르르 울어서 마음이 아프다. 이별조차도 멋지게 할 수 없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이별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넘치는 노동 시간 앞에서, 퇴근길 지옥 앞에서 우리는 꾸역꾸역 살아간다. 마음도 몸도 모두 지친 우리는 슬픔 앞에서도 침이 고인다. 마치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밥그릇 앞에서 무한 대기해야 하는 개처럼 !
장정일'은 < 구월의 이틀 > 을 통해 " 젊은 보수의 탄생 " 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는데, 솔직히 나는 < 구월의 이틀 > 을 읽다가 내던졌다. 허리띠를 풀어 벌거벗은 엉덩이를 때리는 페티쉬는 여전하고, 뜬금없는 동성애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보수를 이야기하는데 파리가 날아다니는 꼴인가 ? 읽다가 웃으면서 코 팠다. 뭐가 이리 복잡해 !! 지금쯤 책장 한구석에 먼지 켜켜이 쌓여 있으리라. 보수화'는 간단하다. 먹고 살기 힘들 때 보수'는 극성을 부린다. 유명한 클레어 헤르츠가 즐겨 사용하는 상투어'를 빌리자면 이 극성은 <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 > 이다. 극성이라 쓰고 지랄이라 읽어도 좋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보수화'가 되는 이유는 노동 사회의 구조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닝기미 !
젊은 노동자들은 집에 오면 떡이 된다. 부동산 정책은 노동자를 빠르게 직장 외각 지역으로 내몬다. 몫 좋은 곳은 모두 돈 있는 자들의 차지이니 외각으로 쫒겨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노동 시간 ( 출퇴근 시간은 노동 시간의 연장이다. ) 은 연장된다. 떡이 되니, 떡칠 시간도 없다. 섹스리스는 곧 가정 불화의 씨앗이 되고, 불륜 공화국은 만개한다. ( 물론 매춘 산업은 불황을 모른다. ) 이런 와중에 무슨 정치를 논하며 더불어 삶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질까 ? 이 틈바구니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책을 담으려고 해도 시간이 없는 것. 책을 안 읽는 사회일수록 보수화된 사회'이다. 설령 읽는다고 해도 힐링이나 자기계발서'는 본질적으로 보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잠잘 시간에 부족한데 누가 인문사회학서를 읽을까 ? < 과로 사회 > 는 바로 그 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노동 시간 과잉이 한국 사회'를 보수화시킨다는 주장이 적어도 장정일 식 보수화 주장보다는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2. 나쁜 사람
http://youtu.be/G-PuQS39bdo
< 나쁜 사람 > 을 보면 드라마의 정석이 보인다. 형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 오직 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는 쟈베르 경감'이다. 자신만만 ! 그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 나쁜 사람 " 를 심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흐른다. 용의자'가 들려주는 속사정은 슬픈 신파에 가깝다.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착한 놈'이다. 하지만 사명감에 불타는 엘리트 형사'는 마음을 다잡는다. 동정에 호소해서 교묘하게 빠져나가려는 술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사는 슬픈 진술을 뒤집을 만한 증거들을 찾아 날카롭게 지적한다. " 웃기지 마, 이 자식아 ! 내가 알기로는 아기 돌잔치는 6월이잖아 ! " 예리한 지적이다. 돌잔치가 6월인데 2월에 금은방을 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때 나쁜 남자가 말한다. " 아기 엄마가 그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요 ? 살아 있을 때, 아이 돌잔치 하고 싶었습니다. " 아, 이런 신파 ! 냉정한 형사는 그만 무너지고 만다. " 풀어주자 ! 풀어줘 ! " 그때 고참 형사'가 등장한다. 덩치로 보나 험악한 외모로 보나 그는 젊은 형사보다 더 강하다.
드라마의 정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의 기초'는 갈등이다. 가족 드라마'이건, 멜로 드라마'이건, 범죄 드라마'이건 기본은 갈등이다. 작은 갈등으로 시작해서 커다른 갈등으로 확대되는 것이 바로 드라마의 정석이다. 갈등이 확대될 때 시청자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 것인가를 지켜본다. 여기서 갈등은 위기'로 고쳐 써도 된다. [ 나쁜 남자 ]는 이 갈등 구조'에 충실하다. 나쁜 남자이지만 사실은 착한 남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젊은 형사의 예리한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위기'를 잘 넘기면,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위기'다. 하지만 나쁜 남자'는 형사를 설득한다. 보다 더 강력한 신파로 말이다. 결국 나쁜 남자는 젊은 형사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아낸다. 갈등과 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 하하하. 따스한 해피엔딩이구나 ! 하, 하하하하하하지만
그때 보다 큰 갈등을 예고하는 고참 형사가 등장한다. 첩첩산중이 아니라 첩첩심문'이다. 갈등 구조의 최고점, 바로 절정'이다. 나쁜 남자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풀려난다. 이 7분짜리 콩트'는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나쁜 남자'인 줄 알았더니 착한 남자'라는 반전과 강한 남자인 줄 알았더니 약한 남자'인 형사들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메시지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정도면 꽤 훌륭한 시나리오'다.
레이몬드 챈들러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이보게, 독자들이 지루해 한다 싶으면 일단 < 총잡이 > 를 등장시키게 ! 그리고는 총을 쏘고 튀어 ! 나중에 어떻게든 수습이 되겠지. 이걸 계속 반복하라고 ! " 스티븐 킹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 유혹하는 글쓰기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 세상 모든 작법서'는 플롯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플롯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써라 ! " 이 정도면 도발적이다.창작론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당혹스러운 주장이다.
< 나쁜 남자 > 에서 첫 번째 상황보다 더 강한 두 번째 진술은 < 두 번째 총잡이 > 가 느닷없이 등장해서 총을 쏘는 것과 비슷하다. 지루하다 싶으면 보다 더 강력한 진술'을 선보인다. 총알이 떨어지면 끝장인 것이다. 과연 이 총잡이 역할은 정교한 플롯의 결과일까 ? 아리송하다. 물론... 플롯은 중요하다. 설계 없이 지어진 집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을 탓할 수는 없다. 그는 정교한 설계도 없이도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르주 심농과 같은 자동기술자'이다. 플롯 없이도 좋은 소설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자이다. 그는, 글 쓰는 모짜르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