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분 사회 : 중심 지향적 한국 사회.

집'이라도 하나 얻을까 하고 생활정보지에 실린 부동산 정보를 살펴보면 대부분 역에서 " 걸어서 10분 거리" 임을 강조하지만, 턱없이 정보만 믿고 찾아갔다가는 큰코 다친다. 턱 빠지고 코 다치는 꼴이 된다. 10분은커녕 뛰어야 가까스로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런가 하면 막상 걸어서 10분'인 곳은 " 걸어서 10분 거리 " 대신 " 걸어서 5분 거리 " 라고 과장 광고를 한다. 이처럼 단박에 들통 날 뻔한 거짓말'인데도, 한국인은 태연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몸에, 밴 것이다. 한국인은 거짓말'에 익숙해진 것이다.
만약에 집을 보러온 사람이 < 걸어서 10분 거리 > 가 허위 광고'라고 지적하면, 오히려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 어, 디서 오셨수 ? " 한국 사회에서 사소한 거짓말은 거짓말 축에도 끼지 못한다. 거짓말이 들통이 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반성이 아니라 똥 밟았다는 생각부터 한다. 그러니 반성으로 이어질 턱이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거짓말. 윗놈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아랫놈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한국인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불같이 화를 낸다. 거짓말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 한국인은 서구인과는 달리 공익제보자나 내부고발자'를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고백하는 자에게 화를 내고, 거짓말이 뻔히 보이는 말에는 방긋 !

내 이름은 곰곰생각하는발 ! 그래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 거짓말의 일상성' > 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 적당히 > 라는 부사에 답이 있는 듯싶다. < 적당량 > 의 반대말은 < 계량 > 이다. 왜냐하면 계량은 부피와 무게를 측정한 값이지만 ,
적당량'은 말 그대로 적당히'다. 한식 문화가 대표적이다. " 어느 정도 넣을까요 ? " 라고 물으면 대뜸 돌아오는 대답은 " 적당히 !!! " 다. 그걸 누가 모르나 ? 소금도 적당히 넣고, 고춧가루도 그냥, 대충, 적당히 넣으면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비계량화된 영역이 바로 한식 문화이다. 한식이 세계화'에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한식은 근본적으로 계량 스푼'으로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당량의 반대말은 계량'이다. 한국 사회는 적법한 절차를 밟고 꼼꼼하게 따지는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려고 하면 꽉 막힌 사람'이라는 쉰소리부터 듣기 십상'이다. 이들은 군대에서 고문관이란 소리를 듣거나 직장에서는 눈치 없는 직원이라는 대우를 받게 된다. 근대화를 거치는 동안 에티켓 문화'가 발달한 유럽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나라'처럼 보일 것이다.
<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 에 위치한 주거지는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동시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리'이다. 한국 사회는 <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 의 확장판'이다. 역을 중심으로 역세권이 형성하듯이, 한국인은 어떤 특정 중심'에서 멀어질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중심을 향해 똘똘 뭉친다. 말이 똘똘이지, 사실은 그리 똘똘한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집단성을 강조하는 국가주의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하기 때문이다.

중심으로 달려드는 본능적 운동성'은 마치 난자를 향해 돌진하는 정자를 닮았다. 아파트 문화는 한국인이 얼마나 집단 내 소속에서 안정감을 얻으려고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는 죽는 것이다. 노스페이스의 교복화'가 단적인 예이다. 사자가 노리는 것은 소 떼가 아니라 도망치는 소 떼'에서 뒤쳐진 소'다. 안 그렇소 ? 유행에 민감한 촉은 이미 뉴요커를 앞지른다. 따라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이 낳은 집단적 히스테리'이다. 텔레토비는 꿈동산에서 모이고, 부자는 강남 8학군 아파트'로 모인다. 그뿐이랴, 모든 가게'는 역세권으로 대동단결한다. 중심지향적이다.
한국은 10분 사회'이다. 한식이 슬로우 푸드라는 말은 이제는 새빨간 거짓말이 되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지 10분 안에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러니깐 10분이란 아주 묘한 접점'이다. < 주문 후 10분 > 은 한국인이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어떤 한계점'처럼 보인다. 그것은 시간성이다. 반면 < 역세권 10분 > 은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태도와 중심 지향적 성향이 투영된 욕망이다. 그것은 공간성이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10분이다.
묘, 하다.
- 이미지 출처,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