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 남쪽으로 튀어, 오쿠다 히데오
말이 거창하다. " 시민불복종 " 이라니 ! 쉽게 풀어서 쓰자면 " 개기는 것 " 이다. 무정부주의자인 우에하라 이치로'는 " 국민의 의무 " 라는 말에 우럭처럼 버럭 소리를 지른다. " 나, 국민 안 해 ! " 그리고는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소리친다. " 국민이기를 관둘 거야. 세금 안 내 ! " 우에하리 이치로'는 시민불복종이란 어려운 개념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甲이 국가라면 乙은 국민이다. 그는 까라고 해서 무조건 까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乙인 이치로'는 거대 시스템을 상대로 개기기 시작한다. 그는 가족을 이끌고, 따스한 섬'으로 가서 자급자족한다. 작가는 소로우의 < 월든 > 과 < 시민불복종 > 을 근사한 오락 소설'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시하라와 소로우는 납세의 의무를 거부한다는 측면에서 서로 닮았다. 우에하라가 거칠게 내뱉는 구구절절한 입말은 모두 소로우가 조근조근 말하는 속말'과 동일하다. 그리고 남쪽 오키나와 근처 이리오모테 섬은 소로우가 머문 월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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읭?! 골라놓은 책이 모두 은행나무'다. 은행나무 출판사 사장은 소로우를 좋아하는 듯 !
남향과 남양 : " 남쪽으로 튀어 ! "
나침판을 잃어버린 적 있다. 이 말은 내가 나침판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명품 나침판'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나침판이 그리 훌륭한 장난감'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침판 없이도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정글에서 살아남기 > 따위의 책에서는 나무 나이테나 태엽 장치 시계로 방향을 알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창문이 나 있는 방향을 보면 남쪽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창은 남쪽으로 나 있다. 으리으리한 집의 창문은 언제나 남향'을 향한다.
남향'을 선호하는 이유는 일조량' 때문이다. 볕이 많이 스며들수록 그 집은 건강하다. 벌레들은 볕을 싫어하니깐. 남쪽은 다 좋다 ! 왜, 사냐면... 웃는다. 잇힝 ! 아, 시부랄. 묘하게 남아 선호와 남향 선호는 닮았다. 남(南) 이라면 무조건 무조건이다. 특급 사랑이다.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달려갈 거야. ( 여기에는 싸가지없는 북한이 큰 몫을 기여했다. )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사실 한국인의 고향은 북이다. < 뒈지다 > 라는 동사에서 " 뒈 " 는 < 뒤에 > 라는 뜻인데, < 뒤 > 는 북쪽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 뒈지다 " 는 " 북쪽에 눕다(죽다) " 라는 것.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죽음과 북쪽은 어떤 관계일까 ? 은밀한 관계 ? 한국인에게 있어서 < 북 > 은 < 내가 태어난 원초적 자궁 > 이다. 어머니가 정한수 떠 놓고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는 이유는 북향이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 죽을 때는 북에 누워 죽는다 > 는 것은 연어의 회귀 본능'과 닮았다.
남양유업은 그동안 < 남향 > 이미지'를 기업 광고 이미지'로 사용해 왔다. 하늘은 푸르다. 언덕 위에는 예쁜 집 하나 있다. 홈 스위트 홈이다. 꼴을 보니 남향'이다. 남양은 5월 같은 기업이다. 하늘색을 전략적으로 사용한 이유는 명백하다. 남양 기업이 유업'이다 보니 행복한 가정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으리라. 우리가 < 남향 > 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색은 당연히 하늘색이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푸른 언덕 위에 집. 누구나 꿈꾸는 전원생활이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문제는 뒷면'이다.
남양은 자신들이 살 남향 집'을 갖기 위해 소규모 대리점주'를 악랄하게 착취했다. " 밀어내기 " 로 제품을 강매했고, 모든 불이익은 소규모 대리점주가 져야 했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365일 가운데 쉬는 날이라고는 이틀이 전부인 지독한 노동 환경'에서 얻은 것은 가난과 분노'다. 그들도 남양처럼 남향 집을 얻어서 달콤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빚에 쫒겨 내몰린 곳은 볕 잘 드는 남향이 아니라 북향 쪽방이 전부다. 알전구 반지하에서 살아본 사람은 그 으시시한 냉골을 뼈져리게 알 것이다. 자기들만의 남향을 위해서 파트너를 북향으로 몰아넣는 기업 경영'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
북쪽으로 난 창이 있는 쪽방에 사는 사람은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방으로 볕이 쏟아진다는 사실을 잘 안다. 오래된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그 누런 색깔 말이다. 온기 없는 볕이다. 해질 무렵의 모든 볕에는 온기가 없다 ! 당신이 착한 남자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당신이 착한 여자일 필요도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방귀를 뀌고도 짐짓 모른 척해도 상관없으며, 길거리에서 주은 돈으로 신나게 술을 마셔도 된다. 그것은 당신 마음이다. 하지만 착한 소비자가 될 필요는 있다. 굳이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그저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에서 " 이 제품 남양인가요 ? " 라고 물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오 대신 삼오 요구르트를 마시면 되고, 프랜치 키스 대신 잉글리쉬 키스를 마시면 된다. 17차 대신 16차는 어떤가 ? 가격은 모두 다 비슷하고, 맛도 대동소이하다. 소로우는 < 시민불복종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고 있다. 상비군, 예비군, 간수, 경찰관, 민병대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아버린다. "
이 문장'을 남양유업 직원과 사장의 문제로 돌리면 이렇다. " 이처럼 수많은 직원들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회사를 섬기고 있다. 부장, 과장, 영업소장, 영업직원 등이 바로 그런 직원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아버린다. " 자신들이 살아갈 근사한 남향 집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 살아갈 남향 집을 빼앗는 남양의 행위'를 용서하면 안 된다. 그들은 가족 서사극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납량 특집극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배구 하지 마라. 농구도 하지 마라. 축구도 하지 마라. 족구 해라. " 남양유업, 다 족구 하라 그래, C !!! " 우리 모두 족구합시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 이건 명령이다.
http://myperu.blog.me/20179925610 : 미니멀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