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의 < 자본론 > 은 어렵지 않다. 분량이 많고 딱딱할 뿐이다. 분량이 많은 이유는 맑스가 책을 더 많이 팔아먹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는 욕심 때문에 분량이 넘쳐난 것이리라. 맑스, 꽤나 인간적이다. 오히려 알튀세르가 맑스 자본론'을 난해한 경전으로 어렵게 풀었다. 프로이트보다는 라캉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맑스는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 믿었고, 자본가는 기계가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양산할 것이라고 맞섰다. 누가 헛소리를 하는 것인지는 당신이 판단할 몫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은 곧 기계(혹은 시스템)의 부품이 된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일한 품삯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뜯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은행현금입출금 기계이다. 사실 ATM은 은행원이 해야 할 은행 업무를 고객이 대신하도록 고안한 기계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에 대한 품삯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맥도날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고객은 맥도날드 매장에서 직원이 해야 할 서빙, 테이블 청소, 분리 수거'를 무료로 봉사한다. 옛날 같았으면 도와줘서 고맙다고 음식값은 받지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맥도날드 테이블에 자신이 먹던 것들을 치우지 않고 나갈 경우 다음날 SNS 세상에서 " 맥도날드녀 " 라는 이름으로 욕을 먹을 것이다. 맥도날드'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노동력을 갈취하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봉이 김선달보다 셈법이 빠르다.
맑스 자본론이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 휴버머의 자본론 > 이나 <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 를 추천한다. 그리고 나서 < 자본론 > 에 도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 어슷썰기 > 에서 < 총총썰기 > 까지
찌개'나 국거리'에 들어갈 파는 대부분 어슷썰기'를 한다. 왜 어슷썰기를 하냐고 물으면 코 파며 잇힝 해야 한다. 그것은 무의식적 행위에 가깝다. 왜냐 ? 우리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래 왔기 때문이다. 한석봉 어머니가 가래떡을 반듯반듯 통썰기 하면 이상하잖아 ! 하여튼, 요리에 취미'가 없는 사내들도 모처럼 피서지'에서 요리'를 할 때면 대부분 어슷하게 썬다. 그런데 곰탕'이나 설렁탕'을 파는 식당'에 가면 영락없이 십원짜리 동전 모양처럼 생긴 파( 통썰기 = 총총썰기 ) 가 나온다. 대파'를 한번이라도 썰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신체구조상 팔은 삐딱한 각도로 어슷썰기'를 해야지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당장 주방으로 달려가서 통통한 대파 하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후 어슷썰기와 총총썰기'를 해보라.
일반 가정에서야 대파 하나 써'는 일'은 일도 아니겠지만, 하루종일 대량으로 대파'를 썰어야 하는 식당에서는 왜 굳이 힘들게 총총썰기'를 할까 ? 궁금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일단 읽고 있는 < 논리 철학 논고' > 는 덮기로 하자.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 몇몇'은 쪼르르 지식인'에 접속하여 답을 찾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짐짓 어린이'로 가장하여 " 왜 설렁탕에 드러가는 파는 반드타게 자르나용. ㅋㅋㅋㅋㅋ 내공 있삼.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임요. 잇힝 ~ " 이라고 연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뾰족한 답은 없으리라.
하여튼, 나는 이 사소한 의문'에 목숨을 걸기로 했다. 장고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놀랍게도 맑스'였다. 오! 대파 썰기'에서 맑스의 흔적을 찾아내다니 ! 옛날 '생활의 달인 코너'에서 대파 썰기 달인이 나온 적 있다. 얼마나 빠른 시간'에 대파'를 써는가'가 그 달인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가 그날 방송에서 선보인 방식은 대파 스무 개 정도'를 가지런히 모아서 커다란 중국식 칼'로 한꺼번에 총총썰기'를 하는 거'였다. 다, 다.다.다.다.다.다.다 ! 순식간이었다. 칼로 썰다'라기 보다는 칼로 절단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았다. 그 달인'이 바로 유명한 마포 모 설렁탕 20년 차 주방 직원'이었다.
그렇다 ! 최소한의 시간 투자'로 생산량을 최대로 뽑아내자는 욕심'이 바로 대파 총총썰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대파 하나를 썰 때는 어슷썰기가 빠르겠지만 대파 한 묶음을 한 번에 썰 때는 총총썰기가 빠르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다. 그렇다면 대파 썰기'에 이골이 난 달인은 열 사람 몫'을 짧은 시간에 혼자 해치웠으니 그만큼 쉬는 시간이 늘어났을까 ? 천만에 ! 오히려 이 재주'는 미숙련 노동자들'에게 부담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포드는 대파 총총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포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포드주의'다. ( 믿거나 말거나 )
자동차 나사를 조이는 노동자는 평생 나사만 조이고, 콘돔 불량 유무를 판단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는 평생 콘돔에 바람을 부는 일만 하고, 대파를 써는 일을 하는 달인은 하루종일 대파만 썬다. 내가 아는 노동자 가운데 한 명은 직업이 병아리 감별사'였다. 병아리 똥구멍'을 보고 암수'를 구별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였다. 이 친구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종일 병아리 똥구멍'만 보았다. 나중에 이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 형 ! 나 이젠 병아리 똥구멍만 쳐다보며 사는 거 지긋지긋해요. 마치 내 인생이 병아리 똥구멍 같아. "
포드는 바로 이 반복에 따른 빠른 작업 속도'에 목숨을 건 기업가'였다 : 1. 콘베이어'가 조립제품'을 안전하게 b라인 노동자에게 옮겨준다. 2. 나사 하나를 조이면, 3. 바로 다음 조립제품이 기다린다. 4. 만약 속도가 늦어져 나사를 조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전체 라인'이 비상벨을 울리며 정지된다. 왜냐하면 c라인은 반드시 b라인에서 일감이 건너와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숙련 노동자 1명이 전체 노동 라인'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얼마나 쪽팔린가 ! 이 비상벨은 " 삐이익 ~ " 이라는 의성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행간은 " 선생님 ! 쟤, 바지에 똥 쌌어요 ! " 라는, 새침데기 짝꿍이 전하는 고자질이나 다름없다.
노동자는 싸늘한 동료들이 던지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나사를 조인다. 아, 포드 ! 잔머리'를 제대로 굴렸다. 물론, 포드는 성공했다. 노동자들이 이 콘베이어 속도'에 익숙해지자 좀더 악랄한 포스트 포드'는 콘베이어를 속도'를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높이기 시작했다. 반복에 따른 신체 반응'은 곧 속도에 익숙해지는 법이다. 결론은 뻔하다. 콘베이어 속도'는 아우토반이 되어 갔다. 노동자는 그렇게 소비되어가는 것이다. 오직 속도전이다.
속도. 속도는, 오 ! 무섭다. 수천 년 내려오던 어슷썰기'가 어느 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폐기처분된 것이다. 한석봉 어머니가 울고 갈 효율 우선 주의'가 아닐까 ? 나는 생활의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불편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민 휴머니티 예찬 뒤'에 감추어진 노골적인 속도에 대한 맹신'이 엿보인다. 정말 이토록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뽑아내는 행위가 칭찬받아야만 할 일일까? 아마, 이 샐활의달인 코너'는 포드 할아버지가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다. 나는 외치고 싶다. 이렇게 ! " 우리, 좀 게으르게 삽시다. 근면성실'이 훌륭한 모범이지만 그렇다고 게으름'을 탓하지는 맙시다. 시간 당 생산량'으로만 그 사람을 평가하지 맙시다. 백 미터 달리기 기록이 모두 다 다르듯이 그 차이'를 인정합시다 ! "
덧1. ) 총총썰기'는 국어사전에 없네요. 아마 정확한 표현은 통썰기'인가 봅니다. 통썰기가 뭐냐. 총총썰기 읽기 좋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