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초록색 담즙(들)
드라큘라’는 본질적으로 < 여성 >이다. 창백한 피부, 곱상한 외모, 가녀린 몸, 하늘거리는 실크 망토, 더군다나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드라큘라는 황새의 우아한 걸음을 닮았다. 니체의 입장에서 보면 드라큘라는 " 정직하지 않은 사람 " 이다. 니체는 말했다. "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소리가 난다. " 그래서 나는 드라큘라를 검은 망토를 입은 여성이거나 여성이 되고 싶은 게이 정도’로 생각한다. 황당한 주장 같지만 그리 황당한 것도 아니다. 브람스토커 소설 < 드라큘라 >에서 실제 모델은 백작이 아니라 트란실바니아의 백작 부인 “엘리자베스 바토리“ 다. 이처럼 드라큘라 남작’을 드라큘라 부인’으로 치환하면, 부인이 왜 보름달이 뜨는 밤에 그토록 피’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월경으로 인해 유실된 피를 타인을 통해서 보충하고자 하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 누군가는 이 해석을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 드라큘라는 여자였다 > 라는 가설’은 오히려 상큼하다. 우선 드라큘라의 은신처인 관’을 보자. 관은 누가 보아도 여성 자궁’에 대한 은유이다. 어디 그뿐인가 ?드랴큘라가 흡혈하는 부위인 목/neck이라는 단어는 자궁/neck’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드라큘라를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 방식은 심장에 말뚝을 박거나 목을 베어버리는 것인데, 여기서의 말뚝박기’는 말 그대로 강간에 대한 은유’이다. 또한 목을 베는 행위는 자궁을 적출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결국 드라큘라의 신체 기관 중 자궁을 적출한다는 것은 여성의 생산성’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그녀의 전염성은 강력하기 때문이다. 드라큘라는 무시무시한 원초적 어머니’다. 이빨 달린 < 바기나 덴타타> 다. 그는 평소에는 매력있는 백작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 " 괴물 " 은 대부분 주류 사회의 편견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 공포와 숭배 " 가 혼합되어 있지만 사실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접촉 금지'다. 괴물은 불가촉천민'이다. 비주류인 불가촉천민들은 늘 복수를 꿈꾼다.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 ? 괴물은 주류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낳은 사생아다.
프로이트는 1919년에 언캐니에 대해 기록한다. unheimlich’의 사전적 뜻은 < 내 집처럼 편안하지 않은 > 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뜻은 확장되어서 “ 기괴한, 두려우면서 동시에 낯선, 악마적이면서 소름끼치는 것 “ 의 뜻을 가진다. unheimlich’에서 –heim’ 이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heimlich’이라는 단어는 < 내 집처럼 편안한 > 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 두 단어는 서로 극과 극’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heimlich’의 부수적 뜻에는 숨기다, 알 수 없는, 위험한 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결국 이 두 단어는 반대어가 아니라 서로 뜻이 통한다.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귀신들린 딸로 나오는 리건’이라는 이름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 에 나오는 둘째딸 이름이다. 늙은 리어왕은 심성 고운 셋째 딸 코델리아’를 왕국에서 추방한 후 첫째와 둘째에게 왕국을 넘겼는데, 알고 보니 이 둘은 뱀처럼 사악해서 늙은 아버지를 버렸어라. 그런, 울화통이 터지는 이야기.리어 왕의 말년 운이 더럽게 꼬인 까닭은 그가 세 번째 딸을 선택하지 않고 추방했기 때문이다.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처럼 금이나 은을 선택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한다.
리건은 둘째 딸이므로 < 은 > 의 영역에 속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리건은 달의 지배’를 받는다. 달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물과 여자’다. 영화 속에서 리건’을 묘사할 때 색의 이미지가 차가운 블루인 이유는 달과 깊은 관계가 있다. ( 리건은 초경을 시작되는 시점에 있다. 리어왕에서의 리건’이 아버지를 버렸듯이, 영화 속 리건은 아버지’를 원하지 않는 소녀에 가깝다. 그녀의 욕망은 전적으로 어머니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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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몸에 대한 논의’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와 줄리아크리스테바의 아브젝션 개념을 확인할 수 있는 < 공포의 권력을 참고하길 바란다.
엑소시스트.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324/pimg_749915104837725.jpg)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면 월리엄프리드킨의<엑소시스트>는 반드시 봐야 할 필사의 목록’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티븨에서도 보았고, 감독판 극장 상영으로도 보았고, 삐짜 시디’로도 보았으며 엘피, 디븨디’로도 보았다. 결국 모든 경로를 통해서 다 본 꼴이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 오물 범벅인, 12살 소녀의 지랄발광 > 이라고 할 수 있다. 소녀는 오줌을 싸고, 십자가로 자위를 하며, 피범벅이 되며, 초록색 담즙을 쉴 새 없이 배설한다. 정말 쌀 수 있는 모든 기능을 동원해서 < 싼다. >
오, 리건은 너무 더럽다 ! 더러운 것은 분비물만이 아니다. 입에서 쏟아지는 욕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리건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그곳을 핥으라고 윽박지르며, 한 번 하자고도 한다. 그리고 예수에게는 “&*$%^&… #$%#@@# !“ 이라고 욕을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감독이 <리건에게 오물을 뒤집어씌우기> 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리건의몸은 점액, 담즙, 고름, 토사물, 오줌, 피, 피부 발진, 심지어는 몸에 help me’라는 낙서로더럽혀져 있다. 그것은 마치 성서 속의 나병 환자를 연상시킨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회화 되지 않은 신체’이다.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리건은 사악하며 동시에 강력한 아우라를 갖는다. 리건의 몸과 드라큘라와의 공통점’은 접촉에 의한 강력한 전염성’이다. 만지는 순간 전염된다. 그리고 또 하나 ! 그들은 모두 남성 목소리를 흉내 내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 !리건의 불안과 공포는 부부의 이혼 때문일까 라는 의문. 많은 평론가들이 아버지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고 잠정적으로 판단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이는 아버지와의 분리’를 기회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남편/남성’의 부재로 인해 곤경에 빠진 사람은 어머니이지 리건이 아니다. 오히려 리건’은 아버지 대리자들을 가차없이 살해한다. 어머니의 남자친구인 버크와 말 그대로 인 신부 2명은 리건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리건이 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엄마와의 황홀한 섹스’를 하는 것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악령에 깃든 리건의 목소리가 남성이라는 이유는 이 근친상간적 욕망을 악령의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남성 목소리는 맥캔브릿지’라는 여배우가 연기한 것이다. 그러니깐 리건 속에 들어가 있는 악령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더군다나 영화 속에서는 이 목소리를 녹음해서 거꾸로 틀었더니 리건의 목소리더라, 라는 서사적 장치도 마련한다. 리건의 몸 속에 있는 악령은 리건 자신’이다. 그러므로 이 목소리를 빌어 내뱉는 근친상간적 욕망은 전적으로 리건의근친 욕망이다.
위의 사실이 맞는다면, 리건의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리건이 엄마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환심을 사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의 몸을 더럽게 만듦으로써 타자의 접근을 봉쇄한다. 하지만 아동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아이의 나쁜 행동은 쉽게 간파된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엄마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리건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오줌을 싸는 이유는 반항이 아니라 어머니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엄마란 본질적으로 아이의 청결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아이가 언어를 배우기 전까지 계속된다. 엄마는 아이에게 똥 누는 법을 가르치고, 휴지로 닦는 법을 가르치며, 밥을 먹을 때에도 음식을 흘리지 않도록 훈계하는 역을 담당한다. 아이의 청결은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다. 리건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토하고, 배설하는 것은 자신이 < 아기 > 라는 사실을 엄마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똥 누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계속 엄마의 배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렇듯 리건의 병은 빙의’가 아니라 구순기로 퇴화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녀는 어머니와 분리된다는 것에 대하여 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리건의 퇴행 욕망은 결국 분리 공포’가 그 원인이었다. 그녀는 자궁 속 태아’를 욕망함으로써 어머니와의 영원한 합일’을 원한다. ( 리건의 나이가 12살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12살이라는 상징성은 아이’에서 소녀’로 가는 길목이며, 초경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 오물을 뒤집어쓴 리건 >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양수 속에 갇힌 태아의 모습인 것이다. 리건이 뒤집어쓴 오물은 마치 아이가 엄마의 자궁에서 빠져나왔을 때의 그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다. 관객인 우리가 더러운 리건을 보며 공포에 떠는 이유는 그 모습이 매우 낯설기 때문이 아니라억압에 의해서 지워져 있던 모습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궁의 다른 이름은 < 아기집 > 이다. 우리는 모두 엄마의 자궁 속에서 뒹굴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억압에 의해 지워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