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 Screen Play 10
이형식 지음 / 스크린영어사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루먼은 왜 속았을까 ?











집(가족)과 바람은 서로 부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집구석은 좋은 의미가 아니죠. 바람 난 남편과 바람 난 아내도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죠. 춤바람이나 치맛바람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풍수지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바람이 잘 통하는 집만큼 좋은 집도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살던 집이 그런 집이었습니다. 언덕배기 바람길이 관통하는 곳에 자리를 잡은 집은 여름에도 시원했습니다. 심지어 앞문과 뒷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의 힘만으로도 전원이 뽑힌 선풍기 프로펠러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진짜 레알 실화임). 


바람이 잘 통하니 집안 냄새 걱정이 없고 장마철에는 습기가 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빗자루 역할을 하기도 했죠. 바람이 먼지를 한쪽으로 쓸어버리는 겁니다. 또한 김치는 얼마나 맛있게 익는지요.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시원한 집입니다. 실외 온도는 30도를 훨씬 웃돌지만 실내는 26도 이상 오르지 않더군요.  집이 시원하다는 것은 바람이 잘 통한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  마, 이게 사람 사는 집구석 아이가. 아이고, 시원타. 센풍기(에어컨) 없이도 이리 시원타 ~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제가 체크한 실내 온도는 에어컨 리모컨 표시창에 뜬 알림 표시였는데 그것은 현재 온도가 아니라 설정 온도였던 것입니다. 


실제 실내 온도는 31도더군요.  아놔, 시바.  저는 그동안 실내가 한증막인 집구석에 살면서도 바람 잘 통하는 집에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생활했던 것입니다.  갑자기 원효 대사 이야기가 생각이 나더군요. 한밤중에 목이 말라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맛있게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보니 그 웅덩이에는 시체가 썩어 해골이 된 뼈다귀가 잠겨 있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실내 온도가 31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 저는 삼복에 더위 먹은 개처럼 혓바닥을 늘어트리고는 헉헉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에어컨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이리 더우면 몬 산다. 몬 살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시죠 ?  인간의 이성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합리적인 인간도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엉뚱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 상황적 강제(situational force) " 라고 합니다.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이 유명하죠.  스탠포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필립 짐바르도는 심리 실험에 지원한 대학생 18명을 상대로 교도소 역할 놀이를 진행합니다.  절반은 수감자가 되어 죄수 옷을 입고 절반은 교도관 복장을 하고 교도관 역할을 하는 것이죠.  말 그대로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같은 역할극 놀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대학생들이 갈수록 폭력적인 인간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가짜 수감자 역할을 하는 이들은 가짜 교도관의 폭력에 별다른 저항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크리스티나 매슬렉 박사가 실험의 비윤리성과 폭력성이 과열되는 상황을 보고 실험 중단을 요구했고 2주 예정이었던 실험은 1주일 만에 끝났습니다.  이 실험이 주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은 상황적 강제가 발생하는 순간, 인간은 얼마든지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흉악 범죄에 대하여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짐승 같은 짓을 저지르냐고 한탄하지만 당신의 장탄식은 틀렸습니다. 인간의 탈을 썼기에 짐승 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블랙코미디 영화의 걸작 << 트루먼쇼 >> 에서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 분)은 성인이 될 때까지 방송국이 자신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요 ?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질문이 어렵지 않으니 답은 쉽죠. 방송국 세트와 시스템이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의 퀄리티를 가진 세트장과 정교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이라면 여러분들도 트루먼 버뱅크가 될 겁니다. 


그래도 트루먼은 나중에 진실을 알아차렸지만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무대 위의 트루먼이란 사실을 모르고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도 제 자신이 트루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죽을 확률이 존나 높은 족속이죠. 리모컨이 제시한 26도라는 가짜 알림에 속아서 등골에 뜨거운 땀방울이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데에도 불구하고 마, 이게 사람 사는 집구석 아이가. 센풍기 없이도 이리 시원타 _ 이런 대사나 남발했으니 말이죠. 멍청한 녀석. 트루먼은 방송국이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구조를 구축했기에 속은 인물입니다. 시스템 구축 : 세트장, 배우, 컨트롤타워는 삼위일체가 되어 트루먼을 속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제가 언급한 사례들은 다 " 시스템(구조적) 문제 ㅡ " 인 것입니다.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선택했지만 우리에게 정치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   보수는 사회 시스템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촛점을 맞추고 진보는 개인보다는 구조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쪽에 방점을 찍는 집단이라고 본다면 보수주의자는 방송국에게 속은 트루먼의 한심한 역량을 지적해야 합니다. 동의하시나요 ?  지금까지 윤석열과 최재형이 내뱉은 말을 종합하자면 그들은 방송국보다는 트루먼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국민의 삶을 왜 국가가 책임지냐. 국민의 삶은 국민이 책임져야 한다 _ 라는 최재형의 망언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는 개인보다는 방송국 시스템(구조적 문제)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굳이 정치적 성향을 묻는다면) 진보주의자이자 구조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  교도소 실험을 주관했던 필립 짐바르도 심리학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 썩은 사과(약한 개인)가 아니라 썩은 상자(시스템)가 문제다 !!! " 이 글의 끝은 트루먼 버뱅크 씨의 마지막 인사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8-20 0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조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ㅎㅎ 곰곰님 글 너무 재밌어요 (재밌게 할려고 쓰신것 같진 않지만). 그리고 덕분에 상황적 강제라는 개념도 알게 되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8-22 10:56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라고 쓴 글입니다.. ㅎㅎㅎㅎ
전 상황적 강제라는 말을 보스니아 내전을 통해 알았습니다. 아, 인간이 상황에 따라 괴물이 되는구나. 누구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