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은 잡혔다. 형사는 묻는다. 왜 죽였어?  살인자는 why 라는 의문문에 대하여 because가 포함된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이 진술을 토대로 기자는 기사를 작성한다. 강력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언론 기사는 대부분 가해자의 진술에 의존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언론에 공개된 서사는 대부분 가해자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 서사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 


죽은 자는 진실을 말할 수 없고 산 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변명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다면  :  언론에 유포된 가해자 중심의 서사는 믿을 것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악한 영혼을 가진 범죄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강간 살해)라고 진술하거나, 아내가 시부모 욕을 해서 욱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가정폭력 살해)고 진술하거나,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피해자가 반항을 해서 죽였다(강도 살해)는 진술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모든 진술은 감형을 염두에 둔 변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에게 덧씌워진 서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어릴 적에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고 어렸을 때 성질이 사나운 엄마와 아빠의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고 고백하지만 이 연쇄살인범들의 고백 또한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강간을 당한 피해자였기에 나중에 강간 살해를 했고,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자기 내부의 사악한 본성보다는 외부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범죄자의 고백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고백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고 싶다.  정말 그럴까 ? 


영화 << 케빈에 대하여,2012 >> 는 가해자 케빈이 진술한 드라마를 재현하지 않고 철저하게 피해자(케빈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재현한 드라마'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제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라고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바에 대한 이야기다.  집단 학살 가해자의 어머니이기에 겪어야 하는 수난극은 성서의 욥 이야기를 닮았다.  신이 욥에게 내리는 "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불행 " 에는 이유가 없다.  케빈은 신의 명령으로 욥에게 온갖 종류의 고통을 주는 사탄을 닮았다.  이 사탄은 신의 대리자라는 점에서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케빈도 그렇다. 그는 에바에게 고통을 선사하는 신의 대리자'이다. 관객은 끊임없이 케빈이 대량 학살을 저지는 이유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한쪽은 케빈의 본성 탓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에바의 잘못된 양육 탓이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관객의 포지션이다. 케빈이 신의 대리자(사탄)이고 에바가 욥이라면 관객은 욥의 세 친구 역할을 한다.  빌닷, 엘리바스, 소발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욥의 고통은 커진다.  결국 세 친구가 내린 결론은 이 고통은 그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  신이 내린 형벌에는 나름의 논리와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럴수록 욥은 자신의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 "  이때 신이 나타난다. 욥은 신에게 자신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묻지만 신은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에바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케빈에게 찾아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왜, 그랬니 ?  이제는 말할 수 있잖아(" I want you to tell me, why? ") ? " 하지만 케빈은 끝끝내 그 의문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I used to think I knew, but now I’m not so sure ")


케빈은 신의 대리자일 뿐이고 에바는 신에 의해 선택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케빈의 본성 탓도 아니고 에바의 양육 탓도 아니다. 누군가가 겪는 고통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고 믿는 관객은 진짜 가해자를 찾기 위해 설왕설래하지만 어쩌면 에바를 정말 힘들게 하는 가해자는 관객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책임 사유를 욥에게 전가하는 세 친구에게 신은 이 우주가 얼마나 경이롭고 복잡하냐고 꾸짖는다. 이와 똑같은 대답을 나도 관객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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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3-26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동안 정말 멍~ 해지는 영화입니다.
계속 생각나는 불편한 영화, 그래서 잘 만든 영화라고 기억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1-04-02 19:27   좋아요 0 | URL
불편한 영화가 좋은 영화죠...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