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한자 遇( : 만날 우) 는 만나다, 짝을 이루다, 합치다는 뜻과 함께 성교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 불우 不遇 > 라는 단어는 관계를 맺지 못하다, 결속으로부터 분리되다, 추방되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종합하면 관계를 맺지 못하고 결속으로부터 분리되어 추방된다는 의미가 된다. 조르주 아감벤의 사유를 빌려서 설명하자면 내집단 內集團 에 포섭되지 못하고 추방당한 호모 사케르(벌거벗은 생명)에 가깝다. < 불우 > 가 경계 밖으로 추방된 영토라면 < 이웃 > 이라는 단어는 울타리 안에 포섭된 영토'다. "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서로 붙어 있음 " 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이, < 이웃 > 은 불우의 반대 개념에 가깝다. 지정학적 시선으로 보자면 불우와 이웃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런데도 이 두 단어를 강제로 붙여서 만든 낱말이 바로 << 불우이웃 >> 이다.
<< 불우이웃 >> 이라는 낱말이 지시하는 것은 명확하다.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 맺음에 실패하여 그 결속으로부터 분리되어 추방된 자'라는 뜻이다. 특정한 집단을 골라서 차이를 강조하고, 구별짓기를 시도하고, 대상을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이 단어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은 그 목적을 의심해야 한다. 그렇기에 연말이 되면 종을 딸랑거리며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 _ 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불쾌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단순하게 이웃을 도웁시다 _ 라고 말하면 될 것을 굳이 차이를 강조하고, 구별짓기를 시도하고, 대상을 타자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점이다.
불우이웃의 탄생은 내가 소속된 이웃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안에서 철저하게 소득 수준을 바탕으로 저소득 계층을 울타리 밖으로 추방한(혹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적 시선으로 인간 존재를 실격 처리한), 그럼으로써 계급과 신분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우리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다. 불우이웃을 이웃보다 낮은 계급으로 강등해야지만 대중은 비로소 그들을 도울 동정심이 생긴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_ 라는 구호가 탄생한 배경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인간 군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 인간은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을 추방하려고 애쓰는 존재다. "
영화 << 기생충 >> 에서 반지하 계급을 대표하는 기택 가족과 지하 계급을 대표하는 문광 가족의 대립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지하나 지하나 서류상으로는 모두 지층으로 표시되는 동일 주거 환경에 속하지만 두 가족은 서로 충돌한다. 두 하층 계급은 한정된 일자리와 잠자리를 놓고 제로섬게임을 펼친다. 문광이 충숙에게 우리는 모두 불우이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자 기택의 아내 충숙은 정색을 하며 이 사실을 부정한다. 그들은 박사장의 대저택에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을 추방하려고 애를 쓴다. 그것은 불우이웃이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우리 이웃의 폭력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