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작법서
좋은 서사의 핵심은 " 엎친 데 덮친 꼴 " 이다. 그렇기에 독자나 관객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서사는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누가 나에게 < 가장 훌륭한 소설 작법서 >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는 소설 작법보다는 1분이 채 되지 않는 분량의 유튜브 동영상을 추천할 생각이다. 엎친 데 덮치는 서사의 끝판왕이다. 이 동영상만 명심하면 당신은 매우 뛰어난 대중 작가가 될 수 있다.
이 동영상에서 " 엎친 꼴 " 을 담당한 캐릭터는 꼬마 여자아이'다. 생방송 도중 꼬꼬마 여자아이가 룰루랄라 등장하니 흔쾌히 명쾌한 출현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돌발 서사'만으로는 그닥 새로운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돌발 상황이기는 하나 돌발 상황 중에서는 꽤 흔한 등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 덮친 꼴 " 을 담담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맙소사, 유모차를 타고 아장아장 걸어오는 갓난이의 깨발랄한 유머라니 ! 이런 식의 서사 방식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코드 진행이어서 독자의 괄약근을 잔뜩 오므리게 만든다. 오므라이스처럼 말이다. 상상해 보라. 당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가 너무 즐거워서 괄약근을 오므라이스처럼 바짝 조이는 상상을 ! 엎친 데 덮친 꼴 짝패의 앙상블은 완벽하다. 브라보, 로버트 캘리 교수 ! 가시는 길에 영광있으라.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서사의 진짜 주인공은 그의 아내다. 이 마지막 캐릭터의 카운터 펀치는 정말, 정말, 정말 예상 밖이다.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쓴다면 그 어느 누가 좋아하지 않는 이 있으리오. 영화 << 기생충 >> 도 이 서사를 그대로 모방한다. 기택 가족의 사기극은 일종의 엎친 꼴 서사'이고 지하 3층 공간의 발견은 덮친 꼴 서사'이다.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야외 파티장 살인사건 이야기는 동영상 마지막에 허겁지겁 달려오는 아이의 엄마'다. 이 동영상 속 주인공이 미국 매체에 기고한 글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 이곳에는 공황이 없다 : 나는 한국에서 감염병 확산을 지켜보고 있다 > 이다.
이곳에는 공황이 없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이제 중국 다음으로 최악의 감염병이 발생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한국의 대응에는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정부는 이 사태에 필요한 만큼의 대응을 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으며 야당과 언론은 냉혹한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들이 열성적으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확진되면 검사비가 무료다. 그리고 검진은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받을 수도 있다 . 일련의 한국의 조치들은 이곳이 5300백만 명의 인구가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놀라운
시스템적 업적이다. 한국에는 패닉이 없다. 그리고 정부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이 건강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괴한 시도 같은 것들을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이 문제가 우리에게 닥치기 시작하면 미국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모델이다. 이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서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에는 다수가 모이는 모든 종류의 모임을 자제
하는 것이 포함된다. 많은 종교 행사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학교 대부분 문을 닫았다. 야외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군중 모임이 중단되었다. 콘서트는 취소되었고 한국에서 매우 흔한 정치 시위는 거의 멈췄다.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가지 않으며 일부는 아예 문을 닫았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와 헬스클럽 관련 시설들도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런 예들은 거의 모든 것이 자발적이다..... 한국에서는 건물이나 기관 등에 들어가면 거의 모든 문에서 손 소독제가 비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조차
도 손 소독제를 엘리베이터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현저한 사회적 둔화가 목격된다. 사람들은 더 적게 일을 하고, 더 적게 움직이며 또한 더 적게 상호 작용한다. 그리고 심지어 가급적 사람이 적은 곳으로 이동한다. 생활의 모든 작은 틈새까지도 한국은 대응책을 만들어 침투하고 있다. 나는 살면서 엘리베이터에 비치된 손 소톡제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 한국에는 공황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상황에 대한 서구 언론들의 보도들을 보면 지나치게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낸다. 소용돌이, 통제불능....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이 바이러스는 실제로 확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한국 대중들의 반응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차분하다. 심지어 한국에는 사재기도 없다. 마트에 가면 여전히 모든 식품을 구할 수 있다. 유일하게 부족한 게 있다면 마스크였고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꽤 많은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미국으로 갈 것이다. 미국은 지금 한국의 문제 해결 방식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빨을 드러내며 사사건건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재앙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기에 캘리 교수의 해외 매체 기고문은 매우 훌륭한 이야기 서사다. 자신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든 것에 대하여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보다 뒤통수 쎄에에에게 때리는 반전이 어디 있는가. 나는 알고 있다. 화가 난 당신은 이 글을 읽으면서 독이 바짝 오른 얼굴로 괄약근을 잔뜩 오므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워워 ! 혈압이 오르면 몸에 좋지 않다. 당신의 지랄에는 " 조까라마이싱 " 에 만병통치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