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신천지 : 띄어쓰기가 전혀 안 된 문장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 /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다 ). 띄어쓰기를 잘 못하면 발생하는 참사다. 이처럼 정확한 문장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낱말과 낱말 사이에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연인 사이가 아니라면 서로 대면 대화를 나눌 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하는 것도 선을 넘는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선을 넘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결집과 결속을 위해 혈맹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사장이 직원에게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경우다. 가족 같이 지내자  문장이 " 가  좆같이 지내자  변질되는 경우는 흔하디흔하디흔하디흔하다. 또한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겠다는 시어머니의 맹세처럼 간사한 말도 없다.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사탕발림이다. 이처럼 띄어쓰기는 무시한 채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메시지는 오염될 수밖에 없다. 띄어쓰기 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신천지의 예배 방식은 띄어쓰기가 전혀 안 된 문장을 연상시킨다. 하얀 소복으로 통일한 채 다닥다닥 붙어서 이만희 교주에게 경배를 드리는 모습은 마치 컨템퍼러리 아트 같다는 느낌마저 준다. 신천지가 이단이자 밀교이기 때문에 집단의 내향적 결속을 위해 가족주의를 강조한 결과인데 외향적 운동성을 가진 코로나와 조우하면서 재앙이 된 경우이다. 이처럼 가족주의는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결속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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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7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20-02-27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겠다, 이 말 듣고 뿜었습니다 ㅎㅎㅎ 돌아가신 친할머니도 우리 엄마한테 저런 말을 쓰셨지요. 딸같이 생각하겠다고.
그런데 김장철이 되면 친할머니는 세 명의 친딸들, 제 고모들과 그 가족들에게 먹일 김치까지도 엄마에게 담그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해종일 엄마와 제가 김장을 담그면 한밤에 고모들이 김치통 들고 우리집으로 왔고, 그때껏 노인정에 있다가 돌아온 할머니가 친딸(!)들에게 아낌없이 김치를 퍼주시고는 했지요. 그러면서도 우리 할머니는 엄마한테 ‘딸같이 생각한다‘는 말을 심심찮게 했습니다.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사탕발림이라는 말씀에 백 번 공감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2-27 14:1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며느리 내 딸 타령은 이타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