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서 민음사 세계시인선 17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7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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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마음



                              사람이 너무 당황하게 되면 머릿속이 캄캄해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새하얗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옛날에 퍼펙트월드라는 영화감상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같은 건물 지하 당구장 아저씨가 이상 증세를 보인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갔더니 아저씨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바지가 젖어 있었는데 아마도 소변을 지리신 것 같았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당구장 손님들에게 소리쳤다. " 119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죠 ? " 119 전화번호가 119인데 당황하다 보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당 넓은 집에서 펄럭이가 한 살 때 일이었다. 터앝을 가꾸는데 사용했던 농약을 비닐봉지에 담아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개가 그것을 잡아뜯어서 농약을 삼킨 일이 있었다. 개는 불을 삼킨 듯 마당을 뱅뱅 돌며 뛰었다. 당황한 마음에 나도 개를 업고 뛰었다. 택시를 탔는데 당황한 마음에 지갑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당황한 마음에 핸드폰도 놓고 왔다는 사실 또한 뒤늦게 알았다.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잘못된 실수의 연속이었다. 어찌어찌하여 동물병원 앞에 다다랐는데 이른 아침(늦은 새벽에 가까운)이라 문은 닫혀 있었다. 돈도 없고 핸드폰도 없었다. 그리고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이어서 행인도 없었다. 마침 길 건너편에 응급실이 딸린 병원이 보였다. 당황한 마음에 나는 개를 업고 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물론, 알고 있다. 사람을 다루는 병원과 동물을 다루는 병원은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당직 직원의 팔을 잡고 응급처치를 해달라고 소리쳤다. 그의 옷소매를 잡고 애원했지만 사실은 바짓가랑이 잡고 울며 매달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 그 당직 직원의 도움을 얻어 우여곡절 끝에 24시간 동물병원에 도착했고 다행히도 개는 기적처럼 살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를 업고 뛰는 동안 슬리퍼 한쪽이 벗겨지는 바람에 한쪽 발이 맨발이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새하얗고 캄캄한 머릿속. 옛 애인과 헤어지던 날 밤이 그랬다. 절망은 벤치 위에 앉아 있고, 새하얗고 그렇게 캄캄한 밤이었다. 결별을 마중하고 돌아오는 길. 캄캄한 밤이었는데 새하얘서 길을 잃던 밤. 




+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항상 자크 프레베르의 시 << 꽃집에서 >> 가 생각난다. 





+

어느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

꽃을 고른다

꽃집 처녀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동시에 그는

손을 가슴에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땅바닥에 쓰러지자

돈이 땅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이 떨어진다

꽃들은 부서져도

남자는 죽어가도

꽃집 처녀는 거기 가만 서 있다

물론 이 모두는 매우 슬픈 일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처녀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를

남자는 죽어가지

꽃은 부서지지

그리고 돈은

돈은 굴러가지

끊임없이 굴러가지

해야 할 일이란 그토록 많아



- 자크 프레베르, 꽃집에서

 프레베르 『꽃집에서』민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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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2-0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저도 반려동물이 갑자기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상황을 겪게 되면 당장 병원에 갔을 거예요. 반려동물은 종은 달라도 소중한 가족이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2-01 22:34   좋아요 0 | URL
10년 전 일이죠. 그 개는 올해 11월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