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월드










                                                                                               퍼펙트 월드'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영화치고 평단의 평가도 야박하고 대중 인지도도 낮은 영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탈옥수와 꼬마 인질의 관계는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전이되면서 영화는 새드엔딩을 향해 치닫는데, 그 연출 솜씨가 만만치 않은 영화'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영화라면 빼놓지 않고 보았기에 이 영화도 극장에서 보았는데 박연폭포 같은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꽤 있었다. 


내가 서울역 후암동에 둥지를 튼 계기는 바로 이 영화 때문이었다. " 퍼펙트 월드 " 라는 이름의 영화감상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이 결정은 순전히 퍼펙트 월드'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퍼펙트 월드라는 이름과는 달리 후암동 뒷골목은 로맹 가리의 비숑 거리(자기 앞의 생)와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와 비견할 만한 빈곤과 비참의 세계'였다.  늙은 성매매 여성과 앵벌이 그리고 돼지엄마(포주)와 기둥서방들이 모여 살았는데, 후암동 뒷골목은 서울에서 가장 위험한 우범지대'로 뽑혔다.  앵벌이들은 구걸을 하기 전에 반드시 영화감상실에서 영화를 보았다. 


그들은 감상실 안에서 푸른 알약(이라는 감기약)을 다량으로 복용했다. 이 알약에는 마약과 같은 환각 작용을 일으켰는데 그 환상이 최고조에 다다를 때 일을 하기 위해 전철역을 향하곤 했다. 이 알약은 평형 감각을 마비시키기에 걸을 때 비틀거리고 나중에는 바닥을 기어 다니게 된다. 흡사 중증 광우병에 걸린 소처럼 보인다. 앵벌이들은 하반신 마비 환자처럼 지하철 안에서 기어 다니면서 쪽지를 돌리며 구걸을 했다. 이 쪽지의 글씨체와 문장은 오롯이 내가 썼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여의고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  


내가 그들에게 맨정신으로 구걸을 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 쪽팔리잖아요. 어떻게 맨정신으로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구걸을 해요. 우리도 사람이어서 쪽팔린 감정은 있어요. "  구걸해서 번 돈은 거의 대부분 돼지엄마'라고 불리는 포주에게 돌아간다. 돼지엄마는 쪽방을 운영하면서 앵벌이들의 숙식을 제공했는데 열악한 시설과는 달리 지나치게 비싼 숙박비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푸른 알약을 제공하는 딜러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푸른 알약을 다량으로 살 수 없었는데  돼지엄마는 다른 루트를 통해서 대량으로 구매하여 매우 비싼 가격에 되팔았다. 


백 원 하던 알약은 천 원으로 둔갑하기 일쑤였고, 가격 흥정은 돼지엄마 마음대로였다. 앵벌이들은 이 알약을 사는데 그들이 하루 구걸해서 벌었던 돈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그들은 더 많은 알약을 사기 위해 더 많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어야 했다. 환각 속에서 그들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강인했고 매력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수많은 앵벌이를 만났다. " 까불이 " 란 녀석도 있었고 하모니카를 잘 불어서 " 하모니카 " 라는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 스마일 타이슨 " 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얼궁은 험악하고 덩치는 큰데 항상 웃는 녀석이었다. 그는 아마추어 복싱 선수 출신이었다. 


이 친구는 앵벌이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며 정장 차림으로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복지 재단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그를 위해 비용을 지불한 모양이었다. 정장 입은 모습이 꽤 근사해 보였다. 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적십자(녹십자였나 ?!)였다. 푸른 알약을 장기적으로 과다 복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그중에서 연골을 파괴하여 심한 경우는 팔이나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그런 경우 적십자는 이들을 강제 입원시켜서 절단 수술을 진행했기에 앵벌이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았다. 


그런가 하면 이곳에서 12살에 임신한 여자아이를 본 적도 있다. 늙은 성매매 여성의 딸이었는데 누군가가 못된 짓을 한 모양이었다. 이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비참했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폭력적이었으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비정상적이었다. 하모니카를 잘 불어서 하모니카라고 불리는 아이(내가 지어준 별명이다)는 환각 상태에서 싸움을 하다가 까불이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었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은 죽거나 교도소에 가거나 행불되어 하나둘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하곤 했다. : 우리 병 들어 죽을지언정 행불(행방불명)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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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1-26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른 알약, 러미널이라고 예전에 이 서재에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클린트 이스드우드는 참 신기한 게, 내용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세월 동안 매번 비슷한 얘기(유사가족)만 하는 것 같은데 이게 질리지가 않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1-26 12:29   좋아요 0 | URL
러미널은 사실 하얀색 알약이죠. 사람들이 이 알약 열 개씩 , 물 없이 씹어서 아작아작 먹곤 했습니다.

+
맞습니다. 클옹 영화는 모두 다 유사 가족의 복원 욕망을 다루죠. 똑같은 얘기인데 변주 솜씨가 좋다 보니 질리지가 않죠. 가족이라는 주제는 사실 무궁무진한 소재이니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