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사랑이
내가 " 여우 " 라고 부르는 동네 개가 있다. 반려견 주인이 부지런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산책을 시키는 모양인데 내가 머물고 있는 빌라를 지날 때에만 짖는다. 캉캉캉 ! 카랑카랑해서 듣기 좋은 음색이다. 그들의 언어를 모르지만 펄럭이의 반응으로 보아 여우의 언어 번역은 유추 가능하다. " 야, 이 덩치 큰 놈아 ! 자신 있으면 나와봐라. 달랑거리는 불알을 확, 물어뜯어버릴 테니...... " 이런 메시지였던 모양이다. 여우가 짖으면 펄럭이는 온몸의 털을 곧추세우고는 베란다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그리고는 담벼락에 앞발을 걸치고는 바깥에서 짖고 있는 여우를 향해 컹컹컹 짖는다. 순간, 마을은 " 캉캉캉 " 과 " 컹컹컹 " 이 엉켜서 잠시 소동이 벌어진다. 펄럭이의 메시지도 유추 가능하다. " 야 이 쪼맨한 여우 새끼, 너 나한테 걸리면 그땐 진짜 죽는다잉 ? " 이 정도 앙숙 관계라면 견원지간 저리 가라, 이다. 그들은 결국 화해하지 못했다. 펄럭이는 세상을 떠났으니까. 오늘 아침(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 여우가 밖에서 짖는 소리가 났다. 캉캉캉 ! 캉캉캉 다음에는 반드시 컹컹컹 이라는 소리가 들려야 하나 고요했다. 울컥 한 마음, 잠시 흔들렸다. 창문 너머 여우를 보니 여우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서 맞짱을 뜨자고 허세를 부리니 말이다.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하자면 펄럭이는 성정이 좋은 녀석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걸린 태극기처럼 도도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베란다 담벼락에 발을 올려놓고는 산책하는 개와 아이들에게 여길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내라며 지랄하는 일을 낙으로 살았다. 아마도 펄럭이는 집앞 길도 동거인의 나와바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주인의 경제력을 과신한 경우다. 특히, 아이들을 보면 큰소리로 짖으니 민폐였다. 그중에서 한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이름 모를 동네 개에게 " 여우 " 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듯이, 그 아이는 펄럭이를 " 사랑이 " 라고 불렀다. 펄럭이는 지나가는 아이들만 보면 윽박지르는데 그 아이는 사랑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지어 준 것이다. 가끔 이 아이도 " 여우 " 처럼 담벼락 아래에서 사랑이를 부르곤 한다.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고요할 때마다 펄럭이가 생각난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여우가 캉캉 짖었을 때, 아이가 담벼락 아래에서 사랑아, 라고 애타게 부를 때 아무런 응답이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타자의 죽음은 부재 때문이 아니라 응답할 수 없는 침묵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귀빠진 날 아침에 청승맞게 이적의 < 거짓말 > 이란 노래를 듣는다. 그때 나는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에 의지하는 펄럭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꼭 고쳐줄게. 내일 다시 올게 ! " 개는 살짝 꼬리를 흔들었다. 내가 응급실을 나선 지 10분 후에 펄럭이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