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에 삼계탕 먹는 게 잔망스럽다1)












                                                                                                   꼬들꼬들한 낙지를 좋아했다. 어금니로 살짝 힘을 주면 튕겨나갈 것 같은 낙지의 탄성에 탄성을 내지르고는 했다. 탄성에 탄성을 지르니 칠성 사이다. 몇 해 전, 사당동 해물탕집에서 술자리를 가진 적 있다. 최근에 맛집으로 급성장한 가게'여서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만석에 가까웠다.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각종 해산물이 큰 냄비에 가득 찼다. 플레이팅의 화룡점정은 산 낙지'였다. 뒤늦게 직원이 오더니 이미 세팅이 완료된 해물탕 요리 냄비 위에 꿈틀거리는 낙지를 넣었다. 그리고는 이내 투명한 유리로 된 냄비뚜껑을 닫고 불을 올렸다. 열이 오르자 낙지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냄비뚜껑이 유리여서 우리 일행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입에 침이 고였다.  맙소사, 고통 중에서도 화상이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이라는데 우리는 그 고통 앞에서 침이 고이는 것이다.  맛집 주인이 냄비뚜껑을 투명한 유리로 고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손님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충격이었다.  지옥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냄비 속 짐승을 보며 침이 고이다니 !  우리의 식욕과 주인의 욕심이 만든 리얼 버라이어티 쇼'였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내 식욕을 해소할 목적으로 죽음을 전시하는 식당은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낙지를 주재료로 하는 식당에서 흔히 듣는 말 중 하나가 산 낙지가 죽은 소도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는 소리'이다.  한국인은 낙지 요리를 삼계탕이나 영양탕(사철탕)처럼 보양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일일일식을 5년째 실천하고 있는 내가 통렬하게 자각하는 사실은 " 보양식은 없다 " 이다.  


한국인은 복날마다 잃어버린 원기를 되찾기 위해 보양식을 찾는데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이 저지르는 가장 한심한 자기 위로'이다. 현대인이 원기를 잃는 까닭은 영양 결핍 때문이 아니라 영양 과잉 때문이다. 복날에 원기를 되찾겠다고 보양식을 먹는 것은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이열치열이라고 더운 여름에 펄펄 끓는 삼계탕을 먹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참, 시원하시쥬 ?    오히려 복날에는 공복의 힘으로 다스려야 한다. 낙지가 죽은 소를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는 소리는 개소리이고 민어나 장어가 정력에 좋다는 소리는 오소리'다. 오히려 이 세상에 슈퍼푸드는 없다는 말이 유일한 똑소리'다. 


이들 식재료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라 모든 식재료는 딱 그만큼의 영양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소리이다. 이러한 신화들은 모두 술집 장삿꾼들이 유포한 허세2)이다. 모두 복날에 삼계탕을 권할 때, 나는 당신에게 복날에 공복을 권한다. 슈퍼푸드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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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광해, 한식을 위한 변명 ㅣ " 고백하자면, 삼계탕을 즐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계탕이 삼계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삼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닭이다. 삼계탕의 닭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닭이 아니다. 20여 일 자란 병아리, 병아리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생명체를 먹고 내 몸을 보양한다는 것이 잔망스럽다. 영계는 우리 시대 식문화의 천박함을 보여준다. " 36쪽


2)  텍사스에 사는 카우보이는 사격 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10점 만점에 10점 ! 금발의 백인, 백발에 백중 ! 그는 늘 과녁 정중앙을 맞췄다. 표적지를 보면 총알이 지나간 자리를 중심으로 한 치 오차도 없이 동그라미가 주위에 그려져 있었다. 단 한 번도 표적지를 벗어난 적도 없으니 그대 이름은 명사수 ! 하지만 그것은 사기였다. 이 카우보이는 표적에 총을 쏜 후 총알 자국 주위로 동그라미를 그려 왔던 것이다. 이것을 "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 " 라고 한다. "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 " 는 말이 있다. 흔히 듣는 말이다 보니 속담이라 여기는 이가 있으나 사실은 날조한 프레임이다. 전어는 옛부터 가장 흔한 생선으로 맛이 없어서 잘 먹지 않는 생선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가을 하면 전어가 생각나고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어가 맛이 있기에 가을에 전어를 찾는 것일까, 아니면 가을에는 전어라는 프레임에 세뇌되어 기계적으로 전어를 찾는 것일까 ?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총을 쏘고 난 후 과녁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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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7-19 14:0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옛날은 말 그대로 영양이 부족하여 복날이라도 고기 먹고 힘내자인데... 이건 하루종일 에이컨 바람 쐬면서 보양식 먹으러 뭘 먹을까 고민하는 거 자체가 참 웃긴거죠. ㅎㅎㅎㅎ 이해가 안 갑니다.... 차라리, 좋은 사람 만나서 팥빙수 한 그릇 먹으면서 하하호호 하며 행복한 시간 보내는 게 보양식 아니겠습니까... ㅎㅎ

수다맨 2019-07-19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 사회에서 영양식이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이야 재정적인 문제도 있는 데다가 가축을 대량 생육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고기 섭취량이 한정적이었고, 특정 날만을 지정해서 육식을 했을 테니 이 경우에는 영양식이 맞지요. 그런데 지금은 인구 대다수가 육식을 즐기는 시대인데 특정 음식에 ‘원기 회복‘이나 ‘영양 보충‘과 같은 말들을 붙이는 것은 우습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