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와르 가족 음모 코믹 서스펜스 스릴러  : 









기생충




                                                                                                     내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기생충1) >> 에서 기택 식구(송강호 분)가 사는 반지하 집이 세트장'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간파한 이유는 반지하에서 살아본 내 경험이 반영된 탓이 크다. 영화 속 반지하 집 거실 창문짝은 네 개2)인데, 특별한 용도로 지어진 공간이 아닌 이상, 실제로 저런 식으로 지어진 가정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문 면적이 넓으면 똥바람이 거리 바닥의 쓰레기를 쓸어 담아 집안으로 무단 투기할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 밖에서 안이 훤히 다 보여서 그만큼 사생활이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지상보다 지하가 서늘하기에 굳이 무더운 여름을 대비하기 위해서 창문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지하 집 창문은 반투명 유리로 창문 크기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평소에 가슴을 활짝 펴고 푸른 창공을 보며 씩씩하게 걷지 않고 항상 구부정한 자세로 바닥을 관찰하며 걷는 습관과 반지하 집에서 살았던 내 경험의 총합인 셈이다( 바닥에 대한 토킹어바웃'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있다. 이 바닥에서 그 바닥에 대한 인문학적 교양을 뽐낼 이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한 바닥 하는 사람입니다. 허허 ). 


지상의 세입자에게 밖이 훤히 보이는 탁 트인 병풍식 4단 창문은 근사한 풍경이 되지만 반지하 세입자에게는 사생활이 전방위적으로 노출이 되는 불안의 통로에 불과할 뿐이다. 디테일의 제왕인 봉준호가 설계한 정교한 세트장이 내 눈에는 허술하게 보였던 까닭은 안양 충훈부 반지하 셋방에서 십오촉 알전구 밑에서 불온서적을 등사하며 바퀴벌레처럼 살았던 남루한 내 삶의 흔적 때문이었다.  오케이, 거기까지 !  영화는 자의 반 타의 반 내가 하류층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출발했다. 내가 이 영화에 몰입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영화를 보다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박찬욱의 말이었다. 


그는 오래전에 기자와 인터뷰(2004년 인터뷰)하면서 " 이제는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 " 고 말한 적이 있다.



: 이 영화(쓰리 몬스터, 2004)는 프로렐타리아의  피 빠는 부르조아의 이야기인가?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룬 것인가?

: 이 스토리를 만들때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경험이 있는데 << JSA >> 가 흥행한 직후 여기 저기서 초청이 많았다. 그중에 거절할 수 없었던 조찬모임이 있었는데 ' 21세기를 준비하는 어쩌구 모임 ' 이었다. 재벌 2세나 교수, 의사 등 나이가 나보다는 조금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는 모임이라 가긴 가면서도 밥맛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다들 매너좋고 겸손하고 지적이고 ......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졌다. 사람이 삐딱하다 보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텐데 좋은 사람이라는 호감보다는 다 가진 놈들이 착하기까지 하구나 싶어 화가 나고 슬펐다. 이 사람들은 맨손으로 뭘 한게 아니라 이미 다 부자들이고 부를 세습한 이들이라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서 성격이 나빠질 일이 뭐있냐, 이전엔 천민자본주의가 있었지만 그들의 2,3세는 상류사회 환경 속에서 성장해서 나쁜 것을 할 필요가 없다. 그와 반대로 가난뱅이들은 욕망이 많은데 채워지지 않으니 삐뚤어질 수 밖에 없다. 미덕이 세습된다는 것. 그런 식으로 계급이 정착되고 벗어나기 어려워 지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듯이 그래봐야 상류사회의 매너나 교양을 얻을 수는 없다.  그건 나중에 다뤄봐야 겠다, ' 너무 착해 미움받는 사람 '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박찬욱 감독).


​- 2004년 인터뷰, 박찬욱 감독

 


2004년도 인터뷰이다 보니 박찬욱 감독이 여전히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한때 박찬욱도 순진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박 감독, 땅콩이나 드슈 !  봉준호 감독도 영화 속 기택의 말을 빌려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나는 봉준호 감독이 박찬욱의 오래전 인터뷰를 눈여겨보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박찬욱의 질문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부자가 착하기만 할까 ?  박찬욱의 순진한 절망과는 달리,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다 가진 놈이 착하기도 하다는 인상비평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이 보기에 다 가진 놈들이 보여주는 < - 착하기 > 는 < - 척하기 > 의 변종, 흉내, 패러디, 혼성모방(패스티쉬)에 불과하다.  이 혼성모방은 공허한 패러디이며, 유머 감각을 상실한 패러디'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 』에서 한 말이다.  영화에서는 " PRETEND : 척하기 " 라는 단어가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속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인 셈이다. 반지하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사는 " 근세 " 라는 인물은 사채업자를 피해 비밀 벙커로 숨어든 자로 죽은 척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런 부류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는 죽은 척하는 생태'이자 얼어죽을 동태'이다. 생태야, 영업 시간 끝났어. 이제 숨 쉬어 ! 흙흙흙.     그는 산 자이지만 죽은 자 " 유령 " 이며 투명 망토 쓴 " 인간 " 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곧 파산 선고(産ㅡ)이자 동시에 파생 선고(破生ㅡ)와 같다. 기택 식구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은 파산으로 인한 파생이 두려워 가족 음모를 꾸민다. 그뿐 아니라 상류층(ㅡ層)도 종종 쇼파에서 상류충(ㅡ蟲)을 드러낸다.  박찬욱 감독은 다 가진 놈이 착하기도 하다는 인식론적 한계에 멈췄다면 봉준호 감독은 다 가진 놈이 " 착하기를 척하기 " 를 하고 있는 사려 깊고 우아하며 은밀한 부르조아의 욕망을 폭로한다.  


태극기부대의 말투를 빌리자면 봉준호는 박찬욱보다 더,  더 더 뼛속까지 빨갱이인 셈이다. 박사장 부부가 보여주는 착하기는 하류층이 선을 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매너'이다.  이러한 태도는 하류층을 냄새로 구별하려는 박사장의 태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영화의 색깔은 블랙(코미디)로 시작해서 느와르(코미디)로 급변한다. 급변하는 솜씨가 매우 탁월하다.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 점이다. 칸느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 중에서 이보다 재미있는 영화는 없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




​                              


1) 


2)  영화 << 기생충 >> 오프닝 장면




▶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따위의 SNS에서 학력과 재력을 뽐내는 인간이 있었다. 그가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그는 엘리트'였다. 자격지심이었을까 ?  나는 호시탐탐 그가 약점을 노출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걸리기만 해봐라 ! 수박 씨 발라 먹을 놈아 ~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사진 한 장'을 올렸는데 사진 속 백그라운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쪽창의 높이가 비상식적으로 천장 높이 위치한 사진이었다. 이 말은 곧 그가 사는 곳이 반지하'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반지하는 면적의 2/3가 지하에 박혀 있어서 창문은 항상 천장에 가깝게 설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높은 성에 산다고 그토록 자랑을 하던 이가 사는 곳이 반지하였다니. 입만 열면 구라가 파랄(팔할)이었던 어느 부랄후드의 지랄 같은 관종 인생 !  이 사실을 폭로해서 망신을 톡톡(talktalk)히 줄까 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도 나와 같은 반지하 생활자'였으니 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6-27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8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9-06-28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이 천 만 간다면 제 몫도 있을 듯.
4번 봤습니다. 그 슬픔에 깊이 잠기고 싶어서.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

제가 갖고있던 ‘공의‘ 에 대해서 많이 생각 해봤습니다. 최소한 공의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곰곰생각하는발 2019-06-28 20:52   좋아요 1 | URL
맙소사. 4번이나 보셨다고요.. 볼 만하죠. 저도 심야 때마다 극장 문 내리기 전에 자주 들러야 겠습니다..
나와 님, 혹시 기생충 리뷰 쓰셨나요 ?

나와같다면 2019-06-2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는 ‘기생충‘ 이 슬펐을까?

마태복음 5장 45절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최소한의 공의라고 생각했다
악인이나 선인에게 공평하게 내리는 햇빛과 비

그 믿음이 깨졌다

갑작스런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

비가 많이 내린 덕분에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을 선물 받는 사람

기우의 계획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29 12:28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 님 댓글 읽고 한 꼭지 더 썼습니다.



4 공의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태복음 : 5장 45절). 해와 비는 공공재‘다. 그 혜택을 받는 자가 불의한 자‘라 해도 불의한 자‘조차 공평하게 해와 비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달리 기택과 근세는 가난하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볕을 차단당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는 단비가 아니라 범람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의 범람은 박사장에게는 단비이다. 비 그치면 미세먼지 없는, 볕 좋은 맑은 하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불의로 만든 주체는 하나님인가, 자본제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