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손



 


                                                                                                  입이 없으면 손으로 말한다. 수화(手話)는 입(口話) 대신 손으로 말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 그러니까 손은 입이라는 사물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물성.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 손 = 입 > 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당신이 문학적 관용과 낭만적 포용을 허용한다면 < 손 ≒ 입 > 이라는 공식을 만들 수는 있다.  < 손짓 > 은 손으로 만든 문장이라는 점에서 손이야말로 문인이 가장 사랑하는 신체 부위'란 생각이 든다.  소리는 삼키고 의미는 드러난다(기표는 사라지고 기의는 전달된다). 그래서 손이라는 사물의 본성이 투사된 단어-들은 내향성을 띤다는 점에서 내성적(內省ㅡ)이다. 또한 내성(內聲ㅡ)이다. 예를 들면 손편지나 손수건은 접고 접어서 부피를 줄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내향성'을 띠고, 손수레는 수레에 비해 수동성(手動性)을 강조한다.

최승자의 시 << 사랑하는 손 >> 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말 없이 진행한다는 점에서 수화의 풍경'이다.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주는 가여운 안식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주는 가여운 평화

           - 사랑하는 손, 최승자




이 시는 침묵의 힘'이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다는 행위는 풀리지 않게 띠의 매듭을 묶는 행위와 같다. < 매듭 > 이 이음매 없이 매끄러운 것이 서로 엮여서 흉터처럼 부풀어오른다는 점(열 손가락에 걸리는 )에서 " 너의 손을 잡 " 는 것은 상흔이자 통증이다. 그것은 예견된 불행을 감지하는 불안한 증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사랑하는 손을 잡는다. 거기에는 가벼운 불행과 가여운 안식과 오르지 못하고 하강하는, 손바닥에 가라앉은 평화가 공존하는 세계이다. 시에서 < 비 / 雨 > 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하늘에서 추락하는 이미지'를 내포한다. 손은 그것을 오롯이 받아내는 장소 topos 이다.

시에서의 하강은 릴케의 << 두이노의 비가 >> 을 연상케 한다. 시인은 이 불행한 하강을 강조하기 위해서 " 내리지... / 내려서... / 내리지... / 내려서... " 라는 시어'를 반복한다.  이 시에서 " 사랑 " 은 솜사탕처럼 달뜬 무중력의 풋풋한 사랑이 아니라  중력의 자장 안으로 포섭된 세계이다.  김영민의 사유를 빌리자면 < 사랑하는 손 > 에서 사랑이라는“ 연정은 지형(topos)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무너진다’는 것은, 마치 중력 하나가 모든 존재를 지배하는 어느 순간의 경험처럼, 모든 이치들이 열정의 무중력 공간 속에서 속절없이 해체ㅡ(사랑 그 환상의 물매, 김영민). ” 되어 재처럼 가라앉은 세계이다.

글자가 없던 시대에는 새끼줄을 매듭 지어 문자 대신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손을 잡는 행위는 가장 원시적인 사랑 고백이자 문장인 셈이다. 최승자 시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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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5-22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성 시인들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편인데 최승자 시인 만큼은 호감이 가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5-23 17:36   좋아요 0 | URL
최승자 초기 중기 시는 참 좋죠.... 짜릿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