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두부는 콩물을 잘 끓이고
좋은 멜로는 애를 잘 끓인다 :
노심초사
때는 바야흐로 2026년, 가상의 대한민국. 배경이 미래이다 보니 영화 << 인랑 >> 의 장르는 SF 액션 정치 스릴러 멜랑꼴리 활극. 하지만 장르의 " 무게감 " 은 휘발되고 장르의 " 무력감 " 만 남아 관객의 눈꺼풀을 무섭게, 졸라 허벌나게, 짓누른다.
활극은 " 활기 " 가 핵심인데 " 생기 " 가 없다. 활어 횟집 수족관 속에 갇힌, 쪼그라든 개불 같다. 특히, 기관총 MG42 총구에서 불꽃을 튀기며 총알을 난사할 때마다 이 영화 장르가 SF가 맞나 _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밀덕(밀리터리 덕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MG42 기관총은 2차대전 때 독일군이 사용하던 화기가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저항 세력인 섹트가 사용하는 무기도 전부 2차대전 때 독일군이 사용하던 무기'다. 강동원이 < 프로텍트 기어 > 입고 MG42 기관총을 든 모습은 마치 아이언맨이 구석기 돌칼 들고 있는 꼴'이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 미래에 대한 시각적 쾌락 " 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만듦새가 형편없는데 여기에 덧대어 뜬금없이 멜로가 끼어드니 역시나 메로나'가 되었다. 여기서 잠깐, 그 유명한 멜로에 대한 정의. 멜로란 어긋남의 미학이다. 오고 가다 다 만나면 그것은 멜로가 아니라 텔레토비'다. 아이~ 좋아 ! 이 영화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두 번 만나는데 그새 눈이 뒤집어진다. 눈부신 남자와 눈부신 여자가 만났으니 첫눈에 불꽃이 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변명할 수는 있으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사랑은 에로 영화이지 멜로의 자격 요건이 되지 못한다.
멜로는 약불에 은근히 오래 끓여야 하는 서리태 콩물 같아야 제맛이다. 바닥이 타지 않게 쉼 없이 나무 주걱으로 저어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끓는다 싶으면 찬물을 부어 식혀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거품도 빼야 하고 간수도 넣어야 한다. 불 조절은 필수다. 이처럼 불 앞에 앉은 사람은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펄펄 끓는 콩물을 다룬다. 멜로도 그렇다. 펄펄 끓는 애끓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멜로'이다. 사랑은 뜨거운 열정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펄펄 끓는 마음에 찬물을 부어야 할 때도 있고 마음에 거품이 생기면 걷어낼 때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달기만 한 음식은 불량식품이니 간수 넣어 짭짜래한 맛'도 내야 한다. 짠맛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좋은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콩)물을 잘 끓여야 하고 좋은 멜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애를 잘 끓여야 한다. 다양한 장르 속에 멜로가 끼어들 수는 있다. 하지만 멜로가 < 메로나 > 가 되는 순간, 그 영화는 망한다. 오랜 시간을 두고, 노심초사하는 마음 없는 멜로는 메로나'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재앙'이다. 잘생긴 남자와 눈부신 여자만 믿고 SF 멜로를 만들다가(심한 말로 까불다가) 좆된 영화'다. 이 영화의 제작비가 180억이라고 한다. 매우 신난다. 여기까지는 겉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