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설명서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열심히 일을 해서 목돈을 마련했다.  며칠 후, 냉장고 박스 크기 만한 상자와 함께 간략한 사용설명서가 동봉되었다. " fragile, 깨지기 쉬움. 취급 시 주의 !  " 나는 조심조심 상자를 개봉했다. HY 하이닉스 119 반도체 칩이 내장된 인공지능 로봇이 자태를 드러냈다.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로봇 피부는 티타늄 아리쉬티아늄 합성 금속으로 1800도 고열에도 견딜 수 있으며 철근 강도의 10000배를 자랑하는 고강도 합성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피식, 웃음이 났다. 무쇠보다 강한 로봇에게 깨지기 쉬우니 취급 시 주의하라니.......  나는 로봇 이름을 지니라고 지었다. 지니야 _ 라고 말하면 네 _ 라고 답했다. 지니는 언제나 공손했다. 주인에 대한 배려가 깊었다. 그리고 그는 강했다. 내가 출장을 가느라 집을 비운 사이에 도시가스가 폭발한 적이 있었는데 지붕이 내려앉은 와중에도 지니는 멀쩡했다. 흉터는 물론이요, 그을림조차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나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되었지만 지니는 내가 박스를 개봉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니야 _ 라고 묻자 네 _ 라고 대답했다. " 지니야, 그동안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내가 너를 처음 집으로 들인 날, 너의 사용설명서도 함께 동봉되어 왔더구나. 내용은 별거 아니었어. 이렇게 써 있더구나. <  fragile, 깨지기 쉬움. 취급 시 주의 !  > 그런데 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불멸 불사의 존재이잖니. 궁금했어. 왜...... 너는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 말이다. " 지니는 예의 겸손한 표정과 자세로 내 말을 경청하다가 대답했다. " 주인님, 그 사용설명서는 HY 하이닉스 119 반도체 칩이 내장된 인공지능 로봇, 제품 번호 D 라인 3블럭 2464에 대한 사용설명서가 아닙니다. 그 사용설명서는 저의 고객에 대한 사용설명서였습니다. 제가 주인을 섬기는 데 있어서 참고해야 될 사항을 적은 기록입니다. 당신은 깨지기 쉬운 존재이니 조심히 다루어야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주인님을 유리잔 다루듯이 조심히 모셨습니다. 그것이 저의 임무이자 당신을 향한 사랑입니다. "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리고 말했다. " 음악 한 곡 듣고 싶군. 스팅의 fragile "  스팅의 음악이 흘렀다.


If blood will flow when fresh and steel are one :살과 쇠가 붙어서 피가 흐르며
Drying in the colour of the evening sun :저녁녘의 태양 빛으로 굳어진다면
Tomorrow's rain will wash the stains away : 내일 올 비가 피 얼룩을 지우겠지.
But something in our minds will always stay : 그러나,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뭔가가 있어.
Perhaps this final act was meant : 아마 이 마지막 상황은 진짜였을 것이다.
To clinch a lifetime's argument : 생의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That nothing comes from violence and nothing ever could : 폭동과 그 아무것도 도움을 준 것은 없으니
For all those born beneath an angry star : 모든것은 증오스런 별 아래 태어났기에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 계속해서 비는 내리리
Like tears from a star like tears from a star : 별이 떨어뜨리는 눈물처럼 별이 떨어뜨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 계속해서 비는 내리리
How fragile we are how fragile we are : 우리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 지니야.... 그동안 고마웠어...... "  나는 오래 전에 헤어졌던, 어깨가 동그랗던, 가난했던 그녀 생각을 하며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눈을 감았다. 사는 동안 내내 무거운 눈꺼풀이었다. 지니는 그때 가슴 한쪽이 깨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본사에서는 지니의 고통은 학습된 감정 목록에 없는 감정이기에 단순한 환상통에 불과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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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7-18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오한 글이네요. 제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싶어 습관적으로 댓글을 보게 됐는데, 알라딘에는 설명충이란 분들이 서식하지 않네요 ㅠㅠ 암튼 더위 잘 지내시기 빕니다. 꾸벅

곰곰생각하는발 2018-07-18 10:08   좋아요 0 | URL
생각하신 것 그대로입니다.. ㅎㅎ 로봇 사용설명서가 아니라 주인장 사용설명서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