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감동에도 근육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며칠 째 잔근육들이 뭉친 뻐근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이제 좀 담이 서서히 풀려 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할수록 작가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가 급기야 그 도를 지나쳐 '나만의 작가'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살짝 정신 나간 스토커 독자가 될 지경에 이르렀으니....이 모두가 최은영 작가가 자초한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나이가 들수록 식성과 취향,성격(심지어 외모까지도?) 모두가 변해간다.
서서히 변해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극과 극으로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것들도 많다.
예를 들면 나의 식성은 극단적으로 변해버린 예인데 예전엔 달디 단 단팥빵은 입에 대지도 못했는데 요즘은 부러 찾아서 먹는다.단팥빵을 입에 물고서 변해 버린 나의 식성에 혀를 내두르지만 반면 나는 아주 맛나게 먹는다.이상도 하지?
그리고 취향도 극단적으로 바뀐 경우인데 독서취향 특히 소설을 대하는 자세가 극단적으로 바뀐 경우를 확인하고 참 이상도 하지? 몇 번을 되뇌인다.
이십 대 초반만 해도 여성작가들의 소설을 좀 멀리 했었다.왜냐하면 일기장을 훔쳐 보는 듯한 감성이 부담스러웠었다.그래서 부러 남성 작가들의 책을 읽었던 것 같다.중간 중간 여성작가들의 책을 아주 안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성 작가들의 문체가 마음에 더 와닿았던 듯하다.
하지만, 언제 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은 그 일기장 같은 형식의 문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이젠 여성작가들의 책을 부러 찾게 되었다.
(알고 보면 사실 소설은 모두 일기장 같은 고백형식인데 왜 선을 그었을까? 참 별나기도 하지!)
윤대녕,김영하,김연수,박민규등 남자작가들의 이름을 우선 순위에 두었다면 이젠 박완서,은희경,김애란,김이설,김숨,정이현,한강등 여성작가들의 이름이 자꾸 늘어나게 됨에 따라 우선 순위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혼자만의 월드컵 대진표를 짜곤 한다.이젠 그 대열에 최은영 작가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대진표는 그야말로 치열하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영화는,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쇼코의 미소 중에서>
작가는 어떻게 이런 섬뜩한 말들을 덤덤하게 조곤조곤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늘 이러한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괜한 열등감에 노여워했던 옛 시절이 떠올라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지금은 체념하고 받아들인 상태다.타고난 재능을 가진 자들에게 이젠 박수를 쳐 줄 수 있다.예전엔 그것이 안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된다.그러니까 나이 먹어 가면서 나의 성격 또한 극단적으로 바뀐 경우일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재능이 없는 꿈이라는 허울을 붙들고 있어본들 내 삶을 좀먹어 간다는 것을 일찍 깨닫기 시작한다면 기꺼이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인정하게 된다.하지만 그 인정이 청년 시절엔 절대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허울을 붙들어 찢어버렸다면 타고난 재능있는 자들의 경지에 합류할 수 있었겠지만 약삭빠른 나는 그 허울을 자주 벗어던졌던 듯하다.허울을 붙들고 있는 것도,허울을 벗어 던지는 것도 모두가 가능한 시대는 바로 청춘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무념무상의 시대! 그러다 작가의 저 문구를 대하는 순간 심한 감정이입이 됐었다.
여자는 노인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오래 살아가는 일이란,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미카엘라>
사별하고 혼자 남게 된 노인들을 바라보며 저들을 지탱해주는 힘이 무엇얼까? 생각해보곤 한다.내겐 시아버님이 그러셨고,지금은 친정아버지가 혼자 되셨다.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되는데 어떤 힘이 삶의 버팀목이 되는 것인지 나는 실로 까마득하여 감히 추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어린 작가는 그런 깊은 생각들을 툭툭 무덤덤하게 적어 놓았다.
<미카엘라>에서 아~ 먹먹하다! 생각이 들곤 했는데 순간 <비밀>의 단편집을 다 읽고 평론가의 해설부분을 읽는데 갑자기 툭! 터져서 눈물이 자꾸 흘렀다.
'이 책 전체를 통해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서사를 감싸고 있는 순하고 맑은 힘이다.#$^$%%^$%$^' 결코 눈물이 나올 부분이 없는 문장들을 눈으로 읽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정말 누군가 곁에서 지켜 보았다면 해설 부분이 그렇게 슬프냐고 물어볼 장면이라고, 눈물을 멈추자! 스스로에게 외쳐도 눈물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비밀>의 어떤 한 장면이 나를 건드렸던 것같다.
한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맨 뒷좌석에서 '숙아!'라고 은근하게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정말 깜짝놀라 뒤를 돌아본 기억이 있었다.속으로 더운 여름을 보내고 내가 너무 기가 빠졌던게야!! 환청이 들리다니 밥을 좀 많이 먹어야겠어! 속으로 꾹꾹 누르고 있었던 감정들이었는데 <비밀>에서 손녀가 부르는 할머니 소리를 환청으로 듣는 그 장면이,불현듯 지난 달 나의 경험담을 환기 시켰다.책을 읽으면서 다른 단편들의 여운도 꾹꾹 잘 눌렀고,지난 달의 환청도 잘 다스리고 지내 왔었는데 불시에 갑자기 감정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뒤엉켜 눈물이 흐르는데 도저히 멈출 길이 없어 울면서도 나 스스로가 대략난감!이란 단어를 떠올렸었다.
'요즘은 눈물이 나오는 책들이 많지 않아!'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었다.하지만 올 해는 세 권의 책들이 눈물샘을 건드렸고,그것들은 제어가 안되어 혼이 날 지경이어서 어안이 벙벙하다.
그 중 최은영 작가가 제일 나이가 어린 듯한데....
도대체 작가는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 나타난 것인가!
뒷편 작가의 말에 쓰여진 여러 공모전에서 낙방을 하여 의기소침했었던 이야기는 재능을 타고 난 사람도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래서인지 왠지 작가가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작가의 다음 편 소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