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단 한 줄이라도 읽은 책들은 무조건 기록해두자!
라고 다짐했건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고
현재 읽고 있는 책들에 푹 빠지다 보면 과거 읽은 책들의 감흥은 다소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기록하자'의 약속이 몇 주 안가 무용지물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일찌감치 품고 있었다.(잘 알면서도 해가 바뀌면 늘 계획을 꿈꾸게 마련이므로!)
그러면서, 열심히 기록하는 사람들의 수려한 글솜씨에 감탄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감탄하려고 찾아가 읽고 있는 것이니까!)
그사람들의 성실성과 부지런함 그리고 식지 않는 그 열정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나도 열정을 품어 보려고는 하나,쉬이 식어버리니 허참!!
열정이 식기전에 얼른 기록하자.
단 몇 줄이라도!!
9.10.<리틀 포레스트>1,2
-이가라시 다이스케
아이들이 장성한다면 얼른 독립시켜버리고 신랑과 둘이서 귀농을 해볼까? 뭐 그런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그런데 얼마전부터 그계획에 약간의 수정을 하고 있다.귀농은 좀 힘들 것 같고,그냥 숲 속에 폐허나 빈집이 있다면 그걸 고쳐서 살면 어떨까?로 수정중이다.하지만 숲 속이라 하되 너무 깊은 숲 속은 무서울 것 같다.멧돼지가 튀어 나오거나 뱀이 수시로 마당을 지나가고 벌레에 물려 늘 피부에 진물이 흘러 내린다면 좀 스트레스가 될 것 같기에 도시 인근 약간 동떨어진 시골쯤이면 좋겠다.라고 수정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내 친구가 몇 년 전 귀농을 꿈 꾸며 시골로 내려갔다가 적응을 못한 사례를 너무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듣다 보니 이건 정말 그냥 꿈을 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겠구나! 생각했다.아주 구체적으로 무언가 틀을 잡아야 할 것이고 계속 하나씩 살을 붙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왜 시골로 들어가 살기를 원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곤 하였다.이책에 나오는 주인공 이치코는 시골을 도피처로 생각하여 고향으로 찾아들어와 자급자족의 유기농 음식들을 먹으면서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되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나는 나이가 들면 외진 시골로 들어가 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서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다라고 생각하였으나 어쩌면 나도 외진 시골을 은연중에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었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도피처의 공간들이 실상 살아본자들에게는 그리 호락호락한 공간이 아니란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그리 절실한 목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지금 삶과는 다른 분위기의 삶을 원한 꿈만 가득한 이상향의 도피처였나보다.
이치코의 마음가짐을 읽어 나가면서 나의 허영으로 가득한 꿈을 줄곧 반성하였다.
'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싶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나의 요리 패턴과 요리에 임하는 자세를 적극 바꿀 필요가 있음을 자각하였으나 오래된 습관은 쉬이 바뀌지 않고,내 입도 전혀 바뀌지 않으니 시골로 들어가 살고 싶다는 것은 허영에 들뜬 꿈일 뿐이다.
이치코처럼 좀 더 명확하면서 진지한 목표가 있어야지 싶다.
이책은 분명 요리만화책이라 분류해놓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으면서 삶의 관점들이 바뀔 수 있으니 조금 놀랍다.
중간 중간 요리 레시피가 있긴 하지만 이책은 왠지 요리책이라고 말하면 안될 것같다.
그럼 이책은 무슨 책인가?
그냥 내겐 한 편의 소설처럼 읽혔다.
개인적으로 만화책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만화 삼매경에 젖어드는 중이다.특히 음식에 관련한 만화책은 이유없이 좋아하는 성향이라는 것을 이제사 깨달았고,만화의 재미를 뒤늦게 야금야금 알아가는 중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우리나라 음식이 아닌 일본의 전통음식들이 많다보니 신기한 내용들도 많았지만,주인공이 읊어내는 쓸쓸한 독백들에 집중이 잘 되는 만화책이었다.그래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일테고...예전에 영화를 보려 했으나 유료라고 뜨는 바람에 잠깐 멈칫 했는데 만화책을 읽고 나니 영화가 더욱 보고 싶어지는 내용들이다.
특히 주인공이 요리하는 재료들이 어우러져 익어가는 과정이나 완성하여 예쁜 그릇에 담아 식탁위에 올려놓았는데 김은 모락모락 피어나고 맛깔스런 색들의 조합으로 윤기가 차르르 도는 그런 음식은 역시 영상화면이나 올칼라 사진의 힘을 빌려야만 빛이 날법하다.
<식객>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인데 배는 분명 고픈데도 군침이 돌지 않아 이상하다고 여겼더니 이게 다 흑백의 화면들에서 오는 단점이란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만화책을 잡은지가 얼마 되지 않아 이것도 혼자서 뒤늦게 깨닫는다.
이모든걸 홀로 야금야금 알아갈 것이다.
11.<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참 오래전에 나온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일본작가중에서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러니 읽어야만 했을 것이다.
읽으면서 지겨워 몇 번을 포기했었지만 그래도 완독했다.
왜냐하면 하루키니까!!
하루키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읽으면서 달리기의 지난함이 느껴지면 나 또한 읽어 나가는 것이 힘이 들곤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역시 읽길 잘했어!란 느낌을 남겨 주는 것은 바로 하루키의 힘일 것이다.
하루키의 작가가 되기전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와 작가로서 작품을 이끌어 가기 위한 극히 개인적인 자기관리법에 대한 이야기들은 베일에 쌓인 작가의 개인사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작가라고 하면 늘 책상에 앉아 머리 헝클어대며 글만 쓸 것이라 상상하곤 하는데 작가들은 생각외로 활발하고 부지런하다.도대체 글은 언제 쓰는 걸까? 싶을 정도로 대외적으로 많은 활동들을 소화해가며 36시간 같은 하루를 보내는 작가들을 실제로 지켜 보고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특히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작가라는 직업은 실상 더 많은 운동을 요구하게 된다.나이가 들어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으며 다작을 하는 작가들을 보면 아마도 자기 관리가 투철하였으리라는 생각을 하루키를 통해 깨닫게 된다.
하루키는 운동중독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마라톤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다.
그 애착이 읽는내내 나도 한 번 달리고 싶다라는 강한 충동이 들정도다.
좋아하는 하루키지만 아직 그의 소설을 다 읽지 못하였기에 더 찾아 읽어야만 할 것이다.
지금부터 읽는 하루키의 소설은 탄탄한 근력이 붙어 있는 소설로 읽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