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를 써보자. 그런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당장 실천에 옮기려 해보지만 페이퍼를 너무 안 쓰다 보니 뭘 써야 할지, 쓸 거리가 없어 고민이다.
그래도 노력해본다.
오후에 혼자서라도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려고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저만치 걷고 있었다.
매일 잠들기 전에 들어보려 켜놓았던 오디오북 중 에세이 한 권은 처음 몇 분만 듣고 금방 잠들어버려 늘 무한반복.
누가 보면 너무 좋아해서 듣고 듣고 또 듣는 에세이집인 줄 오해받겠단 생각이 든다.
오늘은 걸으면서 무조건 다 들어버리라. 다짐했건만…
남편에게서 어디냐고? 지금 집을 나섰다고 전화가 왔다.
아..오디오로 듣던 에세이는 또 무한굴레에서 빠져나오기 틀렸군. 생각하며 멈춤을 눌렀다.
일단 소공원에서 남편과 재회했다.
그곳은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나온 집들이 많아 아이들의 고함 소리와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한적한 곳에 살고 있어 그런지 사실 아이들을 많이 볼 수가 없었는데 집 밖을 나와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니 같이 즐거워졌다.
남편과 둘이서 와! 하고 동시에 탄성이 나왔다.
이제 50대 중년 대열에 확실히 발을 들여놓아서 그런지 종종 어린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길을 건너 좀 더 규모가 큰 공원으로 갔더니 음악 소리가 들려 뭐지? 궁금해 뛰어갔다.
아마츄어 공연단들의 춤과 노래 공연이 있었다.
노래는 이미 끝나버려 못 들었는데 댄스팀 춤 공연을 지켜봤다.
자유자재로 흔들어 버리는 팔과 다리. 그리고 파도 물결치는 허리의 웨이브와 그에 맞춰 넘실거리는 긴 머리카락.
젊은 관절들이 부러워 넋을 놓고 바라봤다.
남편은 보다가 지겨웠는지 빨리 걷자고 자꾸 잡아끄는데
공연을 준비한 젊은이들의 땀과 노력을 생각하면 좀 더 자리를 지켜줘야지 않을까, 싶어 내가 남편 팔을 붙잡고 조금 더 보고 가자고 못 움직이게 막았다.
춤을 잘 춰서 멋져 보이기도 했지만 무언가에 열정을 다해 다 쏟아내는 그 젊은 열기가 부러워 발을 멈추게 하는 것 같다.
구경하시는 어르신들도 눈에 띄던데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추측하며 공연하는 사람들과 관객들의 뒤통수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젊음의 춤선과 나이든 희끗한 머리카락의 묘한 대비.
공연은 금방 끝났고 둘이서 살짝 걸었는데도 해가 제법 뜨거운지라 갈증이 절로 났다.
꽤나 출출해지기도 하여 며칠 째 벼르던 밀면을 먹기로 했다.
집에 있는 애들은 그냥 밥을 먼저 먹겠다는 아이 하나,
햄버거를 먹겠다는 아이 둘의 의견을 반영하여,
남편과 둘이서 밀면을 먹고 들어가면 될 듯 하여 근처 밀면집을 찾아 들어갔다.
올 해 첫 밀면이었다.
나는 칼국수나 잔치국수만 좋아하는 면러버였었는데
모든 면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더워지기 시작하면 무조건 밀면 아니면 냉면을 먹게 되어 면러버에서 거의 면킬러 수준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부산 남자라 그런가 때가 되면 밀면은 무조건 흡입하던데.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 같이 흡입하고 있었다.
나는 맵질이어 매울까봐 비빔면은 통과하고 무조건 물밀면만 먹는다.
나이 들어가면서 때론 면이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더부룩 할 때가 많아졌지만 점심 한 끼는 왠지 가볍게 면으로 때우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몇 년 전 자주 가던 밀면집이 있었는데 그 가게가 이전하면서 맛이 좀 변한 듯 하여 찾아가지 않게 되면서 밀면집 유목민이 된지가 몇 년째다.
오늘 가서 먹은 집은 꽤 먹을만 하여 이곳으로 이젠 정착해야겠다 생각하며 오물거리며 흡입하고 있던 차,
남편은 본인 숙소 근처에 있는 밀면집이 훨씬 맛있다고 나중에 먹으러 건너오라고 했다.
이제 가도 돼?
며칠 전 부산에서 반가운 이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만나고 헤어지면 시간이 꽤 늦어질 듯 하여 남편에게 숙소에서 좀 자고 가면 안되겠냐고 물으니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하더라.
왜 저러지?
늘 내외?하는 사람인지라 크게 신경쓰진 않았지만,
그게 미안했던 걸까?
먹을 것 사 준다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그리고 밀면은 역시 부산에 가서 먹는 밀면이 제 맛일테고.
(그 밀면 맛은 또 추후에 후기로 남기겠다.)
오는 길에 두 아이들의 저녁으로 햄버거를 포장해 오느라 롯데리아에 들러 의자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햄버거를 주문해서 먹고, 주문해서 포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물어 가는 주말.
공원에서 한갓지게 즐기는 사람들.
다음 일주일간의 에너지 보충으로 운동하는 사람들.
아이를 데려와 햄버거로 한 끼를 때우며 시간적 여유를 찾는 사람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이번 한 주말도 잘 보내고 있는 듯하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좋은 날씨의 일요일.
이런 일요일을 몇 번을 더 보낼 수 있을진 알 수 없지만 시민들의 여유로움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올 장마는 길어질지도 모른다던데…
이것 저것 병렬독서는 나의 고질병인지라 책 진도는 느리고 또 느리다.
그 중 셀레스트 잉의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이란 책을 보태어 읽는 중이다.
인종차별이 중첩된 근미래를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소설이라는데 엄마를 그리워하는 버드라는 아이가 안쓰러워 책장 넘기는 속도가 더 느려지는 듯하다.
그래도 뒷편엔 분명 버드가 벌떡 일어나겠지?
기대가 크다.
올 해 세웠던 이것 저것 독서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달력을 쳐다 보다 깜짝 놀라 다시 재점검 들어가야 할 판이다.
벌써 5월도 한 주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점검 해보니 뭐하겠노?
6월이 시작된다고 뭐 달라질 게 있을까?
그냥 하던대로 살면 되지.
내면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의 걸음 수는 확인해 보니 9천보가 넘었다.
뛰지 못한다면 걷기라도 열심히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스탬프 하나 확보.
그래서 셀프칭찬.
나, 참 잘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