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고 평판이 좋은 남자 크로포드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패니에게 모든 식구들은 경악하고, 실망하고, 의아해 한다.
하지만, 패니의 생각은 다르다.
돈 많고, 집안이 좋은 남자가 구애를 한다면?
앞도 뒤도 따질 것 없이 무조건 YES라고 응해야 하는 것이 모든 여자들이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니라고 조목조목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물론 소심하고, 예민한 아가씨라, 고모부한테는 차마 말 못하고, 크로포드 여동생에게 얘기한 것이지만....

처음엔 답답했지만, 점점 패니의 정신 세계로 빠져든다.

토머스 경은 패니가 참담하고 떨리는 심정으로 앉아 있는탁자로 다가와서는 굉장히 냉엄한 어조로 말했다. "더 이야기 - P458

해 봤자 소용이 없겠구나.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이런 대화는그만두는 편이 낫겠다. 더 이상 크로퍼드 씨를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그러나 내가 네 행동을 어찌 생각하는지 확실히 밝혀두는 게 나의 의무일테니, 내이 말만 덧붙이마. 너는 내가 품었던 모든 기대를 저버렸고, 이번에 보니 성품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딴판이로구나. 너도 그간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알았겠지만 내가 귀국한 후 너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갖게 된게 사실이다. 패니, 고집스러운 성정이나 자만심, 요즘 부쩍만연하는 자기주장과는 특이할 정도로 거리가 먼 아이라고생각했으니까. 심지어 젊은 처녀들한테서도 이런 성향이 나타나던데, 처녀들이 그러면 더 흉하고 눈에 거슬리지. 그렇지만 지금 네 태도를 보니 너도 제멋대로 고집을 부릴 줄 아는구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작정인 모양이고 너를 이끌어 줄 자격이 얼마간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그에 순종할 생각도 없고, 심지어 조언을 구할 생각도없이 말이다. 이런 네 모습은 내가 상상한 것과 너무나, 너무나 다르구나. 이번 일로 네 집안, 네 부모, 네 형제자매한테 미칠 특실은 한순간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게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네가 이렇게 훌륭한 결혼을 한다면 그들이 얼마나기뻐할지, 너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거야. 오로지 네 생각만하는 거지. 철없는 들뜬 마음에 행복의 필수 요소라고 상상하는 그 감정이 크로퍼드 씨한테는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도 없이, 잠시 더 차분히 생각해보고 네가 바라는 게 뭔지 제대로 따져볼 시간을 달라는 말도 - P459

없이, 당장 거절해 버리기로 결심하고는, 아마도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일순간의 어리석은 충동으로 내팽개치는구나, 혼처가, 그것도 어엿하고 훌륭하고 귀한 혼처가 나섰는데 말이다. 여기 분별력이나 인품이나 성격이나 태도나 재산이나 나무랄 데 없는 청년이 너에게 지극한 마음을 품고 사심없는 훌륭한 자세로 청혼을 한 거다. 내 말해 두지만, 패니, 네가 앞으로 다시 십팔 년을 산다고 해도 크로퍼드 씨가 가진 자산의 절반이나 자질의 십 분의 일이라도 갖춘 남자의 구혼조차 받기어려울 거다. 내 친딸이라도 그 청년한테는 기쁜 마음으로 내주었을 거야. 마리아야 이미 훌륭한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만,
만약 크로퍼드 씨가 줄리아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마리아를 러시워스 씨한테 내줄 때 이상으로 진심으로 흡족하게 허락했을 게다.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언제가 되었든 내딸한테 이번 혼처의 절반만큼이라도 되는 자리에서 혼잣말이왔는데, 내 딸이 내 의견이나 생각을 물어보는 예의도 갖추지않고 단박에 단호하고 확실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면, 난아마 몹시 놀랐을 거다. 그런 행동에 무척 놀라고 마음이 상했을 게야. 자식의 도리와 효심에 심히 어긋나는 짓이라고 생각했겠지. 너한테는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을 거다. 너한테는 자식의 의무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패니, 스스로 네 마음을 들여다보고 배은망덕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다면……….‘
그는 말을 멈추었다. 패니가 이미 눈물을 쏟아내고 있 었으므로, 아무리 화가 나도 더 몰아칠 수는 없었다.  - P460

잠시 애써 마음을 추스른 후 패니가 말했다. "난 여자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일줄 알았는데요. 아무리 인기가 많은 남자라도 여자 쪽에서 마다하거나 적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고요.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남자라도 어쩌다 마음만 주면 상대편에서는 무조건 좋다고 할 거라는 생각은 곤란하다고 봐요. 그렇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또 누이분들 생각대로 크로퍼드 씨가 모든 조건을 갖춘 분이라고 해도, 내 마음이 어떻게 그분의 마음과 같을 수 있었겠어요? 내 입장에서는 정말 뜻밖이었거든요. 이제껏 나를 대하는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사실 그분이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도 분명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할 텐데, 그런 이유만으로 억지로 관심을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 처지에 크로퍼드 씨한테 기대를 품는다면 지극히 오만한 생각 아닌가요? 그분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누이분들부터 그렇다고 볼 거예요. 그분은 별생각이 없는데 그런다고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사랑 고백을 받는 즉시 사랑에 빠질 수 있겠어요?
그분이 원하기만 하면 사랑으로 응답할 준비라도 되었어야 하나요? 누이분들도 그분을 생각하는 만큼 내 입장도 헤아려주어야지요. 그분의 가치를 높게 볼수록, 내가 그분을 마음에두는 게 더욱 부적절해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리고…………이번에 보니 여자의 속성에 대해 나하고는 생각이 아주 다른 - P509

가 봐요. 여자가 구애에 그렇게 금방 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요." -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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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5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용하게 강하다 - 페니를 가리키는 말이죠. 하지만 마지막 결말이 좀 썰렁했습니다. 나름 스포일러랍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2-11-06 11:49   좋아요 0 | URL
조용하게 강하다!!!
맞는 말씀이네요?ㅋㅋ
오스틴 소설 중 좀 남다른 캐릭터였던 듯 합니다.
아주 내향적인...
읽다 보니 결말이 얼추 그리될 것을 조금 예상했었습니다. 예전에 <나보코프 문학강의>에서 읽었던 결말이 기억날 듯 말 듯 하더라구요. 등장인물들의 묘사와 패니와의 관계를 계속 읊어대던데 이 책을 안 읽고 나보코프 책을 읽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안왔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까 아~~~했었네요^^

2022-11-05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6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2-11-05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견쟁이 패니 매력 덩어리! ㅎㅎ 영드 맨스필드 파크 꼬옥 보세요 ^^

책읽는나무 2022-11-06 11:55   좋아요 1 | URL
영드에선 패니가 참견쟁이로 묘사되나요?^^
책에선 패니가 아주 소심한 극 내향적인 인물로 비춰져 때론 좀 답답하기도 하던데 말입니다^^
답답한데도 주변인물들의 캐릭터들이 살아 있어 생각보다 소설은 재밌었네요.

건수하 2022-11-06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패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중엔 약간 자포자기 하기도 하니까요) 이상을 얘기하는 듯하면서도 무척 현실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

책읽는나무 2022-11-06 12:04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렇네요?
패니는 어떤 판단을 했을까요?
패니 집에 방문한 크로포드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살짝 기울기도 하던데 어쩌면, 그때 크로포드의 구애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결말은 또 달라졌을 것 같아요.
패니의 판단이 모두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가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과 비슷해서 우리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소설이 두꺼운데도 꽤 흡입력이 있었어요. 그게 수하님이 말씀하신 현실적인 소설이라고 하신 말들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네요.^^

독서괭 2022-11-07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분이 원하기만 하면 사랑으로 응답할 준비라도 되었어야 하나요? ˝
아휴, 스토킹 사건들 생각나면서 매우 공감이 갑니다. ㅠ

책읽는나무 2022-11-07 17:24   좋아요 1 | URL
저도 이런 남자의 구애를 읽으면서 움찔했네요. 특히 크로포드는 구애를 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 무조건 패니는 나에게 넘어오게 되어 있다! 라고 자만하고, 심지어 패니가 NO라고 하니까, 더 오기가 생겨 접근하는 모양새가 아....절래절래!!!!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수하님 말씀처럼 무척 현실적인 소설이란 말이 딱 들어 맞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