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의 책상은 흔히 말하는 미니멀한 책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흔한 탁상시계나 조명 하나 없이 책과 서류, 필기류, 등 최소한의 것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하겠지만, 미니멀리즘은 세간의 오해와 달리 '모든 것의 정답'이 아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정답인 것은 사실이다.
미스 반 데 로에 같은 20세기 초 건축가로부터 당대의 카림 라시드까지, 세계의 디자인과 문화를 주도해 온 인물들은 한결같이 미니멀리즘의 가치를 강조한다. 미니멀과 컬러의 조합을 통해 21세기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로 등극한 카림 라시드는 자신이 생각하는 책상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상 위는 깔끔해야 한다. 깨끗해야 한다. 그리고....텅 비어야 한다.(keep your desk neat, clean and ...empty). 책상 위에는 꼭 있어야 할 것만 두라. 컴퓨터, 전화기, 전기스탠드, 펜, 종이, 그것으로 끝이다. 나머지는 치워도 된다. 파일은 서랍속에 넣고, 참고서적은 선반에 올려 놓아라. 책상을 치울수록 정신은 맑아질 것이다....책상에서 지저분하게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하라"
굳이 카림 라시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작은 책상, 작고 단정한 책상의 미덕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작고 단정한 책상은 나를 나에게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40~41쪽)
책을 읽다가 미니멀리즘 그리고 미니멀한 책상의 자격 요건에 대한 카림 라시드의 글을 읽고 있자니 뜨끔하다. 그래, 책상은 깨끗해야지! 싶어 읽어 내려 간 '작고 단정한 책상의 미덕' 처럼 따라해 볼까?싶다가 이내 반감이 인다. 책상위에서 책을 읽을 때 다 치워 버리고 깔끔하게 먼지까지 잘 닦은 곳에서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집중하기 좋겠지만, 이내 필요한 것이 생겨 자리에서 몇 번씩이나 벌떡 벌떡 일어나야지 싶은데...산만한 나만 그러한 것인가?
이를테면 책을 읽다가 나타나는 낯선 단어들, 또는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때는 어김없이 핸드폰을 찾게 된다.검색해야 하므로...검색하다가 물론 삼천포로 빠져 시간을 많이 허비하기도 한다.
읽던 책을 어느 정도 시간 들여 읽었으면 잠깐 놓고, 읽다 만 다른 책을 또 들고 읽어야 하므로 나는 주로 여러 권의 책을 손 닿는 곳에 마구 쌓아 놓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목이 말라 물을 찾거나, 갑자기 잠이 와 커피를 다시 타러 가기도 하고, 커피를 타 왔으니 쓴 커피를 마시려면 달달한 친구 빵이나 쿠키, 과자 종류도 같이 들고 온다. 그래서 책상 위에서 음식을 먹지 마라고 했지만 간단한 주전부리는 책상 위가 아니면 어디서 먹을 것인가?
암튼, 미니멀한 책상을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어떤 경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미니멀한 페터 한트케의 책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인 걸까? 궁금해서 또 검색 작업에 들어갔다.페터 한트케의 책상은 따로 정보가 없고 다른 사진 몇 가지가 있는데...페터 한트케의 책상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나...오호!! 저런 책상이라면 나도 따라하며 살고 싶은 의향은 충분하다.
더군다나 작가의 삶이 살짝 엿보이는 집의 실내 풍경(작가의 자택이 맞겠지?)에 감탄하고, 작가의 주름진 얼굴 모습에 감탄하며, 어떡하면 저렇게 늙을 수 있을 것인가? 딴생각하고 있는 나!!
페터 한트케 작가의 손과 필기노트다.
사진을 봤을 때는 미니멀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여 나에게는 꽤나 친근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정경이다.그래, 이런 환경에서 작가들은 영감을 얻는 거지!!
너무 단정하고 깨끗한 책상에선 위대한 작가들도 부담스러워 작업을 못하지 싶은데...
하지만 책상에 대해 사람들이 잊고 있는 '또 하나의 정답'이 있다. 바로 온갖 물건이 놓인 크고 널찍한 책상이다. 책과 서류, 노트와 시계, 페이퍼 나이프, 잉크병과 필통, 커피가 눌어붙은 머그잔 서너 개등이 난리통처럼 쌓여 있는 크고 넓은 책상 말이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표현된 미니멀리즘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은 한번도 제대로 쌓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없애기부터 요구하는 상업의 얕은 상술 때문이다. 단칸방을 원룸으로 둔갑시켜 더 비싸게 팔아먹는 것처럼 가난을 포장해 더 비싸게 팔기 위한 상업의 얕은 상술.
그래서 대부분의 현대 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이라기보다 빈약함으로 읽히고 보인다. 채워보지 못한 사람이 비우기부터 한다는 것은 체르니도 연주하지 못하면서 피아노부터 부수는 행위예술가처럼 어색할 수밖에 없다.
어지러움에는 어지러움의 미학이 있다. 깨끗하게 계획된 신도시의 아름다운 외에도 스스로 태어나고 성장하며 어지러이 생성된 구도시 달동네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과 같다. 어지러움에는 내 행위의 자연스러움이 만들어 낸 규칙과 배열이 있다. 그것은 미니멀리즘이 보여주는 멋과 또 다른 멋이다. 크고 산만한 책상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옳다는 것의 재확인이다. 언젠가부터 작고 단정한 것이 크고 어지러운 것에 비해 더 도덕적인 것으로 인식되도 있다. 그 도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크고 어지러운 것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41~43쪽)
모든 말에 다 공감할 수는 없으나,대부분의 작가의 말에 공감백배...
아~~ 그렇다면 작가의 책상은 어떨 것인가? 정말 기대가 되어 막 찾아 봤다.
목공 디자이너다 보니 개인 인스타가 있었다.
거기서 본 작가의 서재와 책상 사진...책에서는 파주 작업터 옆에 서재를 이사 시켜 따로 마련했다고 적혀 있어 사진의 서재 모습은 현재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예전 일산에서의 서재 사진이라고 적혀 있다.하지만...작가의 책상은 고급스럽고,크고,웅장하다.
헌데...어디 어지러움이 있는 것인가?
아~~ 엄청 깔끔한 성격의 작가이자 디자이너셨어!!
사진을 보다 또 친근함 발견. 버터링과 라이언!!!
내겐 아직 이렇다할 멋지고 웅장한 책상이 없다.
집에 있는 책상이란 건 아이들 책상 세 개!!
코로나 이후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뭔가 손으로 깨작깨작 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하여 깨작깨작 하려고 보니 나만의 책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책을 읽기 위해 책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책은 그냥 내 몸이 가는 대로 닥치는 곳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나?
침대,쇼파,식탁,또는 도서관.(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주로 이용했던 듯 하다.)등에서 책을 읽었으므로 나를 위한 책상은 그닥 필요치 않았다.
나만의 방은 좀 갖고 싶었다. 하지만 주말 부부라 침실은 나 혼자 쓰고 있으니 곧 내 방이나 마찬가지여서 '나만의 방'에는 집착이 덜했을지도?
그래서 내 침대에는 남편 대신 늘 책이 널부러져 있다.^^;;;
나만의 방(서재), 나만의 책상은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훗날 아이들이 성장하여 독립해줄 때 방 한 칸이 오롯이 나만의 방이 되는가 보다! 여기고 살았는데 코로나 이후로 생각이 좀 달라졌다.나만의 서재는 아직 힘들겠지만 책상은 갖고 싶은데...이왕이면 아주 크고 넓었음 싶었다.그래서 피자나 치킨을 배달 시켰을 때 오손도손 티비 보면서 즐겁게 먹어보자고 남편을 꼬드겨 재작년 여름 큰 식탁을 구입했다.거실 한 가운데를 차지한 식탁!!!
처음엔 새 식탁 좋아라 음식을 나르면서 거실 한가운데서 열심히 밥도 먹고,피자도 먹고,차도 마시고,오손도손??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었던 공간의 식탁이 어느 순간 식사를 할 수 없는 책상 같은 용도로 바뀌어 버렸다.(책이 있으면 책상이지!!)
식구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이내 적응이 되어 갔고, 주말에 한 번씩 피자를 배달 시키면 식탁 가장자리에 다섯이 달라 붙어 먹어내고는 있다. 대신 사랑이 없어졌다.
하지만 남은 건 결국 나만의 책상!!
남편은 주말에 집에 들어 오면 그 넓었던 우리 거실이 왜 이렇게 되었냐고 한탄하여,
나만의 방에 제대로 된 책상을 하나 구입해서 그쪽으로 이 책들을 옮겨 놓고 잃어버린 식구들의 사랑을 다시 찾아와 볼까?생각중이긴 하다.
하지만...집에 더이상의 짐을 늘린다는 건 염려스럽다.
집에 짐이 너무 많아!!!ㅜㅜ
다 채워봤으므로 이제 나는 비우기로 돌입해야 하는 미니멀은 이래서 필요한 것인가?
책의 구절을 이제사 깨닫는다.
주말에 찍어 두었던 나만의 책상 사진.
얼마 전 상위 0.2% 찍으셨다던 미미님께 책장을 보여 달라고 요구 했었다.
0.2%의 책장이 너무나 궁금하였더랬다.
헌데 책상을 살짝 공개해 주셔...오오~~ 완전 사랑스러움을 느꼈더랬지!!
이것은 일종의 미미님의 0.2% 책상 사진의 오마주???
부끄럽지만 미미님의 용기에 나도 용기 내어 <아무튼 서재>책의 내 마음을 흔든 구절을 인용하여 사진을 한 번 공개해 본다.
복잡하고 지저분해 보이겠지만 사실 저것도 얼추 치우고 정리한 모습이다.^^;;;;
나중에 나만의 진짜 책상을 사게 되면 정말 제대로 된 모습을 다시 보여 드리리라!!
이렇게 식탁이 엉망진창 책상이 된 사연...
(누구든 따라하지 말길!! 집이 너무 지저분해 보이고 더 좁아 보임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