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얼떨결에 읽게 된 대담을 옮겨놓는다. 대담자는 가라타니 고진이다. '해외석학대담'이라고 지난 2002년에 교수신문에서 기획했던 것인데 "앞으로 프레데릭 제임슨, 쟈크 데리다, 다너 해러웨이, 가야트리 스피박 등의 서구 지식인은 물론 제3세계 지식인들과도 지적 대화를 진행하려 한다"라는 편집자의 포부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대담이 더 진행된 것 같지는 않다. 해외석학과의 '유일한' 대담인 듯하다는 얘기다. 여하튼 가라타니에 관한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물론 약간의 시간차는 고려해야겠지만. 

교수신문(02. 05. 07) 해외석학대담① 가라타니 고진 (일본 긴키대 교수)

박유하(이하 박): 냉전이 끝나고 10년 이상 지났지만 9·11 테러가 상징하는 것처럼 세계는 오히려 더욱더 혼미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냉전의 ‘끝’은 새로운 대립의 ‘시작’이기도 했던 셈인데, 좀처럼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인 만큼 ‘현실’을 바꿀만한 힘을 가진 ‘말’(비평)이 지금이야말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교수신문’이 이번 인터뷰를 기획한 배경에는 최근 한국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한 논의를 다시 생각할 때, 최근의 저서 ‘트랜스 크리틱’과 선생님에 의한 ‘NAM’의 제창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NAM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십시오.


가라타니 고진(이하 고진): NAM은 ‘뉴 어소시에이션니스트 무브먼트’의 약자입니다. 저는 이것을 과거 2세기 동안의 사회주의운동을 논리적으로 통합하는 것으로서 구상했습니다. 어소시에이셔니즘은 프루동 등의 아나키스트가 제창했던 사고입니다. 그에 대해서 다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맑스와 프루동은 전면적으로 대립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맑스 사후에 성립한 ‘맑스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입니다. 물론 맑스는 프루동을 비판하고 있지만, 실은 그는 매우 많은 영향을 받은 사상가 이외에는 비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그가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를 집요하게 ‘비판’하면서 독일의 속세적 경제학자를 완전히 무시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맑스의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은 젊었을 때 프루동에 의해 제공됐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국가를 타기(揚棄)한다고 하는, 즉 보존하면서 동시에 폐기하는 사고입니다. 예를 들면 말년의 맑스는 파리 코뮨에서 실현된 것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는 생산소비협동조합과 같은 어소시에이션이 국가를 대체한다는 사실에 ‘실현 가능한 코뮤니즘’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코뮤니즘은 엥겔스나 레닌이 생각한 국가 통제적인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오히려 프르동이 말하는 아나키즘입니다. 실제로 파리 코뮨은 주로 프루동파에 의해서 실현됐으니까요. 맑스주의자도 아나키스트도 서로 비난하기만 할 뿐 이러한 관계를 보려 하지 않습니다.

1989년 국가주의적인 맑스주의운동이 파산된 이후로 아나키즘이 부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실제로도 근년의 세계화에 대한 대항운동의 주체는 주로 아나키스트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아나키즘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요? 맑스주의에 대해서 역사적인 반성을 한다면 동시에 아나키즘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특히 NAM은 아나키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트랜스 크리틱’에도 ‘NAM원리’에도 되풀이 쓴 바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코뮤니즘이나 아나키즘 대신에 ‘새로운 어소시에이셔니즘’이란 말을 골랐습니다. 코뮤니즘이라고 하면, 아직 소련·중국·북한 등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즘에 관해서도 다른 나쁜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한 명칭을 사용하게 되면 ‘아니, 사실은 코뮤니즘은 그런 게 아니다, 아나키즘은 그런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번거롭고 무의미합니다. 그런데 어소시에이셔니즘이라고 하면, ‘그건 뭡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때는 아나키즘이나 맑스주의를 포함하는 사회주의운동의 역사를 설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박: 선생님께 있어 이론(비평)과 현실에 대한 개입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저는 자신의 글쓰기가 ‘현실에의 개입’이 될 수 있음을 늘 의식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그건 어디까지나 ‘글쓰기’에 의한 현실 개입일 뿐 실제 ‘운동’에 나선 적은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 필요한 때가 오면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비상사태에 가까운 시기일 것입니다. 그래도 그때 저 자신을 움직이는 것은 제 나름대로의 ‘이론’일 테니 ‘이론’과 ‘실천’이 다른 차원의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정치)운동에 나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고진: 제가 시작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는 정치활동이겠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치활동은 아닙니다. 제 생각에 NAM은 ‘윤리적·경제적 운동’이라고 불러야 하는 운동입니다. 방금 당신은 언젠가 비상사태 같은 때가 오면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참여에 관해서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NAM의 운동은 비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극히 일상적입니다. 특히 목숨을 거는 식의 용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제활동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종래 생각돼 왔던 운동과는 다릅니다.



그에 대해 말하기 전에 제가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운동'에 참가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 말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훨씬 예전의 학생운동 때를 별개로 한다면 그것은 1991년 걸프전쟁 때입니다. 그것은 소련의 붕괴, 냉전구조의 붕괴 이후에 나타난 최초의 세계적 규모의 사건이었습니다. 냉전구조, 즉 미소의 이원구조가 있던 시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편했습니다. 그 쌍방을 비판하고 상대화하는 식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됐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종래의 맑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그 비판은 그들이 굳건하게 존재해나갈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그저 부정적이기만 하면 뭔가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 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1989년에 이르기까지 저는 미래에 대한 이념을 경멸하고 있었습니다. 자본과 국가에 대한 투쟁은 미래에 대한 이념 없이도 가능하고 현실에 발생하는 모순에 대해 끝없이 투쟁하는 일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련 등이 반영구적으로 존속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붕괴했을 때 저는 나 자신이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해왔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내용의 무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것을 생각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그것이 '트랜스 크리틱'라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완결시킨 지점(2000년)에서 NAM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정치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걸프전부터입니다. 그것은 걸프전의 결과로 일본의 정치체제, 군사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0년대에 들어 저는 그때까지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한일문제에 관해서도 저는 4번의 한일작가회의에 참가했고 그 외 많은 강연활동을 했습니다. 아사다 아키라 씨와 함께 편집하고 있는 ‘비평공간’에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또 저는 현실의 의회정당에 꽤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9년에 자민당정권은 걸프전이래 목표삼아온 일들을 전부 실현시켰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좌파는 완전히 패배·붕괴됐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어 더욱 비참한 상황입니다. 저는 자신의 작업이 패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제가 NAM을 시작한 계기는 정치적인 패배에 있었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비판에 있었습니다.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 윤리적·경제적 활동이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좀더 말하자면 NAM을 특징짓고 있는 것은 단순히 소비·생산협동조합 같은 것을 추진하는 일뿐 아니라 마이클 린튼이 고안한 LETS(지역교환거래체계: 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라는 지역통화를 핵심으로 한 경제권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지역통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통산성이나 시·군·구의 행정지도에 의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에 의해 발행돼 국가적 화폐(엔)의 자본주의 경제를 보완하는 것일 뿐입니다. LETS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는 각 개인이 화폐를 발행하는 주권자이고 또한 전원의 적자와 흑자의 총액이 0이 되기 때문에 이윤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말을 바꾸면 LETS에 의한 교역에 있어서는 자본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NAM에서는 LETS를 개량해 웹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Q라는 명칭으로 불립니다. ‘円보다 球(큐)’라고 하는, 일본어 농담을 원용한 말입니다. 더 이상 지역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지역통화 대신 시민통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NAM에서는 시민통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 9·11 테러는 미국이라는 이름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형태로 표면화됐지만 자본에 대항하는 주체가 ‘국가·민족’ 주체였다는 사실에 처음부터 모순이 내포돼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와 자본에 대한 동시적 대항을 제창하는 선생님의 전략은 이런 모순을 타개하려는 것으로도 보였습니다.

고진: 통상 맑스주의에서는 경제적인 하부구조가 있고 그 위에 국가나 민족이라는 상부구조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경제적 결정론이 부정되고 상부구조의 독자적 위상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부구조가 이데올로기적이고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을 때, 경제는 그렇지 않은 굳건한 하부구조일 수 있을까요. 자본제 화폐경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신용에 의해 뒷받침된 환상시스템이고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는 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맑스는 ‘자본론’이라는 책에 몇십 년 동안이나 매달렸습니다. 그것은 경제적 하부구조라는 인식으로만 끝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젊은 맑스가 지적했던 것처럼 화폐경제는 종교적 세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국가나 민족은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시장경제에 있어서의 교환과는 다른 것이긴 하지만, 역시 교환을 그 근본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저는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알고 있는 교환의 형태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공동체나 가족 안에서의 교환처럼 상호 보수적인 것. 이것은 상호 부조적이지만 동시에 구속적입니다. 다음에 봉건적 영주와 같이 조세를 계속 얻기 위해 그것을 어느 정도 재분배하는 것. 여기서는 사람들은 구속돼 착취당하고 있지만 보호받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또 하나가 화폐에 의한 시장경제입니다. 앞의 둘과는 달리 여기서의 교환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합의와 계약에 의해서만 성립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화폐를 가지는 자가 유리하고 잉여가치의 착취, 계급분해가 발생합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네이션=스테이트가 본래는 이질적인 네이션과 스테이트의 ‘결혼’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적이지만 그 이전에 역시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두 존재의 ‘결혼’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국가와 자본의 ‘결혼’입니다. 국가·자본·네이션은 봉건시대에는 명확하게 구분됐습니다. 즉 봉건국가(영주·왕·황제), 도시 그리고 농업공동체입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교환’의 원리에 기초합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의 원리에 기초합니다. 둘째, 그러한 국가기구에 의해 지배당하고 서로 고립된 농업공동체는 그 내부에 있어서는 자율적이고 상호 부조적, 호혜적 교환을 원리로 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러한 공동체들 ‘사이’에 시장, 즉 도시가 성립합니다. 그것은 상호 합의에 의한 화폐적 교환입니다. 봉건적 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침투입니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절대주의적 왕권국가를 낳았습니다. 그것은 상인계급과 결탁해 다수의 봉건국가(귀족)를 쓰러뜨림으로써 폭력을 독점하고 봉건적 지배(경제 외적 지배)를 폐기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와 자본의 ‘결혼’입니다.

상인자본(부르주아)은 이 절대주의적 왕권국가 속에서 성장해 통일적인 시장형성을 위해 국민의 동일성을 형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내셔널리즘의 감정적 기반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네이션의 기반에 시장경제의 침투와 함께, 도시적인 계몽주의와 함께 해체된 농업공동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자율적이고 자급자족적이던 각 농업공동체는 화폐경제의 침투에 의해 해체되는 것과 동시에 그 공동성(상호부조나 상호보수성)을 네이션(민족) 속에 상상적으로 회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정말로 ‘결혼’하는 것은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서입니다. 프랑스혁명에서 자유·평등·우애라는 삼위일체가 제창된 것처럼 자본·국가·네이션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것으로써 통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근대국가를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라고 불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보완하고 보강하도록 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해 그 상황이 계급적 대립으로 귀결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국민의 상호 부조적인 감정에 의해 넘어서서 국가로 하여금 규제시키고 부를 재분배하는 식인 것이지요. 그 경우 자본주의만을 타도하려고 하면 국가적인 관리를 강화시키는 일이 되고 혹은 네이션적 감정에 굴복당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는 전자가 스탈린주의이고 후자가 파시즘입니다.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의 구조는 극히 강력합니다. 어떠한 사유도 이 틀을 넘어서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를 넘어서기는커녕 그것이 존속하기 위한 유일한 마지막 형식입니다. 저는 사회민주주의에 아무런 희망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90년대에 저는 다른 형태에 가능성이 없는 이상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이 세 가지 형태 이외의 교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소시에이션입니다. 그것은 상호 부조적이지만 공동체와는 달리 자유롭게 참가하고 또 나갈 수 있습니다. 또 그것은 모르는 사람들끼리 교환하는 ‘시장’이면서도 자본주의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재분배에 의해 부의 불평등을 보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윤리적·경제적인 어소시에이션은 일정한 종류의 화폐에 의해서만 실현 가능합니다. 그것이 아까 말씀드린 시민통화입니다.

되풀이 말하자면 시민통화는 가족이나 공동체에 의한 상호보수적 교환도, 시장경제의 사업적 교환도 아니지만 동시에 양쪽 모두이기도 합니다. 바꿔 말하면 이 둘을 ‘揚棄’하고 있습니다. 즉 보존하면서 폐기합니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생각과 긍정하는 생각, 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시장경제를 揚棄한다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시장을 揚棄한다’는 것은 시장의 폐지도 부정도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시민통화Q 안에서 시장경제는 보존됩니다. 예를 들면 Q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계약하고 교환하니까요.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적인 이윤추구는 폐기됩니다.

또 한편 Q에 있어 공동체의 상호 보수적 교환이 보존됩니다. 증여나 보답과 같은 교환관계가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Q에 있어서는 가족이나 공동체 같은 폐쇄적·배타적 구속은 없습니다. 애정이라는 이름하의 무상노동이나 심리적 빚도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시장경제처럼 사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동체는 폐기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금방 달성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몇 세기는 걸릴 일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론적으로 미래변혁에의 길이 존재하는가 입니다. 현실에 모순이 있는 이상 투쟁이나 대항운동은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사회민주주의, 또는 의회정치에 흡수돼 버립니다. 왜냐하면 장래에 대한 논리적 전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 20세기는 아이덴티티 중에서도 ‘민족’ 아이덴티티만이 강조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상황이 그때까지 이상의 대규모적 전쟁과 살육을 유발시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민족’ 아이덴티티의 강조는 그 속에 있는 성이나 계층의 대립을 은폐시킵니다. 그런데 이른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신적·경제적 식민지화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써 유용해 보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패권주의적 정치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차이’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차이 따위는 없다고 인식하는, 즉 아이덴티티는 다양한 것이지만 동시적일 뿐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대해 더욱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경계’를 만들어냅니다. 그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경계’를 넘어서는 만남(세계시민으로써의 연대)은 언제까지나 불가능할 것입니다.

NAM의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처음부터 ‘트랜스내셔널’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와 자본을 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전통적) ‘공동체’를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기반해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익숙해진 것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고 ‘공동체’를 넘으려는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런 움직임에 대한 저항도 강력하고 뿌리깊은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점은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이반할 것을 말하는 담론이 상황에 따라서는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진: 세계화라고 불리는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국가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자본은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로의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시장경제의 세계화가 진행되어도 국가가 해체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민족도 해체되지 않습니다. 그렇기는커녕 반대로 국가와 민족이 강조됩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를 저술한 이래 네이션은 상상물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단순한 표상이나 가상이 아닙니다.

칸트는 “감각에 의한 오차로부터 생기는 가상이라면 이성에 의해 제거할 수 있지만 어떤 종류의 가상은 오히려 이성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라든지 신이나 사후의 생명 같은 것이죠. 그것들은 가상이라고 하면서 제거시키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그것을 초월론적 가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화폐나 네이션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화폐 같은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네이션도 마차가지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서의 사업적인 관계와 국가에 의한 폭력적인 지배·피지배관계 속에 있어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서로 돕는 동포라고 하는 ‘표상’입니다. 그것이 환상이라 해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해소하지 않는 이상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내셔널리즘이 강해질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물론 지식인들이 그러한 상황에 대해 계몽적인 발언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더 이상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90년대에 저는 그런 일을 계속 해왔지만 ‘패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9·11과 같은 사건 하나만으로 긴 세월에 걸친 계몽도 모두 무화됩니다. 더 말하자면 일본에는 네이션을 초월한 것처럼 말하는 지식인이 적지 않지만 저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일본 안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그들은 네이션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고 초월론적 가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네이션이 상상물이라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없고 또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일 대신 아무리 작은 규모의 것이라도 네이션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네이션에 대항해 어소시에이션을, 국가의 통화에 대항해 시민통화를 대치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민통화에 기초한 어소시에이션은 네이션이 상상적으로 충족시키고 현실에서는 국가에 의해 (세금의 재분배로서) 실행되는 일을 그 자신이 실현합니다. 저는 ‘트랜스내셔널’이란 말을 ‘인터내셔널’과 구별해 쓰고 있습니다. ‘인터내셔널’이 네이션을 단위로 하는데 비해 ‘트랜스내셔널’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가가 발행하는 것이 아닌 시민통화는 트랜스내셔널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경제적인 관계를 트랜스내셔널적으로 확장시키는 일이 내셔널리즘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문제는 그런 식의 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욕망과 권력욕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선생님께서 칸트를 원용하면서 타자를 수단으로 하지 말고 목적으로 하라는 계몽적인 ‘윤리’를 언급하시는 것도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같은 식민지 체험을 한 나라에 있어서는 과거에 얻을 수 없었던 ‘주체’화에의 욕망은 물론,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반동으로서 강렬한 경제적 욕망이 존재합니다. 이런 현재의 한국에 있어서 ‘자유로워라’는 명제가 어디까지 수용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보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윤리’는 어떤 조건하에서 가능해질 수 있을까요.



고진: 저는 ‘윤리21’에서 이런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따금 칸트는 “타자를 수단으로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써 대하라”고 한 것처럼 언급되지만 실제로 칸트가 말한 것은 “타자를 단순히 수단으로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라”는 것입니다. 즉 수단으로써 대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분업과 교환 속에서는 우리들은 타인을 수단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타자를 단순히 수단화하는 것이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칸트의 윤리학은 시장경제를 전제로 하고 또한 그것을 비자본주의화할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는 경제가 없는 윤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까 시민통화Q가 윤리적·경제적이라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그 경우 중요한 것은 윤리적 동기가 없더라도, 즉 무엇인가 이윤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Q에 가입해도 상관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Q를 사용하는 한 그 사람은 자연히 윤리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정한 ‘변혁’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리적인 결단이나 강제만으로는 생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도덕적 설교도 아니고 개인적 의지도 아닙니다. 제 생각으로는 기술적 인식입니다.

예를 들면 관료제나 권력의 부패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여러 방안이 논의돼 왔습니다. 현재의 의회제 민주주의도 그 소산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잘 안됩니다. 변함없이 관료가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관료주의적 부패에 대한 비판을 계속 해왔지만 그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교나 모택동 식으로 설교를 해도 안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막는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권력이 집중하는 곳에 우연성, 즉 제비뽑기제도를 도입하며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의 아테네처럼 전부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선거+제비뽑기’입니다.

선거는 필요합니다. 오히려 선거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 최후에 제비뽑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3명을 투표로 골라서 그 중에서 제비뽑기로 결정합니다. 최종적 결정은 제비뽑기에 의해 정해지므로 권력자가 자신의 승계자를 만들 수 없습니다. 파벌을 만들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매수행위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든지 투표할 때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람을 고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 3명은 나름대로 유능한 사람이 선택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누가 결정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제비뽑기로 결정된 사람은 자만할 수 없을 것이고 떨어진 사람도 그렇게 분할 것도 없으니까 협력할 것입니다. NAM에서는 대표를 포함해서 선거와 제비뽑기로 구성원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습니다.

박: 로자 룩셈부르크나 레닌은 노동자의 정치적 스트라이크와 봉기를 중심으로 하는 전술을 제창했지만 제국주의를 저지할 수 없었다고 하는 선생의 지적에서는 선생의 문제의식이 어디에 있는지가 명확히 보입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것 중에서도 특히 제게 흥미로웠던 것은 불매운동 등의 '보이콧'이라는 행위의 가능성이었습니다. 저는 내셔널리즘비판은 최종적으로는 국가전쟁의 보이콧에 연결되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는 다양한 접촉수단이 있고 자신이 속한 국가보다도 다른 국가나 거기에 존재하는 개인 쪽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 특히 젊은층이 늘고 있습니다. 90년대 이후의 인터넷의 등장은 아마도 상상되고 있는 이상의 교류와 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을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제는 전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두 나라사이의 국가에서 매스컴을 넘어선 시민 레벨에서의 의사소통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이콧'이라는 행위의 가능성에 대해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바를 조금 더 이야기해주십시오.



고진: 스트라이크와 보이콧의 문제는 '자본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어느 쪽을 중시하는가 하는 해석과 연결됩니다. 제 생각은 '자본론'의 해석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제까지 맑스주의나 아나키즘(생디칼리즘)에서는 생산점에서의 노동자의 제네럴 스트라이크가 변혁을 가져온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부터 불가능했고 더더욱 불가능해져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시민운동 즉 소비자의 운동이나 그에 따른 여성이나 마이널리티의 운동이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과 노동운동 사이에는 교류가 없을 뿐 아니라 대립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순수한 '시민'이니 순수한 '소비자'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소비자란 노동자가 소비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생기는 입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노동자가 생산점에서 싸우면 스트라이크이고 소비(유통)점에서 싸우면 보이콧입니다.

자본의 축적운동은 M-C-M(화폐-상품-화폐)라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런 경우 산업자본에 있어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만든 노동자입니다. 즉 잉여가치는 총체적으로 보자면 노동자가 자신들이 만든 것을 다시 살 때 생기는 차액에 있습니다. 그러나 'M-C-M' 운동 안에는 자본이 만나는 두 가지 위기적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력상품을 사는 일과 생산물을 노동자에 파는 일입니다. 만약 이중 어느 한쪽에서 실패한다면 자본은 잉여가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자본일 수가 없는 거지요. 노동자는 이 두 가지 점에서 자본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는 안트니오 네그리가 말한 것처럼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노동력을 팔지 말라'(자본제 아래에서 임금노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것처럼 '자본제 생산품을 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노동자가 '주체'일 수 있는 장소(포지션)에서 행해집니다. 그러나 노동자=소비자들이 '일하지 않는 일'과 '사지 않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일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비자본제적인 생산과 소비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超出적인 투쟁(생산-소비협동조합이나 LETS)은 자본제 경제에 있어 내재적인 투쟁을 위해 불가결합니다. 반대로 후자(보이콧을 중심으로 하는 내재적 투쟁)는 자본제 기업을 비자본제적 기업형태로 조직을 변환시켜 나가는 일을 포함합니다.

보이콧은 옛날부터 있었고 지금도 가끔 행해지고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그것이 내셔널리즘을 위해서 행해진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기업이나 각각의 국가는 그럴 경우 큰 타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국제분쟁을 격화시킵니다. 한편 우리들이 생각해야 하는 보이콧은 자본제에 대한보이콧이고 동시에 그것이 네이션=스테이트에의 보이콧이 되는 보이콧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저는 NAM은 보이콧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여성운동이나 마이너리티를 위한 운동, 혹은 환경운동 같은 운동들은 현재까지는 서로간에 연결코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NAM운동은 그런 운동들간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일차적으로는 과거나 현재에 차별과 지배의 구조 속에서 중심이 되었던 존재들, 예컨대 식민지피해자들과 제국주의 지배자들, 지배당했었던 여성들과 지배했었던 남성들은 자각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삶을 영위하는 이상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건 지배와 착취의 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그렇다는 사실에 대하여 자각적이 되어 그러한 구조를 끊으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선생님의 '운동'은 성공하겠지요.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현재까지의 일본 혹은 그 이외로부터의 반응과 남은 과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고진: NAM에는 개인이 참가합니다. 모든 개인은 다수의 차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경우 한 레벨에서는 소수자이지만 다른 레벨에서는 다수자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NAM의 조직원리는 '개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그 개인은 다수의 관심사나 지역에 동시적으로 귀속됩니다 . 아직 규모는 작지만 이 개인의 다수소속제에 의해서 많은 관심영역이 교차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생각되지 못했던 것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자본제 경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생산과정에 대한 것에서 유통과정 쪽으로 그 중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스트라이크로부터 보이콧 쪽으로지요. 즉 소비자로서의 노동자투쟁이 되는 거지요. 이것은 동시에 노동운동은 남성에 의해, 소비자 운동은 여성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던 이제까지의 관행을 깨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까 NAM의 활동은 비일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이 운동이 '여성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데 그것은 일본의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적'이고 또한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민통화Q의 보급과 함께 여성참여자의 수가 늘어가고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에서는 예전부터 여성의 가사노동을 어떤 식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왔습니다. 대체적으로 이런 거지요. 가사노동은 임금을 지불 받지 못하니까 비가치생산적이고 이리이치가 말하는 '그늘의 작업'이었습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싶은 나머지 그것을 임금노동 일반과 등치시켰습니다. 그리고 임금이 지불되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자본주의화 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거기에는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를 초월할 수 있는 전망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생각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만약 남편이 아내에게 임금을 지불한다면 부부일 필요가 없습니다.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부부의 관계는 단순히 사랑이나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증여와 보답이라는 상호 보수적 관계 속에 있고 이것은 즉 교환관계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경제적'인 것입니다. 부모자식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자본주의적인 교환관계로 환원시킬 수 는 없습니다.

모든 관계가 자본주의화 되는 사회가 좋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 해서 남편이 밖에서 일하고 부인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가사노동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화폐적인 교환가치로 그것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곤란은 시민통화를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사노동에 대하여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 돈(엔)을 지불하지 않고 시민통화로 지불하면 됩니다. 그밖에도 예컨대 감사하는 마음이나 받은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지만 그것을 돈으로는 돌려주고 싶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시민통화를 사용하면 윤리적·경제적인 관계가 가능해집니다. 시민통화는 인간관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제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열쇠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까 시민통화나 어소시에이셔니즘은 수세기 걸릴 운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이곳에서 당장 실현할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당장은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안다). 비자본제적인 경제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실제로 비자본제적인 촌락공동체의 경제는 다소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면 9/10은 엔으로 1/10은 시민통화로 교역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렇게 된다면 말하자면 1/10만 코뮤니즘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민통화가 엔과 같은 국가통화를 전면적으로 대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민통화가 전경제의 1/10을 넘는 시점에서는 경제전체가 달라질 것입니다. 국가도 자본도 자기 멋대로 행동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상태를 실현하기 위하여 서두를 필요가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유전자개조식품 등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본의 자기증식운동 M-C-M의 산물입니다. 개개인이 생각을 바꾼다 해도 이 현상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비자본제적인 시장경제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 지와는 별개로 우리들은 이 운동을 서둘러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칸트는 '타자를 수단으로써 뿐만 아니라 목적으로써 대하라'고 말했는데 이 경우 타자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인간입니다. 온난화나 환경오염의 피해를 받는 것은 그들입니다. 즉 우리는 그들, 타자를 완전히 수단으로만 대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3세계의 타자라면 항의하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불만도 말하지 않습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서 타자를 무시해서는 안되겠지요.

박: 일본은 걸프전 이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나라’를 지향한다는 말에 시민들도 공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익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이겠지요. ‘戰前의 思考’라는 개념을 선생이 강조하신 것은 다가올 전쟁을 예상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작금의 상황은 선생의 예상이 예언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9·11 테러 이후 , 미국 중심의 20세기적 구조가 변하려는 시대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만, 21세기를 맞아 세계질서가 그 재편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 단계에서의 일본이나 미국을 둘러싼 정치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의 미국으로의 ‘이동’도 이러한 정치상황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만 그런 점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고진: 실은 9·11 테러 직후 곧바로 제 예언이 들어맞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옴진리교 지도자가 제 예언에 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옴은 제가 쓴 것을 예언으로 받아들여서 그에 대비해 움직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제가 한 말은 예언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경기순환(파동)과 일본이 국제적으로 놓여있는 관계구조에 대해 말한 것이고 그러한 상황이 반복적이라는 점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80년대 일본경제에서 주가가 끝없이 상승해나가고 있을 때 이것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예언이 아닙니다. 예측이라 할 만한 것조차 아니지요. 자본제 시장경제가 잔혹한 경제순환을 통해야만 자기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앞으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다음과 같이 명확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 속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한 방법은 그것과 다른 어소시에이션을 조금씩 확산시켜 나가는 길뿐이라는 것이지요. 앞으로 어떻게 될 지에 관해서는 국가도 자본도 필사적으로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분석하고 비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현재나 수년, 수십년 후의 전망이 아니라 수세기 후를 향한 전망, 바꿔 말하자면 ‘이념’을 갖는 것입니다.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미국에서 활동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하는 말들이 일본보다도 오히려 미국에서 더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NAM 지부를 만들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NAM에는 해외지부라는 발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는 NAM을 확산시키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NAM적인’ 것을 확산시키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운동은 그 나라의 조건에 따르는 형태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미국에서 일어나는 운동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이고 다른 형태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NAM적’인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만약 한국에서 ‘NAM적인’ 운동이 일어난다면 일본의 NAM과 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 선생님을 잠시 ‘일본’의 지식인으로 간주하고 질문하겠습니다. 한일 ‘화해’라는 명제는 ‘전후’를 종식시키고 ‘식민지시대’를 종식시키는 것으로서 20세기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20세기적 불행한 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21세기적·세계시민적 관계를 쌓는다는 의미에 있어서도 저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 되겠는데 저는 각 개인이 ‘일본’과 ‘한국’의 틀을 넘어서 생각하는, 즉 민족이나 국가단위의 사고의 틀을 넘어선 대화가 행해지지 않는 한 화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책임자’의 구조가 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단순히 ‘일본’이라는 국가적 명칭만으로는 ‘가해자’의 실체를 확실히 할 수 없는 만큼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다고 한국은 비난하지만, ‘국가’라는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법’ 자체가 타자를 억압하는 것이니 ‘국가’를 넘어서는 사고를 하지 않는 한 ‘사죄’는 할래야 할 수 없는 구조가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애당초 ‘국가’에 윤리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이 사죄하기 위해서는 ‘국가’이면서도 ‘개인’·시민의 사고를 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한일 사이의 화해를 방해하는 것은 일본에도 책임이 있습니다만 피해자로써의 입장이 무조건적으로 ‘옳음’으로 비춰지는 상황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한일 혹은 중일사이에서 지식인끼리 연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아시아’를 특권화하지 않으면서 서구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고진: 되풀이 말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어소시에이셔니즘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외의 방법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나름대로 많은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한일 지식인의 연대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활동해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저는 이제까지 해왔던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일관계는 더 이상 간단히 결렬될 수는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복잡하게 뒤섞인 상태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존재하는 대립이 불거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제가 하는 말은 너무나 작고 너무나 우회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동양의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 특징은 국소적인 증상에 직접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밸런스를 점차 바꾸어 가는 것으로 서서히 치료해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의미에서도 시민통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이 그것에 참가하려 할 때 어떤 나라의 ‘국민’일 필요는 없습니다. 각 개인이 직접 통화를 발행하니까요. 따라서 그것은 트랜스내셔널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자본이나 국가와는 다른 윤리·경제적인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개개인이 일부러 그런 점을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됩니다. 저는 이제 이것 이외에 희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쨌든 거기에는 희망이 있으니까 그나마 낫다고 생각합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을 저술했을 때 국제교역이 발달하면 전쟁이 억제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외국과 경제적인 교역관계가 깊어지면 전쟁을 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국제교역에 의한 이해대립으로부터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칸트가 틀렸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역(경제관계)이 네이션=스테이트간의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교역이 자본주의적인 이유추구에 바탕한 것이라면 전쟁이 됩니다. 그것이 만약 비자본주의적인 교역이라면 전쟁은 억제됩니다.

즉 여기서부터 시민통화에 의한, 어소시에이션에 의한 교역이 ‘영구평화’를 가져온다는 발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반전운동, 평화운동만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샌가 비전쟁 효과가 나오는 식의, 일종의 ‘동양의학적’인 평화운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는 윤리·경제적 운동입니다.(정리 권희철 기자)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1941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1969년부터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문학평론이라는 장르에 머물지 않았다. 하나의 영역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철학, 역사, 건축, 맑스주의 등 다양한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열어 젖히고자 했다. 일찍이 그의 사유는 일본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주목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래 들어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고진 읽기가 유행인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문학과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습, 서구 사유에 정통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체계를 정립해 온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국내에 소개된 주요 저작으로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김경원 옮김, 이산 刊),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박유하 옮김, 민음사 刊), ‘은유로서의 건축’(김재희 옮김, 한나래 刊), ‘탐구 1, 2’(송태욱 外 옮김, 새물결 刊), ‘윤리 21’(사회평론 刊) 등이 있다. 최근에는 공동저작인 ‘근대 일본의 비평’과 ‘현대 일본의 비평’(송태욱 옮김, 소명출판 刊)이 간행되기도 했다. 현재 일본 긴키대 문예학부와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평공간’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문학)는
1957년생으로 일본 게이오대와 와세다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을 연구했다. 학위논문은 나쓰메 소세키 연구. 1995년부터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세키와 야나기 무네요시 등에 밝다. 주요 저서로는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사회평론 刊) 등이 있다.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있다. 민족주의 비판이 박 교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임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한편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민음사 刊)을 번역하기도 했다.

최근에 간행된 2002년 당대비평 특별호 ‘기억과 역사의 투쟁’에는 ‘상상된 미 의식과 민족적 정체성: 야나기 무네요시와 근대 한국의 자기 구성’이라는 논문을 싣기도 했다. 내용을 잠시 엿보자. “아이덴티티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이라는 것은 스튜어트 홀의 지적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이미 명백하다. 그 다양한 아이덴티티 중 그것을 필요로 하는 주체의 스스로의 권력화와 타자의 배제를 지향하는 정치적 이기주의가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러한 ‘이기적’ 아이덴티티에의 상상과 기억이 오늘까지도 민족 담론과 ‘역사’ 서술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말·말·말
“맑스가 말하는 ‘진리는 이론에 의해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실천에 의해서다’라는 테제로 말하자면, ‘실천’이라는 것은 자포자기하는 것이고 엉망진창이며 방향이 없는 것으로서, 아무튼 그런 선을 그어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들뢰즈의 생각도 그런 것이겠지요. 흔히 사람들은 ‘실천’을 주체적·목적적 행동으로 보고, 이론가는 책상에서 하고 있지만, 우리는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은 둘러싸인 선의 내부에서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 아사다 아키라의 ‘도주론’(민음사 刊)에서 대담



“외국인이나 아이들과 의사소통한다는 것은 곧 공통의 어떤 규칙들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통의 약호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타자에게도 똑같이 의미 있는 것이다. 즉, 타자―어떤 공통의 규칙들을 공유하지 않는―와의 의사소통은 항상 가르침·배움의 관계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의사소통에 관한 지금까지의 이론들은 모두 공유되는 어떤 공통의 규칙을 예외 없이 가정하지만 외국인, 아이들, 정신병자들과의 대화에선 어떠한 공통 규칙도, 적어도 처음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은유로서의 건축’(한나래 刊)

“우리는 죽은 자와 교섭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가 변한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변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애도한다고 해서 죽은 자가 변하겠는가. 단지 그로써 산 자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뿐이고,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관계가 변하는 것이다.” - ‘윤리 21’(사회평론 刊)

“저에게 비평은 칸트적 의미에서의 비판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비판이라는 것은 기준이라든가 입장이라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이른바 자기 언급적 음미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모든 입장을 해치운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회의는 아닙니다. 기준이나 입장이 없다는 것에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시작하죠. 저에게 1975년 이후의 비평이라고 할 때, 그 직접적인 상대는 문학이 아니게 됐습니다. 오히려 철학 혹은 문화·과학, 경제학, 심리학, 인류학이 되어갔던 겁니다.” - ‘현대 일본의 비평’(소명출판 刊)



“자본제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곧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또 그것이 스스로 종말을 고할 리도 없다. 그러나 이론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실천은 결코 변혁이 될 수 없다. 도리어 우리는 자본제경제를 지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는 변혁의 가능성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산 刊)

07. 05. 25.


댓글(7)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필라멘트 2007-05-26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자료,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으로 담아갑니다~^^

로쟈 2007-05-26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요.^^

namunnib 2007-05-2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괜찮으시다면 블로그에 가져가서 읽어도 될까요? ^^;

로쟈 2007-05-2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입니다. 저도 옮겨와서 다시 정리해놓았을 뿐이니까요...

섬나무 2008-03-2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흥미로운 대담이네요. 고진은 여전히 NAM 운동을 전개 중인가요?

로쟈 2008-03-21 14:42   좋아요 0 | URL
아뇨. 실패했다고 어느 책에선가 적어놓은 게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페이퍼의 댓글들은 브리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제가 간혹 놓칠 수 있습니다. 메일로 들어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어서요.^^;

섬나무 2008-03-2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오래된 페이퍼들이 제외 대상이겠네요.^^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프레시안에서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프레시안에서 인터뷰한 건 아니고 독일신문 '디 차이트'(독일의 '더 타임스'쯤 되나?)와의 인터뷰 기사를 우리말로 옮겨놓은 것이다. 주제는 이민 문제이다. 최근에 나온 하종오 시인의 시집 두 권도 우리 주변의 이민 노동자들 문제를 다룬 것이어서 리뷰 기사를 같이 옮겨놓았다. 유럽에서만큼 '직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도 다민족, 다국적 사회로 진입해가고 있는 상황이므로 참고할 만하겠다(최근 '국경'이란 주제가 한국문학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점도 덧붙여 챙겨둘 만하고).   

프레시안(07. 05. 23) "왜 사람은 자본처럼 '超國'하면 안 되는가?"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점점 더 세계를 불평등하게 구획한다. 못 사는 나라의 국민들은 생존을 향하여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꿈꾸며 위험을 감내하고 국경을 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복잡하고 비싼 비자 발급의 절차를 완수하지 못하고 국경을 넘는 순간 그들은 곧장 범죄자가 된다. 현대사회에서 누군가 범죄자라는 것은 시민사회로부터 합법적인 격리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들은 법의 이름으로 기본권의 상당 부분을 제약당한다.


  
다시 한 번 끔찍한 여수의 출입국 관리소 화재 사건을 떠올려 보자. 한번쯤 왜 그들이 한반도 남단의 어느 항구 도시에 범죄자로 낙인 찍혀 상당한 날들 동안 감금되어 지내야 했는지, 과연 그것이 정당한 조치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게다가 그들은 정말로 화재 경보 시설도, 화재 진화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어느 인권 후진국의 감옥에 갇혀 원인 모를 화마를 당해 자신의 생을 마감해도 마땅할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들이었던가?


  
한참 전부터 이민으로 들끓고 있는 유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가? 이미 1980년대에 현대 사회학의 명저로 손꼽히는 <위험사회>를 저술해 우리의 지성계에도 잘 알려져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도 탐독했다는 <적이 없는 민주주의>의 저자인 세계적인 석학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학 교수(사회학) 역시 자신의 지역이 앓고 있는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진지한 처방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벡 교수는 독일의 <디 차이트(Die Zeit)>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밝혔다. 이 신문 5월 12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이민은 범죄가 아니며 인권이다"라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인식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그는 "이민문제는 이민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며 우리 스스로 구축한 경계체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그는 이민에게 씌워진 범죄라는 굴레를 벗기기 위해 그것을 합법화하되 '이민세'의 도입과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대안적인 관리체계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유럽과 우리의 맥락은 다소 상이하지만, 이주 노동자의 사회통합 과제의 심각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 분명 그의 주장에는 진지하게 경청할 부분이 있다. 이에 <프레시안> 독자에게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는 벡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필자가 전문 번역한 것이다(☞원문 보기)(박명준/기획위원ㆍ전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연구원)

- 당신은 국경을 열자는 말을 하려는가?
  
"우선 이민 문제의 상당부분이 이민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협소하게 구축한 '경계체제(Grenzregime)'를 통해 이민문제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이민 문제라는 게 오랜 역사를 지니는 것인데….
  
"그렇다. 이민문제는 오랜 국민국가체제에 뿌리 박고 있다. 국민국가라고 하는 틀 안에 있으면서 우리는 사람을 움직이도록 만들려 한다. 오늘날 유연성과 이동성–스스로를 변화시킬 태세를 갖추는 것–은 높게 평가된다. 그렇지만 누군가 보다 잘 지낼 수 있고, 보다 좋은 삶의 기회를 예상할 수 있는 그 어디로 이동해 가려는 태세를 지니는 것은 그가 국경을 넘어서는 바로 그 지점에 이르러 우리에 의해 범죄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이동성(Mobilität)이 아니라 이민(Migration)이라고 명명되며, 이는 우리가 구축해 놓은 '경계체제'를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국경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말인가?
  
"문제의 핵심을 짚자면, 이동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이민은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민은 인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경계 안에 갇혀 국민국가적인 컨테이너 안에서 하는 영토적인 사고가 만들어 내는 범죄와 같은 것으로 취급될 행동이 결코 아니다. 우리(독일)의 교회는 정당이나 노조에 비해 이러한 관점에서 이민을 보다 잘 정의내리고 있다. 이민자들은 잠재적인 범죄자가 아니다. 그들은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며 그것을 위해 위험을 감내할 준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 이민을 인권으로 간주하는 것은 엄청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데….
  
"지금껏 우리는 높은 이동성을 지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자본이 세계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경험해 왔다. 자본가들은 자본의 이동성에 맞추어 명백히 국경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고 있다. 정보라는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경계를 초월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유독 사람이 국경을 넘어서려 하면 바로 그 순간 엄청난 긴장과 갈등이 나타난다. 한편으로 우리 특히 서구는 인권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것에 경주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내지는 생존의 조건을–향하여 국경을 넘어서 움직이려 할 때에 우리는 정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보내는 정지 신호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순간, 그들은 불법을 저지르는 범죄자로 취급된다. 왜 국경을 넘는 이민도 한 국가 내에서의 이동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어떤 것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논쟁을 하려 하지 않는가?"
  
- 이민을 규제 없이 진행되도록 하자는 말인가?
  
"우리는 이민을 즉각 위험한 것으로 매도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이민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저지는 성공할 수 없다. 유럽에서는 이민에 대항하여 더 견고한 법률과 외부를 향해 점점 더 높은 장벽을 세워 우리들을 보호하려고 해 왔다. 하지만 불법 이민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불법 이민자들이 없다면 우리의 많은 사회적인 서비스들이 결코 정상적으로 영위되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문제는 기업가적인 에너지에 충만하여 보다 나은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떻게 합법적인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 그렇다면 하나의 길이 존재할 것 같다. 바로 유럽연합(EU)의 확대 같은 것 말이다.
  
"옳다. EU의 확대로 인하여 과거의 경계체제는 이제 모든 회원국들을 위하여 제거되었다. 그것은 '국가들의 이민(Lädermigration)'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은 EU의 확대를 통해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 온 새로운 통행질서(Durchlässigkeit)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반면 이제 우리는 이민을–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관리(steuern)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민세(Migrationssteuer)의 도입과 같은 것은 그것을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 이민자들에 입국금(Eintrittsgeld)을 부과하자는 말인가?
  
"그렇다. 이리로 와서 일하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적절한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민세다."
  
- 그것이 어떻게 제정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민세의 부과방식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시점에서 이민세 관련 법안의 제정 방식이나 그 이민세의 부과 수준은 아직 쟁점이 아니다. 이민세의 도입과 같은 방식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고 실험이 우선 중요하다. 이민의 합법화는 새로운 긍정적인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 이미 합법적인 산업화 단계에 이른 범죄 도주 행각의 기반을 없애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출입국 통제업무를 담당하는 관료체계를 철폐하도록 할 것이다. 이민을 하나의 부정적인 현상으로 간주해 온 유럽식의 사고의 고착도 이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민자들이 우리가 그들을 수용토록 하기 위하여 분담금을 지불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가가치의 창출을 위해 기여하는 가운데 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민세는 이민에 대한 우리의 관념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 만일 이민세가 이민자들의 '관리'를 위해 쓰인다면, 그것이 이민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금 또 다른 불법적인 방식의 이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새로운 장애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현실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험을 해야 한다. 이민세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세금을 상이한 방식으로 부과해 볼 수 있다. 이민을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탈범죄하기 위해서는 이런 실험이 필요하다. 이민을 범죄화하여 생산해 내는 경계체제를 완화시켜야 하며, 불법화는 종식되어야 하고, 그것으로부터 현재 이득을 취하고 있는 (진짜) 범죄자들의 기반을 뿌리 뽑아야 한다.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알콜 금지의 사례와 비교해 보고 싶다. 알콜을 금지하는 곳에서 국가는 알콜의 남용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범죄를 만들어 내 왔다. 스웨덴이나 1930년대 미국에서의 알콜 금지가 높은 범죄율을 만들어냈던 것을 생각해 보라."
  
- 하지만 만일 이민세가 사고실험을 넘어서 현실화 되려면, 전 유럽 차원에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국가로 하여금 이민자들의 통합을 위한 재정 지출 부담을 덜고 이를 통해 사회 적응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만들어 그들이 사회의 새로운 하층민이 되거나 새로운 문맹집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도록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세금의 부과에 의견일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예컨대 프랑스에서 이제 막 시작되고 있듯이 그러한 논의는 현재 출발단계에 있다. 아직 어떤 모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는 기초임금의 보장을 완전고용에 대한 대안으로 삼아 보려고 사고했던 과거 프랑스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본다. 그것에 대해서는 그 사이에 많은 논의가 더 진전되었고 구체적인 모델들도 논의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민세에 대한 사고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 경계체제에 대한 사고가 고정화되는 것을 해체시키는 작업이다. 우리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시각'을 발전시켜야 하고, 국경을 넘어서서 사고해야 한다."
  
- 합리화와 포퓰리즘의 수단을 통한 코스모폴리탄적 제안이라고 보면 될까? 과연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까?
  
"기꺼이 그 작업을 나의 과제로 삼도록 하겠다."

한국일보(07. 05. 23) 詩, 한국의 아시아인들을 말하다

이제 물러설 데가 없다. “낯선 남자 둘이 문 열고 들어 오자 / 젊은 네팔리는 창문을 뒤어 넘었다“(<단속>) 적어도 골절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 보자. “동남아인 노동자들이 돈 모아서 돌아가면 / 자기네 나라에서는 부자가 된다고 / 한국인 노동자들은 모을 돈이 없다고 / 동남아로 기계를 옮겨가는 게 더 남은 장사라고”(<체불>) 어설픈 동정은 금물이다. “비수기에 봉급 제때 챙겨 받고도 / 성수기 오면 봉급 더 올려 받으려고 / 동남아인 여종업원 둘 직장을 옮겼다.”(<몸값>)

공장주들이 철저히 ‘생계형’일 때, 문제는 달라진다. 자본 대 임노동, 착취와 피지배의 도식을 선뜻 들이댈 수 없다. “공장주는 늙은 장모를 모시고 와서 / 전기 재봉틀 앞에 앉혔다 / 밤새워 옷을 박지 않으면 / 젊은 네팔리의 진료비를 댈 수 없었다”(<단속>). 모두 한국 사회의 없는 자들이다. 중견 시인 하종오(53)씨가 뿌리 뽑힌 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큰 공장은 아예 불법 체류자들을 고용할 수조차 없게 돼 있으니까요.” 21세기 한국판 프롤레타리아는 시적으로 어떻게 존재하는가.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국경 없는 공장>, 동남아 국제 결혼 문제를 시로 옮긴 <아시아계 한국인들>(이상 삶이보이는창 발행)을 나란히 냈다. 별세계의 사람들처럼 여겨졌던 그들이 그의 삶 속으로 들어 온 것은 3, 4년 전. 사업 하는 지인의 주변에서 풍경처럼 눈에 띄던 그들이 정서와 내면을 가진 인간들로 비치기 시작했다.

“25년째 살고 있는 면목동의 오래 된 지하 가내 공장에서 외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통역은 엄두도 못 낼 상황, 다만 고통의 무게만이 가슴에 와 닿았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시들은 서정적 접근보다 서사적 접근이 강하다. 설익은 다민족 사회, 한국의 적나라한 모습은 <아시아계…>에 그려져 있다. 열차 객석에 앉아 동남아 말로 잠꼬대하던 그들은 칭얼대는 아이를 한국말로 달랜다.

다르게 생겼다 해서 학교에서 따돌림 받는 아들을 보며 냉가슴 앓는 필리핀인 어머니, 한국 남자와 외국 여자가 결혼은 했지만 서로 속내가 달랐음을 확인하고 돌아 서는 한 쌍의 이야기 등 수록 시들은 날만 새면 부르짖는 세계화 타령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고발한다. “이제 3세대까지 확산될 그들에게 가난의 재생산 구조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시는 차갑기까지 하다. “시인은 감정이입해서도, 동정이나 연민해서도 안 되죠.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겁니다.” 냉정한 시선, 소설과 같은 시란 올 초, 도달한 결론이다. “이제 소설 같은 시를 써 보고싶어요. 감정 개입 없이 서사가 진행되는, 소설 같은 시죠 .” 감정의 진정성이 사라진 이 시대에 대한, 하종오식 대응책이다. “진실은 시인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곳에 있어요.”

강화도에 칩거하면서 김포의 공장, 외국인 노동자 등 급변한 우리 현실을 똑똑히 봐 온 시인에게는 현재 600여 편의 미발표작들이 햇빛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집착을 끊어 버리니 3개월째 담배에 손 안 대고 살아요. 단, 시에 대한 집착만 못 끊고 이러는 거죠.”

07. 05. 24-5.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2007-05-25 01:21   좋아요 0 | URL
아직은 '사고실험' 단계라니까 더 두고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민자들의 통합을 위한 재정 지출 부담'을 누가 질 것이냐의 문제일 텐데, 사회적 합의란 게 쉽게 도출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

비로그인 2007-05-29 21:00   좋아요 0 | URL
이전에 어떤 분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자본가들이 그런 것처럼 지자체에 어느 정도의 돈을 기부하고 시민권을 주는 방식을 검토해보자 라고 얘기하시는 걸 본 적이 있는데요. 자본가가 돈을 투자한다면, 노동자는 노동으로 그 사회에 역할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 돈까지 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현실에서는 더욱 맞지 않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데, 거기다 재정부담까지 져야 한다는 건 더 말이 안 되죠. 이민자들이 그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인권이라면, 그것은 전체 사회의 부담이 되어야지 이민자들에게 그 부담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장애인의 사회통합(통합이란 말은 때로 참 웃기죠)을 위해 장애인에게 재정부담을 지우지는 않잖아요?

로쟈 2007-05-29 23:27   좋아요 0 | URL
하지만 현실적으로 원하는 이민자/이주노동자를 아무런 제한없이(쿼터 제한 없이) 수용하는 나라도 없는 것 아닌가요?(통장에 돈 한푼 없이 이민갈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실제로 한국만 하더라도 상당한 비용부담을 떠안고서(빚을 지고서) 이주해온 노동자들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이민세에는 그걸 '양성화'한다는 취지도 포함돼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웃기는 노릇일 수 있지만 웃기는 일이야 워낙에 널려 있으니 예외적인 경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학술저널 담비에서 경희대학원신문에 실린 리뷰 기사 하나를 옮겨온다. 올봄에 세상을 떠난 보드리야르의 <상징적 교환과 죽음>에 관한 것인데, 아직 국내에는 번역/소개되지 않은 책이라 '세계의 책'으로 분류한다. 그건 조만간 이 주저가 소개되기를 기대한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보드리야르에 관한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그냥 그의 '책'이다.

경희대학원신문 151호(07. 05. 22) 장 보드리야르와 『상징적 교환과 죽음』

얼마 전 보드리야르는 죽음을 통해 이 세상에 작별인사를 남겼다. 데리다와 부르디외의 죽음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보드리야르를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추모의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추모란 무엇일까? 추모(追慕)란 죽은 자에 대한 산 자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압축해 놓은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추모는 ‘죽은 자를 저편의 세상으로 추방하는 동시에 그를 그리워하는 행위’이다.

보드리야르가 『상징적 교환과 죽음』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현대사회란 죽음을 추방함으로써 세워진 일반 정치경제학이라고 비판하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추모라는 말을 그에게 되돌려 보내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추모란 산 자들에 의해 죽은 자들의 삶이 재구성되는 의례적 행위이며, 한 사상가의 사후의 삶 또한 한 사회의 의례적 행위를 통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발리바르가 알튀세르를 가리키면서 말했던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에 대한 지위이다. 알튀세르, 보드리야르, 니체… 등등의 사상가들의 운명에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그들의 언급에는 무언가 외상적인 지점,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진리의 차원을 열어 놓았다는 점이다 : 예를 들자면 인간의 숭고한 기원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원숭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니체의 말과 같은.

이러한 외상적 진리에 대한 한 가지 대처 방법이란 이들의 주장을 뻔한 인용구의 목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뻔한 인용문의 목록은 그들을 읽지 않아도 그리고 이해하지 않아도 그들을 존중하는 가장 탁월한 (니체적인 의미에서) 교양적인 행위가 아닐까? 그 다음으로는 이들이 대항하고자 했던 상식들을 이들의 주장에 대한 대안점 또는 극복점으로 제시하면서 이들이 제시했던 ‘소화되지 않는 진리’는 회피된다. 이와 같은 전범은 아마도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일 것이다.

한때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을 보지 못했다”라는 수사적 클리세들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 때 유행했던 (편견으로서의) 상식은 보드리야르는 영화 매트릭스의 사상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트릭스는 매트릭스 밖의 실재를 상정해 놓았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매트릭스 밖 실재의 장소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는 점에서 전혀 보드리야르적이지 않다. 보드리야르에게는 그와 같은 안정적인 장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뮬라시옹을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가져주는 불편함과 영화 매트릭스가 가져다 주는 불편함 속의 안락함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시뮬라시옹이라고 불렀을까?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보드리야르는 소쉬르가 불러일으킨 언어적 전회를 기꺼이 떠맡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언어적 전회는 재현 이전의 실재를 부정하며, 재현 이전의 실재란 재현이 만들어낸 사후적 효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실재보다 더 한 실재란 시뮬라시옹에 대한 역설적인 정의이다. 이미 우린 존재론적으로 실재와 마주칠 수 없다면 실재 보다 더 한 실재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린 보드리야르가 르페브르의 제자라는 점, 그리고 르페브르가 근대성의 사회학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드리야르는 보들레르, 벤야민 등과 견줄 수 있는 근대성의 시인이자 비판가이다. 그의 근대성 이론은 마르크스와 니체와 뒤르켐과 마르셀 모스 등에 근거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추상적 체계로서의 자본이 기호의 영역을 실질적으로 포섭하는 과정이 소비의 사회이며, 그 결과 섹슈얼리티 마저도 (마르크스의 이윤율 하락의 법칙에 필적할 만한) ‘쾌락률 하락의 법칙화’하는 것이 일반 정치경제학체계, 즉 시뮬라시옹이다.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최첨단의 이론가가 구식의 개념인 마르크스의 ‘사물화’ 논리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상품관계가 인간간의 사회적 관계를 은폐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자전주기와 축적주기를 갖는 자동적인 운동으로 전화되듯이 시뮬라시옹 또한 인간들간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었던 기호들의 관계가 이제는 역으로 인간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자동적인 자전주기와 축적주기를 갖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시뮬라르크의 자전이란 자본의 축적운동의 기호화와 그 기호에 의한 현실의 모델화일 뿐이다. 그리고 이 시뮬라시옹의 원주민은 니체적인 최후의 인간(the lastest man)으로 주제화된다. 따라서 그가 되불러 오고자 하는 것은 뒤르켐과 모스의 인류학에서 정식화되었던 상징적 교환의 전복적인 논리이다. 왜냐하면 상징적 논리란 사물화된 추상적인 체계가 아닌 유혹과 결투 그리고 의례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관계에 의한 기호의 점유이기 때문이다.

그의 문제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는 근대화의 과정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자하며, 이 근대화를 넘어설 어떤 급진적인 논리를 찾고자했던 사상가였다. 우리가 그의 논의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후기에 주춤거렸던 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틀이다. 그리고 우린 역으로 그를 다시 급진화해야만 한다.

이제 정리해 보자. 진리는 보드리야르가 그토록 비판하였던 한 사회의 나르시시즘적인 위로도 위안도 아니며, 오히려 이 나르시시즘을 깨는 불편함과 불안이다. 그리고 이 진리의 차원은 보드리야르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정식화 된다. “외양들은 죽지 않는 것들이며, 의미 혹은 비―의미의 허무주의에 다치지 않는 것들이다. 바로 여기에서 유혹이 시작된다.” (『허무주의에 관하여』 중) 그리고 보드리야르는 그의 후기 글들에 대해서 ‘테러리즘적인 글쓰기’라고 명명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글들에 도전할 것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도전과 유혹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의 저서 『상징적 교환과 죽음』에서 논의된 결론을 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린 그를 그의 글 속에서 살게 할 수 있고, 바로 이 행위 속에서 그를 살아 있는 주장으로 간주하고 그럼으로써 비판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그에게 사후의 삶을 주도록 하자. 즉 그의 문자 속에서 그를 거주하게 하자.(이병주/ 언론정보학부 강사)

07. 05. 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겨레에서 옮겨오고 있는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 연재 네번째이다. '예술의 꽃'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무용가 안나 파블로바와 화가 일랴 레핀을 제외하면 모두 시인/작가들이며 익숙한 이들의 면면들이다(예세닌의 사진 정도가 처음 보는 듯하다).

 

한겨레(07. 05. 18)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 ④ 예술의 꽃

» 안나 파블로바. <북폴리오> 제공
안나 파블로바 = 안나 파블로바가 리허설이 끝난 뒤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발레리나 파블로바는 미하일 포킨의 작품들, 특히 「죽어가는 백조」에서 맡은 배역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낙엽」을 포함해 10여 편의 작품을 직접 안무했다. 처음으로 순종 불독을 러시아에 들여왔으며 종종 그 녀석들과 사진을 찍었다.

» 자연주의 화가 일랴 레핀. <북폴리오> 제공
자연주의 화가 일랴 레핀 = 1910년 아동작가 코르네이 추코프스키가 초상화 제작을 위해 앉아 있는 동안 레핀이 톨스토이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를 읽고 있다. 톨스토이와 그 부인을 그린 유명한 레핀의 초상화가 이젤에 놓여 있다. 혁명 이후 스탈린은 추코프스키를 보내 핀란드에 있는 영지에서 돌아오라고 레핀을 설득했으나 레핀은 거절했다. 레핀은 도저히 편지 봉투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신 레닌그라드라고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어떤 것도 배달되지 않았다.

» 톨스토이. 사진/K. 불라. <북폴리오> 제공
톨스토이 = 톨스토이는 농민 복장을 좋아했지만 철두철미하게 귀족이었다. 또한 이 위대한 소설가는 군인이자 지주이며 철학자이자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19세기 중반 팽창주의적인 러시아가 카프카스로 밀고 들어가던 포병 장교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크림 전쟁에서 포대 지휘관이었고 그 후 툴라 주의 야스나야폴랴나에 있는 대가족 영지에 정착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이후 톨스토이는 악에 대한 무저항에 바탕을 둔 자신의 윤리를 설파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 막심 고리키와 위대한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 밑바닥 인생의 산물인 두 인물이 1900년 얄타에서 과장된 몸짓을 하고 있다. 샬리아핀은 1920년대에 프랑스로 도피했다. <북폴리오> 제공
» 안톤 체호프. <북폴리오> 제공
안톤 체호프 = 극작가이자 의사인 안톤 체호프가 멜리호보에 있는 자택 계단에서 애견 히바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체호프는 자신이 찬양해 마지않던 작가 막심 고리키가 좌파적 관점을 가졌다는 이유로 차르에 의해 추방되었을 때 모스크바 학술원을 탈퇴했다. 『벚꽃동산』을 쓴 1904년 결핵으로 사망했으며, 당시 그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고리키와 샬리아핀이 장례식에 함께 참석했다.

»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과 이사도라 덩컨. <북폴리오> 제공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과 이사도라 덩컨 = 1922년 모스크바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이 미국인 무용가는 고대 그리스의 꽃병에 있는 형상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개발한 물 흐르는 듯한 춤 스타일을 가르치기 위해 모스크바에 학교를 설립했다. 외국인 부인보다 열일곱 살 연하인 예세닌은 1925년에 자살했다. 이사도라 덩컨은 2년 뒤 스카프가 자동차 바퀴에 끼는 바람에 질식해 숨졌다.

»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북폴리오> 제공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 미래파 시인이자 극작가, 그리고 풍자작가인 마야코프스키. 차르 체제 말기의 앙팡 테러블(무서운 아이-옮긴이)이었던 그는 볼셰비키의 집권을 반긴 몇 안 되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직접 ‘카니발 오렌지’색을 칠한 모스크바의 “시인들의 바”에서 마야코프스키는 손님들에게 “오늘날 우리 코트의 마지막 단추에 이르기까지 삶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전 당시 그는 비어 있는 상점 창문에 붙일 선전 포스터들을 디자인했다. 그는 당 노선을 따랐고 다른 예술가와 작가에 대한 악의적이고 경솔한 공격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볼셰비즘의 관료제와 무분별을 혐오하게 되면서 볼셰비즘으로부터 점점 멀어졌으며 1930년 자살했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북폴리오> 제공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58년 10월 노벨상 수상을 자축하고 있다. 그해 출간된 혁명 대서사 『닥터 지바고』는 정치적 폭발을 가져왔다. 소설은 금지되었으며, 그도 “비열한 자”로 묘사되어 작가동맹에서 쫓겨나고 노벨상을 거부해야만 했다.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북폴리오> 제공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1946년 제크로서, 수용소 군대의 기록자. 전시에 포병 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반스탈린 발언 때문에 체포된 그는 “악의적인 중상모략” 혐의로 재판 없이 8년 동안 수용소형에 처해졌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인 이 노벨상 수상자는 1974년 수갑을 찬 채 스위스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져 트로츠키 이후 소련에서 추방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버몬트에 정착했는데 그곳의 길고 추운 겨울은 러시아를 떠올리게 했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북폴리오> 제공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1908년 소년 시절에 나비를 예찬했던 그는 나중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소설인 『롤리타』를 썼다. 나비에 대한 그의 유명한 열정은 러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이미 싹트고 있었다.(<북폴리오> 제공)

07. 05. 22.

Сергей и Владимир Набоковы в возрасте примерно 4-6 лет

 

 

 

 

 

 

 

 

  

 

P.S. 참고로, 나보코프 형제의 사진(1901년). (쌍둥이처럼 보이지만) 왼쪽이 한 살 아래인 동생 세르게이이고, 오른쪽이 나중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블라디미르이다. 후에 세르게이는 동성애자여서 그를 사랑했던 형을 아주 곤혹스럽게 했다. 나보코프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분신' 테마는 이들 형제간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5-2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사진이 참 인상적입니다.

로쟈 2007-05-22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08년이면 우리 나이로 10살 때입니다...

비로그인 2007-05-2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살때에 저런 포스가 나오나요? 허 참,

페이퍼 감사합니다. 로쟈님. 추천꾹!

수유 2007-05-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나 파블로바, 매력적이네요, 예세닌의 표정도 시선을 끌고요!
그 열살의ㅡ 나보코프의 경우, 오히려 어릴적들 사진에서 오호 하며 통찰을 얻는 순간들이 있어요..

로쟈 2007-05-2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유님/ 언젠가 안나 파블로바를 주인공으로 한 미니 시리즈를 TV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전이었던 것 같네요.^^;
 

오마이뉴스의 기사들을 잠시 둘러보다가 의외의 기사를 읽게 됐다. 기사의 내용이란 게 나의 '빈곤한' 상상력과 너무도 '평범한' 도덕의식을 비웃는 것이었는데 한달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졌고 그걸 아이들이 즐기고 있다는 것(나는 게임을 하지 않는지라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인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의 감수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나 '놀랄 만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아이들은 아마 이런 뉴스에도 더이상 놀라지 않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세기'의 풍경을 '무서운, 멋진 신세계'라고 부른 한 문학평론가의 예감은 더이상 예감이 아니다. 이젠 실감이다!..

오마이뉴스(07. 05. 21) '버지니아텍 학살게임' 즐기는 아이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버니지아텍 총기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버지니아텍은 평소와 다름없이 모든 학사 일정이 진행되고 있으며, 조용히 졸업식도 치러졌다. 그렇게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그렇게 끔찍한 사건이 난 지 한 달, 그 일만큼이나 등이 오싹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듣고,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서 충격은 더 컸다.

영호(가명)는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어드로이트 칼리지에서 중고등생을 위해 마련한 SAT(미국 대학 입학시험) 한국어 준비반에서 가장 어린 7학년 학생이다. 영호는 다른 날과 달리 무척 싱글거리면서 교실에 들어섰다.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묻는 필자에게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교사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로 다가왔다. 아직 수업 시작 전이고 다른 학생들이 다 오지 않은 상황이라서 영호의 행동을 그대로 바라보았다.

바쁘게 움직인 영호 손에 잡힌 마우스와 키보드에 의해서 켜진 화면에는 'V-Tech Rampage(버지니아 공대 광란)' 이라는 글자와 함께 게임을 시작하자 피가 터지는 듯한 화면으로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현해내고 있었다. 그 게임이 유투브에 버젓이 올라가 있었다. 정말 끔찍했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그 게임을 재미있다는 듯이 하고 있는 영호의 웃는 얼굴이었다. 영호는 그 게임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옆에 있던 민수는 한 술 더 떴다.

"너무 시시하다. 이게 뭐야?"
"화면도 너무 멋이 없고, 32명만 죽이면 게임 끝이야?"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아이들은 정말 이런 게임을 만든 사람이 잘못됐고 그런 것들이 많은 희생자들의 가족들에게 어떤 또 다른 아픔을 줄지 못 느끼는 것일까? 정말 무섭기까지 했다. 게임은 범행 당시 조승희의 생각을 마치 모두 알고 있는 듯 상세히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 희생자 에밀리를 그녀의 남자 친구 칼이 기숙사에 데려다 주는 것부터, 이제 파티를 시작할 때라는 등의 말을 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전지적 작가시점에 의해서 그려지고 있다.

또한 조승희가 경찰에게 걸리지 않게 잘 피해 다니면서 첫 번째 기숙사에서의 살해를 감행한 뒤에 NBC에 보내는 비디오를 찍는 장면과 학생들이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총을 쏘아서 그 학생들을 죽이는 장면 등이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게임 요령에 보면 총을 쏘려면 'A'를 누르라고 되어 있다.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한테 있어서 'A'는 바로 총인 셈이다.

그렇게 'A'를 누르면 화면 속의 학생들이 죽으면서 자신의 점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승리의 쾌재를 부르게 된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했다. 이 아이가 총을 갖게 되고, 그 총을 쏨으로써 다른 사람이 죽으면서 자신의 점수가 올라간다고 착각할 수 있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현실과 게임 세계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실제의 사건을 재현해 게임으로 만든다면, 특히 분별력이 없고 인터넷 게임에 빠져 사는 아이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버지니아텍 사건보다 먼저 일어났던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의 경우에도 후에 게임으로 만들어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몇 년 전에 친구들과 함께 스포츠클럽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간단한 게임들을 즐기며 음식이나 음료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게임은 스크린에 실제 사람 크기의 인물들이 영화처럼 나오고, 거기에 대고 총을 쏘면 그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었고, 점수가 올라갔다.

그러한 실물 크기의 화면 속의 사람에게 총을 쏘면서 실제로 그 사람을 죽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짜 총을 쥐어줘도 무서워서 쏘지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겠지만, 이렇게 게임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자신이 갖고 놀던 게임을 위한 총과 실제 총의 차이를 느끼지 못 할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들일수록 사이버 세상에서 만족을 찾으려 들고, 그러한 사이버 세상과 현실 세상을 구분하지 못해서 더욱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거듭된다고 한다. 버지니아텍 총기 사건과 관련된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고 있는 영호의 얼굴에서 난 섬뜩함을 느꼈다. 32명을 모두 죽이고 자신까지 자살해야 마치는 이 게임에서 32명을 다 못 죽이고 경찰에게 잡혀서 게임을 끝까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는 그 아이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임 속에서 죄 없는 학생들을 죽여야 점수가 올라가고 그래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세상도 다른 사람을 죽이고 이겨야 내가 살고 높은 자리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구은희 기자) 

07. 05. 21.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5-21 23:1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어찌... 이런걸 누가 만들어가지고.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5-22 00:16   좋아요 0 | URL
와...

자꾸때리다 2007-05-22 00:32   좋아요 0 | URL
전 제목만 보고 스타크래프트 2 이야긴 줄 알았는데...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