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만큼 내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책읽기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보고 있는 사회학자도 드물다. 이건 그의 책 대부분이 동문선에서 출간되고 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어지간하지 않은 책값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갈 수 없는 책들과 몇 번 대면하다 보면 지레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의 책 <실천이성>(동문선, 2005)의 경우도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소개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없는 책으로 치고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또 도서관에서 그 책을 집어들게 되었고(서점에서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외국의 청중들을 상대로 한 강연문집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어쩌면 부르디외의 사회학에 대해서 그 자신이 가장 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입문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도 이 점에 있어서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었고: "부르디외가 설명하는 부르디외의 사회학 이론을 접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행운이라 할 터이다. 그의 직접적인 목소리로 듣는 해설서로서 <실천이성>이 그의 독창적 학문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278쪽)

하지만, 나의 행운과 기대는 멀리 가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불어본과 영역본(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장의 번역이 누락돼 있다)까지 대출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제일 처음 읽은 것은 1장의 부록인 ''소련의' 변형과 정치적 자본'이었다. 국역본상으로 6쪽짜리의 글인데(불어본과 영역본은 5쪽), 내용에 들어가기 이전에 몇 가지 사항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번역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일단 첫문장: "나는 여러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디스탱숑>을 깊이 있게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32쪽) 부르디외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 <디스탱숑La Distinction>이 <구별짓기>를 가리킨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에 대한 불만들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작년에 국역본 재판(새물결, 2005)까지 나온 바 있다(부르디외 전공자인 역자는 이 책의 제목을 '탁월화'라고 엉뚱하게 소개한 전력이 있다). 같은 책이 동문선에서는 아마도 새물결판과 구별짓기 위해서 <디스탱숑>이란 음역 제목으로 근간 목록에 올라놓고 있는데, 한국어판 판권이 과연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정이 어떻든간에 우리말로 아무것도 전달해주지 않는 '디스탱숑'을 책의 제목으로 삼는 태도 자체가 불만스러웠는데, 막상 번역서에서 그런 제목을 읽으려니까 심사가 아주 디스탱숑해진다.

 

 

 

 

동베를린에서 강연한 강연문인 이 글에서 부르디외가 '여러분'이라고 호명하는 대상은 1989년 10월 25일 당시 동독인들이었다(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건 불과 며칠 후인 11월이었다). 그리고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구별짓기>의 모델이 프랑스 밖에서도 적용가능한가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문에 대해 답하겠다는 것(국내에도 부르디외 사회학의 한국적 적용을 탐색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즉, 이 책에 제안되어 있는 모델은 프랑스의 특수한 사례를 넘어서 유효한 것인가? 그것은 독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적용된다면 그 조건들은 무엇인가?"를 부르디외는 따져보고자 한다.

이때 인용문에서 "독일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는 주의를 요한다. 부르디외의 발화시점에서 '통일 독일'은 아직 없었으며 그가 쓴 표현은 '동독'이기 때문이다. 불어로 동독은 RDA이며 영어로는 GDR(German Democratic Republic)이다. 사실 어차피 통일된 마당에 동독이나 독일이나 뭐가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강연의 제목/주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역자가 '소련의 변형'이라고 옮긴 표현은 'La Variante 'Sovietique'(The 'Soviet' Variant)이며, 이건 ('미국형'이나 '자본주의형'에 대응하여) '소련형' 혹은 '소비에트형'으로서의 동독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독일을 '소련의 변형'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RDA/GDR은 원래대로 '동독'이라고 옮겨야 하는 것이다(더불어 이 글의 제목은 '소비에트형 사회와 정치적 자본'이라고 옮기고 싶다).

RDA가 나오는 여러 대목들이 '독일'이라고 옮겨진 것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서 "확인의 명목으로 우리는 그렇게 획득된 사회적 공간의 모델이 오늘날 RDA가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갈등들을 최소한 대략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지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36쪽)에서 'RDA'는 왜 튀어나오는 것인지(이 불어 약자는 GDR과 달리 단번에 검색되지도 않는다)? 역자의 부주의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하는 문제일까?  

 

 

 

 

그렇게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니까 곧 흠잡을 것 투성이가 된다. "그래서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구축 작업, 나아가 - <영국의 노동계급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E. P. 톰프슨이 사용하는 의미에서 - 제조 작업을 대가로 해서만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사용하는 의미에서 동원된 작용적 계급들이 될 수 있다."(33쪽)

내가 아직 톰슨의 명저를 읽어보지 않아서 'mobilized and active classes'라고 영역된 문구를 '동원된 작용적 계급들'이라고 옮기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사정은 역자도 마찬가지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Thompson'이 '톰프슨'이 아니라 '톰슨'으로 옮겨지며, 그의 주저는 <영국의 노동계급 만들기>가 아니라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0)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적어도 국역된 번역본이 있는 경우에(더구나 그게 무시할 만한 번역본이 아닌 이상) 이를 참조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건 일반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 아닐까?

부르디외가 강연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프랑스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라면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중요한 사회적 변수인 반면에 (동독과 같은) 소련형 체제에서는 '정치적 자본'이라는 게 중요하게 기능하며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학적 분석에서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런 내용은 제목에서부터 이미 암시받을 수 있고 상식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내가 읽기에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새로운 상식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상식을 확증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 상식으로의 여로는 '디스탱숑'과 'RDA'와 '톰프슨' 등을 거쳐가야 하는 울퉁불퉁한 험로이다. 짧은 강연문에 대한 브리핑을 기획했다가 이런 식의 불평만을 늘어놓는 게 과연 나의 결벽 탓인지?..

06.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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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31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 로쟈님의 번역관련 페이퍼를 읽을 때마다, 만약 제가 또 번역을 하게 되면 정말 눈에 힘을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사이드 선생이 <미메시스>에 대해서 쓴 글을 한 문예지에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죽겠더라고요. 덕분에 신학책도 봐야했고 미메시스도 다시 영역본으로 읽는 등. 번역은 정말 작심하고 공부하면서 하지 않으면 완전히 '민폐'를 주는 것 같습니다. ㅎㅎ ^^

아래는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확인의 명목으로 우리가는 그렇게 획득된 사회적 공간의 모델이 오늘날 RDA가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갈등들을 최소한 대략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지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는' 은 고유명사인가요?;; '우리는'일 것 같은데 문맥상으로는요.

로쟈 2006-07-3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이 맞습니다. 오타였어요.^^

krinein 2006-07-3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공부할 때 읽은 국역본들이 대부분,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건 그렇다치더라도, 긍정문과 부정문까지도 혼동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었지요. 예의 새물결판 [구별짓기]는 역자가 실상 일어판을 주로 참고했다기에 상대적으로 문법적인 오류는 적을걸로 기대했는데도 말입니다(물론, 영역본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뭐, 동문선 번역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요.

알라딘 서재는 주로 읽기만 하는 편이라 인사는 처음입니다(라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예전에 글을 퍼가면서 인사드린 적이 있었군요^^;;;). 늘 재미있게 읽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2006-07-31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8-0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rinein님/ <구별짓기> 개정판이 교정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역에 대한 지적들이 있고부터 초판본은 그냥 꽂혀 있는 책입니다. 박스에 넣기도 뭐하고...

**님/ 그렇게 질문하시니까 저도 헷갈립니다. 저라면 몽테뉴(혹은 파스칼)이라고 적겠습니다(^^;).
 

얼마전 G8 정상회담이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바 있다. TV뉴스에 자주 나왔을 법한 장소가  회담장소였던 콘스탄틴궁이다. 이 콘스탄틴 대공의 사저를 복원한 것이라 하는데, 페테르부르크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는 소식이다. 러시아 관련 참고자료로 관련 칼럼을 옮겨놓는다. 조선일보 정병선 특파원의 기사이며, 크렘린궁에 관한 내용도 연달아 옮겨놓는다.  

Konstantin palace in Strelna

조선일보(06. 07. 28) 권위보다 국민 배려

-G8(선진공업 8개국) 정상회담이 열렸던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콘스탄틴궁(宮)이 세계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회담이 열리는 동안 이곳은 이미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회담장에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한참 동안 궁내 장식물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면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포착됐으며, 각국 정상들이 궁전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한 게 모두 기사화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곳은 미국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과 같은 존재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할 때마다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자신과 친밀한 각국 정상들을 초대해 회담하고 파티를 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에서 영감을 얻어 이곳을 만들었다. 지난 2001년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에 초대받아 지내며 강한 인상을 받은 뒤 자신도 부시 대통령처럼 고향에다 그와 비슷한 대통령의 별장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의 의지가 콘스탄틴궁 복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콘스탄틴궁은 제정(帝政) 러시아 때 건축됐지만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침공하면서 완파돼 건물 터만 남았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방문 직후 궁 복원 지시를 했다. 특히 궁을 단순히 제정 시대 궁전으로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국 정상들을 초대해 회담도 하고 함께 지내며 식사와 여가를 겸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의 관저이자 정상회담 장소로 손색이 없도록 한 것이다.



-콘스탄틴궁 복원에는 재건축비가 250만 달러 투입됐지만, 실내 장식 등 내부 시설에 투입된 예산은 건축비보다 10배 이상 소요됐다. 크리스털 장식과 대형 거울, 금으로 도장된 장식품이 즐비한 회의실은 눈이 부실 정도로 호화찬란하다. 궁전 주변 50㏊에는 정원과 현대식 호텔(코티지식)이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섰다. G8 정상회담에 초대받은 정상들은 이곳을 숙소로 사용했다.

-지난 2003년 도시 창건 300주년 기념식 때 주 행사장으로 이용됐던 이곳은 당시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45개국 정상들을 맞으면서 처음 공개됐다. 그때는 일부 선택받은 정상만이 이곳에 묵을 수 있었다. 콘스탄틴궁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각국의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제정러시아 황제처럼 군림하며 여름 궁전을 만들었다”면서, ‘콘스탄틴궁’이 아니라 ‘푸틴궁’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곳은 개관 이후 매년 1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명소가 됐다. 기존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 ‘표트르궁’, 예카테리나 여제의 여름 궁전 ‘예카테리나궁’(*아래 사진)과 더불어 백야(白夜)로 유명한 상트 페테르부르크시(市) 최대 명물로 떠올랐다.

Czar's Village. Catherine palace. Church wing

-콘스탄틴궁은 푸틴이 이곳에서 자주 외국 정상과 회담하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면도 있지만 정부가 이곳을 단지 대통령 별장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인에게도 공개하면서 더 유명세를 치렀다. 실제로 이곳의 정상회담장인 대형 회의장과 숙소는 실비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하고 있다. 관광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시는 콘스탄틴궁의 성공적 결과에 고무돼 제2, 제3의 콘스탄틴궁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콘스탄틴궁은 대통령의 별장이지만 대통령 소유가 아니고, 특별한 인사의 전유물도 아니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국민 모두의 것으로 여긴 러시아 정부의 파격적인 마인드가 가져온 하나의 수익 모델이다.

조선일보(06. 02. 10) ‘크렘린궁 패밀리’ 되려면… ‘줄’ 없으면 꿈도 꾸지마

-러시아에서 모스크바의 권력중심을 상징하는 크렘린궁. 그 행정실은 크렘린궁을 둘러싼 3개의 건물에 분산돼 있다. 행정실은 대통령 행정실로도 불리며 러시아에서는 별천지로 통한다. 그만큼 이곳에서 근무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다.

-행정실은 분석국, 통제국, 외교국, 내무국, 인사국, 포상국 등 모두 12개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직원은 약 2000명 정도. 평균연령은 45세로 알려졌다. 더 이상은 비밀이다. 행정실 직원을 뽑는 원칙은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은 공무원들 가운데 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맥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의 길로는 미국 백악관처럼 인턴십 연수과정을 거쳐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다. 인턴들은 주로 모스크바국립대, 국제관계대, 모스크바외국어대학 학생들이 총장 추천을 받아 선발된다. 연수기간은 대개 3~4개월. 이 기간 동안 국가정보기관은 인턴이 제출한 이력서의 진위와 신분조회를 한다.

 

-실제로 모스크바국립대 졸업생들이 ‘크렘린궁 패밀리’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역사학부, 어문학부, 법학부, 언론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출신들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행정실 근무자인 콘스탄틴 포르마료프(가명·35)는 “최근 공무원 채용부터 퇴직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한 ‘공무원법’이 제정됐지만, 아직은 크렘린궁 패밀리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스크바대 출신에다 ‘줄과 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러시아는 '줄'과 '친구들'이 말하는 사회이다).

-대통령 행정실 직원들의 월급은 다른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적은 편이다. 부국장급 월급이 3만1500루블(1100달러 수준), 중간급은 1만루블 정도이다. 하지만 월급보다 많은 온갖 특혜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국장의 경우 국가관리용 고급별장과 자가용이 특별 제공되며, 직원 모두에게는 러시아 최고 병원으로 치는 ‘대통령총무국 산하 부속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여름휴가 동안 흑해 요양소 이용권을 3분의 1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3주 동안 흑해요양소 이용권은 5만5000루블 수준이다.

-자녀들에게도 온갖 혜택이 주어진다. 유아(2~7세)들은 대통령 총무국 산하 부속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고, 특수학교 입학도 보장된다. 대통령 총무국이 특별히 선발한 교사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행정실 직원 자녀들은 두세 가지의 외국어 습득은 물론 예체능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등 마치 제정 러시아시대의 귀족 교육과 같은 과정을 받는다.

-이 때문에 크렘린궁 행정실은 행정직 외 기술직, 식당 종업원조차도 경쟁이 치열하다. 한번 크렘린궁 행정실 직원이 되면 20~30년 이상 평생 근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식 역시 대를 잇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크렘린궁 행정실 직원 같은 철밥통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06.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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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예술이다>(아카넷, 2006)란 책이 출간됐다. 제목으로나 분량으로나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책인데(이런 류의 책이 이전에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한겨레에는 크지막한 리뷰가 실렸다(책의 수준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좀 호들갑스럽다는 인상을 받는다). 대략 황우석 사건과 '예술로서의 과학'을 연결시켜보려는 듯하다. "예술은 사기다"(백남준)란 명제가 거기에는 깔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거기에 "과학은 예술이다"를 보태면, "과학은 사기다"가 바로 도출돼 나오는 것. 정말 그런가?

한겨레(06. 07. 28) 퀴리부인은 표현파일까 입체파일까

-존재하지 않은 배아줄기세포. 주도권을 둘러싼 추악한 편싸움. 국익이란 이름으로 놀아난 정부와 미디어. ‘빠’와 ‘까’로 분열된 국론…. 까마득하니 잊혀진 황우석 사건, 겨우 일년 전 얘기다. 그 사건은 어려운 생명과학의 개념을 온 나라 사람들한테 가르쳤고, 과학자들의 전유인 실험실 내부와 그 실태를 공개했으며, 연구의 진위를 검사와 판사가 판정하는 코메디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과학은 과학이 아닌 사람임을 보여주었고 나아가 과학이 예술적인 조작일 수 있음을 드러내주었다.

 

 

 



-<과학은 예술이다>(아카넷)는 가슴이 뻥 뚫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남긴 그 사건, 그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두 지은이는 과학자가 컴퓨터처럼 차갑고 오차 없으며 아인쉬타인으로 상징되는 천재라는 거품을 거둬내고 과학활동이 지극히 인간적인 작업임을 깨닫게 함으로써 과학 역시 예술처럼 창조적인 인간정신 활동의 한 영역임을 말한다(*이런 걸 주제로 한 <아인슈타인의 공간과 반 고흐의 하늘>(고려원, 1994)란 책이 있었다). 즉, 과학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가까이서 음미할 만한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지은이의 언설이 열을 띠면 띨수록 우상에 큰코를 다친 한국의 읽는이는 처량해진다.

“세잔, 뒤샹, 몬드리안과 보어, 러더퍼드, 하이젠베르크의 공통점은? 볼 수 없는 대상들을 그려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까닭은 인식 가능한 물체로 실재를 표상하고자 하는 기존의 모든 표현기법을 과감히 포기한 결과다.”


=4년에 걸쳐 나무 한 그루를 대상으로 그린 몬드리안의 연작 그림들. 환원주의적 추상을 향한 진화를 보여주는 이 연작 그림은 과학에서의 환원주의적 과정과 너무도 흡사하다(*이 연작 그림은 예전에 미술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했다).

-예컨대 새로운 원자모델을 고안한 닐스 보어. 그 작업은 흑체복사를 설명하는 막스 플랑크의 공식에 함축된 ‘에너지가 연속적이 아니라 단속적으로 전달된다’는 결과를 근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했다. 그가 플랑크와 다른 점은 에너지의 불연속성이 극미세계의 특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점이다. 러더퍼드는 고전적인 원자모델로는 알파입자의 비정상적인 산란을 설명할 수 없어 질량이 한점에 모여있고 그 주위에 빈 공간이 많은 새로운 모델로 대체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를 수학적 대상으로 바꿔 양자이론을 통합하는데 기여했다. 과학은 표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예술이란 얘기다!

-과학의 발전에는 단순계산이 아닌 인간의 사고기술, 즉 추론이 필요하다. 불확실성과 커다란 견해차로 점철된 과학적 사고는 집단적인 공격과 방어 등 추론 과정을 거쳐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문제가 없는 상태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구는 학술지 등에 논문의 형태로 발표되고 동료 과학자들한테서 검증절차를 거친다. 논문은 테니스경기에서 한쪽 선수의 스트로크를 보는 것처럼 아귀가 척척 맞는다. 하지만 그 논문이 실리기까지는 공동저자의 의견에 따라 수정되었거나 다른 학술지에서 게재를 거절당하고 대폭 수정을 거쳤을 수도 있다. 과학의 뚜껑을 열고 보면 사회적 교류의 흔적이 가득하다.



 

 

 

-17세기 이래 과학이라 함은 곧 실험이다. 자연의 비밀은 스스로 진행되도록 방임했을 때보다 인간이 기술로 조작했을 때 그 정체가 잘 드러나기 때문. 자연상태의 불확실성, 불가측성, 복잡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험실에서는 실험재료를 정제하고 표준화하고 때로는 감춰진 속성과 면모가 도드라지도록 상황을 조작한다. 또 의미있는 결론을 끄집어내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판단을 추구해야 한다. 과학이 예술이라는 또다른 측면이다.

-그런데 실험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과학자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대부분 정부 또는 기업에서 나온다. 연구테마가 그들의 입맛에 좌우되기 일쑤다(*문제는 돈인 것). 그나마 연구자들 사이에서 제한된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은 당연지사. 그러자면 연구성과를 높일 수밖에 없는데 그 잣대는 학술지 논문게재가 보편적이다. 논문의 질은 끼리끼리 평가할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공정한지는 그들만이 아는 일이다. 돈을 받고 논문을 실어주는 일이 없으란 법도 없다. 돈놓고 돈먹기 세상. 과학자들이 인간인 것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과학은 없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세상 만물을 해명해 줄 하나의 대발견을 고대한다. DNA 구조의 해명, 인간 게놈프로젝트, 배아줄기세포의 배양, 또는 초전도 초대형 입자가속기(SSC) 건설 등이 ‘과학의 종말’ 징조인 듯이 매달린다. 지은이는 이를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아올리려다가 실패한 구약의 전설에 비유한다. 아무리 해도 모든 이론을 대체할 수 있는 과학이론은 없다! 과학의 목표는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세계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그 세계를 멋지게 설명하는 즐거움에 있다. 결론처럼 말하는 것은 “미래는 희망에 가득차 있다. 과학을 인간적인 활동으로 인식한다면 더욱 그렇다. 과학의 종말은 없다.”

-다시 떠오르는 일 년전 악몽. “모든 장기로 분화될 수 있는 배아 줄기세포” “불치병의 완전정복” “아시아 생명과학의 허브로 발돋움하는 한국”…. 우리 역시 표현의 잔치였지만 그것은 과학이 아닌 환각이었다. 결국에는 환멸을 부른…. 황우석 교수의 논문은 단순히 ‘만들었다’는 허위사실이었고 거기에 논문 꼴을 갖춰주고 무임승차를 노린 양인이 개입한 주거니받거니 사기행각이었다.

-어쩌면 그는 아파트 건설업자의 전례를 따랐는지도 모른다. 일단 분양공고를 내어 입주자들의 돈을 그러모은 뒤 공사에 들어가면 아파트는 지어질 것이고 엄청난 이익이 떨어지리라 계산을 하는…. 업자들도 그렇게 손 안대고 코 푸는데, 까짓 거 젓가락질하듯이 쓱 찔러넣으면 안될 거 어딨어? 난자야 돈 주면 지천인데 뭘…. 과학의 종말은 없겠지만 예술과 같았던 사기의 종말은 있었다.(임종업 기자)

06. 07. 30.

P.S. 음, "과학은 예술이다"보다 좀더 흥미로운 방향은 "예술은 과학이다" 쪽이겠다. '과학적인 사기'가 '예술적인 사기'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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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6-07-30 23:56   좋아요 0 | URL
제목을 보고 파이어아벤트가 떠올랐으나 내용을 보니 파이어아벤트와는 별 상관이...

로쟈 2006-07-30 23:58   좋아요 0 | URL
파이어어벤트가 과학이 사기라고 했나요?^^ 그의 입장은 거꾸로 아니었나요? 연금술도 과학이라고 했으니까, 사기도 과학이다...

마태우스 2006-07-31 00:30   좋아요 0 | URL
오오 황우석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왔군요. 급조된 책들인 것 같아 외면했는데, 요즘 나오는 건 그래도 읽을만 하겠죠? 추천합니다

로쟈 2006-07-31 00:35   좋아요 0 | URL
제가 추천받을 처지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감사...

yoonta 2006-07-31 00:40   좋아요 0 | URL
연금술은 원래부터 과학입니다. 단 근대적 의미의 과학이 아니었을 뿐이죠. 사기가 아닙니다. 과학이 원래부터 사기가 아닌 한..

로쟈 2006-08-03 16:10   좋아요 0 | URL
답글이 좀 늦었습니다. 어떤 취지의 말씀이신지는 알고 있습니다만, 말씀대로 연금술은 과학이다. 연금술은 근대적 의미의 과학이 아니다. 연금술은 사기가 아니다. ->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과학은 원래부터 사기가 아니며) 근대적 의미의 과학이 사기다, 인 건가요?^^

yoonta 2006-08-04 11:19   좋아요 0 | URL
답변안하셔도 되는 글인데..^^ 제 말은 연금술과 근대적 과학 모두 사기라고 불리울수는 없다는 겁니다. <사기>라면 황우석케이스처럼 대중들을 특정의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속이는 행위라고 할때 연금술과 근대적 과학은 그것에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과학은 예술이다라고 한다면 건 또 다른 문제긴 하죠.글고보니 님은 사기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의미로 말씀하신 것 같네요.^^
 

<낭만적 사랑과 사회>(문학과지성사, 2003) 이후에 승승장구하고 있는 작가 정이현의 첫번째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 2006)가 출간됐다. 공지영에 견줄 만한 여성 베스트셀러 작가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문단에 단비가 되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국문학에서 단편과 달리 장편소설은 본래 대중적인 장르로 치지만) '대중소설'로 방향을 튼 작가에게 대중의 호응이 없다면 그야말로 '황량한 도시' 아닐까? 한겨레의 리뷰와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자료로 옮겨놓는다.  

한겨레(06. 07. 28) 서른한 살, 달콤할까?

-젊은 작가 정이현(34)씨의 첫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작품을 책으로 묶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직장 생활 7년차인 서른한 살 미혼녀 ‘오은수.’ “옛 애인의 결혼식 날, 사람들은 뭘 할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으로 소설은 문을 연다. 그 날은 은수의 옛 애인 ‘고릴라’가 결혼을 하는 날.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로 출근을 했건만, 결혼식 시각인 정오가 되어도 왠지 아무렇지도 않다. “옛 애인의 결혼식 날 울지 않다니.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12쪽)

-물론, ‘기분’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인공 은수는 백팔십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겠는가. “저지르는 일마다 하나하나 의미를 붙이고, 자책감에 부르르 몸을 떨고, 실수였다며 깊이 반성하고, 자기발전의 주춧돌로 삼고. 그런 것들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라면, 미안하지만, 어른 따위는 영원히 되고 싶지 않다.(…)책임과 의무, 그런 둔중한 무게의 단어들로부터 슬쩍 비껴나 있는 커다란 아이, 자발적 미성년.”(43쪽)

-‘진짜 어른’과 ‘자발적 미성년’ 사이에 은수는 서 있는 셈인데, 약간 늦은 듯한 결혼 적령기에 아직 미혼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불안정한 처지를 제대로 반영한 결과이겠다(*최근 한국문학/문화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이 이 '자발적 미성년'들의 형상이다). 소설은 은수의 남자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여자친구 유희와 재인의, 역시 남자를 둘러싼 고민과 선택이 부주제로 제시되고, 은수의 직장생활과 부모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곁들여진다.

-옛 애인의 결혼으로 꿀꿀해져 있는 은수에게 난데없는 ‘남자 복’이 터진다.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동석하게 된 연하남 ‘태오’를 만나 곧바로 ‘원나잇 스탠드’에 들어가고, 게다가 스테디한 관계로 발전한다. 직장 상사가 소개해 준 연상의 범생이 ‘김영수’가 또 다른 선택지로 제시되는가 하면, 순수한(?) 이성 친구로 지내고 있는 백수 ‘유준’이 프러포즈 비슷한 것을 해 온다. 이게 웬 남란?

“윤태오, 남유준, 김영수. 객관식 선다형 문제를 받아든 것처럼 나는 세 개의 이름들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마음 가는 것과는 별개로, 이 세 개의 보기들에는 각각 잉여와 결핍이 담겨 있다. 나는 몇 번째 답안에 동그라미를 치게 될까. 그것은 정답일까, 오답일까.”(115쪽)

-독자 쪽의 호기심을 잔뜩 부추겨 놓고서 주인공/작가는 짐짓 딴청을 피운다. “결정하지 않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밤, 세상에서 가장 우유부단한 인간 오은수가 내린 중차대한 결정이다.”(116쪽) 그래야 할 것이다. 소설은 이제 겨우 사분의일 정도의 진행을 보였을 뿐, 앞으로 나아갈 길이 한참 남아 있으니.

-대학을 중도 작파하고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있는 태오. 귀엽고 저돌적이긴 하지만, ‘누나’가 보기에는 너무 철이 없다. “짠! 자기 몰랐죠? 오늘 우리 이십 일 기념일”(127쪽)이라며 빨간 장미 두 송이를 내미는 태오에 대한 은수의 답은 이러하다: “자기도 이제 스물다섯 살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156쪽)

-그렇다면 영수는? “개량 옥수수 낱알처럼 가지런한 사람”(77쪽)이긴 하지만, 도무지 낭만적이지도 않고 관능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관능을 자극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기쁘고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지던 남자들하고만 거듭하여 만나온 결과, 현재 나의 모습은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다”(126쪽)고 믿는 은수에게 영수의 안정적인 경제력은 무시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은수는 순수와 낭만을 파먹고 사는 철없는 계집애가 아니라 ‘계산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이 '계산하는 인간'이 쿨걸들의 정체이다).

-이 두 남자에 비해 유준의 소설 속 비중은 다소 떨어진다. 만년 백수로 지낼 듯하던 그가 어느 날 문득 잘나가는 학원 강사로 변신해서는 ‘어울리지 않게도’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다는 설정이 뒷얘기처럼 곁들여질 뿐.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라는, 태오를 향한 질책은 사실 은수 자신을 향한 것이었던 것. 감정의 기복과 곡절을 거친 끝에 두 사람이 헤어지는 귀결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영수의 경우는 조금 납득하기 어렵다. 남의 이름을 빌려 써야 했던 그의 ‘어두운’ 과거가 이 소설에서 필연적 맥락을 지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결말은 어찌 보면 다시 그 자리.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을 따름.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440쪽)

-소설은 끝났어도 은수의 고민과 갈등, 방황은 곱다시 시작이다.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완벽한 설계와 구성을 지닌 ‘작품’에는 이르지 못한 느낌이다. 이런 점은 신문 일일연재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정이현씨의 문장은 매우 능란하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빼어나고, 감각적이며 재기 발랄한 비유들도 일품이다. 가령 이런 것들: “오래 망설이다 마침내 내 손을 떠난 문자메시지는 후라보노 껌처럼, 마블링 잘된 꽃등심처럼, 얄밉게 구는 친구처럼, 그에게 장렬히 ‘씹힌’ 것이다.”(253쪽), “매일을 일요일처럼 보내는 사람에게, 일요일은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키면 함께 따라오는 군만두처럼 느껴진다.”(317쪽)

-“문득 이것이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62쪽)는 구절도 만날 수 있거니와, 이 소설은 일종의 풍속사로서도 유용할 정도로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선배 작가인 최인호씨의 경우를 상기해 보고자 한다. 최씨 역시 채 서른이 안 된 젊은 나이에 <별들의 고향>이라는 신문 연재소설로써 일약 인기 작가로 도약했다.

 

 

 

 

-그러나 그가 대중의 환호를 만끽하는 정확히 그만큼, 문학 전문가들은 등을 돌렸다. 그에게 애정을 지니고 있던 평론가들이 고언을 건네자 작가는 오히려 더 엇나갔다. 말하자면 작가는 문학사적 평가 대신 당대 독자 대중의 호응을 택했다(*문학사에 남은 건 '깊고 푸른 밤'이나 '타인의 방' 같은 그의 단편들이다). 정이현씨 역시 지금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이 재능있는 작가가 선배 작가의 선택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최재봉 기자)

조선일보(06. 07. 29) “쿨 걸들이 말하는 쌉싸름한 도시의 사랑”

-“서른한 살…사랑이 또 올 거 같니?” 성숙한 여인이 되느니 영원히 ‘자발적 미성년’으로 남겠다는 서른한 살 여자 오은수와 그의 친구들이 돌아왔다. 조선일보 독자들을 사로잡은 작가 정이현(34)의 연재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가 드디어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문학과 영화 양쪽에서 모두 평론가로 활동 중인 강유정(31)이 작가를 만나 쿨한 대담을 가졌다. 강유정은 2005년 조선일보 등 3개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으로 ‘3관왕’의 위업을 쌓은 평론계의 샛별이다.

▲강유정=일본 소설이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등장 인물이 쿨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달콤한 나의 도시’는 흡사 일본 소설 같다고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달라요. 이 소설에서 쿨한 것은 등장 인물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이 아닐까요.

▲정이현=그래요. 우리 엄마가 저에게 “차가운 것”이라고 해요. 엄마가 아프면 “병원에 가보세요”라고만 하는 저는 원래 ‘쿨걸’(cool girl)로 태어났어요. 소설 주인공 오은수에 대해 쓰면서도 ‘걔’를 핍박하기 보다는 ‘걔’가 노는대로 내버려두었어요. 진정한 우정이란 친구와 어떤 접점이 있더라도, 때로는 내버려두는 것이에요. 내버려두는 것이 쿨한 것이에요.

▲강=책을 내면서 신문 연재와 달라진 부분이 많은가요?

▲정=큰 틀의 변화는 없어요. 연재 당시 분량이 200자 원고지 1200장이었지만, 책으로 만들기 위해 고치니까 1600장으로 늘어났어요. 중간에 뺀 부분도 있고, 새로 쓴 부분이 있습니다. 주로 디테일이 부족했던 점을 보완했습니다.

▲강=요즘 30대 여성들이 읽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지만, 정작 읽을 게 없다 보니 일본 소설로 빠져나가고 있어요. 이 소설을 쓸 때 처음부터 20~30대를 주독자층으로 염두에 두었나요?

▲정=제가 30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지금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공기(空氣)를 포착하고 싶었어요. 지금 여기에 대한 내 또래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거죠(*물론 이 또래의 공간은 도시이다. 모두가 타인들인 대도시에 사는 30대 초반 오피스걸의 공기). 그런데 연재를 하다 보니 정작 어른들의 반응이 좋아 의외였습니다.

▲강=이 소설에 나오는 두 남자 ‘영수’와 ‘태오’는 서로 상반된 인물입니다. ‘태오’는 모든 여자의 기억 속에 있는 ‘옛날 남자 친구’ 같아요.

▲정=헤어진 남자들에 대한 기억은 쓰라린 것이 아닌가요.

▲강=아니, 헤어지기 바로 직전까지의 스위트한 부분에 대한 기억 말이죠.

▲정=아~하

▲강=‘달콤한 나의 도시’는 도시에서 나고 쭉 자란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에서 성장한 저는 도시의 매연 냄새가 반가울 때가 있어요. 대학생 때 농촌에 답사를 다녀와서 서울의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여기가 고향이다’란 반가움이 앞섰어요.

▲정=저는 늘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떠나봤자 다른 도시로 가게 됩니다. 도시라는 곳은 돈을 벌고 써야 돌아가는 곳인데, 도시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 지하 상가의 전자 오락실도 소중한 추억 거리예요. 그리고 도시 아이들에게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것과 같은 공통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소통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그렇다면 이 작품의 의의는 도시생태학에 있지 않을까 싶다).

▲강=정이현 소설에서 결혼과 가족은 늘 키워드예요. 왜 동시대 한국을 말하면서 결혼과 가족이 중요한 것인가요?

▲정=제가 집안에서 장녀지만, 결혼한 남동생이 어른 대접을 받고 미혼인 저는 늘 한 발자국 물러서 있어야 해요. ‘누구나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가치인 양 하는데, 저는 거기에 소설가로서 물음표를 던지고 싶어요.

▲강=정이현 소설은 기존의 편협한 페미니즘 소설과 많이 달라요. 등장 인물 김영수가 그렇듯이 남자도 이 세상에서 속고 당하는 존재로 나옵니다.

▲정=남성과 여성을 하나의 집단으로 말하는 것이 싫어요. 소설은 궁극적으로 약자의 이야기예요. 멀쩡한 중산층 인물 중에도 불쌍한 사람이 있어요. 누구나 불쌍하죠(*물론 이러한 연민이 궁극적으론 자기연민 이상으로 확장되지 않는 것 또한 쿨걸들의 조건이겠다).

▲강=가독성이 높으면 대중성이 농후하다고들 하는데, 소설을 쓸 때 가독성을 염두에 둔 전략이 있나요?

▲정=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어요. 대중성과 통속성은 달라요. 제 소설은 로맨스 소설과 TV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런 장르적 관습을 비틀어서 전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소설이 좀 가벼워지면 안 되나요? 소설은 원래 잡스러운 장르인데, 평론가들이 소설을 너무 고급스러운 장르로 만드는 거 아니에요?평론가들이 전부 ‘범생’들이라서 그런가….(*소설은 원래 잡스러운 장르이며 소설가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고귀한 소설들은 드물며 작가들 또한 그러하다.)

06.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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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7-30 14:57   좋아요 0 | URL
'서른 언저리'만이 문제인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작가 조경란이 얼마전 발표한 소설은 '마흔에 대한 추측'인가 그랬는데.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나이'죠. 작가들도 거기서 못 벗어나고...

로쟈 2006-08-02 15:29   좋아요 0 | URL
고비를 좀 넘기시면 좀 무심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로쟈 2006-08-02 18:03   좋아요 0 | URL
남녀간에 체감 나이는 좀 다른 듯합니다. 여자들은 대개 30세에 좀 민감한 듯하고. 제 경우엔 스무 살이 '충격적인' 나이였습니다. 이젠 핑계댈 게 없구나란 생각에.^^
 

주명철 교수의 노작 <서양 금서의 문화사>(길, 2006)가 출간됐다. 지난주에 구내서점에서 만져본 책은 묵직하고 듬직했다.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 1990)에서 시작된 학적 여정을 결산하고 있는 책으로 보였다. 그가 번역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길, 2003)까기 결들이게 되면, '프랑스 혁명과 책이란 주제에 관한 한 최강의 복식조를 이루겠다. 당장에 구입할 여력도 시간도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눈요기나 해두도록 한다. 세 개의 리뷰를 자료로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6. 07. 29) 프랑스혁명 불지핀 힘 ‘금서’

-최근 들어 책과 독서의 역사에 대한 서적들이 활발하게 번역, 저술되고 있다.<책과 혁명>(로버트 단턴), <읽는다는 것의 역사>(카발로/샤르티에),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카사뉴-브루케), <근대의 책읽기>(천정환) 등이 지난 2∼3년 사이에 소개되었다.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 전자책(e-book) 등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책의 종말이 성급히 선언되는 마당에 국내출판계에 불어오는 책과 독서의 역사에 대한 높은 관심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역사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한국사시민강좌’에서 작년에 ‘책의 문화사’를 특집주제로 다룬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위 목록에 한 권의 책이 추가되었다. 지난 20여년간 18세기 프랑스의 금서연구에 한 우물을 파온 주명철(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서양금서의 문화사>가 그것이다. 그는 1990년에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바스티유의 금서>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여 당시로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학계에서 책의 역사를 외롭게 개척했다. 절판된 <바스티유의 금서>의 대중적인 개정판을 내겠다는 의도로 착수한 작업이 632쪽의 새 책에 가까운 두꺼운 종합개정판으로 결실을 맺었다(*갖고 있는 <바스티유의 금서>도 아직 안 읽었는데...).

-앞 책을 보완하여 각각 머리글과 맺음말 성격에 해당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사회와 문화’와 ‘앙시앵 레짐 문화와 금서’라는 소제목의 두 주제를 새로 덧붙인 결과이다. 또한 60여장의 흑백·컬러판 초상화, 풍속화, 정치적 스케치 등으로 고급스럽게 책을 꾸며 독자들을 유혹한다.

-<서양금서의 문화사>는 저자가 오랫동안 프랑스 주요 고문서보관소에서 눈을 혹사시키고 엉덩이를 고생시키면서 잉태시킨 ‘오리지널’ 연구 성과물이다. “모두 나 자신이 원사료를 직접 보고 썼기 때문”에 부끄럼이 없다는 그의 학문적인 자부심이 부러울 뿐이다(*사실 이런 책은 불어나 영어로 번역되어야 학계에 더 도움이 될 텐데) .

-이 책은 양적 팽창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책의 역사와 관련해 주 교수가 이룩한 질적 향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국내외 역사학계에서 역사서술의 새로운 경향으로 등장한 신문화사, 일상생활사 등의 방법론을 금서연구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금서의 종류와 작가별 분류 등에 대한 통계학적이며 사회경제사적인 분석에 머물지 않고, 금서의 유통과 소비를 통해서 보통사람들의 세계관과 ‘집단적인 정신자세(망탈리테)’가 어떻게 형성·변화되었는지에 새로운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금서읽기와 혁명의 문화적 기원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데까지 문제의식을 확장시켰다.

-앙시앵 레짐 시대의 프랑스 보통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밀수입과 서적풍물상인)와 장르(포르노그래피와 정치중상비방문 등)를 통해 은밀히 읽은 금서는 체제비판적인 “다른 문화를 준비하는 온실”이며 “의식의 저장소”로서 궁극적으로는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킨 “1789년 사람들의 무기고”(381쪽) 역할을 수행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정치문화사적 관점에서 흥미롭게 경청할 만하다(*여담이지만, 영화 <음란서생>은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다룰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주 교수는 금서의 역사를 과거 사람들이 공유했던 ‘의사소통의 얼개’를 엿보는 렌즈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금서는 미풍양속을 해치고, 기존질서를 야유하며, 신성한 정치적 합법성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체포, 감금, 소각되지만, 그것이 창작·전파·소비·전유되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실행했던 일상생활사적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고 저자는 확신한다. 금서의 문화사는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 속을 살았던 과거 사람들이 교환했던 낯선 의사소통의 매트릭스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인쇄문화와 책의 죽음이 공공연히 선전되는 정보화시대를 사는 우리가 낡은 책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메일, 블로그, 전자카페 등 진보된 정보기술의 혜택을 향유하는 나는 과연 18세기 사람들보다 더 잘, 더 효과적으로 타인과 대화하며 소통하고 있는가? ‘서양금서의 문화사’는 이런 질문을 독자들이 자문해 볼 것을 권한다.(육영수 중앙대 사학과 교수)

경향신문(06. 07. 29) 禁書로 프랑스혁명 다시 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한 바보의 의미 없는 행위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포레스트 검프조차도 역사학을 조금만 배웠다면 틀렸음을 알 수 있는 얘기다. 역사는 단순하게 결정되지 않는다. 경제·정치·문화의 수많은 요인들이 다른 요인들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에게 작용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역사를 보기 위해선 수십개의 필터가 끼워진 렌즈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프랑스 혁명사를 이해하는 한 코드는 ‘모순을 타파하려는 계몽사상에 물든 부르주아 계층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한국교원대 교수·서양사)는 이 같은 시각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였지만, 반계몽주의자들도 계몽주의자와 공존하던 시대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비공시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방법론이다.

-책에서 강조되는 건 프랑스 혁명과 ‘금서(禁書)’의 관계다. 20세기의 연구 성과인 정치적, 경제적 설명에서 탈피해 문화적 요인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서가 프랑스 혁명의 직접 요인이었다는 과격한 주장이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연구 성과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수십개의 눈을 가질 뿐이다.

-앙시앵 레짐 말기 금서의 세계에서 가장 돋보인 인물은 테브노 드 모랑드(1741∼1806)였다. 싸움, 노름, 도둑질, 사기와 수차례 탈옥을 일삼던 그는 1769년 영국으로 도망쳐 혁명 이후인 1791년 프랑스로 돌아올 때까지 프랑스 정부의 주요 인물을 공격하는 ‘중상비방문’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거미줄 같은 정보망을 이용해 고관대작들의 추문을 주워담았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녔다.

-‘프랄랭 공작은 손톱을 물어뜯다가 공수병에 걸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목을 매거나, 칼이나 총으로 자살한다’ ‘프랑스에서는 성직자들이 근친상간을 범하는 일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그들이 누이들 대신 여염집 부인들을 이용하도록 허락했다’.

-이처럼 모랑드는 루이 15세와 그 주위 귀족들, 프랑스 상황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거침없이 퍼뜨렸다. 디드로의 ‘백과사전’, 볼테르의 ‘캉디드’ 등은 지식인에게 계몽주의 세계관을 전파했지만, 파리 국립도서관 사료보관서에서나 찾을 수 있는 무명의 금서들은 민중의 울분을 야기했다.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할 부분은 이 책이 번역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고문서자료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복사하며 직접 참고했다. 사실 금서로 프랑스 혁명기를 읽어낸다는 발상은 저자가 이미 번역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에서도 시도된 적이 있다. <서양 금서의 문화사>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시각은 보여주지 못한다하더라도, 우리의 눈으로 프랑스 혁명을 읽어내려는 작고 소중한 노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백승찬 기자)

세계일보(06. 07. 29) 금서가 프랑스 혁명 불을 질렀다

-18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계몽사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는 절대군주제와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등 봉건 잔재가 온존했다. 이런 와중에 지배계급인 성직자와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도 세금을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직을 독점하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다. 국가 재정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치적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 평민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사회적 모순이 팽배해 혁명이 배태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마련 된 셈이다.

-디드로,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프랑스 혁명의 토양을 마련해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신앙과 진리는 물론 신까지도 인간 사유의 결과물로 끌어내렸으며, 신적 초월성이나 신비감을 자격정지시켰다. 특히 프랑스 계몽주의는 영국의 그것보다 더욱 급진적이었다. 점진적 개선이 아닌 전면적 자유·평등·박애를 위한 혁명을 부르짖었다.

-그들은 마침내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을 감행해 끝내 왕정을 무너뜨리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서양 근대사의 2대 근원인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프랑스 혁명은 정치·사회적 이념, 즉 개인주의·자유주의·민족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혁명 주체들은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을 제도화하는 등 오늘날 우리가 만끽하는 민주주의 이념의 씨앗을 심었다. 물론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들의 혁명’이라는 한계로 충분한 자유와 평등을 이룩할 수 없었고, 부의 균등분배까지는 접근하지 못했다.

-주명철 한국교원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전작인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1990)를 완전 개작한 ‘서양 금서의 문화사’는 계몽주의가 발흥하던 ‘앙시앵 레짐(구제도)’ 시대의 프랑스를 무대로 금서의 역사를 살핀 책이다. 특정한 내용의 출판물 간행을 제한하는 검열과 이를 반영한 금서는 가깝게는 언론의 자유와 연결되고, 나아가서는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따라서 금서들은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이념이 분출하려던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책은 인쇄물을 제작하고 유통한 사람들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 도서출판법과 검열제도의 자세한 면면, 그리고 이를 위반한 다양한 사례들을 살핀다. 구체적인 금서와 작가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가운데, 저자는 글쓰기·읽기·손으로 쓴 글·책을 포함한 인쇄물 등이 당시의 의사소통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하나하나 추적한다. 앙시앵 레짐의 성격과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일상생활을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 등의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고, 계몽주의에 대한 장을 따로 마련하는 등 넓은 맥락에서 금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매년 프랑스를 직접 방문해 고문서 자료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복사해오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원사료를 통해 프랑스 민중들이 왜 ‘금서’를 생산해 내 읽고, 잡혀가고, 못된(?) 사상에 물들어가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당시 앙시앵 레짐은 왕권과 교회, 귀족 계층에 대한 풍문과 중상비방문 등이 ‘책’을 통해 민중에게 퍼져가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출판업자들에게 ‘금서’라는 조치로 책을 생산·유통·보급하지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온갖 추문과 교회의 부정 폭로, 귀족층에 대한 혐오 등 당시의 프랑스는 극한의 양극화가 첨예하게 두드러진 사회였다. 혁명 여론은 그런 와중에 형성되었다. 저자는 여기에서 당시 민중은 저명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긴 했지만, 무명인들이 치를 떨며 쓴 수많은 비방문과 금서들이 당시 민중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다. 대부분이 서구학자 연구서의 번역물 일색뿐인 서양사나 서양문화사 틈에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때문이다.(조정진 기자)

06.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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