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철 교수의 노작 <서양 금서의 문화사>(길, 2006)가 출간됐다. 지난주에 구내서점에서 만져본 책은 묵직하고 듬직했다.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 1990)에서 시작된 학적 여정을 결산하고 있는 책으로 보였다. 그가 번역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길, 2003)까기 결들이게 되면, '프랑스 혁명과 책이란 주제에 관한 한 최강의 복식조를 이루겠다. 당장에 구입할 여력도 시간도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눈요기나 해두도록 한다. 세 개의 리뷰를 자료로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6. 07. 29) 프랑스혁명 불지핀 힘 ‘금서’

-최근 들어 책과 독서의 역사에 대한 서적들이 활발하게 번역, 저술되고 있다.<책과 혁명>(로버트 단턴), <읽는다는 것의 역사>(카발로/샤르티에),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카사뉴-브루케), <근대의 책읽기>(천정환) 등이 지난 2∼3년 사이에 소개되었다.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 전자책(e-book) 등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책의 종말이 성급히 선언되는 마당에 국내출판계에 불어오는 책과 독서의 역사에 대한 높은 관심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역사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한국사시민강좌’에서 작년에 ‘책의 문화사’를 특집주제로 다룬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위 목록에 한 권의 책이 추가되었다. 지난 20여년간 18세기 프랑스의 금서연구에 한 우물을 파온 주명철(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서양금서의 문화사>가 그것이다. 그는 1990년에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바스티유의 금서>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여 당시로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학계에서 책의 역사를 외롭게 개척했다. 절판된 <바스티유의 금서>의 대중적인 개정판을 내겠다는 의도로 착수한 작업이 632쪽의 새 책에 가까운 두꺼운 종합개정판으로 결실을 맺었다(*갖고 있는 <바스티유의 금서>도 아직 안 읽었는데...).

-앞 책을 보완하여 각각 머리글과 맺음말 성격에 해당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사회와 문화’와 ‘앙시앵 레짐 문화와 금서’라는 소제목의 두 주제를 새로 덧붙인 결과이다. 또한 60여장의 흑백·컬러판 초상화, 풍속화, 정치적 스케치 등으로 고급스럽게 책을 꾸며 독자들을 유혹한다.

-<서양금서의 문화사>는 저자가 오랫동안 프랑스 주요 고문서보관소에서 눈을 혹사시키고 엉덩이를 고생시키면서 잉태시킨 ‘오리지널’ 연구 성과물이다. “모두 나 자신이 원사료를 직접 보고 썼기 때문”에 부끄럼이 없다는 그의 학문적인 자부심이 부러울 뿐이다(*사실 이런 책은 불어나 영어로 번역되어야 학계에 더 도움이 될 텐데) .

-이 책은 양적 팽창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책의 역사와 관련해 주 교수가 이룩한 질적 향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국내외 역사학계에서 역사서술의 새로운 경향으로 등장한 신문화사, 일상생활사 등의 방법론을 금서연구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금서의 종류와 작가별 분류 등에 대한 통계학적이며 사회경제사적인 분석에 머물지 않고, 금서의 유통과 소비를 통해서 보통사람들의 세계관과 ‘집단적인 정신자세(망탈리테)’가 어떻게 형성·변화되었는지에 새로운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금서읽기와 혁명의 문화적 기원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데까지 문제의식을 확장시켰다.

-앙시앵 레짐 시대의 프랑스 보통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밀수입과 서적풍물상인)와 장르(포르노그래피와 정치중상비방문 등)를 통해 은밀히 읽은 금서는 체제비판적인 “다른 문화를 준비하는 온실”이며 “의식의 저장소”로서 궁극적으로는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킨 “1789년 사람들의 무기고”(381쪽) 역할을 수행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정치문화사적 관점에서 흥미롭게 경청할 만하다(*여담이지만, 영화 <음란서생>은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다룰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주 교수는 금서의 역사를 과거 사람들이 공유했던 ‘의사소통의 얼개’를 엿보는 렌즈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금서는 미풍양속을 해치고, 기존질서를 야유하며, 신성한 정치적 합법성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체포, 감금, 소각되지만, 그것이 창작·전파·소비·전유되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실행했던 일상생활사적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고 저자는 확신한다. 금서의 문화사는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 속을 살았던 과거 사람들이 교환했던 낯선 의사소통의 매트릭스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인쇄문화와 책의 죽음이 공공연히 선전되는 정보화시대를 사는 우리가 낡은 책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메일, 블로그, 전자카페 등 진보된 정보기술의 혜택을 향유하는 나는 과연 18세기 사람들보다 더 잘, 더 효과적으로 타인과 대화하며 소통하고 있는가? ‘서양금서의 문화사’는 이런 질문을 독자들이 자문해 볼 것을 권한다.(육영수 중앙대 사학과 교수)

경향신문(06. 07. 29) 禁書로 프랑스혁명 다시 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한 바보의 의미 없는 행위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포레스트 검프조차도 역사학을 조금만 배웠다면 틀렸음을 알 수 있는 얘기다. 역사는 단순하게 결정되지 않는다. 경제·정치·문화의 수많은 요인들이 다른 요인들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에게 작용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역사를 보기 위해선 수십개의 필터가 끼워진 렌즈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프랑스 혁명사를 이해하는 한 코드는 ‘모순을 타파하려는 계몽사상에 물든 부르주아 계층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한국교원대 교수·서양사)는 이 같은 시각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였지만, 반계몽주의자들도 계몽주의자와 공존하던 시대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비공시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방법론이다.

-책에서 강조되는 건 프랑스 혁명과 ‘금서(禁書)’의 관계다. 20세기의 연구 성과인 정치적, 경제적 설명에서 탈피해 문화적 요인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서가 프랑스 혁명의 직접 요인이었다는 과격한 주장이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연구 성과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수십개의 눈을 가질 뿐이다.

-앙시앵 레짐 말기 금서의 세계에서 가장 돋보인 인물은 테브노 드 모랑드(1741∼1806)였다. 싸움, 노름, 도둑질, 사기와 수차례 탈옥을 일삼던 그는 1769년 영국으로 도망쳐 혁명 이후인 1791년 프랑스로 돌아올 때까지 프랑스 정부의 주요 인물을 공격하는 ‘중상비방문’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거미줄 같은 정보망을 이용해 고관대작들의 추문을 주워담았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녔다.

-‘프랄랭 공작은 손톱을 물어뜯다가 공수병에 걸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목을 매거나, 칼이나 총으로 자살한다’ ‘프랑스에서는 성직자들이 근친상간을 범하는 일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그들이 누이들 대신 여염집 부인들을 이용하도록 허락했다’.

-이처럼 모랑드는 루이 15세와 그 주위 귀족들, 프랑스 상황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거침없이 퍼뜨렸다. 디드로의 ‘백과사전’, 볼테르의 ‘캉디드’ 등은 지식인에게 계몽주의 세계관을 전파했지만, 파리 국립도서관 사료보관서에서나 찾을 수 있는 무명의 금서들은 민중의 울분을 야기했다.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할 부분은 이 책이 번역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고문서자료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복사하며 직접 참고했다. 사실 금서로 프랑스 혁명기를 읽어낸다는 발상은 저자가 이미 번역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에서도 시도된 적이 있다. <서양 금서의 문화사>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시각은 보여주지 못한다하더라도, 우리의 눈으로 프랑스 혁명을 읽어내려는 작고 소중한 노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백승찬 기자)

세계일보(06. 07. 29) 금서가 프랑스 혁명 불을 질렀다

-18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계몽사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는 절대군주제와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등 봉건 잔재가 온존했다. 이런 와중에 지배계급인 성직자와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도 세금을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직을 독점하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다. 국가 재정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치적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 평민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사회적 모순이 팽배해 혁명이 배태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마련 된 셈이다.

-디드로,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프랑스 혁명의 토양을 마련해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신앙과 진리는 물론 신까지도 인간 사유의 결과물로 끌어내렸으며, 신적 초월성이나 신비감을 자격정지시켰다. 특히 프랑스 계몽주의는 영국의 그것보다 더욱 급진적이었다. 점진적 개선이 아닌 전면적 자유·평등·박애를 위한 혁명을 부르짖었다.

-그들은 마침내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을 감행해 끝내 왕정을 무너뜨리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서양 근대사의 2대 근원인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프랑스 혁명은 정치·사회적 이념, 즉 개인주의·자유주의·민족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혁명 주체들은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을 제도화하는 등 오늘날 우리가 만끽하는 민주주의 이념의 씨앗을 심었다. 물론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들의 혁명’이라는 한계로 충분한 자유와 평등을 이룩할 수 없었고, 부의 균등분배까지는 접근하지 못했다.

-주명철 한국교원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전작인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1990)를 완전 개작한 ‘서양 금서의 문화사’는 계몽주의가 발흥하던 ‘앙시앵 레짐(구제도)’ 시대의 프랑스를 무대로 금서의 역사를 살핀 책이다. 특정한 내용의 출판물 간행을 제한하는 검열과 이를 반영한 금서는 가깝게는 언론의 자유와 연결되고, 나아가서는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따라서 금서들은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이념이 분출하려던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책은 인쇄물을 제작하고 유통한 사람들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 도서출판법과 검열제도의 자세한 면면, 그리고 이를 위반한 다양한 사례들을 살핀다. 구체적인 금서와 작가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가운데, 저자는 글쓰기·읽기·손으로 쓴 글·책을 포함한 인쇄물 등이 당시의 의사소통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하나하나 추적한다. 앙시앵 레짐의 성격과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일상생활을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 등의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고, 계몽주의에 대한 장을 따로 마련하는 등 넓은 맥락에서 금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매년 프랑스를 직접 방문해 고문서 자료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복사해오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원사료를 통해 프랑스 민중들이 왜 ‘금서’를 생산해 내 읽고, 잡혀가고, 못된(?) 사상에 물들어가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당시 앙시앵 레짐은 왕권과 교회, 귀족 계층에 대한 풍문과 중상비방문 등이 ‘책’을 통해 민중에게 퍼져가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출판업자들에게 ‘금서’라는 조치로 책을 생산·유통·보급하지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온갖 추문과 교회의 부정 폭로, 귀족층에 대한 혐오 등 당시의 프랑스는 극한의 양극화가 첨예하게 두드러진 사회였다. 혁명 여론은 그런 와중에 형성되었다. 저자는 여기에서 당시 민중은 저명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긴 했지만, 무명인들이 치를 떨며 쓴 수많은 비방문과 금서들이 당시 민중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다. 대부분이 서구학자 연구서의 번역물 일색뿐인 서양사나 서양문화사 틈에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때문이다.(조정진 기자)

06.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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