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뒤지다 보니까 그제 날짜 한국일보가 나온다. 나중에 읽으려고 넣어둔 것인데, 그 '나중 읽기'의 대상이 이어령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이번에 문학사상사에서 '이어령 라이브러리' 30권이 완간되었고, 또 1956년 한국일보 지면으로 등단한 바 문필활동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열린다고 한다. 200여권의 저작 중에서 내가 읽은 이어령은 몇 권 되지 않지만(30권으로 줄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저항의 문학>을 읽었던 기억은 생생한 만큼 관련 기사들과 함께 몇 마디 군말을 덧붙여두도록 한다. '곁다리텍스트'로 분류한 것은 <저항의 문학>의 서문을 말미에서 읽어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먼저 읽을 건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의 기사들이다.

한국일보(06. 10. 25)  문필활동 50년 전집으로 정리한 이어령

누군가 재미 삼아 세어보니 직함이 무려 15개였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대학교수, 신문 칼럼니스트, 문화부 장관, 문명비평가, 에세이스트…. 그 앞에 서는 사람은 누구나 어느 호칭을 사용해 그를 불러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오롯이 글 쓰는 사람으로 규정할 뿐이다. 00

문학과 정치, 문화와 문명을 가로지르며 쉼 없이 창조의 질주를 계속해온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72). 그의 50년 문필활동을 정리한 전집 <이어령 라이브러리>(문학사상사)가 이 달 30권으로 완간됐다. 1956년 5월6일 한국일보에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지 꼭 50년. 그 반세기 동안 이어령이라는 이름을 저자로 달고 나온 200여권의 책 중 대표 작품들을 골라 묶어낸 전집이다.

-선생님의 다산의 창조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난 어릴 때부터 ‘한 우물을 파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갈증이 나니까 우물을 파는 건데, 해갈이 되면 그만 파고 다른 데로 가야지 왜 계속 팝니까. 창조에 대한 갈증으로 50년간 이 우물 저 우물 파온 거고, 그 속타는 갈증이 날 여기까지 오게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직함도 많아졌고.”

-그래도 타고난 성정이 아니면 책을 200권이나 쓰는 열정적 삶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중복된 것, 편저나 공저 등을 빼면 순수한 내 작품은 총 50권 정도인 것 같아요. 문단에 나온 지 50년이 됐으니 1년에 평균 한 권씩 쓴 셈인데, 글 쓰는 사람이 그 정도는 써야죠. 지금까지 <한국문학>에 <나신과 의상>을 연재하다 몸이 아파 그만두고 6개월 쉰 걸 빼면 글쓰기를 쉬어본 적이 없어요. 직업적으로 글 쓰는 게 몸에 밴 거죠.”

-선생님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말의 천재’인데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는데 수필가와 달변이에요. 수필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엄연히 수필과 평론이 구분되고, 난 평론으로 문단에 나왔는데 장르를 바꿔버리니 싫은 겁니다. 달변이라는 말은 ‘내용은 없어도 청산유수’라는 말인데, 참 모욕적이에요. 강연 후에 누가 ‘청산유수시네요’하면 할 말이 없어요. 아무리 눌변이라도 말할 값어치가 있는 말을 해야지. 그래서 말의 천재라는 말이 참 싫어요. 내가 세상에 많이 알려진 만큼 손해 보는 부분인데, 그 말로 인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몰라요.”

-‘달변의 수필가’라고 했다간 큰 일 나겠군요.

“큰 일 나지.(웃음) 대외활동이 많다 보니 선입견으로 나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과대포장됐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참 안타깝죠. 학계에서는 내 ‘공간기호론’ 같은 것은 정말 독창적이라며 오히려 내가 과소평가됐다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내가 달변가, 수필가로 안 알려졌더라면 평가 받았을 저작들인데….”

-선생님의 50년 글쓰기가 갖는 시대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내 50년 글쓰기에는 나 개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지성사, 글쓰기의 역사와 담론이 담겨 있습니다. 채집문명에서 농업문명, 산업문명, 정보문명, 이 네 가지를, 즉 인류의 1만5,000년 역사를 한 몸에 축약해 치러냈으니까요. 외국 지성에 비해 내 수준이 떨어질지 모르나 4개 문명을 다뤘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나를 따르지 못할 겁니다. 이건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한 인간이 50년간 글을 쓰면서 네 문명의 체험을 담아내는 건 체험의 밀도 면에서 아주 희귀한 거예요. 자화자찬이 아니라 70대 중반에 이른 내 동료들을 대변해 그 가치를 얘기하는 겁니다.”

-선생님께서 만드신 <문학사상>이나 <이상문학상>이 우리 문단의 중요한 제도로 자리매김했는데도 선생님에겐 문학 권력의 이미지가 없습니다.

“나는 50년간 글쓰기를 해왔지만 내 패가 없어요. 이런 저런 문학파들이 많지만, 어디에도 ‘문학사상파’라는 것은 없죠. 정치, 경제, 사회 다 패를 이루어 하는 것이지만, 문학만은 외롭게 혼자 하는 것입니다. 문인은 구석기 사람이에요. 제 손으로 도끼를 만들어 저 혼자 토끼를 잡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문단이 아니라 ‘문당’(文黨)이죠.”

-아직 더 파야 할 우물이 있습니까.

“억울하게도 나는 소설을 써도 평론가가 여가로 쓴 소설이라고 폄하됐어요. 사실 시를 쓰고 싶었는데, 왜 진짜 하고 싶은 건 아까워서 못 하잖수. 서정주의 <시론>이라는 시에 ‘바다속에서 전복 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 좋은 건 님오시는 날 따다주려고/ 물 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는 게 있잖아요. 내게 시는 그 숨겨진 전복이에요. 50년 글쓰기의 대단원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포에지(시가 가지는 정취), 시가 될 겁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집 한 권 내고 싶어요. 내가 제일 아끼는 거니까 자비 출판을 해서라도 장정부터 다 내 손으로 한 권 만들고 싶습니다. 그 시집을 읽고 나면 이어령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구나 알 수 있는, 그 50년을 단번에 설명해 줄 그런 시집 말입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선생님처럼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경우는 흔치 않은데요.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까.

나는 한평생 오해를 받아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나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나는 거만이 뭔지 몰라요. 끝없이 바닥에 있다고,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죠. 그걸 언어로 위장하고, 때로는 폭로하고 한 겁니다. 너무 약하고 열등해서 언어라는 갑충의 껍데기를 가지려고 한 겁니다. 나를 찌르는 불행의 화살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구요.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참 재밌는 게 나와요. 모차르트에겐 모든 창조하려는 자들이 가져야 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끝없는 존재의 열등감, 어린아이 같은 나이브함, 사회성이 없는 데서 오는 외로움.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글쓰기가 안돼요. 성경 <욥기>에 보면 욥이 마지막에 하는 말이 ‘이 고통을 반석에 새길 수만 있다면’이잖아요. 이게 얼마나 감동적인지 몰라. 불행에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특권, 그게 글쓰기죠.”

-글쓰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정치, 이념이죠. 내게는 끝없는 딜레마였습니다. 정치에 말려들어 이념의 언어에 구속되면 창조적 글쓰기는 안 된다, 신분증 언어밖에 못 쓴다, 다짐하며 그걸 안 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문학에서는 하지 말자, 1960년대에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마치 구석기를 살고 있는 것처럼, 시공에 얽매이지 않은 문학을 하자 했죠. 대신 현실과 관계 맺는 정치ㆍ사회적 발언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 같은 문화, 문명론으로 쓴 겁니다. 그런데 그게 오해를 받아 순수ㆍ참여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참 외로운 거죠. 정략적 눈길처럼 나를 상처주는 것은 없어요. 나는 고독한 창조자로 있고 싶었는데, 인위적으로 패거리 속에 나를 넣어서 보니까 그때처럼 외로운 게 없습디다.”

 

 

 

 

-글쓰기 50년을 돌이켜보면 어떤 소회가 드십니까.

끝없는 오해와 자기모순의 50년이에요. 감사하는 건 내 이름의 프리미엄으로 모든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영화화했다는 겁니다. 외적 환경은 감사하지만, 콘텐츠를 놓고 보면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외로운 50년이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외화내빈의 50년. 그게 내 50년의 아이러니죠. 글은 쓰는 순간 내다 버리는 쓰레기입니다. 이건 겸손이 아니에요. 내 글에 만족하면 또 쓰겠소. 전집 30권을 한데 묶어놓고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희열보다 멋쩍음을 느껴요. 숨기고 싶고 꼭 속옷 보여주는 것 같아 창피해요. ‘이게 전부냐? 네가 50년간 쏟아부은 게 이게 다냐’ 싶어 헛헛한 기분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전에는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하고 남들 부탁도 매정하게 거절하고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저 사람이 언제 또 나한테 부탁을 하랴 싶어 거절을 못해요. 그러다 보니 강연이다, 주례다, 인사말이다 스케줄이 너무 많아요. 초조한 게, 내 활동기간은 짧아지는데, 전복을 따야 하는데 잠수할 시간이 없어요. 막상 들어가면 숨이 차고.(웃음) 내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런 저런 위원장, 고문 직함 다 정리하고 1년간 들어앉아 전복을 딸 겁니다. 시집 꼭 낼 겁니다. 또 대학에서 강연한 것들 묶고, 학술논문들도 정리해서 전집도 40권, 50권까지 이어가야죠. 글쓰기엔 정년도 고령화도 없으니까요.”(박선영기자)

한국일보(06. 10. 25) 이어령 "등단 글 <우상의 파괴>는 젊은 피울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한 출판기념회에서 고성을 질러가며 당대 최고의 문인들을 비판한 어느 당돌한 청년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한 서울대 학생이 서정주, 김규동, 조연현, 백철 등을 두고 그게 시냐고, 문학이냐고 목소리를 높여 짓뭉갰다는 것이다.

소문을 들은 당시 한국일보 문화부장 한운사씨가 그 청년에게 그 이야기를 글로 써보라고 제안했다. 청년은 끓어오르는 비분강개를 “설마 신문에 실릴까”싶은 마음으로 썼고, 그것이 <우상의 파괴>라는 제목으로 1956년 5월6일자 한국일보의 한 면에 전재됐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등장이었다.

“당시엔 추천이나 신춘문예가 아니면 제도 문학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죠. 하지만 나는 기성문단의 동의나 결재를 받고 싶지 않았어요. 내 힘으로 작가가 되겠다, 신춘문예나 추천, 투고 등을 통해 너희들로부터 승인받지 않겠다, 나는 너희들처럼 글 안 쓴다 하는 선언이었죠.”

그 글은 단지 문단의 우상들을 대상으로만 씌어진 글은 아니었다. “내가 유명해지려고 선배들을 짓뭉갰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우상엔 이승만 대통령 등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기성의 모든 억압이 포함돼 있었죠. 한 마디로 한국전쟁 이후 정신적으로 말살되는 젊음을, 한 번밖에 없는 내 젊음을 당신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젊은 사람 살려’ 하는 절규였어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맨발로 쓴 젊은이의 피울음, 젊은이들의 첫소리였죠.”

그로부터 50년. 우상을 파괴하며 등장한 이 ‘앙팡 테리블’이 한국 지성사의 거목으로 우뚝 섰다. 그 거름이 된 50년의 글쓰기를 기념해 31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이어령 교수의 글쓰기 50년>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회가 열린다.(박선영 기자)


중앙일보(06. 10. 27) 시대의 지성 이어령 등단 50년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72.중앙일보사 고문) 선생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란 글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글쓰기 인생이 어느새 반세기에 이른 것이다. 그의 직업은 본래 문학평론가다. 그러나 뭇 사람은 88올림픽 개막식을 총지휘한, 그래서 굴렁쇠의 추억을 우리에게 안긴 문화기획자로 그를 떠올린다. 다른 이는 한국 헌정사 최초의 문화부 장관(90~91년)으로, 또 다른 이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그를 기억한다.

그래서 오늘은, 오히려 일반인에겐 생소할 수도 있는 문학평론가로서의 이어령을 조명한다. 전후문학 시대 젊은 문학의 기수로서, 60년대 참여-순수 논쟁을 이끈 평론가로서 이어령은 한국 문학사에 또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 50년의 세월을 서울대 권영민 교수가 증언한다. 선생의 육성은 30일 '월요 인터뷰'에서 전달할 예정이다.

선생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이어령 라이브러리'의 30번째 권인 '나, 너 그리고 나눔'(문학사상)이 최근 발간됐고, 31일 오후 3시엔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특별 강연회가 열린다. 다음달 2일 정오엔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중.일 비교문화상징사전 발간 기념 강연회도 열린다.(손민호 기자)

 

 

 



중앙일보(06. 10. 27) 권영민 교수가 말하는 문학평론가 이어령

이어령 선생의 비평적 글쓰기는 1956년 시작된다. 선생은 반세기를 지내오는 동안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고, 문화 예술의 현장을 떠난 적이 없다. 문화 예술계를 대표하는 원로이면서도 선생은 언제나 현역 비평가를 자임한다. 칠순을 훨씬 넘긴 지금도 그 놀라운 지적 통찰력을 통해 우리 문화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데에 앞장선다. 그러므로 이어령 선생의 글쓰기 50년은 우리 문화 예술의 정신사적 궤적에 해당한다.

이어령 선생의 첫 번째 비평집 '저항의 문학'(59년)은 우리 문학사에서 유별난 자리를 차지한다. 선생의 수많은 저서 중엔 이 책보다 훨씬 화제를 모으고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지성의 오설길''축소 지향의 일본인' 등이 있고,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추적하고 있는 '문화코드''디지로그'와 같은 최근의 화제작도 있다.

그러나 '저항의 문학'이 유별난 이유는, 이 책에서부터 비로소 우리의 문학 비평이 문학 자체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문학 비평도 문학의 한 장르라는 논리와 인식의 지평이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항의 문학'은 그 유명한 '우상의 파괴'라는 비평적 명제를 처음으로 내세운 저작이다. 이 명제는 '작품 자체로 돌아가기'란 비평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우상의 파괴'란 명제는 50년대 문단에서 기성 작가들의 권위에 대한 신세대의 당돌한 도전으로 오해까지 받았던 테마이다.

이어령 선생은 당시 평단의 거목이었던 백철을 공박하고 조연현을 비판하고, 시단의 주역이었던 미당 서정주를 몰아치고 소설 문단의 김동리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전후 문단의 숱한 시인과 소설가들이 아무도 선생의 비평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의 비평이 논쟁적이긴 했기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아주 단순하고도 간명했다. 문학 비평이 더 이상 작가의 주변을 맴돌아선 안 된다는 것, 오직 작품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령 선생은 문학의 사회 참여 문제를 저항의 문학이라는 테마로부터 새롭게 제기한 적이 있다. '작가의 현실 참여'(59년)라는 선생의 평문이 던진 이 새로운 과제는 4.19를 거치면서 문단 전체의 쟁점으로 부각된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비판하는 문학의 정신을 리얼리즘과 연결하며, 작가의 역사적.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참여문학론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문학의 본질적 순수성을 옹호하는 문인들이 반발하면서 쟁점은'순수-참여 논쟁'으로 확대된다.

이 논쟁의 정점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이어령 선생이며, 그 상대역이 시인 김수영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인 김수영은 군사 독재의 사회 문화적 통제를 우려하면서 언론의 무기력과 지식인의 퇴영성에 대한 비판을 통해 참여론을 논리화한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은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문화 예술 자체의 응전력과 창조력의 고양을 주장했고, 시대의 상황 변화를 무조건 추종하는 문학인의 자세를 비판한다. 이 과정에서 문화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신념을 내세운 이어령 선생이 순수론의 옹호자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어령 선생이 문학평론가로서 가장 힘을 기울인 연구 중 하나가 '이상 연구'이다. 이상의 문학은 언어의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이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 속에서 비롯되는 긴장을 통해 전체적인 통일성이 유지된다는 것이 선생의 관점이다. 이상의 작품을 신비화된 그의 삶으로부터 분리한 선생의 비평적 작업은 이상 문학의 독자적인 의미와 구조를 미적 차원에서 해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은 좁은 의미의 텍스트주의자는 아니다. 선생의 문학 비평은 문학의 개념과 그 범위를 규정하는 방법과 관점에 따라 문학과 문화의 관계를 좁히기도 하고 넓히기도 한다. 선생의 비평적 글쓰기는 미시적인 언어 기호론에서부터 거시적인 비교문화론으로 확대된다. 이어령 선생의 비평적 글쓰기 50년을 정리하고 있는 130여 종의 저작을 살펴보면, 선생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회 문화적 현상 속에서 하나의 문화적 실천으로써 자신의 글쓰기를 폭넓게 지속하여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충동을 함께 아우르는 이 끊임없는 글쓰기를 통해 한 시대의 지성이 펼쳐놓는 새로운 '문화적 시학'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독자의 자랑이다.(권영민 서울대 국문과 교수, '문학사상' 주간)

06. 10.20-21.

 

 

 

 

P.S. 집에 돌아와 <저항의 문학>을 찾아보니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래도 박스보관 도서인 모양이다. 내가 갖고 있는 <저항의 문학>은 가장 먼저 나온 경지사판(1959)판도 아니고 가장 최근에 나온 문학사상사판(2003)도 아니다. 그밖에도 여러 판본이 있지만, 기린원에서 지난 1986년에 나온 책이 나의 소장본이다. 책은 지방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서 나중에 <장미밭의 전쟁>(기린원, 1986)과 함께 구했었다. 지금은 모두 '이어령 라이브러리'로 보다 번듯하게 나와 있다.

기억에 표제가 된 평문 '저항의 문학'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절름발이 개구리>를 다룬 글이었다(내가 이 글을 읽은 지 15년이 더 되었다). 궁정 광대의 복수극을 다룬 포우의 단편을 '저항의 문학' 논리로 풀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얼핏 '참여문학론'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글인데, 1960년대 순수-참여 논쟁에서 순수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이었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권영민 교수의 표현을 빌면,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문화 예술 자체의 응전력과 창조력의 고양을 주장했고, 시대의 상황 변화를 무조건 추종하는 문학인의 자세"에 비판적이었던 것이 이어령의 입장이었다면, 사실 참여문학의 본뜻과 멀지 않다. 이어령의 방점은 '문학으로서' 참여하는 데 두어졌던 것이고, 따라서 '참여'에 방점을 둔 이들과는 대립각을 세웠던 게 아닐까.

 poster #1

요컨대, '빤스 입고 덥벼라'가 그의 문학론인 것이고, 이건 '빤스 벗고 덤벼라'와 성격이 다른 것이다(나는 후자의 경우를 '이념문학'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빤스 벗고 덤벼라'는 박광수 감독의 디지털 영화 제목이다). 그러니 전쟁을 하더라도 '장미밭의 전쟁'인 것이겠고. 그런 비유를 좀더 쓰자면, 요즘 한국문학의 '빤스'는 어디에 걸려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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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2006-10-27 14:25   좋아요 0 | URL
평소 로쟈님의 글은 저에게 어려워서 대부분 조금 읽다가 pass 하는데;;(죄송요), 오늘글은 잘 보았습니다.ㅎ 퍼갈께요.

로쟈 2006-10-27 17:21   좋아요 0 | URL
이건 아직 제 글이 아닌데요(--;). 자료로서 퍼왔을 뿐이고 살을 좀더 붙일 예정입니다...

끼사스 2006-10-27 20:03   좋아요 0 | URL
일전에 친구에게 "오에 겐자부로는 텍스트주의자"라는 말을 듣고, 그 표현이 참 멋있다 싶으면서도, 텍스트주의(자)라는 개념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했었는데요…. 권영민 교수의 글 속에 "이어령은 텍스트주의자"라는 구절을 맞닥뜨리니까 다시금 그때의 의문이 떠오르는군요. 권 교수의 개념은 작품의 외부가 아닌 내부 그 자체에 주목하는 비평(자)의 태도를 말하는 것 같군요. 그런데 당시 친구의 발언은 오에가 디킨스, 단테, 말컴 라우리 등의 텍스트에 천착해 길어올린 의미를 형상화하는 소설적 방법론을 취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었구요. 텍스트주의(자)는 학문적으로 보통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 건가요? 아마도 권 교수께서 부여한 의미와 가까울 거라고 생각은 듭니다만…. 혹시 제 친구가 짚은 소설적 방법론을 일반화한 개념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로쟈 2006-10-27 20:25   좋아요 0 | URL
본문에 의하면, '작품 자체로'가 텍스트주의의 구호입니다. 그게 좁은 의미의 텍스트주의가 뜻하는 바인 듯하고, 넓은 의미의 텍스트주의는 '텍스트 바깥은 없다'라고 공언한 데리다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겠지요. 한데 이 경우는, 데리다 자신도 언급하고 있지만, 텍스트=컨텍스트이기에 좁은 의미의 '텍스트주의'와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를 '텍스트의 바깥을 없게 하라'는 윤리적 요청으로 해석하는 편입니다. 오에의 경우는 제가 잘 모릅니다. 말씀대로라면, 오에 문학의 상호텍스트성을 가리키는 거 같은데, 그 또한 '텍스트주의'의 범주 안에는 들어갈 거 같습니다...

끼사스 2006-10-27 22:10   좋아요 0 | URL
'텍스트의 바깥을 없게 하라'. 제가 이해하고 있는 오에의 소설적 방법론을 적실하게 표현하는 구호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질문 드리면서 품었던 기대 이상의 것을 얻은 듯한 느낌입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
 

이번주 신간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동아시아, 2006)이다. 지난번 <자유론>(아카넷, 2006)이 출간되었을 때 '이사야 벌린과 우파적 교양'이란 제목으로 관련 페이퍼를 적으면서 언론리뷰들을 옮겨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사야 벌린의 1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됐다는 이 책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할 리뷰가 올라와 있지 않다.

 

 

 

 

한겨레의 최재봉 기자가 쓴 소개 정도가 예외적인데,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은 영국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1909~1997)의 1주기에 맞추어 열린 추모 학술회의의 발표문과 토론 내용을 엮은 책이다. ‘고슴도치와 여우’ ‘다원주의’ ‘민족주의와 이스라엘’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 영국과 미국 등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해 심도 높은 논의를 벌였다."

 

 

 

 

그 세 가지 주제를 편집한 이들이 각각 마크 릴라, 로널드 드워킨, 로버트 실버스이다. 실버스는 생소하지만(<숨겨진 과학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실버스가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크 릴라와 드워킨의 경우는 이미 다른 저서들이 소개돼 있다(특히나 로널드 드워킨은 존 롤스 이후의 가장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이름이 높다). 이들 외에도 찰스 테일러, 마이클 왈쩌 같은 걸출한 철학자들이 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리뷰의 내용을 마저 옮기면, "고슴도치와 여우’란 벌린의 논문에서 따온 개념으로, 거칠게 구분하자면 고슴도치와 여우는 각각 일원론과 다원주의에 해당한다. 소극적 자유의 개념을 강조한 벌린은 물론 다원론적 여우의 손을 들었다. 벌린의 생전에도 그러했지만 학술회의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다원주의를 지향한 벌린이 그 자신 유대인으로서 유대 민족주의인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에 대해 애착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그의 지인이기도 했던 아비샤이 마갈릿 예루살렘 헤브루대 교수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남아야 하고, 이스라엘 내 무슬림 성지들은 무슬림 당국의 치외법권 아래 두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유엔은 무력을 통해서라도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벌린의 마지막 편지를 공개했다."

이사야 벌린의 최초의 저작이 <칼 마르크스>(1939, 1978 4판)이며,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한 에세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고슴도치와 여우>(1953)는 그의 두번째 책이다(얇은 책이다). 고슴도치와 여우가 각각 일원론과 다원론을 상징한다고 돼 있는데, 벌린이 비유하고 있는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가 선호하는 작가는 톨스토이이며,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아마도 투르게네프일 것이다. 그리고 이 투르게네프와 마르크스는 생몰연대(1818-1883)가 동일하다. 그런 우연의 일치 때문만은 아니지만(사실 벌린이 <칼 마르크스>를 쓰게 된 계기도 아주 우연적이다), 나는 이사야 벌린을 이해하고자 할 때 핵심적인 키워드 두 가지는 '마르크스'와 '투르게네프'가 아닌가 싶다.

사실 러시아 태생(리가 출신이다)의 유태인이기도 하지만 벌린은 러시아 문학과 사상에 정통한 철학자이다. 그리고 그걸 확인시켜주는 저작이 <러시아 사상가들>(1978)이다(책 표지에 실린 이들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게르첸과  벨린스키, 그리고 투르게네프이다). 벌린의 지적 유산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나는 이들 작가/사상가들에 대한 그의 평가와 그가 받은 영향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더불어 바라는 바는 이 책 또한 번역/소개되는 것이다.  

얼마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브라이언 매기가 편집한 <현대철학의 쟁점들은 무엇인가: 거장들과의 대화>(심설당, 1985/1989)를 들춰볼 기회가 있었는데, 전체 15장(15명의 철학자들과의 대화)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1장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바로 이사야 벌린 경과의 대화이다('아이사야 벌린 경'이라고 표기돼 있다). 철학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란 질문에 대해 "합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신념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가정들에 대해 비판적인 검색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벌린은 몇 가지 사례를 예로 든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바로 일상적인 견해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모두 이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위대한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입센의 희곡의 주인공과 투르게네프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혹은 포스터의 <가장 긴 여행>들에 나오는 주인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어서 보다 '철학적인' 대담이 오고가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벌린이 입센, 투르게네프, 포스터 등의 작품들을 거명하는 태도이다. 명망있는 철학자이지만 그는 위대한 문학에 대한 존경 또한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하니, 벌린을 읽기 위해서는 적어도 투르게네프 정도는 읽어주는 게 좋겠다. 포스터의 책은 <기나긴 여행>으로 올해 번역돼 나왔지만,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은 진작에 번역/소개돼 있잖은가. 그러한 기본적 태도가 빠지게 될 경우 <전야> 혹은 <전날밤>이라 소개돼 있는 작품 'On the Eve'를 <크리스마스 이브에>라고 엉뚱하게 옮기게 된다(영역본 제목의 'Eve'는 크리스마스와 전혀 무관하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전야>(1860)는 결과적으론 러시아 농노해방(1861)의 '전야'를 보여주게 된 작품이다). 문학에 대한 무지는 철학도의 자랑이 아니라 근심이어야 한다.    

 

벌린의 관한 자료와 이미지들을 뒤적거리다 보니까 존 그레이의 <이사야 벌린>(1996) 같은 책도 눈에 띈다. 200쪽이 안되는 분량이기에 입문서로서 유용할 듯싶은데, 영어권에서도 고작 세번째로 출간된 관련 단행본이라고 한다. 이왕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을 챙기기 시작한 바에야 이 정도는 금방이라도 소개해줄 필요가 있겠다...

06. 10. 26.

P.S.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비전비엔피, 2007)이 최근에 출간됐다. 반가운 일이다. 소개를 옮겨보면, "20세기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이자,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 <낭만주의의 뿌리>등으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이사야 벌린의 문학평론서. 인간을 '여우형'과 '고슴도치형'으로 구분한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분석하고 있다.(...) 벌린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은 기본적으로 문학평론서지만, 비단 문학적 지식만이 아닌 철학, 역사 등의 다양한 인문학의 지식과 통찰을 얻게해주는, 올바른 의미의 교양서적이다." 그러니, '교양인'이라면 챙겨두어야 할 책이다...

07. 04. 05.

P.S.2. <러시아 사상가>(생각의나무, 2008)도 드디어 출간됐다. '러시아 문학과 사상'에 관한 강의를 맡을 때마다 아쉬웠는데, 이젠 강의 교재로 집어넣어야겠다!.. 

08.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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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사스 2006-10-27 02:00   좋아요 0 | URL
오늘 우연히도 회사에서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름은 들어봤다만…'하며 도로 내려놨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철학자였군요. ^^: 재밌게 읽고 사본 한 부를 제 서재에 비치했습니다.

로쟈 2006-10-27 08:43   좋아요 0 | URL
회사가 출판사이신가요? 벌린이 비치돼 있는 걸 보면.^^
 

한 드라마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노래가 '돌리고 돌리고..." 하는 것인데, 요즘 자주 되뇌이는 말이 "밀리고 밀리고..."이다. 책읽기에 국한하더라고 읽을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이 연이어 밀리고 있다. 그래서 '밀리고 밀리고'인데, 이제 곧 '치이고 치이고' 국면으로 넘어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스케줄 속에서 이 모양이라면 간혹 바쁘다는 연예인들이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고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겠다. 하긴 먹는 건 다 챙겨먹으니까 나로선 이 정도 밀려서 쓰러지진 않겠다. 라면을 끓일 물을 올려놓고 막간에 몇 자 적는다. 그렇게 막간에 적기에는 제목이 좀 거창한다. 역사의 막간극이라...

 

 

 

 

다른 게 아니고 얼마전 <테오리아>란 책을 소개한 게 빌미가 되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을 다시 들춰보고 있다. '역사의 막간극'이란 표현은 그 서문에 나온다. 20세기의 가장 음울한 고전이라는 <계몽의 변증법>을 이번에 처음 손에 든 건 아니다. 사실. 내가 갖고 있는 국역본은 <계몽의 변증법>(문예출판사, 1995)이니까 최소한 10년은 됐다. 우리말로 이해가 잘 안 돼서 존 커밍의 영역본(1972)도 구했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았다. <부정의 변증법> 영역본이 악명이 높은데, 영역본 <계몽의 변증법>도 사정이 크게 나아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새로 읽을 계획을 하게 된 건 2001년에 국역본 개정판이 출간되고 2002년에는 스탠포드대학에서 새로운 영역본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1997년에 나온 Verso판은 개역본이 아니다). 이 새 영역본을 구한 게 작년 봄이었는데, 아마도 다른 일들에 치어 부득불 책읽기가 미루어졌던 듯하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생각이 난 것이다. '계몽의 개념'에 대해서는 러시어본도 확보해놓은지라 나름대로는 '중무장'을 하고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그리고는 읽은 게 두 저자가 1969년 4월에 붙인 개정판 서문이다. <계몽의 변증법>의 초판이 나온 건 1947년 암스테르담에서인데(이미지는 속표지이다), 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오랜동안 절판상태였다고. 그런 사정을 밝히고 있는 게 이 서문의 시작이다. "<계몽의 변증법> 초판은 1947년 암스테르담의 퀘리도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는데, 현재는 상당 기간 동안 절판 상태에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재출판을 결심하게 된 것은 수많은 요청에 답하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이 책의 적지 않은 생각들이 오늘날도 유효하며 그후에 나온 우리의 이론적 노력에 이 책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믿음 때문이다."(문학과지성사판, 9쪽) 

참고로 말하자면, 국역본 문예출판사판과 문학과지성사판은 이 서문에 국한하자면 거의 동일하다. 처음 두 문장에서만 '쾌리도'가 퀘리도'로, '현재까지'가 '현재는'으로 '절판 상태에 있었다'가 '절판 상태에 있다'로 바뀐 게 전부이다. 반면에 영역판은 동일한 문장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면 개역판이다.

아무려나 그렇게 해서 출간된 게 물론 독어본 개정판이고, 이후에 판을 거듭해왔을 이 책은 오늘날에는 아주 번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계속해서 서문은 두 저자간의 지적 기질이 일으키는 긴장이  책의 '생동하는 요소'라고 자부하는 대목에 이어서 책의 의의를 밝혀준다: "책 속에서 말해진 모든 내용을 오늘날도 아무 수정 없이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태도는 진리를 역사적 운동에 대치되는 어떤 불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이론에서는 있을 수 없다. 이 책은 나치 테러의 종말이 눈에 보이는 시점에서 씌어졌다. 사실 적지 않은 부분들이 오늘날의 현실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음을 느낀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그 당시도 '관리되는 사회'로의 전이를 그렇게 단순화시켜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책이 씌어지던 40년대말 나치시대와 '관리사회'로의  이행이 전면화되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60년대 말 사이에는  사회문화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이 저작에서 '관리되는 시회로의 전이' 양상에 대해 과소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현실적인 유효성을 갖는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세계사의 참혹한 양상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세계가 거대한 세력 진영으로 나누어지고 이들이 필연적인 충돌을 향해 치닫는 시대에 참혹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3세계에서의 갈등과 새로이 커가는 전체주의는 <계몽의 변증법>에 따르면 그 시대에 파시즘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사의 단순한 막간극에 불과하다."(9-10쪽, 강조는 나의 것)

좀더 이어지는 문단을 여기에서 끊은 것은 뭔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참혹함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와 "역사의 단순한 막간극에 불과하다"가 잘 호응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내가 갖고 있는 두 영역본과 대조해보았는데, 나로선 부정문이 긍정문으로 잘못 옮겨졌다고 밖에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설마 국역본과 영역본의 역자들이 각기 다른 독어본을 대본으로 사용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두 영역본에서의 번역문을 나란히 제시하면 이렇다(한번 날리고 다시 친다. 날리고 날리고).

"In a period of political division into immence power-blocks, set objectively upon collison, the sinister trend continues. The conflicts in the Third World and the renewed growth of totalitarianism are just as little mere historical episodes as, according to the Dialectic, was Fascism in its time."(1972판)

"In a period of political division into immence biokcs driven by ab objectlve tendency to collide, horror has been prolonged. The conflicts in the third world and the renewed growth of totalitarianism are not mere historical interludes any more than, according to the Dialectic, fascism was at that time."(2002판)

여러 번 대조해 읽어보았지만 아무래도 국역본은 오역인 듯싶다. 그리고 논리상으로도 국역본의 문장은 지지될 수 없다. <계몽의 변증법>이 과연 1930-40년대의 파시즘을 '역사의 단순한 막간극'으로 간주하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그 반대 아닌가? 파시즘을 계몽의 불가피한/필연적인 귀결로 간주하는 것이 <계몽의 변증법>이 제시한 통찰이고 두 저자의 음울한 결론 아닌가? 그러니까 근대적 이성의 필연적인 귀결이 아우슈비츠라는(최근에는 아감벤 또한 이런 식의 통찰에 합류하는 것이고).

해서 최소한 "제3세계에서의 갈등과 새로이 커가는 전체주의는 <계몽의 변증법>에 따르면 그 시대에 파시즘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사의 단순한 막간극이 결코 아니다." 정도로 옮겨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계몽의 변증법>이 갖는 '현재성'과 결부되는 것임은 자명하다. 

모든 번역에 필연적으로 오역이 끼여들기 마련이지만 부주의로 말미암은 듯한 이런 류의 오역은 불가피한 오역이 아니다. "진보 앞에서조차 멈추지 않는 비판적 사유"라면 미심쩍은 대목들을 한번 더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첫 페이지에서부터 이런 오역과 맞부닥치게 되면 이후의 여정이 빡빡하리란 예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저 '오역의 막간극' 정도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이어지는 문단: "이 책에서 인식된 '총체적 통합'으로의 발전은 완전히 분쇄된 것은 아니지만 잠시 중단되고 있다. 그러한 총체적 통합은 독재와 전쟁을 거쳐 자신을 실현시키고 위협을 가한다. 이와 결부된 것으로서 계몽이 실증주의, 즉 실제 '일어난 사실의 신화'로 넘어가고, 마지막에는 지성이 정신의 적대자와 같아지는 현상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관은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꿈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실증주의적으로 정보를 약탈하러 다니지도 않는다.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그러한 역사관은 철학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두 영역본의 참조할 때 첫 문장 또한 "이 책에서 인식된 '총제적 통합'으로의 발전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완전히 분쇄된/종결된 것은 아니다."가 의미에 더 적합하지 않나 싶다. 방점이 어디에 놓이느냐의 문제이다. 더불어, '총체성'이나 '전체성'에 대한 두 사람의 뿌리깊은 불신을 이런 대목에서는 떠올려보는 게 좋겠다. '전체는 비진리이다'라는 게 아도르노의 맥심이다. 그러니까 '총체적 통합으로의 발전'이라는 양상은 두 사람에게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전체주의 비판과 맞물리는 것이 실증주의 비판이다. 실증주의란 '실제 일어난 사실' 그 자체의 존립과 인식이 가능하다고 믿는 입장이다(이 경우 철학은 불필요하다). 저자들은 그것을 '신화'로 치부한다. 두 사람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그들의 역사주의적 태도는 철학의 거부나 부정이 아니라 '철학 비판'이다(이 '철학 비판'이 곧 '비판이론'인 것인가?).

서문의 말미는 헌사와 바람으로 채워져 있다. 먼저, 책을 프리드리히 폴록(1894-1970)에게 헌정한다는 내용. 이건 1947년본에서나 1969년본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호르크하이머의 절친한 친구였던 폴록은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사회연구소 창립멤버였다. 이어지는 바람. 초판에 비해서 별로 수정된 사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저자는 이 책이 '일차적인 자료' 이상의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그러한 의미를 발견하고 확장시켜나가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 되었다...

06.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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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10-29 12:00   좋아요 0 | URL
확실히 72년 영역본이 2002년 영역본보다 문장이 어려운것 같네요.2002년판 문장에서.. "NOT~~~~ any more than~~~fascism"부분은 직역하면 "제3세계에서의 갈등과 새로이 커가는 전체주의는 계몽의 변증법에 따르면 파씨즘 이상은 아니다." 정도인것 같은데 로쟈님 말씀대로...그만큼의 전체주의적 문제점들을 전후세계도 가진다는 이야기가 맞군요..상대적으로 72년 영역본의 문장은...지금봐도 너무 난삽하게 영역한것 같네요...-_-

biocs는 blocks의 오자같네요..^^

로쟈 2006-10-29 12:06   좋아요 0 | URL
오타는 수정했구요, 제가 읽는 문장은 생략문입니다. "The conflicts in the third world and the renewed growth of totalitarianism are not mere historical interludes any more than, according to the Dialectic, fascism was (not mere historical interludes) at that time." A가 B가 아닌 것은 C가 D(=B)가 아니었던 것과 같다. 독어본의 문장도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yoonta 2006-10-29 12:4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 "제3세계에서의 갈등과 새로이 커가는 전체주의는 과거의 파시즘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단순한 역사의 막간극이 아니다.".라는 말씀 ^^ 사전을 뒤적여보니..not ~any more than구문은 no more ~ than 구문과 같은 뜻으로.."~이 아닌것은 ~이 아닌것과 같다"라고 되어있네요.. 독해연습 하나하고 갑니다..^^

로쟈 2006-10-29 13:03   좋아요 0 | URL
저는 아도르노를 술술 읽는 사람들이 경탄스럽습니다!..
 

얼마전에 전해들은 것이지만 한국문학의 '전복적 상상력' 혹은 '수상한 활력'에 대한 심포지엄이 개최된다고한다. 문단의 동향에 관심을 가져온 이라면 대략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에 국한하여 말하자면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것은 이른바 '미래파 논쟁'이다. 발표문들은 아마도 겨울호 계간지에 실릴 듯도 한데, 개인적인 의견은 그때 붙이도록 하겠다. 

경향신문(06. 10. 26) '전복적 상상력’ 심포지엄, 한국문학 전위 ‘수상한 활력’ 찾기

사진 위부터 황병승, 강영숙, 강정씨.

2000년대 한국 문학을 향해 흔히 던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의 자리가 마련된다. 계간 ‘실천문학’이 2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관에서 개최하는 심포지엄 ‘한국 문학과 전복적 상상력’이 그것이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물론 문학판 안에서조차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변화한 한국 문학의 전위에 대해 평가해보는 자리다. ‘문학’이라는 아성, 특히 리얼리즘·모더니즘 등 외부 세계에 어떤 현실·진리가 존재하고 문학은 그것을 재현한다는 식의 근대문학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21세기 문학을 규정하려는 평론가들의 분투라고 할 수 있다.

심포지엄의 총론 발제를 맡은 평론가 손정수씨(계명대 교수)는 “예술로서의 문학과 상품으로서의 문학이라는 구분이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서는 희미해진 반면, 제도적 차원에서만 뚜렷하다”며 “특히 예술로서의 문학은 소규모 취미공동체 내에서만 유통되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손씨는 여기에 ‘교육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범주를 하나 더 보태는데 이는 근대문학 초창기에 계몽 또는 교양의 역할을 하다가 오늘날에는 홈쇼핑 방송에서 논술교재용으로 판매하는 동서양 고전처럼 상품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손씨에 따르면 공공적 성격이 강한 상품·교육으로서의 문학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자립하는 반면, 사적 활동인 예술로서의 문학은 정부지원에 의해 지탱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그렇다면 예술로서의 문학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손씨는 “문학의 정치성이라는 근대문학의 전제는 사라졌다”면서 그 대신 “2000년대 이후 문학의 종말을 둘러싼 음산한 풍문들 속에서도 수상한 활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지칭하는 작품은 편혜영·김애란·김숨·백가흠·김유진 등의 소설, 황병승·강정·장석원·김행숙·이장욱 등의 시이다. 이 작품들은 ‘분석자의 시선이 사라지고 피분석자의 언어만이 드러나 있는 것’, 즉 관찰·묘사·해석·대안 등 기존 문학적 관습에서 벗어난 것이다. 손씨는 여기서 미래 문학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인터넷 블로그와 같은 자발적 글쓰기, 공동체의 구성원이 하고 싶은 말을 작가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말하는 방향”이라는 전망이다.

한편 ‘젊은 시인의 전복적 언어’를 분석한 평론가 신형철씨(서울대 강사)는 2000년대 ‘뉴웨이브’라 명명된 시의 핵심이 ‘자아에 대한 발본적 반성’이라고 말한다. 이는 서정시와 생태시를 가능하게 했던 전인적 ‘자아’ 대신, 분열되고 해체된 ‘주체’가 시에 등장했다는 뜻이다. ‘죽을 때까지 어떤 이름으로도 불려지지 않으리’(황병승의 ‘시코쿠’), ‘토끼는 달리면서 자꾸만 토끼 아닌 것이 된다’(강정의 ‘들판을 토끼’) 등의 시구가 이런 경향을 반영한다. 신씨는 “‘정상’의 시선에서는 변태와 괴물, 환상과 엽기일지 모르지만 ‘금지에의 저항’이 아니라 ‘유혹에의 거절’만이 가능한 시대에 탈고백, 반계몽, 무질서가 갖는 전복적 미학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젊은 소설가의 전복적 서사’에서 평론가 심진경씨(서강대 강사)는 민족과 국경이 사라진 전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문학적 현실을 그려낸 소설로 강영숙의 장편 ‘리나’(랜덤하우스)와 한유주의 작품집 ‘달로’(문학과지성사)를 든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진 1990년대의 작가들이 인도·티베트·몽골·중국 등 해외체류경험을 통해 전(前)자본주의 사회의 정서를 그렸다면 강영숙과 한유주는 더이상 자본주의 아닌 곳이 없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학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심씨는 “강영숙의 주인공 ‘리나’는 단순한 탈북자가 아니라 세계의 여러 국경을 떠도는 이주자이며 한유주의 화자는 미디어를 통한 간접 경험, 기억에 대한 기억만이 가능한 신세대의 표상”이라고 밝혔다.(한윤정 기자)

06. 10. 26.

P.S. 컬쳐뉴스에서 실제 진행된 심포지엄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지난 2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관에서 개최된 계간 『실천문학』 심포지엄에서 손정수 문학평론가가 총론을 발표하고 있다

컬쳐뉴스(06. 10. 30) 한국문학의 '내파력'은 어디서 오는가?

편혜영, 김애란, 김숨, 강영숙, 백가흠, 황병승, 강정, 장석원 등 소위 요즘 잘나가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의 작품은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과 같은 전통적 문학 범주로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동시대 작가로서 공통된 경향성을 보이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문학에 따라다니는 공통된 수사가 있다. 바로 ‘전복적 상상력’이 그것인데, 기존의 문학적 형식이나 내용의 틀을 깨트리는 이 ‘전복적 상상력’은 2000년대 문학이 가진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계간 『실천문학』은 이번 겨울호 발간에 앞서 2000년대 한국문학이 지닌 이 같은 ‘전복적 상상력’을 보다 냉철히 성찰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0월 27일(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관에서 개최된 문학 심포지엄 ‘한국문학과 전복적 상상력’은 2000년대 문단에 제출되고 있는 시와 소설에서 발견되는 ‘전복적 상상력’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인가를 구체적으로 논하는 격론의 장이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총론 ‘한국문학의 전복적 상상력’과 소주제 ‘젊은 시인의 전복적 언어 읽기’, ‘젊은 소설가의 전복적 서사 읽기’로 진행됐다. 심포지엄 총론을 맡은 손정수 문학평론가는 「‘전복적 상상력’을 전복하는 상상력」이라는 발제에서 “2000년대 이후 문학의 종말을 둘러싼 음산한 풍문들 속에서도 시나 소설의 영역에서는 수상한 활력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이 새로운 경향은 귀족적이라고 비판되곤 하는 모더니즘 내러티브의 순수한 추상화를 향한 초월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의 길을 걷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최근의 문학 작품에서는 증상에 대한 처방이 아니라 증상만 드러나는 경우가 빈번하다”면서 때문에 “누구나 문학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인터넷 블로그와 같은 자발적 글쓰기의 형식은 미래적 글쓰기의 존재방식의 한 측면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결국 “기존의 문학 관념을 벗어난 곳에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놓여 있”으며, “문학의 현재적 존재방식 자체를 전복 혹은 변화시키는 상상력, 즉, 텍스트 차원의 ‘전복적 상상력’을 전복하는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토론에서 “문학의 전복성은 주변성이 아니라 중심의 가운데에서 그것을 해체하거나, 중심의 중심성, 척도의 정당성 자체를 뒤흔드는 혁명성에 있다”면서 “문학이, 문단이 제도화된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 글쓰기가 아마추어리즘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근래에 들어 문학의 새로움을 증명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이전의 원리들에 의거해 설정되고 있다”면서 “지금의 문학이 이전의 것과 다르다면 그리고 그 이전의 문학 역시 새로운 것으로 명명된 바 있다면, 지금의 새로움을 말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방식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젊은 시인의 전복적 언어읽기’를 분석한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2000년대 한국시의 뉴웨이브’에 대해 “새로워서 좋다”가 아니라 “좋은데 새롭다”고 전제하면서, “뉴웨이브의 핵심은 ‘나’에 대한 발본적 반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뉴웨이브”들을 “‘상투적인’ 서정시”들과 구분하면서 “그들은 ‘나’의 단독성을 보증해주지 못하는 세계에서 ‘자아’라는 헛된 정체성(동일성)과 작별”하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나’를 재확인하는 서정적 여행을 그만”두고, “‘나’의 진실을 찾아 비서정적, 탈서정적 여행을 떠난다”고 분석했다.

신 평론가는 “많은 사람들이 뉴웨이브의 시가 내용 없고 질서 없는 장광설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시 독자의 이반을 초래하고 있다고 걱정”하지만 “이 세상의 깨달음과 지혜라는 것들이 대개 엇비슷하게 닮아있다는 사실에 피로를 느끼는 독자들은 이들의 시에서 어떤 역설적인 가능성을 읽어내기도 한다”면서 “탈-고백, 반-계몽, 무-질서가 궁극의 미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분간 이 미학들의 전복성은 소진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한국 시단에 반향을 일으킨 권혁웅 문학평론가는 토론에 앞서 “미래파라는 말은 텅 빈 명명이자 일종의 여백”이라며 “이 여백을 통해 실재하는 것들의 자리가 조금이나마 드러난다면 그것으로 이 용어의 쓸모는 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황병승에게 이성복이 없었다면, 장석원에게 김수영과 황지우가 없었다면, 강정에게 함성호와 진이정이 없었다면 (중략) 이들의 출현은 훨씬 더 늦어졌을 것”이라면서 “이들의 시가 전복적인 것은 그 전대의 영향을 미묘하게 변형하고 비켜가고 극단화해서 마침내 새로운 차원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신형철 평론가가 ‘좋은데 새롭다’는 것을 마케팅 미학인 ‘새롭기 때문에 좋다’와 구분지어 명명한 것과 관련해 “좋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사용가치가 없다면 교환가치도 가질 수 없다”며 “발표자는 교환가치의 불모지인 문학마저 ‘새롭기 때문에 좋다’라는 마케팅 미학에 흡수된 양상을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젊은 소설가의 전복적 서사 읽기’에서 심진경 문학평론가는 민족과 국경의 경계가 사라진 전지구화 시대, 미디어 네트워크 시대의 새로운 문학적 현실을 그리고 있는 강영숙의 장편소설 『리나』와 한유주의 단편집 『달로』를 통해 ‘허공에서 글쓰기’라는 문학적 경향을 읽어낸다.

심 평론가는 “이들 소설의 인물들은 단일한 기원이나 정체성을 주장하기 보다는 세계를 스쳐지나가듯 여행하면서 유령처럼 희미하게만 존재한다”며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견인해왔던 현실적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공중부양하는 이들 소설에서 ‘허공’은 새롭게 발견한 문학적 공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허공에서 글쓰기는 다국적 기업의 논리가 지배하고 미디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경험하게 된 후기자본주의적 현실과 그리 멀지 않”으며, “바로 그 때문에 허공은 무중력의 탈현실적 공간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명철 문학평론가는 “『리나』는 근대적 경계로부터 발산되는 문제들에 맞서는 ‘포월의 서사’가 아니라 악무한의 현실로 빚어진 관념의 공간-국경을 넘는 ‘이월의 서사’에 자족할 뿐이며, 『달로』 역시 주체와 그 주위에 존재하는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시간의 물질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들이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났다면, 벗어난 이유들에 대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강민 문학평론가는 “모든 것은 매개된 기억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한유주의 소설은 과연 2000년대 소설의 새로운 희망일까?”라고 물으며, “2000년대 작가의 진정한 새로움이란 탈주체, 탈근대를 표방한 1990년대 미시서사의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 속에 새롭게 태어난 것일 수박에 없는데, 한유주의 경우 1990년대 문학의 연장선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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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6-10-2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정 시인 사진은 처음 보네요.
예전에 한번 본 '비행선'이라는 밴드의 보컬하고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보니 같은 사람이군요..;;
성기완 시인도 그렇고 참 다재다능한 사람들이네요

로쟈 2006-10-2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로만 버티기도 힘들다는 게 다재다능의 이면이 아닐까요...
 

한겨레의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번역가의 괴로움'이란 칼럼을 읽게 되었다. 제목 자체가 최근에 문제된 '대리번역' 파문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건 칼럼을 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가브리엘 마르케스 전문 번역가로 유명하다는(아마도 마르케스의 노벨상 수상에도 일조했을 듯싶다) 그레고리 라바사를 소개하고 있는 대목이다.

 

 

 

 

<백년의 고독> 혹은 <백년 동안의 고독> 영역본의 그의 작품이라는데(국내에도 여러 번역본이 출간돼 있다), 마시멜로보다는 라바사에 흥미를 느껴서 몇 가지 검색을 해보았다. 한겨레의 칼럼과 함께 재작년 뉴욕타임즈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0. 24) 번역가의 괴로움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의 대리번역 또는 이중번역 논란으로 모처럼 번역가들한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덕분에 번역가들의 어려운 처지도 약간 드러났으나, 아무래도 나쁜 인상이 더 클 것 같다. 굳이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번역가들이 주목받는 건 흔히 부정적인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서다. 독자들은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고 느낄 때나 ‘도대체 누가 번역했어’ 하며 이름을 확인하는 게 보통이다. 번역의 어려움을 알 만한 학자나 전문가들 사이에도 원전을 강조하고 번역서와 번역가를 낮춰보는 경향이 꽤 있다.

하지만 훌륭한 번역가가 문화에 이바지하는 바는 셈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 점은 미국의 유명 번역가 그레고리 라바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922년 쿠바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60년대 초부터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쓰는 작가 약 30명의 작품 60권 정도를 영어로 번역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남미 문학이 이렇게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70년에 번역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은 또하나의 훌륭한 창작품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 말엔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라바사에게도 번역은 쉽지 않은 작업인 듯하다. 책 전체를 미리 읽지 않고 읽어가면서 번역하기로 유명한 그는 지난해 쓴 회고록 <이것이 반역이라면>에서 번역을 모순적으로 규정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그저 ‘단어들을 따라가기’로 묘사하다가, 다른 대목에서는 ‘개인적인 선택에 근거한’ 아주 주관적인 작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만큼 번역은 미묘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독자들이 이런 어려움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만, 책을 잡을 때 ‘이름 없는 봉사자’인 그들을 한번 생각해주는 정도의 관심은 필요할 것이다.(신기섭 논설위원)

A Translator's Long Journey, Page by Page

By ANDREW BAST

Published: May 25, 2004

On Gregory Rabassa's crowded bookshelves is a first edition of "Rayuela," the experimental 1963 novel by the Argentine novelist Julio Cortázar. Mr. Rabassa had just finished his Ph.D. in Portuguese in the mid-1960's when an editor at Pantheon — who had noticed his work editing a failed literary magazine at Columbia University — asked him to translate Mr. Cortázar's book from Spanish into English. Without having read what has been called a "fiendishly esoteric" novel, Mr. Rabassa sat down and typed a draft in English, word by word. In 1967 Mr. Rabassa's work, titled "Hopscotch" in English, won the first National Book Award for translation.

"I've got 50 of them behind me," Mr. Rabassa said, reflecting in the Upper East Side apartment he shares with his wife, Clementine. He has a slight build and white hair that he wears like a crown. He is surrounded by novels written by literary giants like Jorge Amado, Mario Vargas Llosa, José Lezama Lima and Gabriel García Márquez, the original Spanish or Portuguese edition beside his published English translation.

Now, at 82, Mr. Rabassa is finally going to publish his own first full-length book, "If This Be Treason: Translation and Its Dyscontents," a playful reflection on his life's work that New Directions is planning to bring out next spring.

"My thesis in the book is that translation is impossible," Mr. Rabassa said. "People expect reproduction, but you can't turn a baby chick into a duckling. The best you can do is get close to it."

If that is true, then Mr. Rabassa has gotten about as close as one can. He is widely considered one of the greatest practitioners of his craft. "Rabassa's great gift is to find the music in English that is true to the language of a wide range of writers in Spanish," said Dan Simon, the founder of Seven Stories Press, which has published some of Mr. Rabassa's translations. "Had Rabassa become a diplomat or brain surgeon, we could easily imagine not having readable translations of Cortázar and García Márquez."

Yet for all the accolades, translation is still a difficult and poorly understood art. Often the translator's name will not even appear on the cover of the book, Mr. Simon said, yet "a poor translation of a text kills it in the market."

Walter Benjamin, the German literary critic, once wrote, "No translation would be possible if in its ultimate essence it strove for likeness to the original."

Mr. García Márquez has said that Mr. Rabassa read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sat down and then rewrote it in English. (He also said that Mr. Rabassa's translation improved on the original.)

But Mr. Rabassa contends that rewriting is not at all what he does: "I'm reading the Spanish, but mostly I'm reading it in English, and it comes out that way.

"When I talk about it, I say the English is hiding behind his Spanish. That's what a good translation is: you have to think if García Márquez had been born speaking English, that's how a translation should sound."

In the case of Cortázar, Mr. Rabassa developed a relationship with him, and they became good friends, spending days and nights listening to 78's of Count Basie and Lester Young. Mr. Rabassa translated Luis Rafael Sánchez and lounged with him on the beaches of Puerto Rico. And after translating "Seven Serpents and Seven Moons" by Demetrio Aguilera-Malta, a former Ecuadorian ambassador to Mexico, he ended up with one of the author's paintings hanging on his apartment wall.

Yet Mr. Rabassa has also produced brilliant translations without developing any relationship with the author. Jorge Armado and Mr. García Márquez wanted nothing to do with their books in English.

Mr. Rabassa said he typed his translation of Mr. García Márquez's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page by page, just as he did with Cortázar's novel. Yet unlike his blind excursion with "Hopscotch," Mr. Rabassa had already read Mr. García Márquez's magical epic about the Buendía family, before he tried the translation. "I knew it was a damn good book, but it wasn't as much fun knowing all about it," he said.

Sitting in his armchair, nibbling on a greek pastry, Mr. Rabassa explained that titles pose their own challenge. He translated the 19th-century Portuguese classic "Memórias póstumas de Bráz Cubas" by 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which literally means "The Posthumous Memoirs of Brás Cubas." When Noonday Press issued the novel with the title "Epitaph of a Small Winner," Mr. Rabassa complained.

"You don't mess around with a classic," he said. "That's like calling `Madame Bovary' the story of a middle-class adulteress." (Oxford University Press published the book with Mr. Rabassa's translated title in 1997.)

Half of Mr. Rabassa's book will consist of reflections on each of the many authors he has translated, and half will be a memoir of how he ended up as a translator. The epilogue, he said, will be printed unfinished, as "translation is never finished."

Mr. Rabassa was born in Yonkers in 1922. His father was a Cuban sugar broker, but, he said, "the old man didn't speak much Spanish around the house." The young Mr. Rabassa studied French and Latin in high school; then at Dartmouth, he said, he "began collecting languages." There he studied Portuguese, Russian and German. In conversation, his voice wanders seamlessly among the five he still speaks.

"I'd dabbled in Italian," Mr. Rabassa said. "But then I bought a beautiful edition of Dante. I used Spanish and Portuguese — they're so similar to Italian — as I went along, substituting the real Italian words, and finally I was talking Italian."

In 1942 Mr. Rabassa volunteered for the Army and, because of his language skills, ended up in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Mr. Rabassa translated encryptions, or what he called English into English, and he also conducted interrogations.

When he returned to the United States after spending time in Italy and Northern Africa, Mr. Rabassa lived on Morton Street, watched Charlie Parker play in Greenwich Village and wrote poetry. He studied for his master's in Spanish at Columbia, then, tired of the language, kept on with his studies but finished his doctorate in Portuguese. At a cocktail party Mr. Rabassa met an administrator at Queens College and he ended up being hired as a professor there. He still teaches the freshman lecture course Hispanic Literature in Translation.

"When I began teaching," he said, "I was the same age as my students, and I still labor in the delusion. So it's a good, youthful operation."

Mr. Rabassa says that although he is translating a new generation of Hispanic writers, little has changed since he translated the giants. Despite the differences in writing styles, the way he approaches the text is essentially the same.

"They're all so different, the ones I did," he said. "I think it works because I don't think I have a translation style. It's a positive feeling I have about them. I find a lot of instinct in what I do. You have to just hit it right. I'm never sure whether something is right, but I know damn well when something is wrong."

0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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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ournelle 2006-10-24 01:48   좋아요 0 | URL
* 퍼 갈께요...요즘 정지영씨와 관련되어 있는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맘이 찹작함을 많이 느끼는데, 괜찮은 글인 것 같습니다.

이네파벨 2006-10-24 10:11   좋아요 0 | URL
저도 퍼갈께요...고맙습니다.

sommer 2006-10-24 17:29   좋아요 0 | URL
익명의 내면성을 외재화하는 게 번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마치 헤겔의 변증법을 외재화된 자기 의식으로 귀환하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고찰로 파악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기인 2006-10-24 21:46   좋아요 0 | URL
저도 퍼갑니다. 공익하면서는 번역 알바나 할까 생각중인데, 페이와 노고를 대비해보면 정말 답 안나오는 일이기도 해서... 고민중입니다. 다시 사교육계에 투신(?)해야 하나 하고 ㅠㅜ

로쟈 2006-10-24 23:00   좋아요 0 | URL
호의적인 반응들을 보여주셔서 다행입니다. 번역, 더 나아가 '좋은 번역'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대우가 좀 달라져야 한다는 지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계몽'에 가장 긴요한 수단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