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면서 재작년 이맘때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을 했던가 잠시 둘러보다가 '두 개의 서평에 대하여'란 페이퍼에 눈길이 머물렀다. 모스크바통신에 올렸다가 지금은 비공개로 돌렸던 것인데, 이미지 버전으로 정리해서 창고에 넣어두도록 한다. 바로 언급이 되지만, 제목의 두 서평은 각각 이언 와트의 <근대 개인주의 신화>와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 관한 것이다. 그럼 2년전 가을로 되돌아가보도록 하겠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카피해온 두 개의 서평에 대해서 몇 마디 참견하도록 하겠다. 하나는 이언 와트의 <근대 개인주의 신화>(문학동네, 2004)에 대한 쿤데라님의 서평(다음카페 ‘비평고원’)이고, 다른 하나는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2002)에 대한 발마스님의 서평(‘알라딘’)이다.

특별히 두 서평에 대해서 참견하는 것은 이 책들이 현재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전자는 최근에 내가 읽고 싶어한 책이며, 후자는 최근에 다시 읽고 있는 책이다). 서평들은 내게 유익했던 만큼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대목들을 포함하고 있었는바, 그에 대해서 몇 마디 하고자 하는 것. ‘-’로 시작하는 문단은 인용이며(인용문의 오타들은 교정했으며, 필요에 따라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를 단 건 참견의 말들이다). 먼저, 쿤데라님의 서평을 따라가 본다.

-<소설의 발생>으로 유명한 영문학자인 이언 와트의 책 <근대 개인주의 신화>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유용한 교양서다. 즉 이 책은 특별한 문학수업을 받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심지어는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작품들, 말로/괴테의 <파우스트>, 티르소의 <돈 후안>,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지 않은 사람도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저자가 작품 줄거리까지 제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저자는 전통적인 아카데미 학자인 것 같다. 그 이 책의 말미에서 대중매체에 의해 저하되고 있는 독서인구에 대한 한탄하고 있다. “ 이 점은 대학교수로서의 나의 경험에 비춰보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학생들이 매우 유명한 책들 - 이를테면 <돈키호테>나 <로빈슨 크루소> - 을 당연히 읽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누군가 그 책을 읽었다면 다른 강의에서 그 책을 다루었기 때문인 것이다.”(384쪽)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바로 이런 세대들을 위한 책인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엔 어떤 순진함,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가 아무리 중요성을 설파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돈키호테> 따위는 읽지 않을 것이다(*쿤데라님이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의 이문열 옹호론에서도 알 수 있는 바이지만, 사람들이 너나없이 <돈키호테>를 읽는 분위기였다면 쿤데라님은 거꾸로 <돈키호테> ‘무용론’을 들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런 것이 소위 ‘키호테주의’일 것이다).



 

 

 

-<돈키호테>를 읽지 않더라도 대학원 과정을 마칠 수 있으며, 비평가가 될 수 있으며, 문학박사학위도 받을 수 있다(*쿤데라님이 굳이 억울할 일은 무엇인가?). 그런데도 이언 와트는 근대문학의 대표적 네 유형을 마치 대단한 가치가 있는 유산처럼 다루고 있다. 그의 조급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그럼에도 쿤데라님 또한 “고전을 읽자!”는 모토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조급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안쓰럽다. 거기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어떤 순진함과 시대착오이다. 거꾸로, 필요한 사람은 다 읽으며 읽기 마련이다. 쿤데라님이 굳이 안쓰러워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 책의 원제는 'Myths of Modern Individualism'이다. 흔히 하는 식으로 번역하자면, <근대 개인주의의 신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자들은 <근대 개인주의 신화>라고 번역했다. 따라서 ‘근대의 개인주의 신화’로도 읽힐 수 있으며, ‘근대 개인주의의 신화’로도 읽힐 수 있다. 또 ‘근대’ ‘개인주의’ ‘신화’라는 키워드의 나열로도 볼 수 있다. 내 생각에,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어느 쪽으로 읽어도 무방하며, 어느 것을 선택해도 의미 차이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액센트를 문제 삼는다면, 당연 중심은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놓여진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주의’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은 19세기(다시 말해 낭만주의 이후)이다. 물론 단어상의 의미로 볼 때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도 개인주의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근대의’ 개인주의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어 자체가 근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근대(Modern)’를 붙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여긴 그냥 넘어가도 될 듯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 중에 <나의 개인주의>라는 유명한 강연문이 있다(*최근에 번역/소개된 걸로 안다). 여기서 소세키는 ‘개인주의’란 말을 사용하면서, 이 단어를 이기주의와 같은 것으로 혼동하지 말하고 주의를 주고 있다. 그가 이런 주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본래 ‘개인주의’가 어떤 ‘경멸적/비하적’ 단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기록상 ‘개인주의자’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반동적 가톨릭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라고 한다. 그는 혁명적 민주주의의 지적 분위기를 깎아 내리기 위해 이 단어를 썼다.

-왕당파였던 발자크도 ‘개인주의’를 경멸의 뜻을 담아서 사용하였으며, 벤야민이 <파사젠베르크>에서 높이 평가한 초기 공산주의자 블랑키 역시 마찬가지다(*<파사젠베르크>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번역돼 있다). 이와 같은 단어사용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것은 토크빌에 와서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하여>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우리말 번역은 <미국의 민주주의> 아닌가? 아마도 쿤데라님은 일역본을 읽은 듯하다). 왜냐면 개인주의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반-전통적 입장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감탄한 미국 민주주의가 개인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점 역시 (*그는) 인식하고 있었다.

 

 

 



-‘개인주의’와 마찬가지로 ‘신화(myth)’ 역시 낭만주의 이후의 용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린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특정 신화체계 전반을 가리키는 단어인 ‘mythology’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화’는 사회를 지탱하는 무의식 체계를 의미한다. ‘신화’는 오늘날 별로 인기가 없다. 이를테면 아도르노(<계몽의 변증법>)나 롤랑 바르트(<신화론>)는 ‘신화’가 자본주의적 상부구조의 허위성을 떠받치고 주고 있다고 비판한다(*바르트의 <신화론>의 원제는 ‘Mythologies’이며 <현대의 신화> 등으로 번역돼 있다. 바르트는 myth와 mythology를 혼동하고 있다!). 그런데 와트나 투르니에는 이와 정반대의 의견을 한다. ‘신화’가 사회에 대한 개인의 저항을 담보하고 있다고 말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서로 핀트가 다를 뿐이다. 이언 와트나 미셸 투르니에가 긍정하려는 ‘신화’는 주로 문학적 범위에 국한된다(*문화현상 전반에 대한 기호학적 ‘신화’비평을 가하고 있는 바르트는 그렇다 치고, 아도르노의 경우는?).

-이언 와트가 근대의 대표적인 신화로 드는 것은 파우스트, 돈 후안, 돈 키호테,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다. 여기서 우린 시대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로빈슨 크루소 대신 햄릿을 넣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근대적 인물의 두 가지 유형으로 돈 키호테형 인물, 햄릿형 인물로 구분하지 않았던가(*1860년쯤의 한 강연에서였다. 강연문 <햄릿과 돈키호테>는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한 ‘세계 에세이선집’에). 하지만, 그(와트)는 햄릿이 유명한 것은 그의 영향력이나 대표성에서보다는 순전히 ‘문학적인 측면’에 의한 것이라고 거부한다(이는 투르니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네 신화 대부분(로빈슨 크루소만 빼고)이 반종교 개혁 시기에 탄생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그것은 개인성을 발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르네상스와 그것의 왜곡인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에서 찾는다. “반종교개혁 사상가들에게 주로 문제가 된 것은 르네상스의 긍정적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합당하지 않다는 현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르네상스의 가치를 계속 추구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환멸감에 빠지거나 혼란상태에 귀착한다는 것이 문제였다.”(189쪽)

-그 증거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개인적 욕망에 의해 모두 ‘벌’을 받는다는 것에서 찾는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언 와트에게 있어 반종교개혁은 종교개혁의 반대라기보다는 종교개혁을 과격화를 의미한다. 참고로 마녀사냥이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중세가 아닌 바로 이때(종교개혁 이후) 집중적으로 행해졌다는데, 독일에선 루터파가 이를 주도했다. 파우스트는 실존인물로 악마라기보다는 광대나 사기꾼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루터가 그를 악마와 연관시켰고, 그 후 파우스트는 루터적 편견에 따라 구성되어 갔으며 오늘날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파우스트 형상이 완성되었다. 역으로 말하면, 악마와 타협하는 파우스트는 루터가 만들어낸 형상에 다름 아닌 셈이다(*맨마지막 주장은 와트의 것인지 쿤데라님의 것인지 모호하다).

-이와 같이 독일에서 형성된 파우스트(<파우스트 서>)는 영국으로 건너가 크리스토퍼 말로에 의해 <파우스트 박사>라는 희곡으로 재탄생한다(*말로의 원작이 <파우스투스 박사>인 듯하지만, <파우스트 박사>로 통일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막연히 떠올리는 파우스트 이미지는 괴테의 것이 아니라, 말로의 것이다. 말로에 의해 파우스트는 고뇌하는 개인주의자로서의 모습을 갖춘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언 와트가 말로의 파우스트가 탄생할 수 있던 것을 당대 ‘교육의 문제’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16세기는 대학들 갑자기 증가한 시기이다. 영국의 예를 들자면 30년 간(1560년-1590년 사이) 입학생의 수가 무려 3배나 증가했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대학생 실업자 문제)는 오늘날에도 능히 짐작 가능하다. 대학이 부여한 기대치와 사회가 제공하는 빈약한 실현 사이의 간극이 사회에 대해 적대감을 품게 되었고(따라서 홉스는 어딘가에서 “반역의 핵심은 대학이다”라고 썼다), 그것이 바로 파우스트에게 반항/고뇌하는 형상(환멸)을 부여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와트에 의하면, 어떤 ‘사회적 잉여’가 파우스트적 형상을 낳았다는 것이다. 고학력의 ‘파우스트-백수들’! 참고로, 푸슈킨도 <파우스트의 한 장면>이란 아주 짤막한 ‘드라마’를 썼는데,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대화 장면으로만 구성돼 있다. 파우스트와 돈 후안은 푸슈킨의 대표적인 자기-이미지이다).

-이언 와트는 파우스트 분석에 이어 돈키호테를 분석한다. 하지만 그의 돈키호테 분석은 파우스트 분석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그의 능력부족이라기보다는 <돈키호테>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완결성(완벽성)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파우스트 신화나 돈 후안 신화는 <파우스트 서>나 티르소의 <돈 후안> 이후에도 새로운 버전으로 읽을 만한(괜찮은) 작품들이 창작되어 나왔으나(말로 <파우스트 박사>, 괴테의 <파우스트>,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몰리에르 <돈 주앙>, 소리야 <돈 후안 테노리오> 등), <돈키호테>에는 그런 쓸 만한 아류작이 존재하지 않는다. 투르니에는 ‘소설 주인공’은 ‘소설가’보다 유명하지 않으나 ‘신화적 주인공’은 ‘작가’보다 유명하다고 주장하고 이언 와트도 그에 동조하지만, 적어도 <돈키호테>만큼은 그렇지 않다.

-세르반테스는 꼭 돈 키호테만큼 유명하다. 이로 인해 그의 꽤 괜찮은 다른 작품들이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말이다. 이언 와트는 쩔쩔매면서 돈키호테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무리한 숙제를 해결하려고 끙끙대는 아이처럼. 사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있는 동안만큼은 그가 안쓰러웠다(*쿤데라님이 또다시 안쓰러워하는 대목인데, 그의 <돈키호테론>을 기대해봄 직하다). 그는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한 과도한 추상화를 거부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그것이 성공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돈키호테>는 완전히 이해 불가능한 경의의 책이다(*‘경의’는 ‘경이’의 오타일 듯하다). 헤르더는 평생 <돈키호테>를 연구했다고 한다. 이점에서 <돈키호테>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은 단테의 <신곡> 정도일 것이다.

-참고로, 이언 와트는 세르반테스의 후계자로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백치>)를 들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심판의 날에 이승에서의 삶을 이해했는지 또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돈키호테>를 내놓으며 이것이 삶에 대한 나의 결론이라고 말할 생각이다.”(*참고로, 투르게네프가 계속적으로 시도한 것도 돈키호테적 인물을 자신의 소설에서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에서의 바자로프도, 적어도 서두에선, 돈키호테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비록 햄릿적인 인물로 죽게 되지만.)

-다음은 돈 후안에 대해서다. 많은 사람들의 편견 중 하나는 돈 후안이 파우스트처럼 민중설화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티르소의 돈 후안은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창조해낸 것보다 더 창조적인 인물이다. 즉 티르소라는 개인이 창작해낸 인물이다. 이는 장 루세의 <돈 주앙의 신화>만 읽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설화와 유사성을 문제삼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부분(사자(死者)에 대한 조롱과 사자의 방문)뿐이다. 단적으로 말해 거침없는 난봉꾼으로서의 돈 후안은 티르소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인물이다(*내가 알기에 티르소의 ‘공적’은 ‘돈 후안’과 ‘죽은 자의 조롱/방문’이라는 두 가지 신화소를 ‘결합’시켜놓은 것이다. 즉,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티르소의 ‘돈 후안’은 <돈 후안+석상손님>이다. “거침없는 난봉꾼으로서의 돈 후안은 티르소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인물이다”는 와트의 견해인지 쿤데라님의 견해인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동의할 수 없는 견해이다. 돈 후안이 “티르소라는 개인이 창작해낸 인물”이라면 ‘돈 후안’은 ‘신화’가 아니다.)

 

 

 



-이점에서 이언 와트의 티르소의 돈 후안 분석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몰리에르의 <돈 주앙>에서는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알렌카 주판치치의 말대로 그것은 돈 후안의 가장 세련된 판본일지 몰라도 가장 재미없는 판본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돈 후안 판본은 티르소의 것과 소리야의 것이다(푸슈킨의 것은 너무 짧아 재미니 내용이니 논할 게 없다). 돈 후안에 대해서는 이언 와트의 이 책과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쿤데라님의 개인적인 취향에 대해서 참견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조만간 쿤데라님이 스페인어책을 들고 다니는 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푸슈킨의 것은 너무 짧아 재미니 내용이니 논할 게 없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라는 걸 밝혀둔다. 푸슈킨은 이미 ‘고전’이기 때문에, 그의 텍스트 역시 짧아도 텍스트-무한이다. 그리고, ‘간명함’이란 건 거의 푸슈킨의 시학적 원칙이며, <석상손님>은 그래도 ‘소비극’ 중 가장 긴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조만간 올리도록 하겠다. 참고로 푸슈킨의 <석상손님>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돈 후안이 ‘시인’이라는 점이다. <석상손님>의 국역은 <보리스 고두노프> 등에 수록돼 있다).

-사실 몇 달 전 돈 후안에 관한 글을 쓰고자 여러 작품들(티르소, 몰리에르, 푸슈킨, 소리야, 버나드 쇼, 막스 프리쉬 등의 작품)과 장 루세의 연구서를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왜 포기하셨을까 궁금하면서 또한 아쉽다. 재미있는 글이 나왔을 듯한데 말이다. 한편으로 장 루세의 연구서 <돈 주앙 신화>(1978)는 아직 우리말로도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일역본으로는 나와 있는지?) 하여튼 이언 와트의 설명으로 돌아오면 그의 돈 후안 해석 중 한 가지 주목할 게 있다. 그것은 돈 후안의 방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죄의식의 부재에 대한 설명이다. 어떻게 해서 돈 후안은 아무런 죄의식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일까?



-여기서 이언 와트는 말로의 <파우스투스 박사>를 설명할 때와 연관지을 수 있는 설명을 한다. 그것은 돈 후안이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저는 아직 청년입니다” (티르소,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손님>(번역서 제목: <세빌랴의 난봉꾼 석상에 맞아죽다)>, 김창환 옮김, 울산대학교출판부, 24쪽)(*또 다른 번역본은 <돈 후안 –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안영옥 옮김, 서쪽나라, 2002이다). 다시 말해 돈 후안이 죽음(그리고 그로 인한 심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과 심판은 믿고 있었지만, 그것이 오래 동안 지연되리라 믿었기 때문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방탕할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언 와트는 <돈 후안>이 사기꾼(방탕아)과 ‘유예된 응보’를 두 축으로 삼고 석상을 통해 이 둘을 연결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참고로, ‘돈 후안’ 신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분석으로는 James Mandrell의 'Don Juan and the Point of Honor: Seduction, Patriarchal Society, and Literary Tradition'(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2)가 자세하다. 나는 티르소의 <돈 후안>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는데, 자잘하지만 한국어본과 다른 대목이 많아서 좀 당혹스럽다).



-그럼 여기서 우린 잠깐 다른 스페인극과 <돈 후안>을 비교해 보자. 황금기 스페인극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건의 중심이 ‘명예’에 걸려 있으며, 그것은 자주 딸을 보호(여성의 정절을 지켜주기)하는 아버지(가족)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린 칼데론의 <살라메아 시장>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돈 후안 역시 당대의 인물들처럼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사실 그가 석상의 초대를 받아들인 것(그로 인해 그는 결국 지옥에 떨어진다)은 ‘명예’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그의 명예가 공동체(가족)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그는 타인(가족)의 명예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무참히 짓밟기까지 한다), 오직 자신하고만 관계한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돈 후안은 ‘청년’이면서 아직 ‘어린애’이다).

-돈 후안은 말로의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청년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며 기존 사회체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악마와 결탁하거나 방탕에 몸을 맡기거나 한다. 하지만 아직 젊기 때문에 심판(형벌)이 무한한 지연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도덕이 사회체제를 유지시키는 바탕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도덕적으로 ‘무(無)’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언 와트는 파우스트, 세르반테스, 돈 후안을 함께 평가하면서, 이 세 사람 다 편집광적 인물들로 집을 떠난 방랑자(유목민)이며, 이들에게 가정사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며, 그들과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인물로 하인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수긍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 말로의 파우스트와 티르소의 돈 후안이 청년인데 반해, 돈키호테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또 파우스트와 돈 후안의 마지막 장면(신성모독에 의한 징계)과 돈키호테의 마지막 장면(임종)은 전혀 관계가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결론은 설득력이 없다. “이들 세 주인공의 상징적인 최후의 형벌은 반종교개혁 세력이 르네상스 개인주의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려 한 재미없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최소한 티르소, 세르반테스, 말로 모두 고난과 역경을 겪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모두 외로운 인간이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소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자신의 주요 작품에서 결국 실패하고 마는 개인주의의 상징이 되는 영웅을 생산해 냈다.”(201쪽)(*개인주의의 실패는 적어도 ‘돈 후안’에 대한 비평으로서는 유효하다.)

 

 

 



-다음은 <로빈슨 크루소>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 그다지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애당초 이언 와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 작품 년대가 비슷한 <햄릿>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야 좀더 일관성 있는 설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로빈슨 크루소>를 분석한 후(<소설의 발생>도 이 소설에 대한 분석이다), 그에 대한 패러디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과 비교한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분석이지만, 나에게는 좀 따분했다. 대신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견해에 대해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괴물 같은 작품이다. 거기엔 우리가 생각하는 파우스트도 메피스토펠레스도 없다. 축약본이나 공연되는 연극에서는 분량을 이유로 많은 부분을 줄이는데, 그리고 나면 괴테의 파우스트가 아니라 말로의 파우스트가 된다. 해서 이언 와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한번도 괴테 같은 타고난 천재성을 누린 적이 없다. 오히려 괴테에 대해 짐짓 아이러니한 난색을 표하는 츠베탕 토도로프에 동의한다. “괴테를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이 발언을 좀 덜 일반적이면서 동시에 좀더 정당한 것으로 하기 위해선 어쩌면 ‘오늘날에는’이라든가, ‘게르만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고선’이라든가, 아니 어쩌면 훨씬 더 겸손하게 ‘나로서는’ 같은 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근대 개인주의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이유는? 물론 그것의 엄청난 인기 때문이다.”(293쪽)

-나는 이언 와트의 솔직한 표현에 공감을 표하고 싶다. 솔직히 파우스트나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인물에 중심점을 두고 읽으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그야말로 따분하기 그지없는 책이다. 그들을 둘러싼 사건들은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이는 파우스트의 구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래 전 루카치가 분석했던 것처럼(그리고 그 관점을 이어받은 모레티의 분석처럼) 이 책을 자본주의의 서사시로 읽는다면 사태를 달려진다. 물론 이언 와트도 이런 점들을 잘 알고 있고 또 그에 대해 언급도 하고 있다(296-297쪽). 하지만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기억하자. 이언 와트의 이 책은 파우스트라는 신화적 존재에 대한 분석임을.



 

 

 

-이제 마무리를 해보기로 한다. 이언 와트의 이 책은 4명의 근대적 인물을 분석하고 있는데, 그가 무게중심은 르네상스의 좌절(그리고 그로 인해 환멸감)에 놓여있다. 그런데 이 환멸감은 그 뒤를 잇는 로빈슨 크루소를 거치고 루소의 <에밀>이나 괴테와 <파우스트>에 이르러 어떤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데, 징벌적 결론은 사라지고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상태’는 도덕적 판단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수단이 찬양을 받고(루소), 파우스트는 자본가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사회구조에 적대적이었던 젊음은 사회진보의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덧붙이자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루소의 크루소 ‘고독’ 해석이 가진 함의다. 루소는 4대 신화적 인물이 가진 ‘무절제(방탕/광기)’라는 문제를 ‘교육’이란 문제로 바꾸어 놓고 있다).

-이후 현대 작품으로는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와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언급된다. <파우스트 박사>는 이전 모든 파우스트 판본(특히 최초의 판본인 <파우스트 서>)을 패러디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토마스 만은 기막힌 뒤집기를 시도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역할을 바꾸는 것이다. 냉소주의자는 아드리안이고, 악마야말로 낭만적 낙관론자의 형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제레누스라는 화자를 내세워 새로운 서사층위를 구축해 내고 있다.

-투르니에 역시 디포의 소설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그 전복의 강도로 말하자면, 정말 놀라울 정도다(들뢰즈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하지만 이언 와트는 일정 정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왜냐면 투르니에가 프라이데이와 크루소의 역할 바꾸기에는 성공했지만, 디포와 마찬가지로 프라이데이의 ‘내면’은 여전히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를 떠나길 거부하는데, 이는 프라이데이의 교육적 효과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청춘’(379쪽)이라는 디포적 명제 밖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이언 와트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투르니에의 크루소는 진정한 1960년대식 낙오자 영웅이다”(381쪽)

-<근대 개인주의 신화>는 아카데믹한 영문학 연구자의 냄새가 나는 책이다. 친절하지만 규범적이고, 솔직하지만 그뿐이다(*‘아카데믹하다’는 게 ‘친절하고 솔직하다’는 뜻인가?!). 하지만 근대문학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 그것도 네 명을 어떤 연관 속에서 한꺼번에 다루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책은 실제작품들을 읽기 위한 교양서(개론서)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실제작품은 읽고 나면 이 책의 가치는 빛을 잃을 것이다(*“네 명을 어떤 연관 속에서 한꺼번에 다루었다는 점”의 가치는? 구슬이 너 말이라도 꿰어야…). 그러나 실제작품을 읽을 시간이 없거나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럴듯한 교양을 축적하기에는 최상의 책이다(*쿤데라님의 ‘고전주의자’는 ‘그럴듯한 교양주의자’인 것인지?).

(*)쿤데라님의 긴 서평을 길게 인용한 것은 <근대 개인주의 신화>를 한번쯤 읽어보시라는 뜻에서이다(나는 서울에 돌아가서야 읽게 되겠지만). “그럴듯한 교양을 축적하기는 최상의 책”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책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 독일어권 교양서 <교양>만큼 팔려나갈/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더불어 이언 와트의 출세작 <소설의 발생>도 재출간되었으면 한다. 하긴 거기에서 다뤄지는 책들이 먼저 번역/소개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책의 서두에 나오는 리처드슨의 <파멜라>을 원서를 조금 읽다가 만 경험이 있다(가끔 그토록 많은 영문학도들이 다 어디에 소용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절판된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도 굳이 헌책방을 순례하지 않아도 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처지는 “실제작품을 읽을 시간이 없거나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품을 읽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다. 왜? 없으니까!.. 이어서 발마스님의 서평(이건 길지 않다).

-남한에는 두 종류의 지젝 독자들이 있다(*북한에는 세 종류가? 서두에서 알 수 있는 바이지만, 발마스님의 서평은 지젝에 대한 ‘삐딱하게 보기’이다. 그것도 ‘취향’이긴 하지만, 나로선 그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진다). 한 부류의 독자들은 대중문화를 다루는 지젝의 절묘한 솜씨에 매료되어 있다. 사실 정부와 학계, 산업계와 언론계가 한 목소리로(이는 참 보기드문 일이다. 그러나 정말로?) 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이고, 우리의 살 길은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데 있다고 소리 높여 합창하는 시기에.

(*)그러니까 발마스님은 ‘문화산업’에 대해서 비판적이며), 지젝은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문화적 소비대상이자 벤치마킹의 모델일 수밖에 없다(*지젝은 ‘문화산업’과 아주 궁합이 잘 맞는 관계로 좀 의심스럽다, 라는 게 발마스님의 견해인 듯하다. 그러나 정말로? 지젝이 정말로 매력적인 ‘문화적 소비대상’으로 너나없이 읽히고 있는지? 그런 소비대상으로라면 지젝을 뺨치고도 한참 남아도는 ‘알튀세르’나 ‘푸코’ ‘들뢰즈’ 등은?)

-난해한 독일 관념론 철학과 라캉의 이론이 발하는 아우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자상하게 문화를 향유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학계여 지젝을 본받으라! 그리고 이미 지젝을 흉내내고 해설서까지 쓰는 학자들까지 생겼으니.

(*)내가 알기로 <잉여쾌락의 시대>의 저자 정도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어떤 ‘학자들’이 더 있는 것인지? 사실 지젝을 흉내내는 이들보다는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게 우리의 ‘학계’가 아닌가? ‘데리다’까지도 그저 쓸데없이 ‘난해한 철학자’ 정도로 치부되는 게 우리의 ‘학계’ 아닌가?), 남한의 문화산업은 전도가 양양하다(*‘지젝 따라하기’ 정도로 “남한의 문화산업”이 전도가 양양하다면, 이건 국가정책적으로 추진할 만한 일이다. 지젝의 책 몇 권이 번역되고, 방한해서 초빙강연 몇 번하고, 일부에서 ‘아, 지젝!”하는 현상과 남한의 문화산업이 어떤 관련성을 갖는다는 건지 나로선 헤아리기 어렵다. 문화계나 문화산업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지젝을 읽기라도 한다는 건지?).

-다른 부류의 독자들은 전자와는 정반대로(그러나 정말로?) 지젝에서 급진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젝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는 달리 주체를 일방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무의식의 주체’를 주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알튀세르와 달리, 이데올로기를 "과학과 대립하는 것"으로 사고하지 않고(알튀세르에 관한, 정말로 지긋지긋한 영미식 토포스다! 이거야말로 이데올로기 그 자체다),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는 무의식적인 장소(또는 이데올로기의 실재계적 공백)을 발견하여, 이데올로기론을 새로운 정점으로 끌어올렸다고 한다(브라보!). 어떤 부류의 독자들이 진정한 지젝의 독자들일까? 전자일까 후자일까? 그런데 이런 질문이 의미가 있기는 있는 것일까?

(*)발마스님은 알튀세르의 토포스에 대해서는 정말로 지긋지긋해하면서 지젝에 대한 토포스에 대해서는 환호해마지 않는다. “브라보!” 그리하여, 지젝에 대한 ‘삐딱하게 보기’는 이제 지젝의 독자들에 대한 ‘삐딱하게 보기’로 전이되었는데, 나는 그런 식의 ‘무의미한’, 더불어 ‘감정적인’ 문제제기가 왜 필요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나는 왜 역자가 제목을 이렇게 번역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오역도 바로잡을 겸 재판을 찍을 계획이 있다면, 그 때는 그 이유를 꼭 알려주었으면 고맙겠다)은 지젝의 원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이다.

(*)<이데올로기가>의 지젝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그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말은 맞다. 그렇다면 그 ‘원형’이란 무엇인가? 이하의 내용에 따라면 (1)(헤겔과 라캉에 통달한) 전문학자로서의 지젝, (2)(이데올로기) 이론가로서의 지젝, (3)(대중문화) 분석가로서의 지젝, 세 가지이다. 그러니까 <이데올로기>는 세 가지 모습의 지젝이 모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셋의 총합이 지젝이다. 비록 ‘전문학자’와 지젝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런데, 발마스님에 따르면 이 셋의 만남은 좀 문제가 있는 듯하다. 그건 조금 뒤에 결론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헤겔을 비롯한 독일관념론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통달해 있는 전문 학자로서의 지젝의 면모가 있다. 실제로 그는 헤겔과 정신분석학으로 각각 학위를 하는 보기 드문 지적 인내심을 보여주었다(그런데 왜 자크-알랭 밀레는 지젝의 논문을 자기 총서에 출판해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그는 지젝을 자기 오른팔처럼 생각하는 걸까?).

(*)약간의 착오가 있는데, 지젝은 헤겔이 아니라 하이데거로 철학학위를 했다. 비록 그가 언제나 들먹이는 건 헤겔이지만. 그리고 두 가지 학위를 하는 게 ‘보기 드문 인내심’의 결과인지? 발마스님도 내용을 알 만한데, 지젝은 철학박사 학위를 하고서 ‘백수’로 있다가 슬로베니아로 초빙강연을 온 밀레의 초청을 받아서 파리로 건너간다. 자신의 고백대로, 바로 ‘취직’되었다면 ‘보기 드문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도 없었다. 밀레와 지젝의 사이가 어떤지 나로선 알지 못하며 크게 궁금하지도 않지만, 밀레의 총서에 지젝의 논문이 출간되지 않는다는 것과 ‘전문학자’ 지젝 사이에는 어떤 관련(혹은 결락)이 있다는 것인지? 밀레가 지젝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인지? 미심쩍은 지젝?)



-그리고 이런 지적 토대에 기초하여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자신의 이론적 과제로 제시하는 이론가 지젝의 모습이 있다. 이 과제는 푸코와 하버마스 사이의 근대성 논쟁의 배후 쟁점으로서 라캉과 알튀세르 사이의 논쟁이라는 문제로 제기된다. 이 문제에 관한 지젝의 테제는 라캉은 욕망의 그래프를 4단계로, 또는 2층으로 제시할 줄 알았던 반면, 알튀세르는 1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곧 알튀세르는 호명 테제에만 그쳤을 뿐, 어떻게 호명을 넘어서는, 또는 호명을 벗어나는 주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는 사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정말로? 지젝은 때로는 스스로 속는 척한다).(*즉, 지젝이 알튀세르를 비판하지만, 그 비판은 아닌 줄 알면서 하는 비판, 일종의 ‘연기’라는 것. 그러니 역시나 미심쩍은 지젝?)

-그리고 대중문화 분석가, 향유자로서 지젝의 모습이 있다. 그가 유고 영상기록 보관소에 틀어박혀 탐닉했던 미국 영화들은 단순히 이론을 예시하기 위한 소재에 그치지 않고(그랬더라면, 지젝이 그렇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이론, 또는 진리의 증거 자체가 되어버린다(*이런 비판은 데리다 ‘전문가’로서의 발마스님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론과 사례를 제대로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젝은 인기를 얻었다? 논리와 수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리다는? 데리다도 그래서 인기를 얻은 것인가? 해서, 이론가는 향유자와 다른 존재이며 각방을 쓰는 존재인 것인지?).

-어떤 이론, 어떤 진리? 물론 라캉의 이론, 라캉의 진리다. 따라서 지젝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젝 또는 라캉에 동일화되는 과정이며, 대중문화에서 이들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이다(*지젝을 읽는 게 지젝에 동일화되는 과정이라면, 알튀세르를 읽는 건 알튀세르에 동일화되는 과정이며, 스피노자를 읽는 건 스피노자에 동일화되는 과정인가? 그렇다면, 지젝에 ‘동일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마스님은 아직 지젝을 읽지 않은 것이 아닌가?).

-93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지젝이 자신의 문제, 곧 라캉과 알튀세르의 논쟁을 좀더 정교하게 전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지젝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부정적인 것과 머물기>, <이데올로기의 유령> 등에서, 자신이 이미 했던 이야기들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왜 그는 로베르트 팔러의 비판에 답변을 하지 않을까?).

(*)<이데올로기의 유령>은 내가 알기론 책이 아니라 논문이다. 어쨌든 이 대목에서야 지젝에 대한 발마스님의 ‘(악)감정’이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지젝이 “라캉과 알튀세르의 논쟁을 좀더 정교하게 전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지젝이 빌미를 제공한 셈. 발마스님이 지젝의 저작들을 다 탐독하고서 이러한 결론(불만)에 이르렀다면, 둘 중의 하나이겠다. 지젝이 불충분하게 말했거나, 지젝 자신은 충분하게 말했다고 믿지만, 발마스님이 보기엔 전혀 충분하지 않거나. 나는 현재로선 어느 쪽이 실상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 없다. 로베르트 팔러도 안 읽었기 때문에.

-지젝이 대중문화에서 벗어나 급진정치 쪽으로 갈 수 있을까? 그가 과연 급진정치를 통해, 스스로 말하듯 라캉의 말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또는 그는 이미 대중문화에 너무 깊이 중독된 게 아닐까? 그런데 이 질문들은 의미가 있는 질문들일까?

(*)일단 대중문화와 급진정치의 ‘엄격한’ 구별이 발마스님의 기본적인 입장인 듯하다. 그리고 급진정치란 ‘라캉의 말씀의 한계’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조우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대중문화에 대한 중독’으로부터도. 거꾸로 말하면, 지젝이 라캉의 ‘말씀’과 ‘대중문화’에 갇혀 있는 한, 그에게선 급진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라캉과 대중문화를 빼면, 지젝은 없다. 그러니 급진정치여, 지젝없이 진군하도록!..



발마스님의 서평에서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지젝이나 그의 책이 아니라 발마스님 자신이다(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서평은 ‘불친절한’ 서평이다). 발마스님의 서재에 곧잘 들르는 내가 언젠가 특이하게 생각하면서 더불어 약간의 소외감(?)을 느낀 것은 ‘만화’ 얘기들이 오고 갈 때였다(나는 영화는 좋아하지만, 만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학습만화조차도 즐겨보지 않는다). 발마스님은 만화에 문외한이 아니었다. ‘제7의 예술’로서의 만화를 폄하할 생각은 갖고 있지 않지만, 만화와 급진정치의 관계를 상상하는 일은 히치콕 영화와 비판이론의 관계를 상상하는 일보다 나로선 훨씬 더 어렵다. 그리고 요즘은 간혹 영화제 광고들도 서재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영화에도 ‘급진정치적 영화’와 (쓰레기 같은) ‘대중영화’들이 있는 것인지, 그런 구별을 발마스님이 갖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한국의 두 젊은 ‘공산주의자’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 <자본당선언: 만국의 자본가여 단결하라!> 같은 게 ‘급진정치’의 사례일까?).

지젝에 대한 발마스님의 취향이나 감정에 대해서까지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 나는 다만, <이데올로기>에 대한 서평에서 내가 아는/상상하는 ‘발마스님의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진 모습을 발견했기에 당혹스러웠을 뿐이다(서평은 너무 ‘정념적’이며 그다지 공정하지도 않다). 어쨌거나, 지젝에게서 라캉과 알튀세르의 논쟁에 대한 정교한 해명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발마스님으로서도 크게 유감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젝을 넘어선 지점에서 발마스님의 몫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기에(발마스님의 ‘라캉과 알튀세르’론 또한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다). 그러니까 내가 기대하는 것은 앞으로 도래할, 발마스님의 ‘이데올로기론’과 ‘급진정치론’이다. 우린 어쩌면, 따로 번역/오역할 필요 없이 우리말로 (지젝을 넘어선) 이론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04. 10. 30./ 06.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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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0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로쟈 2006-11-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공익에 헌신해야 할 시각 같은데요.^^

섬나무 2006-11-0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로쟈님의 지젝 사랑도 흥미롭구요. 지젝뿐 아니라 인문학에 문외한이지만 사람의 사고하는 형태와 방향은 알게 마련이니까요.ㅎㅎ급진정치여 지젝 없이 진군하도록! 이문열 옹호론 만큼이나 머리 아픕니다. - 로쟈님 덕분에 지젝을 좋아하게 된 사람
 

어제 날짜 경향신문을 보니까 세계연극계의 거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연출가 네크로슈스의 셰익스피어 공연 소식이 올라와 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당장 오늘부터 주말까지 공연이 이어진다는데, 이번에 그가 들고 온 작품은 <햄릿>과 <맥베드>이다. 공연을 자주 보러다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 국내 초연되는 <맥베드>는 보고 싶은 작품이다(지난 9월에 <맥베드>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기도 했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은 놔두고서라도) 스케줄이라더니...

경향신문(06. 10. 31)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 ‘오델로’ 네크로슈스 내한공연

(*기사 타이틀에 오타가 있다. '오델로'가 아니라 '맥베드'라고 해야 맞다)

"연출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연극학교의 중요성을 믿지 않는다. 진정한 아티스트는 자신이 가는 길 뒤에 제자를 남기지 않는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독창적 해석으로 유명한 연극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가 자신의 대표작 두 편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햄릿’과 ‘맥베드’다. 네크로슈스는 언어를 최대한 절제하고 물과 불, 흙, 돌 등 자연물을 통한 은유와 상징을 펼쳐놓는다. 관객은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와 긴장감을 맛보고, 연극을 보고 난 후에도 잔상(殘像)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여년 전 네크로슈스의 작품을 처음 본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는 주저없이 “연극 천재”라는 찬사를 보냈다. 또 “리투아니아어라는 언어적 한계 때문에 그의 명성이 가려질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서 밀러의 우려는 빗나갔다. 유럽의 변방 리투아니아 출신의 네크로슈스는 현재 유럽에서 최정상의 연출가로 꼽힌다.

그는 햄릿(1997년), 맥베드(1999년), 오델로(2001년)로 이어진 셰익스피어 비극 시리즈로 단숨에 세계 연극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독창적인 연극언어를 선보이며 러시아의 황금마스크상, 스타니슬라브스키 국제연극상, 유럽극장협회의 뉴유러피언 시어터 리얼리티즈상 등을 휩쓸었다.

한국 공연은 이번이 세번째다. 2000년 ‘햄릿’과 2002년 ‘오델로’를 들고와 LG아트센터 좌석을 매진시켰다. 6년 만에 국내 관객에게 다시 선보이는 ‘햄릿’은 리투아니아 록가수가 우유부단한 햄릿으로 분하는 네크로슈스의 대표작이다. 천장에 매달린 육중한 양철 톱니바퀴는 떨어지는 순간 배우의 몸을 두동강낼 것처럼 무시무시하고, 얼음 덩어리로 만든 샹들리에는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물방울을 뚝뚝 떨군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에서 의미없이 배치된 사물은 없다. 그 모든 것을 동원해 햄릿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주변의 위협을 형상화한다. 3시간40분에 달하는 긴 연극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맥베드’(*이미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늙고 추악한 마녀 대신 젊고 매혹적인 마녀들이 등장한다. 맥베드 부부의 욕망이나 악한 본성보다, 두 사람의 끈끈한 사랑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도 흔들리는 통나무와 위협적으로 내리꽂히는 도끼, 어지럽게 흔들리는 거울들과 무대로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 등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햄릿’은 11월1~2일, ‘맥베드’는 4~5일. LG아트센터.(문학수 기자)

06. 11. 01.

P.S. LG아트센타에서 공연 스틸사진을 몇 장 더 옮겨놓는다.

P.S.2. 이미 적은 대로 내가 더 보고 싶었던 건 <맥베드>이지만 아쉬운 대로 <햄릿>의 공연평을 옮겨놓는다. 연극평론가 김소연씨 평으로 컬쳐뉴스에서 옮겨왔다.

컬쳐뉴스(06. 11. 10) 젊은 죽음에 목놓아 통곡하다

연극을 꾸며 숙부의 죄악을 밝히겠다는 햄릿의 결심으로 제1부의 막이 내렸다. 네크로슈스의 <햄릿>(11.1, 2일, LG아트센타)은 과연 소문처럼 강렬한 이미지들로 충만했다. 무대 중앙 상공에 매달려 천천히 돌고 있는 육중한 철제 원반톱, 동물의 가죽을 그대로 두른 듯한 털코트, 무대 상공에서 흩뿌려지는 가는 물줄기가 운무처럼 무대를 감돌고 원반톱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작은 북을 두드린다. 희곡의 인물과 사건은 물, 불, 둔중한 철제 대소도구, 그리고 비재현적 움직임으로 재구성되었다. 거기에다 대사들은 마치 조각 조각의 독백처럼 객석을 향해 쏟아져왔다.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객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대를 지켜보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LG아트센타에서 개막한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2000년 서울연극제에서 이미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대륙별로 해외프로덕션 회사를 둔 대형 뮤지컬도 아니고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공연도 아닌, 고도의 상징적인 무대언어로 전개되는 연극공연이 다시 초청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상당기간 동안 연극계에서 회자되는 공연이었다. (김아라 연출의 <사천 사는 착한 여자>와 네크로슈스의 <햄릿>을 저울질하다 김아라를 선택한 나는 한동안 주위 동료들로부터 ‘따’를 당해야 했다.) 당시 내 주위에서 오갔던 이 공연에 대한 열광을 대충 요약해보면 곧 무대의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한 드라마의 언어인가를 체험하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제1부가 끝나고 잠시 극장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다시 조금 전 무대를 생각해보면 ‘충격’이랄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 6년 새 우리는 참 많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네크로슈스의 <햄릿>이 초연될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우리에게 러시아 및 동유럽 연극들은 많이 익숙한 것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국제 규모의 공연예술제들이 생겨나고 중대형 극장들이 속속 개관하면서 이렇게 늘어난 중대형 무대들의 상당 부분이 동유럽 연극들로 채워져 왔다. 얼마 전 끝난 2006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보더라도 해외 초청작은 대부분 동유럽 연극이었다.

그런가 하면 마치 LG아트센타를 벤치마킹 하려는 듯 고급 공연장 이미지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예술의전당은 아예 러시아 황금마스크상 수상자들을 줄줄이 초청해 직접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텍스트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텍스트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가 언어 텍스트를 압도하는 동유럽 연극들은 해체적인 서구 실험극과는 다르게 근대적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미학을 보여주는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공연예술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들의 연극이 한국연극에도 이미 소개될 만큼 소개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네크로슈스의 <오셀로>도 봤고, 부드소프의 <보이체크>도 봤고, 지자트콥스키의 <갈매기>와 네프도진의 <형제자매들>도 보았던 것이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프다.

찬바람에 머리도 식히고, 옛 소문에 부풀었던 기대도 한 켠으로 밀쳐두고 다시 객석에 앉았다. 제2부의 막이 오르고 햄릿과 호레이쇼는 나무상자를 무대 중앙에 옮기고 그 위에 쇠덩어리로 된 조작기를 올려놓는다. 둥근 핸들 중앙에 달린 쇠막대가 나무 상자 내부로 뻗어내려와 무쇠판에 연결되자 고문대라도 차려놓은 것 같다. 자 이제 곧 햄릿이 꾸민 연극이 시작될 터. 클로디어스와 거투르드, 오필리어와 폴로니어스 그리고 햄릿과 호레이쇼가 카니발이라도 벌이는 듯 긴 원통을 두드리고 소리치며 나무 상자 주위를 돈다. 차례차례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거투르드에게 오필리어에게 클로디어스에게 검댕이를 묻힌다.

아이들의 놀이처럼 서로 서로 검댕이를 묻히고 거투르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몸을 구부려 나무상자에 앉아 있던 햄릿도 상자 밖으로 나와 이들과 어울릴 때 이번엔 클로디어스가 상자 안으로 들어가고 상자의 문이 닫힌다. 다시 문이 열리고 클로디어스가 나왔을 때 그는 혼비백산해서 무대를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다가가 “독살장면에서 그 모습 봤지?”라며 선왕이 타살당했다는 믿음을 굳힌다.

세익스피어의 극중극을 검댕이 칠 놀이와 덫에 갇힌 클로디어스로 전개하는 이 장면에서 나는 이제까지 희곡과 대조하면서 지켜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네크로슈스의 이미지들은 세익스피어라는 미로에 갇혀 조각조각으로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몇몇 장면이 재배치되고 희곡의 대사도 정리되어 있긴 하지만 한편 무대 위의 발화들은 거의 그대로 원본을 따른다. 비재현적 무대연출과 대조적으로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그대로 따르는 배우들의 대사는 그 자체의 언어적 의미를 형성한다기보다는 또하나의 무대적 요소로 여타의 이미지들과 충돌하면서 드라마를 심화시키고 있다.

공연 내내 무대 상공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육중한 철제 원형톱, 투명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 그리고 털가죽 같은 코트를 입고도 한껏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차가운 공기. 이 모든 것들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햄릿이 짊어지고 있는 ‘복수의 의무’의 무게를, 그러한 의무를 짊어지우는 감옥 같은 세상을 은유한다. 그러나 햄릿은 모듬 발로 뜀을 뛰고 철제의자를 기울여 앉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오필리어와 사랑을 나누는 여린 청년일 뿐이다. 철제 원형톱에 선왕의 유령이 매달아 놓은 얼음 샹들리에 밑에서 얼음이 녹아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뇌하는 햄릿은 세계와 맞서는 비극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의무에 내몰려 떨고 있는 여린 영혼이다. 선왕의 유령이 앉아있던 바로 그 철제 흔들의자에 앉아 햄릿은 선왕처럼 위엄을 부려 보려하지만 의자를 굴리는 것마저도 힘겹다.

 

 

 

 

 

 

 

 

 

마지막 결투. 햄릿과 레어티즈는 객석을 향해 정면으로 나란히 서고 그 뒤로 일군의 젊은이들이 역시 객석을 향해 서 있다. 이제 결투의 시작. 클로디어스가 펼쳐놓은 음모의 덫에 선 햄릿과 레어티즈 그리고 젊은이들은 정면을 향해 칼을 뻗는다. 무대 위의 젊은이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정한 동작을 반복하고 무대 위에는 허공을 가르는 이들의 칼 소리만이 울릴 뿐이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공포스런 울음인지 허공을 가르는 칼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햄릿도 레어티즈도 그리고 젊은이들도 차례 차례 쓰러진다.

연극의 첫장면에서 철제 원반톱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작은 북을 울리던 그대로 다시 물방울이 작은 북을 울리고 있다. 죽어가는 햄릿이 작은 북을 안고 쓰러지자 이제 북소리가 멈춘다. 다시 무대에 등장한 선왕의 유령은 북을 안고 있는 햄릿의 손을 풀려하지만 햄릿의 주검은 북을 놓지 않는다. 선왕은 털코트에 햄릿의 주검을 옮기고 주검이 안고 있는 북을 치며 오열을 터뜨린다.

<햄릿>을 그린 많은 연극들이 몰두하는 것은 결국 햄릿에게 부여된 의무와 의무의 이행을 지연하는 햄릿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윤영선은 <떠벌이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에서 <오레스테스>와 <햄릿>을 빌어와 아비-그것은 곧 역사로 확장된다-가 짐지운 의무에 비틀거리는 ‘나’를 그리는데, 때때로 ‘나’를 찾아와 의무를 환기시키는 아비의 유령을 향해 ‘나’는 “아직 술먹는 어린 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윤영선의 ‘나’(햄릿)는 무기력과 냉소로 의무의 이행을 지연시키는 반면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그렇게 비틀거릴 냉소의 여지도 없이 감옥 같은 세상에서 떠맡겨진 ‘의무’를 짊어지고 죽는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에서 물을 매우 다양한 양태와 상징으로 시종 무대에 등장하여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오브제인데, 선왕의 유령을 암시하는 운무에서 복수의 칼을 담은 얼음덩이 그리고 속죄의 기도를 올리는 클로디어스의 물잔 등 물은 모두 선왕과 클로디어스와 연관되어 상징과 은유를 발한다. 이러한 ‘아비’들의 세계에서 복수의 의무를 강요당하는 햄릿이 할 수 있는 것은 복수의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강요하는 북소리를 멈추는 것이었다.

강렬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잘 정돈된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충격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아름답다. 하지만 더 강한 울림은 마지막 북소리와 통곡이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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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2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02 21:37   좋아요 0 | URL
**님/ 아하, SR님이시군요! 잘 지내시나요? 세미나는 사정상 잠정 휴업에 들어갔답니다. 팀장님이 지방으로 잠수를 타시는 바람에요. 나중에 사정 얘기는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암튼 건강하시고 공부만 너무 많이 하지 마시고.^^

수유 2006-11-09 10:19   좋아요 0 | URL
이 연극을 제가 놓쳤드랬습니다... 엘지 아트였는데...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만..오면 기억을 해야것습니다.

로쟈 2006-11-09 11:32   좋아요 0 | URL
눈뜨고 놓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 다시 와도 걱정입니다...

수유 2006-11-09 12:54   좋아요 0 | URL
<햄릿>을 보았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크군요...

로쟈 2006-11-10 23:52   좋아요 0 | URL
공연평을 대신에 추가로 옮겨놓았습니다...
 

조간신문에 실릴 러시아 관련기사 하나를 옮겨놓는다. 모스크바에서는 어제까지 '백만장자 박람회'가 열렸던 모양인데 그에 관한 것이다(러시아의 부자들에 관해서는 언젠가 따로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다). 언젠가 루카치는 "최악의 공산주의도 최상의 자본주의보다는 낫다"고 호언한 바 있지만 그 '최악의 공산주의'를 벗어던진 러시아는 간혹 '최악의 자본주의'로 곧장 돌진해가는 듯한 인상을 던져준다. 과연 "최악의 자본주의도 최상의(지상낙원의) 공산주의보다는 낫다"는 걸 입증해주려는 것인지...    

한겨레(06. 11. 01) 갑부 돈냄새에 코막은 ‘레닌들’

4200만원짜리 향수, 17억원짜리 부가티 스포츠카, 19억원짜리 소형 헬리콥터, 235억원짜리 파나마 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30일(현지 시각) 막을 내린 ‘백만장자 박람회’ 품목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 박람회에서 4만명의 러시아 갑부들이 7200억원 어치를 거래했다고 31일 보도했다. 이 화려한 백만장자 박람회 이면에는 러시아의 ‘두 얼굴’이 숨어 있다.

박람회의 주고객은 이른바 ‘올리가르히야’(과두재벌)와 ‘노비예 루스키예’(신흥부자). 지난 91년 옛소련 해체 당시 석유·광산·국유기업 등을 헐값에 사들여 떼돈을 챙긴 엘리트 계층이다. 지난해 3월 발간된 <포브스>를 보면, 러시아에서 약 10억원 이상 현금자산을 보유한 재력가가 8만8천명에 이른다. 한 공산당원은 28일치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기생충 같은 박람회 참가자들을 모두 총으로 쏴버려야 한다”며 “정직하게 돈을 번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러시아의 첫번째 얼굴이다.

백만장자들의 돈 자랑을 뒷받침하는 것은 가파른 경제성장이다. 대외무역의 68%가 석유·가스 무역인 러시아는 고유가를 등에 업고 2000~2005년 연평균 6.8%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 패션작가는 “박람회에서 다이아몬드를 걸친 사람들이 몇 년 전까지 화장지를 배급받으려고 줄을 섰던 것을 생각하면 우습다”고 말했다.

가파른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고통받는 빈곤층은 러시아의 또다른 얼굴이다. <로이터통신>은 30일 “러시아 인구의 약 20%가 빈곤선 이하에 산다”며 “박람회는 연간 소득으로 5천달러를 버는 대다수 러시아인들의 삶과는 극명하게 달랐다”고 전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재영 부연구위원(모스크바대 경제학 박사)은 “이번 박람회는 초기 자본주의의 천박한 소비행태이자,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 경제의 여유있는 자기과시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김순배 기자)

06.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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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1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0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다시 안 읽어보고 잠시 딴짓을 했더니 오타들이 있었군요(흔한 일이지만).^^ 대학원에 간다고 했던가요? 청출어람, 일취월장하기를!..

기인 2006-11-0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 언제 러시아/소련이 공산주의를 하기는 했나요 뭐;; 어쨌든 시급 300원인 저로서는 쩝.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에 대한 서평을 하나 옮겨온다. 필자는 박정수(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씨이며, 지젝의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 2004)와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앨피, 2005)의 역자이기도 하다. 그런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서평은 지젝에 대한 얼마간의 관심과 경탄을 담고 있을 듯하지만, 정반대이다. 서평자는 정말로(!)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며 그의 책들을 쓰레기 정도로 폄하하고 있다(서평 대상에 대한 혐오에 있어서 아마도 강유원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 대한 서평 이후에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 않나 싶다).

 

 

 

 

안 그래도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쓸 일이 있어서 더디게 읽고 있던 참이라 본격적인 서평이 씌어진 것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읽어보니 책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는 서평이라(나는 서평자가 책을 읽어본 건지 그냥 불만스레 뒤적거려본 건지 의심이 간다) 그 반가움은 곧 씁쓸함으로 바뀌었다. 취향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걸 논리로 포장하는 일은 보기에 흉하다. 어차피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서평이기에 길게 다룰 필요는 없을 듯하지만, 참고자료로서만 보존해둔다. <혁명이 다가온다>에 대해서는 시간이 나는 대로 자세한 읽기를 올려놓도록 하겠다.

컬쳐뉴스(06. 10. 26) 레닌은 어디서 반복되어야 하는가? 

1995년 『삐딱하게 보기』가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지젝의 이름은 자크 라캉이라는 이름 뒤에 붙어 있었다. 여전히 ‘근간 예정’인 라캉의 『에크리』와 『세미나』들이 번역되지 않은 상태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알고는 싶은데 도대체 알 수 없는 개념 투성이의 낯선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그때 할리우드 영화와 일상문화를 통해 라캉 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들을 간명하게 설명해낸 『삐딱하게 보기』는 목마른 논을 적시는 물처럼 시원하고 달콤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슬라보예 지젝은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철학, 정치학, 사회학, 문학, 영화 비평 전공자들의 입에 회자되는 이름이 되었다. 그 사이 그의 이름은 라캉이라는 이름과 분리되어 슬로베니아학파라는 독자적인 학파의 우두머리로 알려져 갔고 매년 한두 권씩 출판되는 번역서마다 성실하게 오역 교정까지 해주는 매니아들을 거쳐 대학담론으로까지 진입해 들어갔다(*아마도 나는 '번역서마다 성실하게 오역 교정까지 해주는 매니아들'의 주요 멤버인 듯하다. 다른 멤버들과 단합대회라고 가져야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책꽂이에 읽다가 만 번역서들이 한 두 권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의 책이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서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졌다. 지젝의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몰릴수록 자꾸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생각났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지젝의 책을 애독하는 사람들은 신간이라고 펼쳐 보면 이전 책에서 이미 본 듯한 구절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기시감’이 아니다. 때로는 거의 한 챕터 전체, 때로는 한 단락 그대로, 때로는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때로는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채 자기-표절을 하고 있다(*그러니까 서평자가 가장 문제삼고 있는 건 지젝의 자기-표절이다. 이 책의 내용이 저 책에 또 실리고 한다는 것).

이 책 『혁명이 다가온다』 역시 새로 쓴 부분보다는 이전 책에서 오려 붙인 부분이 더 많아 보인다. 단적인 예로 13장 ‘삭제의 정치학은 존재하는가’는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의 2판 서문 중 ‘공제의 정치는 존재하는가’와 거의 같다. 『혁명이…』와 『그들이…』의 2판 서문이 같은 해(2002년)에 쓰여진 걸 보면 똑같은 원고를 가지고 두 번 써먹었다는 얘기가 된다(*같은 단락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혁명이>가 <그들이>보다 2배 이상 길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선임자의 논문 표절 및 이중 등록 사건에 적용된 학자의 윤리를 지젝의 자기-표절에도 적용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도 다들 모른 척 하는 건지 별 문제 없다는 건지 이 점을 꾸짖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지젝에 관한 연구서들이 다 하고 있는 지적이다). ‘독창성’이라는 케케묵은 근대적 기준으로 포스트 모던 철학자의 ‘혼성모방’ 작업을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그나마 잘 팔리고 있는 철학 상품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어느 쪽이든 이 침묵의 카르텔은 옳지 않다(*그러니까 한 책에 인용한 사례나 주장은 다른 책에서는 절대로 이용하면 안된다?).

『혁명이…』는 소장할 가치가 없는 책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지젝의 책 전체가 그렇다. 그의 사유를 틀 짓고 있는 헤겔의 『정신현상학』, 마르크스의 『자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라캉의 『에크리』와 그의 책은 분명 ‘급’이 다르다. 이들의 책은 백년이 더 지나도 팔리겠지만(*왜 '읽히겠지만'이 아니라 '팔리겠지만'인가? 그리고 라캉의 <에크리>는 어디에서 팔린다는 것인가?) 지젝의 책은 그렇지 않다. 지젝과 사유 노선이 다른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나 들뢰즈․가따리의 『안티 외디푸스』가 백년은 몰라도 반세기 후에도 소장될지언정 지젝의 책도 그럴까?(*거의 관심법 수준인데, 다 맞다고 치자. 한데, <정신현상학>과 <자본> 정도가 아니면 다 쓰레기이고 소장가치가 없는 책들인가? 서평자의 단촐한 서가가 부럽다.) 

엄밀히 말해서 ‘지젝’의 책은 없다. 그의 이름은 아무런 인식론적 사건도, 사유방식도 지시하지 못한다. 헤겔, 마르크스, 라캉, 데리다, 들뢰즈․가따리는 그 이름만으로 그들의 책에 담긴 지식의 효과를 지시하지만 ‘지젝’이란 이름은 그렇지 않다.(*물론 지젝의 독창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라캉을 선불교적 스승의 자리에서 현실 정치의 장으로 옮겨놓은 지젝에게 박수를 아낄 필요는 없다"는 서평자의 태도는 어디로 증발한 것인가? 재작년과 올해는 또 사정이 다른 건가? 하긴 대추리 사태가 재작년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식의 생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헤겔이 생산한 변증법을, 마르크스가 생산한 유물론을, 프로이트가 생산하고 라캉이 재생산한 정신분석학을 멋지게 재가공해서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유용한 물건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쇼호스트와 같다. 물론, 오늘날 쇼호스트는 이미 생산된 가치를 이전시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교환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며, 지젝도 그렇다. 유명한 쇼호스트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하듯이,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 라캉의 구조분석을 조합하여 후기 자본주의 대중문화와 정치지형을 분석하는 데 탁월한 효력을 발휘하는 자기만의 분석틀을 개발했다(*나는 더 나간다고 보지만, 이것만으로도 의의는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지젝의 책은 철학서라기보다는 평론집에 가깝다. 자신의 분석틀을 개발한 이후 그가 하는 일은 분석 대상을 수집하는 일이다(*서평자는 지젝의 사생활까지 꿰뚫고 있다). 매순간 촉각을 곤두세우며 각국의 변기구조나 음담패설 및 농담을 수집하고, 시간 날 때마다 할리우드 TV 프로, 영화나 고급 오페라, 소설, 종교, 철학, 정치적 이슈를 자신의 분석 테이블에 올려놓고 해부해 놓았다가 특정한 기획 하에 묶어 낸다. 『혁명이 다가온다』의 기획은 ‘레닌’이다. '레닌에 대한 13가지 연구'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레닌과 소비에트 혁명에 집중된 새로운 연구성과는 없다(*이 대목에선 서평자의 학식이 부러우면서 러시아문학 전공자라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나는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대해 이 책에서 다시 배워야 했다). 대신 이전의 분석들 중에서 레닌과 혁명, 정치학에 관련된 내용을 골라 약간의 수정과 편집 작업을 가하여 묶어 놓은 것이다.

이런 평론집의 가치는 그 기획의 적절함에 있다. 만약 ‘레닌의 반복’이라는 이 책의 기획이 적절하다면 그 결과는 레닌 전집의 재출간이나 판매 부수 증가로 나타날 것이고, 나아가 레닌이 일으킨 사건, 즉 혁명의 반복을 위한 실천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아무튼 기이하다. 철학서는 안 팔려도 그만이지만, 평론집은 그 실제적 효과에 의해서 입증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이 책의 효과가 이 책 자체로 그친다면, 라캉과 지젝의 분석적 성과로 그친다면, 지젝은 자신이 줄기차게 비판해온 포스트-맑시스트들의 ‘혁명 없는 혁명’, 후기 자본주의 문화 시장에 흡수되어 버린 ‘혁명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비난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 심지어 레닌까지 정신분석가의 음울한 분석 소파 위에 올려놓고 두 번째 죽음을 치렀다는 비판과 함께(*레닌을 들먹이려면 레닌 전집의 재출간까지도 책임져야 하는가? 러시아에서도 나오지 않는?).

그렇다면 ‘레닌’이라는 기획은 적절한가? 여기서 지젝은 자신의 내기를 걸고 있다. 자본주의와 그 이데올로그들과의 단호한 단절, 진화론적 역사주의와 다원론적 민주주의에 물든 사이비 혁명가들, 그 옛날의 사민주의자들과 오늘날의 좌파 자유주의자들과의 중단 없는 이데올로기 투쟁. 지젝의 이 내기를 그저 또 하나의 (정신)분석적 사례로 간주한다면, 그건 오독이거나 자기기만이다(*이제 책에 대한 염려에서 독자에 대한 염려로 관심이 확장된다. 그래서 서평자는 '지젝의 내기'를 접수했다는 것인가, 오독했다는 것인가?).

물론 이런 무의식적 오독에도 분석되어야 할 욕망은 있다. ‘나는 지젝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는 걸 잘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그 혁명의 내기가 실재 현실로 이어져야 한다는 건 믿지 않아.)’라는 물신주의적 부인 속에서 지젝의 평론을 ‘철학’으로 승화시키거나 독창적인 ‘정신분석가’로 재성화(再性化) 시키는 지젝 매니아들이 있다면, 그들의 욕망은 후기 자본주의의 냉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할 뿐이다(*문제는 '지젝 매니아들'인가? 지젝의 '철학'과 '독창적인 정신분석' 운운하는?).

이 책이 지젝의 정치적 내기를 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한국 사회의 정치적 내기 속에서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문제는 무엇인가? 지젝의 '정치적 내기'인가? 아니면 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물신주의적 부인'인가? 이하는 지젝과 무관한 서평자의 한국사회론이다. 서평자의 단골 레퍼토리인지?). 한국 사회는 지금 전체주의적 주변부 자본주의로부터 자유주의적 중심부 자본주의로 진입하고 있다. 최근의 두 광고가 이를 대변한다. 모 카드회사의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라는 CM송과 국가홍보처의 “아버지, 이것이 당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대한민국입니다”의 멘트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아버지이다. 항상 때리는 아버지이거나 부재하는 아버지만 있었지 아들에게 향락의 교훈을 전해주고 자랑스런 국민국가의 상징적 대표로 호명된 아버지는 없었다. ‘즐겨라!’라는 자본주의적 초자아의 외설적 명령을 노래하고 ‘자랑스러워라’ 라는 국민적 아버지의 자아-이상을 내면화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자본주의적 국민국가를 완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는 해소할 수 없는 계급 적대를 드러내고 있다. 양극화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성공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직은 불명확한 이 성공은 한미 FTA 체결 이후에는 훨씬 더 가시화될 것이다. 현 정부가 끊임없이 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은 우리가 빼앗긴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한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것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신)식민주의 종속성의 망령을 떨쳐버리려는 안쓰러운 노력인데, 그 ‘우리의 욕망’ 속에는 미국의 자본가와 함께 한국의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고자 하는 한국 자본가 계급의 욕망이 숨어 있다.

‘우리’는 계급적 분열을 은폐하는 주체 호명이다. 이 민족주의적 주체의 분열성은 평택 주한 미군기지 조성에 반대하는 대추리 주민들을 향해 기지이전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수도에서 미군기지를 없애기)를 위해서라고 호소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대추리 주민의 삶의 권리를 짓밟는 것이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돌려주겠다는 전시작통권을 한사코 돌려받지 않으려는 식민주의적 욕망이 숨어 있다(*대추리를 짓밟은 것도 전시작통권을 돌려받겠다는 것도 현정부이다. '식민주의적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조직된 노동자 계급, 신자유주의 경영 효율성을 위해 항시적인 해고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선진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면서 만성적인 히스테리에 시달리는 감정노동자들, 세계화된 노동 시장에서 좀더 고가의 임금을 위해 들어온 이주노동자들과 혼혈가족들, 자본주의적 개발 욕망에 의해 파괴된 새만금의 갯생명들과 어민들, 그리고 현 시점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으로서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논리를 한꺼번에 정지시키며 ‘정신병’적 선택을 감행하고 있는 대추리의 주민들, 이들의 반자본주의, 반국가주의, 반제국주의 운동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혁명이 다가온다』가 기획한 ‘레닌의 반복’이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이 반문은 지젝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출판기획자를 향한 것인가? 혹은 독자들? 이러한 태도에서 소위 좌파연하는 냉소주의를 읽어내는 건 나의 오독인가?) 

06.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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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phqa 2006-10-3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서재를 보러 온 지는 꽤 됐지만 글은 처음 남기네요. 대학에서 강의하신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개인적 프로필은 비공개인가요? 문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문학도거든요.^^ 그건 그렇고 이곳에 페이퍼에 쓰시는 글들만 모아도 책한권이 될 것 같은데, 혹시 '책'을 낼 계획은 없으신가요? 아님 혹시 벌써 내신 책이 있으신지?,,^^

로쟈 2006-10-3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밍아웃하셨군요.^^ 알라딘 서재는 개인 프로필 항목이 따로 없기도 하고 그냥 이곳은 '로쟈의 서재'입니다(간혹 면밀히 관찰하시는 분들은 제 신상을 알아내기도 하더군요^^). '책'이야 아직 내주겠다는 곳도 없지만, 낼 만한 형편의 글들도 많지는 않습니다. 온라인을 염두에 두고 쓴 것들이 많아서요...

Ritournelle 2006-10-31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수유+너머에서 세미나를 같이 해서 정수형을 조금 아는데 형이 지젝에 대한 조금은 가혹한 서평을 쓸 줄은 몰랐네요. 형은 지젝에 관한 개론서도 번역한 이력이 있어서 그런지 약간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어쨌든 로쟈님의 지젝에 대한 방어는 염두해 두겠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한 번 지젝을 거쳐가야 하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았거든요. 찬찬히 지젝의 저서들을 탐독해 보아야 겠습니다. 그럼 날씨가 추워지는데 건강하시고요.

자꾸때리다 2006-10-3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나게 냉소적이군요... 어떤 분들도 지젝의 책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만 읽으면 된다고들 하던데... 이렇게까지 냉소적인 글이 나오다니... 그래도 현재 한국 지식계층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자에 대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는 참...

로쟈 2006-10-3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적인(?) '인기'가 정당한 평가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부당한 폄하의 논거가 될 수도 없겠지요. 지젝을 좋아하거나 미워할 수는 있습니다(마치 연예인처럼). 하지만, 그가 '철학자'도 아니며 그의 책 전체가 '소장할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지젝에 대해서보다는 발언자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그런 의미에서 무의미한) 발언입니다. 서평자가 50년은 갈 거라고 한 데리다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하는 이들이 많고, 일례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고자 했지만 교수진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명예'는 데리다의 것이 아닙니다...

sommer 2006-11-0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을 향한 비판의 공통점은 그를 향해 쏘는 화살(형식주의)이 곧바로 그네들의 심장을 관통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지젝의 헤겔 해석을 '칸트적 형식주의'라고 비판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분류되는 버틀러에게 지젝이 '역사주의자'로 명명하는 것처럼, 지젝이 취하는 끝없는 '재명명'의 전략-한 번은 기호와 연관되는 명명으로 두 번째는 청자 혹은 독자들의 반응과 관련한 명명으로서-에 그의 의도대로 꼭 그렇게 반응하는 형국인 것이지요. 지젝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언급에 대해 호들갑 떨던 그들에게 오히려 자신을 '스탈린주의자'라고 선언했다던 일화처럼 말이지요.
'지젝이라는 유령이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깽돌이 2006-11-02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옮긴이의 글 보면,오늘날 정신분석학의 치료는 쇠퇴하고 무속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데,좀 의아해했습니다.한국에서 임상 정신분석은 활황인적이 없는걸로 알고 있어서요.인문학적인 정신분석 이론활용이야 만발했겠지만.국제정신분석학회 한국인회원 이제 달랑 3명인데말이죠 .제가 개인적으로 분석적 치료를 받고 있어서 이런 쪽에 관심이 많습니다.로쟈님도 건필하시고 유익한 글 많이 올려주세요.

로쟈 2006-11-0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ture님/ 마지막 문구는 저로 리뷰에서 써먹은 겁니다.^^
깽돌이님/ 그렇죠, '쇠퇴'할 건덕지도 없었죠. 임상으로서의 정신분석에 대해서는 이전에 라캉 관련 페이퍼에 댓글들이 많이 달린 적도 있습니다...

로쟈 2006-11-0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감은 코앞인데, 다른 원고도 밀려 있어서 죽을 맛입니다...

사량 2006-11-04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른바 '다산성'의 저자들은 자기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주장의 되풀이를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김윤식 교수의 글들을 보면 지젝은 명함도 못 내밀지 않을까요. ;;; 지젝에게 잘 팔리는 지적 상품이라는 레테르가 붙는다면, 아마도 그가 글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로쟈 2006-11-0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어령 선생만 해도 200여권의 저서 중에서 중복되지 않는 것만 추리면 50여권쯤 된다더군요. 1년에 한권꼴. 이런 걸 고의적인 자기표절로 간주하는 태도는 너무 강파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젝의 어떤 대목을 다른 맥락에서 다시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도 계속해서 덧붙이면서 확장해나가곤 합니다. <혁명의 다가온다>도 그래서 독어본과 영어본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개정판 서문은 100페이지씩 다시 쓰기도 하구요. 제가 높이 평가하는 건 그 열정입니다(그걸 서평자는 '기획'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마누스 2007-01-06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책을 번역한 적도 있는 서평자가 왜 이런 '쓰레기'를 썼는지 의구심이 드는군요.
 

떡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인터넷신문들을 뒤적거려보다가 배창호 감독의 17번째 영화(라는) <길>에 대한 인터뷰와 소개 기사를 읽었다. 이번주 개봉 예정작이다. 80년대 최고 흥행감독의 한 사람이 지금은 '독립영화' 감독이 돼버린 현실 자체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 <길>은 주연까지 맡은 감독 자신의 '길'이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기억에 내가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배감독의 영화는 <러브 스토리>(1996)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러브 스토리>일 뻔했다. 오래전 일인데, 종로에 혼자 나갔다가(영화를 보러 혼자 다니곤 했다. 1주일에 서너 편씩 보던 때이다) 무슨 맘에서인지 당시 '조용히' 개봉중이던 <러브 스토리>를 한번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걸음을 지금은 사라진 명보아트홀로 옮겼다(명보아트홀에서 나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동사서독>을 보았다). 극장 주변이 아주 한가했는데, 상영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에 지배인인 듯한 아저씨 다가와서는 사정 얘기를 늘어놓았다. 관객이 나 혼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사기를 돌려봐야 수지도 맞지 않고 하니 환불해주겠다고 했다(영화를 정 보시겠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이란 토를 붙이면서). 아저씨의 푸념, "뭐, 이런 영화를 만들어가지고..."

잠시, 고집을 부려서 영화를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배감독 부부가 주연한 '러브 스토리'를 기필코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또 '내가 김정일이냐'란 생각도 들어서 여러 사람의 수고를 무릅쓰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에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뜸하게 극장에 걸렸다(이정재 주연의 <흑수선> 정도가 약간 '요란하게' 개봉했던 걸 제외하면). <젊은 남자>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던 배감독이 너무 '자기 생각'만 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필모그래피를 다시 확인해보니까 내가 본 그의 영화는 12편 가량이고 그 중 절반 이상은 극장에서 보았다(<황진이> 같은 건 고등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보았다. 최근의 '황진이' 열풍이 감독으로선 의아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뒤늦게라도 흥행할 영화는 물론 아니었다. 그냥 배창호의 '장미희 숭배'가 만들어낸 판타지 영화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꼽자면, <꼬방동네 사람들>, <기쁜 우리 젊은 날>, <꿈> 등이다.  스틸사진으로 봐서는 어쩌면 <길>도 그 리스트에 올릴 수 있을 듯하다(특히 눈길이 마음에 든다). 한겨레의 기사와 감독 정보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0. 31) 20년 동안 곰삭여온 ‘길’로 나섭니다

배창호(53) 감독이 <흑수선> 뒤 5년 만에 17번째 영화 <길>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2003년 1월부터 여덟달 동안 촬영은 끊어질 듯 이어졌다. 그의 영화 <정> 제작 때 프로듀서를 맡았던 강충구 이산프로덕션 대표가 고생길에 뛰어들어 제작비 5억원을 끌어모았다. 지난 16일 서울 세종로에서 만난 배 감독은 당시 속내를 이렇게 기억했다. “갑갑했죠. 제작진에게 미안해서 난 중간에 그만 둬도 상관 없다는 말도 했어요.” 교통비 정도 받고도 방방곡곡을 함께 누빈 제작진 25명에게 마음 빚을 졌다. 하지만 기다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완성했지만 배급사를 찾지 못했다. “인연이 없어서였겠죠….” 결국 상업적이지 않더라도 작품성을 갖춘 영화를 알려온 배급사 스폰지와 연이 닿았다.

그렇다고 배 감독이 주인공 태석역을 맡은 까닭이 팍팍한 제작 여건 때문만은 아니다. “<개그맨> <러브스토리>에 이어 8~9년에 한번꼴로 주인공을 맡은 셈이내요. 태석을 가장 잘 이해할 만한 사람이 저였어요.” 그만큼 <길>은 그 안에서 오래 곰삭은 영화다. “20년 동안 길에 대한 영화를 생각했죠. 인간의 방랑성,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아낼 수 있는 길은 감독들에겐 보편적인 주제죠.” 그는 <고래사냥> 1·2편과 <안녕하세요, 하나님>등 로드무비로 여러 편 찍어 여정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이번 길에 대한 구상에 구체적인 살을 입힌 건 우리나라 장인들에 대한 책이었다. “특히 대장장이가 모루를 고통처럼 짊어지고 가는 모습이 좋았어요. 영화 속에서 쌀로만 엿을 만들거라는 할머니의 대사 등은 실제 책 속 모델에서 따온 거예요.” 영화 속 사람들은 고집스럽우면서도 유순하다. 전형적인 데가 있다. “저는 태석을 보며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어떤 분은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해요.” 누구 하나 제대로 모질지 못하다. “악한 사람도 깊숙히 보면 방황하게 된 원인을 안고 있어요. 상처는 대물림 되고 그걸 끊을 수 있는 게 용서인 것 같아요.”

영화 속 길도 사람처럼 푸근하고 유장하다. 그 길을 발품 팔고 <한국의 오지 마을>이란 책의 도움도 받아 찾아냈다. 경북 왜관 낙산에는 1970년대 풍경에 어울릴 법한 이발소가 있었다. 강원도 삼척 환선굴에 있는 너와집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제작비 때문에 장날 모습을 충분히 복원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길에서건 사람에서건 끌어올린 친근하고 질박한 감수성을 그는 “원형질” 또는 “한국적인 것”이라고 표현한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년)로 데뷔해 <고래사냥> <깊고 푸른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1980년대 흥행작들을 줄줄이 내놓은 그가 <꿈>(1990년) <정>(1999년) 이후 붙들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여기엔 옛 것에 대한 향수가 배어 있다. “깊은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어요. 디지털 문화는 차가워서 그런 느낌이 얇죠.” 그래서 1970년대와 50년대로 거슬로 올라가 <모정> 등 영화 포스터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까지 담았다. “황톳길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기록해 둬야죠.”

그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그는 태석만큼이나 고집스런 길을 가고 있다. “독립영화가 곧 돈 적게 들이고 재미 없는 영화는 아니죠. 자본으로부터 창작의 정신을 지키는 영화를 말하는 거에요. 자본이 주인공이 되면 영화의 개성이 없어져요. 1천만명이 좋아하는 영화뿐만 아니라 1만명을 위한 영화도 나와야죠.”(김소민 기자)

떠돌이 대장장이 발길따라 외로움과 사랑이 ‘터벅터벅’

<길>(감독 배창호)의 줄거리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 등을 떠올리게 한다. 태석(배창호)은 20년 넘게 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다. 그에겐 그가 짊어진 모루처럼 무거운 상처가 있다. 둘도 없는 친구인 득수(권범택) 탓에 집을 잃고 옥고를 치렀다. 깊이 사랑했던 아내 곁도 떠나야 했다. 오해와 분노에 떠밀려 장터를 떠돌던 태석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간다는 득수의 딸 신영(강기화)을 우연히 만나 함께 득수가 숨을 거둔 마을로 떠난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의 힘이 묵직하다. 봄꽃 흐드러진 지리산 기슭 구례 산동 산수유 마을, 광활한 만경평야, 삼척 환선굴에 우뚝 솟은 산, 강원도 임계의 외딴 여인숙….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영평 바다 그물처럼 얽힌 내 사랑아~” 따위 구성진 노랫가락이 얹힌다. 이 리듬을 타고 이야기는 아련한 자장가, 때론 처연한 곡소리가 돼 감정의 밑자락을 울린다.

무엇보다 고집스럽도록 선량한 보통 사람들을 향한 눅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꼼꼼하게 복원한 1950년대와 70년대 풍경 속에 냉차 파는 할머니와 그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수박장수가 있다. 엿 장수는 곧 죽어도 쌀로 만들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태석이는 “대장장이를 돈 벌자고 하간디”라며 풀무질에만 매달린다. 친구에게 집문서도 아낌없이 내주는 태석은 말할 것도 없이 딸 버리고 친구도 배신한 악인 득수에게도 이해할 만한 그만의 이유가 있다. <길>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밴 한과 용서를, 외로운 방랑성과 끈질긴 사랑을 노래한다. 허탈한 절망과 허황된 희망 사이, 절묘한 균형을 맞춘 결말은 여운이 길다.(김소민 기자)

배창호

대표작 <깊고 푸른 밤> <황진이> <고래사냥2>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나 일찌감치 서울로 이사,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어머니 덕에 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다. 서울 교대 부속국민학교와 서울중학교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영화를 좋아했고, 71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연극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오태석(연극인), 신완수(방송인) 등이 같이 활동하던 동료이며, 대학 3학년 때부터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다니던 시절인 77년 이장호 감독을 알게 되면서 영화의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78년에는 아프리카 케냐로 발령받아 출국했으나 이장호 감독의 현장 복귀 소식을 듣고 귀국해 충무로에 발을 디뎠으나 80년이 되어서야 <바람불어 좋은 날>(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으로 현장일을 시작했고, 81년 <어둠의 자식들>(이장호 감독) 조감독을 거쳤다. 82년 배창호 감독이 만든 데뷔작은 그의 ‘사부’인 이장호 감독과 암울했던 시대상황의 영향인지 소외받는 달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회성 드라마 <꼬방동네 사람들>이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시작해 <철인들>(1982),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깊고 푸른 밤>(1984), <고래사냥2>(1985)와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꿈>(1990), <천국의 계단> (1992)까지, 그후 <젊은 남자>(1995), <러브스토리>(1996)로 나누어진다. 앞 시기의 작품들은 감독으로서의 성취욕과 적당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타협이란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불신, 즉 재미없다는 인식을 깨고자 하는 생각”(이효인, <한국의 영화감독 13인>)과 사회 비판적인 분위기에 대한 당시 영화검열을 주관하던 문공부의 폭력적인 외압에 대한 비타협과 비합법·반합법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었던 외부적 상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일관성보다는 작품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최인호의 신문 연재소설이 원작으로 현대사회의 황폐하고 왜곡된 애정 행각을 그린 <적도의 꽃>, 억압받는 사회현실을 방황하는 청춘에 빗대 이들의 해방감과 인간성 회복에 애정어린 시선을 담은 <고래사냥>, 박완서의 원작소설로 6·25 때 헤어진 자매가 겪는 질곡의 삶을 그린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불법 이민한 한 남자의 아메리칸 드림과 계약 결혼한 교포 이혼녀의 사랑을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영상으로 그린 <깊고 푸른 밤>, <고래사냥>의 흥행성공에 고무받아 만든 속편 <고래사냥2> 등이 전기작에 속한다(두번째 작품 <철인들>은 그가 다니던 현대그룹의 홍보용 영화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작품들은 비록 편차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에 기초하고 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황진이>를 분기점으로 형식과 내용의 변화가 나타난다. 먼저 형식면에서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이동화면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테이크가 길어졌으며, 미장센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영화미학은 <삼국유사>의 조신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광수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꿈>에서 극에 달한다. 이렇듯 <황진이> 이후 작품에서 스타일의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것은 “그가 한국 영화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현대영화의 미학을 천착하고 있었고, 또 훨씬 이전부터도 이의 예술적 작용과 성취에 매우 깊은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효인의 같은 책)”된다.

영화의 주제 역시 이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큰 줄기에는 변화가 없지만 “통속적인 애정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의 만남을 희구하는 긍정의 미학”(이효인의 같은 책)으로 넓어졌다는 점은 달라진 점이다. 또 배창호 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비와 어둠, 십자가와 기차소리, 그리고 묵음을 통해 실낙원의 이미지를 구현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작품성과 별 관계없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등장하는 비와 어둠의 이미지는 곧 만남의 미학이라는 배창호의 인생관의 상징이다”(이효인의 같은 책). 빈번하게 등장하는 십자가와 교회 종소리, 기차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적도의 꽃>에도 후반부에 기차소리는 끼어들고,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소리를 배제한 장면은 놀라운 효과를 거둔다.

<천국의 계단> 이후 제법 긴 공백 끝에 배창호 감독은 세편을 더 만들었다. 94년에 만들어 95년에야 개봉할 수 있었던 <젊은 남자>와 아내와 감독 자신이 직접 주연으로 열연한 자전영화 <러브스토리>, 독립영화 시스템으로 만든 98년 작 <정>이다. <젊은 남자>는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의 젊은이들을 담겠다는 야심은 강했지만 ‘80년대의 배창호가 90년대의 젊은이들’을 그리는 거리감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고, <러브스토리>는 배창호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자의식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그래도 감각적인 카메라와 배창호 영화 미학은 건재하다는 평가가 많았다.(영화감독사전, 1999)

[필모그라피]

1. 길(2004)
2. 흑수선(2001)

3. 정(1999)

4. 러브 스토리(1996)

5. 젊은 남자(1994)

6. 천국의 계단(1991
)
7. 꿈(1990)

8.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
9. 안녕하셔요 하나님(1987)

10. 황진이(1986)

11. 깊고 푸른 밤(1985)

12. 고래사냥2(1985)

13. 고래사냥(1984)

1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15. 적도의 꽃(1982)

16.
철인들(1982)
17. 꼬방동네 사람들(1982)

[수상경력]

1983년 대종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198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1984년 영평상 감독상 <고래사냥>
1984년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적도의 꽃>
1985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깊고 푸른 밤>
1986년 대종상 감독상 <깊고 푸는 밤>
2000년 이탈리아 우디네이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관객상 <정>
2000년 프랑스 베노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최우수 관객상 <정>

06.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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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1 2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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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10-3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배창호 감독이 김기덕식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컬합니다. 외적 여건을 제쳐놓으면, 김기덕과는 달리 그는 대중적 감각과 지분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걸 놓쳐버리고 배창호식 '실험영화'로 접어든 것 같아요. 좀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던 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