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짜 경향신문을 보니까 세계연극계의 거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연출가 네크로슈스의 셰익스피어 공연 소식이 올라와 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당장 오늘부터 주말까지 공연이 이어진다는데, 이번에 그가 들고 온 작품은 <햄릿>과 <맥베드>이다. 공연을 자주 보러다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 국내 초연되는 <맥베드>는 보고 싶은 작품이다(지난 9월에 <맥베드>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기도 했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은 놔두고서라도) 스케줄이라더니...

경향신문(06. 10. 31)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 ‘오델로’ 네크로슈스 내한공연

(*기사 타이틀에 오타가 있다. '오델로'가 아니라 '맥베드'라고 해야 맞다)

"연출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연극학교의 중요성을 믿지 않는다. 진정한 아티스트는 자신이 가는 길 뒤에 제자를 남기지 않는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독창적 해석으로 유명한 연극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가 자신의 대표작 두 편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햄릿’과 ‘맥베드’다. 네크로슈스는 언어를 최대한 절제하고 물과 불, 흙, 돌 등 자연물을 통한 은유와 상징을 펼쳐놓는다. 관객은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와 긴장감을 맛보고, 연극을 보고 난 후에도 잔상(殘像)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여년 전 네크로슈스의 작품을 처음 본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는 주저없이 “연극 천재”라는 찬사를 보냈다. 또 “리투아니아어라는 언어적 한계 때문에 그의 명성이 가려질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서 밀러의 우려는 빗나갔다. 유럽의 변방 리투아니아 출신의 네크로슈스는 현재 유럽에서 최정상의 연출가로 꼽힌다.

그는 햄릿(1997년), 맥베드(1999년), 오델로(2001년)로 이어진 셰익스피어 비극 시리즈로 단숨에 세계 연극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독창적인 연극언어를 선보이며 러시아의 황금마스크상, 스타니슬라브스키 국제연극상, 유럽극장협회의 뉴유러피언 시어터 리얼리티즈상 등을 휩쓸었다.

한국 공연은 이번이 세번째다. 2000년 ‘햄릿’과 2002년 ‘오델로’를 들고와 LG아트센터 좌석을 매진시켰다. 6년 만에 국내 관객에게 다시 선보이는 ‘햄릿’은 리투아니아 록가수가 우유부단한 햄릿으로 분하는 네크로슈스의 대표작이다. 천장에 매달린 육중한 양철 톱니바퀴는 떨어지는 순간 배우의 몸을 두동강낼 것처럼 무시무시하고, 얼음 덩어리로 만든 샹들리에는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물방울을 뚝뚝 떨군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에서 의미없이 배치된 사물은 없다. 그 모든 것을 동원해 햄릿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주변의 위협을 형상화한다. 3시간40분에 달하는 긴 연극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맥베드’(*이미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늙고 추악한 마녀 대신 젊고 매혹적인 마녀들이 등장한다. 맥베드 부부의 욕망이나 악한 본성보다, 두 사람의 끈끈한 사랑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도 흔들리는 통나무와 위협적으로 내리꽂히는 도끼, 어지럽게 흔들리는 거울들과 무대로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 등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햄릿’은 11월1~2일, ‘맥베드’는 4~5일. LG아트센터.(문학수 기자)

06. 11. 01.

P.S. LG아트센타에서 공연 스틸사진을 몇 장 더 옮겨놓는다.

P.S.2. 이미 적은 대로 내가 더 보고 싶었던 건 <맥베드>이지만 아쉬운 대로 <햄릿>의 공연평을 옮겨놓는다. 연극평론가 김소연씨 평으로 컬쳐뉴스에서 옮겨왔다.

컬쳐뉴스(06. 11. 10) 젊은 죽음에 목놓아 통곡하다

연극을 꾸며 숙부의 죄악을 밝히겠다는 햄릿의 결심으로 제1부의 막이 내렸다. 네크로슈스의 <햄릿>(11.1, 2일, LG아트센타)은 과연 소문처럼 강렬한 이미지들로 충만했다. 무대 중앙 상공에 매달려 천천히 돌고 있는 육중한 철제 원반톱, 동물의 가죽을 그대로 두른 듯한 털코트, 무대 상공에서 흩뿌려지는 가는 물줄기가 운무처럼 무대를 감돌고 원반톱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작은 북을 두드린다. 희곡의 인물과 사건은 물, 불, 둔중한 철제 대소도구, 그리고 비재현적 움직임으로 재구성되었다. 거기에다 대사들은 마치 조각 조각의 독백처럼 객석을 향해 쏟아져왔다.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객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대를 지켜보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LG아트센타에서 개막한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2000년 서울연극제에서 이미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대륙별로 해외프로덕션 회사를 둔 대형 뮤지컬도 아니고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공연도 아닌, 고도의 상징적인 무대언어로 전개되는 연극공연이 다시 초청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상당기간 동안 연극계에서 회자되는 공연이었다. (김아라 연출의 <사천 사는 착한 여자>와 네크로슈스의 <햄릿>을 저울질하다 김아라를 선택한 나는 한동안 주위 동료들로부터 ‘따’를 당해야 했다.) 당시 내 주위에서 오갔던 이 공연에 대한 열광을 대충 요약해보면 곧 무대의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한 드라마의 언어인가를 체험하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제1부가 끝나고 잠시 극장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다시 조금 전 무대를 생각해보면 ‘충격’이랄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 6년 새 우리는 참 많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네크로슈스의 <햄릿>이 초연될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우리에게 러시아 및 동유럽 연극들은 많이 익숙한 것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국제 규모의 공연예술제들이 생겨나고 중대형 극장들이 속속 개관하면서 이렇게 늘어난 중대형 무대들의 상당 부분이 동유럽 연극들로 채워져 왔다. 얼마 전 끝난 2006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보더라도 해외 초청작은 대부분 동유럽 연극이었다.

그런가 하면 마치 LG아트센타를 벤치마킹 하려는 듯 고급 공연장 이미지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예술의전당은 아예 러시아 황금마스크상 수상자들을 줄줄이 초청해 직접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텍스트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텍스트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가 언어 텍스트를 압도하는 동유럽 연극들은 해체적인 서구 실험극과는 다르게 근대적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미학을 보여주는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공연예술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들의 연극이 한국연극에도 이미 소개될 만큼 소개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네크로슈스의 <오셀로>도 봤고, 부드소프의 <보이체크>도 봤고, 지자트콥스키의 <갈매기>와 네프도진의 <형제자매들>도 보았던 것이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프다.

찬바람에 머리도 식히고, 옛 소문에 부풀었던 기대도 한 켠으로 밀쳐두고 다시 객석에 앉았다. 제2부의 막이 오르고 햄릿과 호레이쇼는 나무상자를 무대 중앙에 옮기고 그 위에 쇠덩어리로 된 조작기를 올려놓는다. 둥근 핸들 중앙에 달린 쇠막대가 나무 상자 내부로 뻗어내려와 무쇠판에 연결되자 고문대라도 차려놓은 것 같다. 자 이제 곧 햄릿이 꾸민 연극이 시작될 터. 클로디어스와 거투르드, 오필리어와 폴로니어스 그리고 햄릿과 호레이쇼가 카니발이라도 벌이는 듯 긴 원통을 두드리고 소리치며 나무 상자 주위를 돈다. 차례차례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거투르드에게 오필리어에게 클로디어스에게 검댕이를 묻힌다.

아이들의 놀이처럼 서로 서로 검댕이를 묻히고 거투르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몸을 구부려 나무상자에 앉아 있던 햄릿도 상자 밖으로 나와 이들과 어울릴 때 이번엔 클로디어스가 상자 안으로 들어가고 상자의 문이 닫힌다. 다시 문이 열리고 클로디어스가 나왔을 때 그는 혼비백산해서 무대를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다가가 “독살장면에서 그 모습 봤지?”라며 선왕이 타살당했다는 믿음을 굳힌다.

세익스피어의 극중극을 검댕이 칠 놀이와 덫에 갇힌 클로디어스로 전개하는 이 장면에서 나는 이제까지 희곡과 대조하면서 지켜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네크로슈스의 이미지들은 세익스피어라는 미로에 갇혀 조각조각으로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몇몇 장면이 재배치되고 희곡의 대사도 정리되어 있긴 하지만 한편 무대 위의 발화들은 거의 그대로 원본을 따른다. 비재현적 무대연출과 대조적으로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그대로 따르는 배우들의 대사는 그 자체의 언어적 의미를 형성한다기보다는 또하나의 무대적 요소로 여타의 이미지들과 충돌하면서 드라마를 심화시키고 있다.

공연 내내 무대 상공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육중한 철제 원형톱, 투명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 그리고 털가죽 같은 코트를 입고도 한껏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차가운 공기. 이 모든 것들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햄릿이 짊어지고 있는 ‘복수의 의무’의 무게를, 그러한 의무를 짊어지우는 감옥 같은 세상을 은유한다. 그러나 햄릿은 모듬 발로 뜀을 뛰고 철제의자를 기울여 앉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오필리어와 사랑을 나누는 여린 청년일 뿐이다. 철제 원형톱에 선왕의 유령이 매달아 놓은 얼음 샹들리에 밑에서 얼음이 녹아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뇌하는 햄릿은 세계와 맞서는 비극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의무에 내몰려 떨고 있는 여린 영혼이다. 선왕의 유령이 앉아있던 바로 그 철제 흔들의자에 앉아 햄릿은 선왕처럼 위엄을 부려 보려하지만 의자를 굴리는 것마저도 힘겹다.

 

 

 

 

 

 

 

 

 

마지막 결투. 햄릿과 레어티즈는 객석을 향해 정면으로 나란히 서고 그 뒤로 일군의 젊은이들이 역시 객석을 향해 서 있다. 이제 결투의 시작. 클로디어스가 펼쳐놓은 음모의 덫에 선 햄릿과 레어티즈 그리고 젊은이들은 정면을 향해 칼을 뻗는다. 무대 위의 젊은이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정한 동작을 반복하고 무대 위에는 허공을 가르는 이들의 칼 소리만이 울릴 뿐이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공포스런 울음인지 허공을 가르는 칼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햄릿도 레어티즈도 그리고 젊은이들도 차례 차례 쓰러진다.

연극의 첫장면에서 철제 원반톱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작은 북을 울리던 그대로 다시 물방울이 작은 북을 울리고 있다. 죽어가는 햄릿이 작은 북을 안고 쓰러지자 이제 북소리가 멈춘다. 다시 무대에 등장한 선왕의 유령은 북을 안고 있는 햄릿의 손을 풀려하지만 햄릿의 주검은 북을 놓지 않는다. 선왕은 털코트에 햄릿의 주검을 옮기고 주검이 안고 있는 북을 치며 오열을 터뜨린다.

<햄릿>을 그린 많은 연극들이 몰두하는 것은 결국 햄릿에게 부여된 의무와 의무의 이행을 지연하는 햄릿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윤영선은 <떠벌이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에서 <오레스테스>와 <햄릿>을 빌어와 아비-그것은 곧 역사로 확장된다-가 짐지운 의무에 비틀거리는 ‘나’를 그리는데, 때때로 ‘나’를 찾아와 의무를 환기시키는 아비의 유령을 향해 ‘나’는 “아직 술먹는 어린 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윤영선의 ‘나’(햄릿)는 무기력과 냉소로 의무의 이행을 지연시키는 반면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그렇게 비틀거릴 냉소의 여지도 없이 감옥 같은 세상에서 떠맡겨진 ‘의무’를 짊어지고 죽는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에서 물을 매우 다양한 양태와 상징으로 시종 무대에 등장하여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오브제인데, 선왕의 유령을 암시하는 운무에서 복수의 칼을 담은 얼음덩이 그리고 속죄의 기도를 올리는 클로디어스의 물잔 등 물은 모두 선왕과 클로디어스와 연관되어 상징과 은유를 발한다. 이러한 ‘아비’들의 세계에서 복수의 의무를 강요당하는 햄릿이 할 수 있는 것은 복수의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강요하는 북소리를 멈추는 것이었다.

강렬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잘 정돈된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충격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아름답다. 하지만 더 강한 울림은 마지막 북소리와 통곡이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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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2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02 21:37   좋아요 0 | URL
**님/ 아하, SR님이시군요! 잘 지내시나요? 세미나는 사정상 잠정 휴업에 들어갔답니다. 팀장님이 지방으로 잠수를 타시는 바람에요. 나중에 사정 얘기는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암튼 건강하시고 공부만 너무 많이 하지 마시고.^^

수유 2006-11-09 10:19   좋아요 0 | URL
이 연극을 제가 놓쳤드랬습니다... 엘지 아트였는데...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만..오면 기억을 해야것습니다.

로쟈 2006-11-09 11:32   좋아요 0 | URL
눈뜨고 놓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 다시 와도 걱정입니다...

수유 2006-11-09 12:54   좋아요 0 | URL
<햄릿>을 보았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크군요...

로쟈 2006-11-10 23:52   좋아요 0 | URL
공연평을 대신에 추가로 옮겨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