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인터넷신문들을 뒤적거려보다가 배창호 감독의 17번째 영화(라는) <길>에 대한 인터뷰와 소개 기사를 읽었다. 이번주 개봉 예정작이다. 80년대 최고 흥행감독의 한 사람이 지금은 '독립영화' 감독이 돼버린 현실 자체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 <길>은 주연까지 맡은 감독 자신의 '길'이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기억에 내가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배감독의 영화는 <러브 스토리>(1996)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러브 스토리>일 뻔했다. 오래전 일인데, 종로에 혼자 나갔다가(영화를 보러 혼자 다니곤 했다. 1주일에 서너 편씩 보던 때이다) 무슨 맘에서인지 당시 '조용히' 개봉중이던 <러브 스토리>를 한번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걸음을 지금은 사라진 명보아트홀로 옮겼다(명보아트홀에서 나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동사서독>을 보았다). 극장 주변이 아주 한가했는데, 상영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에 지배인인 듯한 아저씨 다가와서는 사정 얘기를 늘어놓았다. 관객이 나 혼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사기를 돌려봐야 수지도 맞지 않고 하니 환불해주겠다고 했다(영화를 정 보시겠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이란 토를 붙이면서). 아저씨의 푸념, "뭐, 이런 영화를 만들어가지고..."
잠시, 고집을 부려서 영화를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배감독 부부가 주연한 '러브 스토리'를 기필코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또 '내가 김정일이냐'란 생각도 들어서 여러 사람의 수고를 무릅쓰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에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뜸하게 극장에 걸렸다(이정재 주연의 <흑수선> 정도가 약간 '요란하게' 개봉했던 걸 제외하면). <젊은 남자>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던 배감독이 너무 '자기 생각'만 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필모그래피를 다시 확인해보니까 내가 본 그의 영화는 12편 가량이고 그 중 절반 이상은 극장에서 보았다(<황진이> 같은 건 고등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보았다. 최근의 '황진이' 열풍이 감독으로선 의아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뒤늦게라도 흥행할 영화는 물론 아니었다. 그냥 배창호의 '장미희 숭배'가 만들어낸 판타지 영화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꼽자면, <꼬방동네 사람들>, <기쁜 우리 젊은 날>, <꿈> 등이다. 스틸사진으로 봐서는 어쩌면 <길>도 그 리스트에 올릴 수 있을 듯하다(특히 눈길이 마음에 든다). 한겨레의 기사와 감독 정보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0. 31) 20년 동안 곰삭여온 ‘길’로 나섭니다
배창호(53) 감독이 <흑수선> 뒤 5년 만에 17번째 영화 <길>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2003년 1월부터 여덟달 동안 촬영은 끊어질 듯 이어졌다. 그의 영화 <정> 제작 때 프로듀서를 맡았던 강충구 이산프로덕션 대표가 고생길에 뛰어들어 제작비 5억원을 끌어모았다. 지난 16일 서울 세종로에서 만난 배 감독은 당시 속내를 이렇게 기억했다. “갑갑했죠. 제작진에게 미안해서 난 중간에 그만 둬도 상관 없다는 말도 했어요.” 교통비 정도 받고도 방방곡곡을 함께 누빈 제작진 25명에게 마음 빚을 졌다. 하지만 기다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완성했지만 배급사를 찾지 못했다. “인연이 없어서였겠죠….” 결국 상업적이지 않더라도 작품성을 갖춘 영화를 알려온 배급사 스폰지와 연이 닿았다.
그렇다고 배 감독이 주인공 태석역을 맡은 까닭이 팍팍한 제작 여건 때문만은 아니다. “<개그맨> <러브스토리>에 이어 8~9년에 한번꼴로 주인공을 맡은 셈이내요. 태석을 가장 잘 이해할 만한 사람이 저였어요.” 그만큼 <길>은 그 안에서 오래 곰삭은 영화다. “20년 동안 길에 대한 영화를 생각했죠. 인간의 방랑성,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아낼 수 있는 길은 감독들에겐 보편적인 주제죠.” 그는 <고래사냥> 1·2편과 <안녕하세요, 하나님>등 로드무비로 여러 편 찍어 여정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이번 길에 대한 구상에 구체적인 살을 입힌 건 우리나라 장인들에 대한 책이었다. “특히 대장장이가 모루를 고통처럼 짊어지고 가는 모습이 좋았어요. 영화 속에서 쌀로만 엿을 만들거라는 할머니의 대사 등은 실제 책 속 모델에서 따온 거예요.” 영화 속 사람들은 고집스럽우면서도 유순하다. 전형적인 데가 있다. “저는 태석을 보며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어떤 분은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해요.” 누구 하나 제대로 모질지 못하다. “악한 사람도 깊숙히 보면 방황하게 된 원인을 안고 있어요. 상처는 대물림 되고 그걸 끊을 수 있는 게 용서인 것 같아요.”
영화 속 길도 사람처럼 푸근하고 유장하다. 그 길을 발품 팔고 <한국의 오지 마을>이란 책의 도움도 받아 찾아냈다. 경북 왜관 낙산에는 1970년대 풍경에 어울릴 법한 이발소가 있었다. 강원도 삼척 환선굴에 있는 너와집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제작비 때문에 장날 모습을 충분히 복원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길에서건 사람에서건 끌어올린 친근하고 질박한 감수성을 그는 “원형질” 또는 “한국적인 것”이라고 표현한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년)로 데뷔해 <고래사냥> <깊고 푸른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1980년대 흥행작들을 줄줄이 내놓은 그가 <꿈>(1990년) <정>(1999년) 이후 붙들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여기엔 옛 것에 대한 향수가 배어 있다. “깊은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어요. 디지털 문화는 차가워서 그런 느낌이 얇죠.” 그래서 1970년대와 50년대로 거슬로 올라가 <모정> 등 영화 포스터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까지 담았다. “황톳길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기록해 둬야죠.”
그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그는 태석만큼이나 고집스런 길을 가고 있다. “독립영화가 곧 돈 적게 들이고 재미 없는 영화는 아니죠. 자본으로부터 창작의 정신을 지키는 영화를 말하는 거에요. 자본이 주인공이 되면 영화의 개성이 없어져요. 1천만명이 좋아하는 영화뿐만 아니라 1만명을 위한 영화도 나와야죠.”(김소민 기자)

떠돌이 대장장이 발길따라 외로움과 사랑이 ‘터벅터벅’
<길>(감독 배창호)의 줄거리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 등을 떠올리게 한다. 태석(배창호)은 20년 넘게 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다. 그에겐 그가 짊어진 모루처럼 무거운 상처가 있다. 둘도 없는 친구인 득수(권범택) 탓에 집을 잃고 옥고를 치렀다. 깊이 사랑했던 아내 곁도 떠나야 했다. 오해와 분노에 떠밀려 장터를 떠돌던 태석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간다는 득수의 딸 신영(강기화)을 우연히 만나 함께 득수가 숨을 거둔 마을로 떠난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의 힘이 묵직하다. 봄꽃 흐드러진 지리산 기슭 구례 산동 산수유 마을, 광활한 만경평야, 삼척 환선굴에 우뚝 솟은 산, 강원도 임계의 외딴 여인숙….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영평 바다 그물처럼 얽힌 내 사랑아~” 따위 구성진 노랫가락이 얹힌다. 이 리듬을 타고 이야기는 아련한 자장가, 때론 처연한 곡소리가 돼 감정의 밑자락을 울린다.
무엇보다 고집스럽도록 선량한 보통 사람들을 향한 눅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꼼꼼하게 복원한 1950년대와 70년대 풍경 속에 냉차 파는 할머니와 그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수박장수가 있다. 엿 장수는 곧 죽어도 쌀로 만들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태석이는 “대장장이를 돈 벌자고 하간디”라며 풀무질에만 매달린다. 친구에게 집문서도 아낌없이 내주는 태석은 말할 것도 없이 딸 버리고 친구도 배신한 악인 득수에게도 이해할 만한 그만의 이유가 있다. <길>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밴 한과 용서를, 외로운 방랑성과 끈질긴 사랑을 노래한다. 허탈한 절망과 허황된 희망 사이, 절묘한 균형을 맞춘 결말은 여운이 길다.(김소민 기자)





배창호
대표작 <깊고 푸른 밤> <황진이> <고래사냥2>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나 일찌감치 서울로 이사,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어머니 덕에 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다. 서울 교대 부속국민학교와 서울중학교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영화를 좋아했고, 71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연극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오태석(연극인), 신완수(방송인) 등이 같이 활동하던 동료이며, 대학 3학년 때부터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다니던 시절인 77년 이장호 감독을 알게 되면서 영화의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78년에는 아프리카 케냐로 발령받아 출국했으나 이장호 감독의 현장 복귀 소식을 듣고 귀국해 충무로에 발을 디뎠으나 80년이 되어서야 <바람불어 좋은 날>(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으로 현장일을 시작했고, 81년 <어둠의 자식들>(이장호 감독) 조감독을 거쳤다. 82년 배창호 감독이 만든 데뷔작은 그의 ‘사부’인 이장호 감독과 암울했던 시대상황의 영향인지 소외받는 달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회성 드라마 <꼬방동네 사람들>이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시작해 <철인들>(1982),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깊고 푸른 밤>(1984), <고래사냥2>(1985)와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꿈>(1990), <천국의 계단> (1992)까지, 그후 <젊은 남자>(1995), <러브스토리>(1996)로 나누어진다. 앞 시기의 작품들은 감독으로서의 성취욕과 적당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타협이란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불신, 즉 재미없다는 인식을 깨고자 하는 생각”(이효인, <한국의 영화감독 13인>)과 사회 비판적인 분위기에 대한 당시 영화검열을 주관하던 문공부의 폭력적인 외압에 대한 비타협과 비합법·반합법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었던 외부적 상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일관성보다는 작품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최인호의 신문 연재소설이 원작으로 현대사회의 황폐하고 왜곡된 애정 행각을 그린 <적도의 꽃>, 억압받는 사회현실을 방황하는 청춘에 빗대 이들의 해방감과 인간성 회복에 애정어린 시선을 담은 <고래사냥>, 박완서의 원작소설로 6·25 때 헤어진 자매가 겪는 질곡의 삶을 그린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불법 이민한 한 남자의 아메리칸 드림과 계약 결혼한 교포 이혼녀의 사랑을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영상으로 그린 <깊고 푸른 밤>, <고래사냥>의 흥행성공에 고무받아 만든 속편 <고래사냥2> 등이 전기작에 속한다(두번째 작품 <철인들>은 그가 다니던 현대그룹의 홍보용 영화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작품들은 비록 편차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에 기초하고 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황진이>를 분기점으로 형식과 내용의 변화가 나타난다. 먼저 형식면에서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이동화면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테이크가 길어졌으며, 미장센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영화미학은 <삼국유사>의 조신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광수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꿈>에서 극에 달한다. 이렇듯 <황진이> 이후 작품에서 스타일의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것은 “그가 한국 영화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현대영화의 미학을 천착하고 있었고, 또 훨씬 이전부터도 이의 예술적 작용과 성취에 매우 깊은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효인의 같은 책)”된다.
영화의 주제 역시 이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큰 줄기에는 변화가 없지만 “통속적인 애정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의 만남을 희구하는 긍정의 미학”(이효인의 같은 책)으로 넓어졌다는 점은 달라진 점이다. 또 배창호 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비와 어둠, 십자가와 기차소리, 그리고 묵음을 통해 실낙원의 이미지를 구현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작품성과 별 관계없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등장하는 비와 어둠의 이미지는 곧 만남의 미학이라는 배창호의 인생관의 상징이다”(이효인의 같은 책). 빈번하게 등장하는 십자가와 교회 종소리, 기차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적도의 꽃>에도 후반부에 기차소리는 끼어들고,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소리를 배제한 장면은 놀라운 효과를 거둔다.
<천국의 계단> 이후 제법 긴 공백 끝에 배창호 감독은 세편을 더 만들었다. 94년에 만들어 95년에야 개봉할 수 있었던 <젊은 남자>와 아내와 감독 자신이 직접 주연으로 열연한 자전영화 <러브스토리>, 독립영화 시스템으로 만든 98년 작 <정>이다. <젊은 남자>는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의 젊은이들을 담겠다는 야심은 강했지만 ‘80년대의 배창호가 90년대의 젊은이들’을 그리는 거리감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고, <러브스토리>는 배창호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자의식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그래도 감각적인 카메라와 배창호 영화 미학은 건재하다는 평가가 많았다.(영화감독사전, 1999)
[필모그라피]
1. 길(2004)
2. 흑수선(2001)
3. 정(1999)
4. 러브 스토리(1996)
5. 젊은 남자(1994)
6. 천국의 계단(1991)
7. 꿈(1990)
8.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9. 안녕하셔요 하나님(1987)
10. 황진이(1986)
11. 깊고 푸른 밤(1985)
12. 고래사냥2(1985)
13. 고래사냥(1984)
1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15. 적도의 꽃(1982)
16. 철인들(1982)
17. 꼬방동네 사람들(1982)
[수상경력]
1983년 대종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198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꼬방동네사람들>
1984년 영평상 감독상 <고래사냥>
1984년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적도의 꽃>
1985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 <깊고 푸른 밤>
1986년 대종상 감독상 <깊고 푸는 밤>
2000년 이탈리아 우디네이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관객상 <정>
2000년 프랑스 베노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최우수 관객상 <정>
06.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