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책 두 권이 번역돼 나왔다는 단신을 접하고 귀가길에 서점에 들러봤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았단다. 직원의 말을 보다 정확하게 옮기자면, "새물결 책은 따로 주문하셔야 합니다." 비록 대형서점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규모는 되는 2층 건물의 서점에서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은 아니었다(하지만 내가 자주 듣는 종류의 답변이다. 하긴 어지간한 문학잡지들도 들어오지 않으니). 멋쩍어서 책세상문고가 어디 있는지 물어서 역시나 신간인 벤담의 <파놉티콘>(책세상, 2007)이나 집어들고는 계산대로 갔다...

집에 돌아와 벤야민의 신간에 관한 리뷰가 떠 있나 싶어 한겨레의 북리뷰로 들어갔다가 어떨결에 읽은 건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과 '천태산인' 김태준의 평전들이다. '좌파 혁명운동가'란 공통점이 있을까? 동시대를 살아간 두 빨치산/지식인의 행로가 두툼하게 재현돼 있는 듯해서 반갑다(<김태준 평전>은 아직 알라딘에 입고가 되지 않은 듯하다). 두 리뷰기사를 모아놓는다.  

한겨레(07. 08. 04) 빨치산 대장 이현상 생애와 투쟁 복원

장편소설 <파업>(1989)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작가 안재성(47)씨. 2000년대 이후 그는 식민 시대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삶과 투쟁을 복원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재유를 중심으로 김삼룡과 이현상 등이 전개한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재조명한 <경성 트로이카>(2004)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은 지난해의 〈이관술 1902~1950〉을 거쳐 이번에 새로 낸 <이현상 평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현상 평전>은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결성되어 전쟁 직후까지 지리산을 중심으로 빨치산 투쟁을 벌인 남부군 대장 이현상(1905~1953)의 생애와 유산을 꼼꼼하게 더듬는다. 특히 남부군의 존재를 남에서도 북에서도 잊혀진 ‘역사의 미아’로 묘사한, 남부군 기관지 <승리의 길> 기자 출신 이우태(필명 ‘이태’)의 논픽션 <남부군> 등의 관점을 강하게 반박한다. 이현상이 북에서 보낸 누군가에게 암살당했다는 설을 부인함은 물론이다.

전북(지금은 충남) 금산의 유복한 양반가의 막내로 태어난 이현상은 1920년대 후반부터 해방될 때까지 총 12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전향하거나 변절하지 않았다. 빨치산 시절 그는 나이와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존대했으며, 포로나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을 엄금했고, 오락시간이면 북에서 배운 탭댄스로 흥을 돋우곤 했다.

그런 그를 대원들은 한결같이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과 호감을 표했다. 과묵하고 온후했던 그는 군사 지도자로서의 능력도 탁월했다. 전황이 낙동강을 경계로 교착 상태에 빠졌던 1950년 8월에는 90여 명의 유격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 두 달 동안 미군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해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으로의 퇴로가 막힌 채 산에 갇히게 되고부터 마지막 순간을 맞기까지의 3년 동안이 그의 생애의 절정이자 <…평전>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얼어죽고 맞아죽고 굶어죽는다’는 빨치산의 운명은 이 시기를 다룬 평전의 마지막 세 장에서 비극적 광휘를 한껏 내뿜는다. 이 시기의 유격 투쟁은 분명 불가피한 몰락을 향해 가는 하강 운동이었지만, 이현상의 인간적 면모는 몰락의 드라마를 배경으로 오히려 상승하는 듯 보인다.

마침내 그가 수긍하기 어려운 죄목을 뒤집어쓰고 평당원으로 강등된 뒤 의문의 죽음을 맞을 때에도 그는 끝내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책 말미에는 선배 소설가 김성동씨의 장문의 발문이 곁들여졌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07. 08. 04) "신념과 죽음 맞바꾼 지식인 제대로 평가하고 싶었다”

한국 현대시를 연구해 온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다소 뜻밖의 책을 펴냈다. <김태준 평전-지성과 역사적 상황>(일지사). 국문학자이자 일제 강점기·해방공간의 대표적인 좌파 혁명 운동가의 삶을 꼼꼼히 들여다본 것이다. 사상이 누리는 자유의 공간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김태준(1905~1949)이란 이름 석자는 여전히 드러내놓고 논하기에 부담스런 존재다.

경성제대 중국어문학과 출신인 그는 25살인 학부 3학년 때, 우리 문학의 근대적인 개별양식사로는 최초 저작인 <조선소설사> 원고를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1931년엔 또 다른 양식사인 <조선한문학사>를 펴냈다. 이어 <조선가요>(1934)를 출간했고, 한국사, 민속, 종교, 한국고전 관계 논문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30살 이전에 대부분의 기성 연구자들보다 많은 저서를 내면서 강렬한 주목을 받았다. 문단과 학계의 총아가 된 것이다. 이런 업적을 토대로 그는 34살 때 경성제대 문학부에서 전공 강의를 가르치는 최초의 조선인 학자가 됐다.

그의 삶은 1년 뒤 조선공산당 재건 경성위원회(경성콤그룹)에 가담하면서 격랑의 한가운데로 빠져 들어간다. 이 당시 맺은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 이현상과의 인연은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어진다. 삶의 비극적인 종지부도 공유했다.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 것도 마찬가지다. 경성콤그룹 지하운동으로 2년 동안 옥살이를 한 뒤 1943년 세상 밖으로 나온 김태준은 노모와 아내, 어린 아들이 모두 죽었음을 알게 된다. 해방을 1년 남기고 독립운동을 위해 국외탈출을 시도한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연안행’이다. 해방과 함께 고국에 돌아와서는 박헌영과 남로당의 행보에 자신을 일치시킨다. 남로당 특수정보부장으로 49년 11월 수색의 군처형장에서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 교수는 “왜 김태준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식인으로서 그가 가진 신념이 좋든 나쁘든 (그것을) 일관되게 지키고 또 (그것을 위해) 죽음까지 무릅써야 했던 것은 평가되어야 한다.” “대학교수급 (지식인) 가운데 김태준처럼 총살형을 당한 경우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그가 유일하다”고도 했다. “신념 속에 죽었다”는 아우라보다 더 절실한 이유는 그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분’이 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와 이데올로기가 같은 북한 문학사에서 김태준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다. 그는 그쪽에서는 틀림없이 애국자다.”

곧 <북한문학사>를 펴내는 김 교수는 문학과 정치 관련 각종 북한 사서를 들춰보았으나 단 한차례도 김태준이란 이름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남한의 연구도 미흡하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전집이 없다. 기존 저작의 복사판 수준의 전집만 나와 있다. “김태준이 쓴 모든 자료를 엮어서 전집을 만들어야 한다. 그의 글이 굉장히 거칠다. 앞뒤 논리가 안 맞는 예도 부지기수다. 자료를 모두 모아 교정하고 정리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있는 그대로 김태준에 대해 적어 놔야겠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그에게 김태준의 공과는 뚜렷이 갈린다. 혁명가로서 김태준은 해방 이전까지는 반제투쟁의 투사였다. 그 당시 계급투쟁은 반제투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남로당 노선에는 비판적이다. 남로당의 ‘극좌모험주의’로 수많은 인명이 결과적으로 살상당했다고 본다. 남로당의 문화공작 책임자였던 김태준이 직접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그의 지시로 지리산 문화공작대로 파견된 시인 유진오 등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그는 적었다.

학자로서의 연구 업적에도 자신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가장 불만스러운 점은 <조선소설사> 등에서 나타나는 ‘성급한 계급사관’이다.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다는 이유로 다산 정약용을 소외시키거나, ‘비과학적’이라면서 단군 건국신화를 제외시킨 판단은 수긍하기 힘들다고 썼다. 하지만 △고려시대 패관문학을 소설의 갈래로 포함시킨 점 △박지원의 <양반전> <허생전> <호질>의 발굴 소개 △허균 <홍길동전>, 김만중 <구운몽>을 부각시킨 점 △〈심청전> <흥부전> <장화홍련전>의 소설사 등록 등은 굵직한 업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교수의 뇌리에 인간 김태준이 각인된 시기는, 14살이던 1946년이다. 당시 문학가 동맹 기관지 <문학>에서 김태준이 쓴 ‘연안행’을 읽었다. 반제투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제 포위망을 뚫고 연안으로 탈출한 이야기가 “독서 능력이 보잘것없었던” 시절에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이 수기는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이 격화되면서 끝을 맺지 못한다.

김 교수는 김태준이 신념 때문에 연구를 계속하지 못한점을 몹시 아쉬워했다. “서울대에 남았으면 한국과 중국문학의 주인이 됐을 것이다. 업적이 괜찮다. 연안에서 귀국할 때도 서울에 가면 ‘난 이제 다른 것 그만두고 공부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총살당하기 직전에도 ‘안정되면 고려시대 문학사를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연구자·학자로 남기에는 속된 말로 피가 너무 끓었다.”

신념을 저세상에 가져간 한 지식인의 남다른 행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생각을 밝혔다. “하나님에게 운명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있다. 자기 신념이나 믿음에 의해 사는 것이다. 지식인은 많이 안다. 고문으로 죽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신념에 따라 살기가) 더 어렵다. 그의 신념·사상에는 여러 결함이 있다. 그럼에도 그런 신념 속에 죽으니까 평가되었다.”

07. 08. 03.

P.S. <김태준 평전>의 저자인 김용직 교수에게서 오래전 '해방기 시문학사'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교재가 <해방기 한국시문학사>였는데, 지금 찾아보니 개정판마저도 절판된 상태이다. 아마도 15-6년 전인 듯싶다. <임화 문학연구>의 초판도 그맘때 나왔던 것 같고. 강단에서 주로 시를 가르친 저자의 관심이 의외로 지식인과 이념(신념)의 문제에 많이 쏠려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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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10   좋아요 0 | URL
강조하실 때 분홍색 대신 노랑색을 쓰니까 눈이 덜 피로하고 좋네요.

로쟈 2007-08-04 18:24   좋아요 0 | URL
주로 연한 색을 쓰는데, 분홍색을 너무 많이 썼나요?^^;

심술 2007-08-04 18:30   좋아요 0 | URL
네, 주로 분홍색을 많이 쓰셔서 그 동안 눈이 좀 아팠어요.
 

사회학자이자 시민운동가 정수복씨의 신간이 출간됐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생각의나무, 2007)이란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600쪽에 육박한다!). 지난주에 책이 나온 걸 서점에서 봤지만 너무 두꺼워서 읽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이전에 살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리뷰 정도만 챙겨두도록 한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옮긴 피에르 앙사르의 <현대 프랑스 사회학>(문학과지성사, 1992)를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벌써 15년 전이라니...

문화일보(07. 08. 03) 한국인의 병폐 낳은 巫敎-儒敎 ‘잘못된 만남’

한국인들은 상대방과 얘기할 때 흔히 “(무엇무엇이) 있거든요…”라는 말을 앞세운다.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들어간다. 상대방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응대한다. 속으로는 “그래 너 잘났구나… 어디 한번 해봐”라고 코웃음을 친다. 이어 상대방의 말을 열심히 듣기보다 자기가 무슨말을할까만을 골똘히 생각한다. 노래방에서 상대방의 노래는 듣지 않고 자기가 부를 노래만을 열심히 찾듯이. 대화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심각한 소통장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그릇된 우월감은 자신을 제대로 성찰할 수 없게 만든다. 한국인들은 20세기 전반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점’이라는 굴종의 경험에 치를 떨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인가. 20세기 후반을 거쳐 21세기로 진입하면서 폭발적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뒤 한국인들은 어디에서고 우쭐대고 싶어한다.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우월주의가 대표적이다. 이미 세계 초강대국이 돼 버린 일본을우습게 보는 것은 남한과 북한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다.

이 책은 우월주의와 근거없는 낙관주의, 감정우선주의, 이중규범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등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거침없이 무너뜨린다. 한국인의 병폐를 성역없이 들춰낸 박노자 오슬로국립대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 이어 오랜만에 나온 비판적 한국인론이다. 무척 논쟁적이다. 곳곳에 뇌관이 묻혀 있다. 굿의 지역 공동체적 정감 회복이라는 의미가 부각되는 상황인데 무교(巫敎)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최근 네트워크 사회가 진전될수록 심해지는 개인주의, 파편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을 인정하는 개인존중사상과 개인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초청연구원으로 지난 2002년 이후 두번째 파리 생활을 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유학생 신분으로 머물렀었다. 집을 나온 뒤에야 기존 관습에 젖지 않고 집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볼 수 있다. 저자는 파리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이나 거리를 배회하면서 한국사회의 종교와 문화, 교육, 의식구조 등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곱씹어본 듯하다.

저자는 545쪽에 이르는 이 책에서 방대한 담론을 풀어놓기 전에 우선‘한국사회의 문화적 문법’에 딴죽을 걸겠다고 선언한다. 문화적 문법을 사회구성원들의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영어문법을 모르면 무시당하듯 여러번 문화적 문법을 어기면 ‘상대하지 못할 사람’이 되고, 계속 어기면 ‘미친 사람’이 돼 버린다는 것.

저자는 “한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10대 교역국가가 됐고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기존의 전통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를 한 경험은 빈곤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먼저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 등 6가지 근본적 문법으로 정리했다. 이어 파생적 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 6가지로 분류한다. 이 12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한국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분출된다.

저자가 예로 들었던 황우석 사태에서부터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에 이르기까지 지식인, 대학사회에서도 윤리적 불감증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할 때도 이 같은 요소들은 유용한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터지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 재발을 막는 근본적 방법보다는 공적 자리에 있는 책임자를 찾아내 그를 사퇴시키거나 법적 책임을 묻는 일로 마무리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특히 종교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도교, 불교, 기독교 등 외래종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교와 결합함으로써만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사회의 기저에 무교 - 유교 결합체를 근간으로 하는 문화적 문법이 끈질기게 작용하고 있다. 나쁜 일을 피하고 현실에서 복을 바라는 무교는 현세적 물질주의를 강화시켰다. 무교의 조화론은 갈등회피주의라는 문화적 문법의 뿌리다. 또 무교의 현세주의적 세계관이나 조화론은 이후 도래한 불교와 기독교에도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한국 기독교에서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가족이기주의와 연고주의는 유교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이 책에 따르면 유교도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권력과 질서의 유지, 국민동원에 적합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됐다. 개인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시됐고 이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논리로 정당화됐다. 또 한국인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개인주의 = 자기만의 이익추구 = 무질서 = 무정부주의 = 혼란 = 난장판’이라는 등식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이제 한국사회는 권위주의를 해체하면서 수직적 인간관계를 수평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치 중심의 사회운동도 문화중심의 사회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예술분야의 역할강화, 가족관계와 종교단체, 학교 교실의 민주화 등과 함께 영성훈련, 문화체험, 자원봉사, 우정과 연대의 발견, 독서토론 등을 통해 개인 내부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낡은 문화적 문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뇌관이 개인주의에 있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주체성과 자주성과 독자성을 갖춘 개인을 뜻한다. 저자는 “개인존중사상이 없는 한 나이와 성별, 출신가문과 출신학교, 지역을 기준으로 한 서열의식과 권위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한 공동체 논리 앞에 개인을 줄 세우는 오래된 문법은 계속 통용될 것”이라고 밝혔다.(예진수기자)

한국일보(07. 08. 04) 우리의 의식은 아직 상투를 틀고 있다

사회학자 정수복(53)씨. 1989년 프랑스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0년대 초까지 강의와 시민운동,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했던 그는 2002년 서울생활을 접고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자로 5년간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탐구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은 그가 한국사회에 대해 의도적인 ‘떨어져보기’를 시도하며 끌어낸 한국인론이다.

한국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한국의 근대는 미완이고 절름발이’라는 선언에서 명쾌하게 드러난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근대의 꼴을 이룩했지만, 그 시공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전근대의 정신적 유산을 떨치지 못했다고 본다. 그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발생한 황우석 사태가 상징적이다. 이때 한국 지식인들은 “개인이나 공동체나 너무 까발리면 생존하기 어렵다.

큰 공적을 이룬 분들은 공헌도 크지만 과정에서 오류도 있기 마련”이라며 희박한 윤리의식과 도덕불감증을 날것으로 보여줬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 시나브로 확산되는 박정희 전두환 이승만 등 전근대적 지도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 역시 그의 확신을 굳혔다. 그는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ar)’이란 개념을 동원해 한국인의 내면세계를 비판적으로 읽는다. 문화적 문법이란 구성원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마음의 습관, 의식구조 등을 아우르는 개념. 이는 다시 한국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내면화한 근본적 문법과 20세기 들어와 형성된 파생적 문법으로 나뉜다.

근본적 문법은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이고 파생적 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 중심주의다. 이 문법들의 기원은 유교, 도교, 불교 등 전통종교와 사상인데 지은이는 특히 유교의 부정적유산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령 유교의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한국인들은 불합리한 문제가 발생해도 문제 제기를 못했고, 이는 비판과 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자율적이고 근대적인 개인’들의 출현을 봉쇄했다는 것이다.

좌파건 우파이건 남한이건 북한이건 이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권이나 시민단체 내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강한 위계질서나, 사회주의를 내세웠지만 봉건적 수직적 질서를 강화했던 북한사회가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낡은 문화적 문법을 해체할 수 있는 주역으로 청년층과 여성들을 주목한다. 2030이라 불리는 청년세대는 나이, 직위, 영향력으로 유지되던 수직적 위계질서를 인격존중, 설득, 격려로 유지되는 수평적관계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오랫동안 남성지배적 문법에서 배제돼 있었던 여성들도 기존의 문법을 비판적이고 상대적으로 해석하며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세계를 낡은 문화적 문법으로 파악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희망에서 이 책을 썼다”며 “한국사회에 독자성과 존엄성을 지닌 개인을 그대로 인정하는 개인주의가 고양될 때 낡은 문법들이 해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왕구 기자)

07.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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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다 별달리 즐거운 일이 없던 차에(물론 반대로 착잡하고 짜증나는 일들은 차고 넘친다) 모처럼 '즐거운' 기사를 읽었다. 한 신인 작가의 등장을 소개하는 기사들이다. 이번에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정한아씨가 그 '신인 작가'인데 소설이야 안 읽어봤으니까 평가 유보이고(장편이라고 하지만 중편 분량의 경장편이 아닌가 싶다) 다만 소설을 쓰는 일이 너무 즐겁다는, 소설을 쓰는 자세가 즐겁다. “서울 집을 떠나 대전의 시골 마을에서 집필했는데, 작업실 밖에 나와 춤출 때마다 촌로들이 경운기를 멈추고 빤히 쳐다봤다”는 고백마저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스럽지만, 그렇더라도 여하튼 '즐거운' 거짓말이다. 그 즐거움이 사진에서도 묻어나는군...

한국일보(07. 08. 01) 문학동네작가상 받은 소설가 정한아

“거짓말이란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늘 생각해요. 진심이란 건 이해받을 수도 없고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은 가장 인간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자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죠. 제게 있어 소설은 바로 거짓말입니다.”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자인 정한아(25)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밝힌 문학관이다. 수상작 <달의 바다>는 바로 그 ‘아름다운 거짓말’에 관한 장편소설이다. 혼외로 낳은 아이를 친정에 버리듯 맡기고 훌쩍 미국으로 떠난 고모는 할머니에게만 몰래 항공우주국의 우주비행사가 됐노라며 편지를 보내온다. 원형 탈모증에 걸린 취업 재수생 ‘나’는 할머니의 은밀한 부탁을 받고 고모를 만나러 미국으로 간다. 소설은 고모가 쓴 일곱 통의 편지와 ‘나’가 목격한 고모의 비루한 현실을 교차 편집한다.

31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정씨는 자신의 첫 장편이자 수상작을 “한 호흡에 쓴다는 생각으로 보름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자이기도 한 그는 “단편을 쓸 땐 작업 내내 신경에 날이 서는데 반해, 장편은 어깨춤이 절로 나올 만큼 글이 술술 풀렸다”고. “서울 집을 떠나 대전의 시골 마을에서 집필했는데, 작업실 밖에 나와 춤출 때마다 촌로들이 경운기를 멈추고 빤히 쳐다봤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는 후문이다.

작품 속 ‘나’의 가족처럼 정씨는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의 장녀다. 고모, 할머니 등 등장 인물의 성격과 이미지도 실제 가족 구성원의 그것과 많이 겹친다고 정씨는 설명한다. ‘나’의 미국 여행 동행자로 등장하는,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남자 친구 ‘민이’도 여성적 성향이 다분한 친구를 모델로 삼았다.

이것이 꼭 경험이 일천하기 마련인 젊은 작가의 손쉬운 선택인 것 같지는 않다. 정씨가 가장 본받고 싶은 작가로 폴 오스터를 꼽으면서 “읽고 있으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좋다”는 이유를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심사위원들은 “구조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평론가 김화영), “생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 느껴진다”(소설가 이혜경)는 호평과 함께, 특히 편지글 부분에서 보여준 문장의 밀도와 긴장감을 한목소리로 칭찬했다. 우주비행사로서의 경험을 실감나게 묘사한 편지글은 정씨가 우주, 달 탈험 등 관련 전문서 여러 권을 탐독하며 일궈낸 결실이다.

혼자서 글 공부를 하다가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이후부터 소설가 구효서씨를 사사하고 있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김애현씨도 한때 동학이었다. 대산대학문학상 상금 500만원에 이어 이번 수상으로 받은 2,000만원도 모두 할아버지를 드렸다는 정씨는 “작년 겨울 동문(건국대) 모임에서 만난 김홍신 선배에게 등단 작가라고 소개했더니 한숨을 푹 쉬며 가여워 하더라”며 웃었다. 물론 이 당찬 스물다섯살 소설가에게 ‘거짓말’의 즐거움은 창작의 고행에 비할 바가 아닐 듯싶다. 그의 다음 작품은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서 만날 수 있다.(이훈성 기자)


 

 

 

 

 

 

 

 

 

세계일보(07. 08. 01) 소설이 정말 좋다는 25세 ''명랑작가'' 정한아씨

장편소설 ‘달의 바다’로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에 선정된 정한아(25·사진)씨가 31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젊은 소설가답게 명랑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소설론을 밝혔다. “소설은 거짓말인데 세상을 아름답게 해요. 거짓말은 인간적인 의사소통 수단인 것 같아요.”

‘달의 바다’는 꿈이 좌절된 이에게 건네는 위로다. 주인공 은미는 오랜 백수 생활 탓에 집안의 애물 취급을 받는다. 무직자의 우울한 생활은 고모와 만남으로 일대 변화를 맞는다. 15년 전 소식이 끊긴 고모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가 돼 있다. 소설은 은미의 일상과 고모의 비밀스러운 삶을 교차시키며 인생을 긍정한다. 우주생활을 묘사한 고모의 편지와 가벼운 반전이 소설의 재미를 높인다.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를 존경한다는 그는 대학 2년 때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정씨는 “미래를 고민하느라 6개월 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며 “그때 ‘소설가 아니면 되고 싶은 게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회상한다. 2005년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은 단편 ‘나를 위해 웃다’로 문단에 나왔다. 지난 5월, 처음 써본 장편 ‘달의 바다’가 문학동네작가상에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나선 셈. ‘달의 바다’를 쓸 당시, 대전에서 전원 생활을 했는데 “원고 쓰는 일이 무척 즐거워 간간이 디스코까지 췄다”고 말한다.

소설가가 된다고 했을 때, 할머니는 손녀의 앞길이 막막하다고 하셨다. 정씨가 잇달아 문학상을 수상하자 할머니는 “한아가 글 쓰는 동안 가족 모두 조용히 생활해라”며 집필 분위기를 만드신단다. 그는 젊은 소설가 중에서도 최연소 군에 속한다. 앞으로 70, 80년대 출생 소설가들과 한데 묶이거나 비교될 가능성이 크다. “젊은 소설가들과 겨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은연중에 표현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제겐 없어요. 저는 저만의 소설을 쓸 뿐입니다.”(심재천 기자)  

07.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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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정말 어리군요!!!!! 휴...
은연중에 표헌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없다, 라...

비로그인 2007-08-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진심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지가 더 의문이 가네요. 책을 봐야 작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없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도 놀랍고요. 그게 글에 표현을 안했다는건지, 작가내부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건지도요 ..궁금하네요. 사회에 대한 분노라는게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을 수도 있다라는 점이 너무 새로워요. 그럴 수 있는 문제일까.. 세상에 대한 사랑이 분노와 동전의 양면이 아니던가 싶은데 .. 말이지요

로쟈 2007-08-0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로 인상 쓰는 작가들 틈에서(소설 쓰다가 주로 이 빠지고 욕창 걸리고 하더군요) 밝게 웃고 있는 작가를 보니까 기분전환은 되는 듯합니다. 분노/원한 없이 쓰는 소설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지 않나 싶고. 하지만 압권은 소설쓰기가 너무 즐거워 췄다는 '디스코'입니다...

다크아이즈 2007-08-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질 안 한지 오래 된지라 간만에 로쟈님 뵙네요(!?) 요즘 '사회에 대한 분노' 따위를 들먹거렸다가는 젊은 작가 축에도 못낍니다. 짐짓 세상에 대한 분노와는 먼 척 해야 세련된 작가 소릴 듣는 걸요. 의도된 트렌드를 따르는 것 같아 미심쩍긴 하지만 로쟈님 말처럼 '디스코' 출 정도로 쓰는 게 즐겁다,는 대목에선 무척 부럽군요. 진정한 소설가는 이가 빠지고 욕창이 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치들의 껄쩍지근한(?) 표정이 궁금하네요.

로쟈 2007-08-0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오랜만이네요.^^ 이번에 나온 소설은 200쪽이 안되는 분량이라서 '장편'이라고 하기엔 좀 멋쩍긴 합니다. 이가 빠지거나 욕창에 걸릴 새도 없었을 거 같아요. 보름만에 다 썼다고 하니까...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8-0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단편을 인상적으로 봤는데 이번 소설도 굉장히 재미있을 거 같아 바로 주문했어요.
음, 근데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의 느낌이 왠지 다르군요. -_-

로쟈 2007-08-03 22:25   좋아요 0 | URL
단편도 읽어보셨군요! 흑백이 더 나은가요?..

twinpix 2007-08-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썼다는 게 부럽네요. 언제고 꼭 읽어봐야겠어요.

로쟈 2007-08-03 22:26   좋아요 0 | URL
즐겁게 쓰는/사는 건 재능이죠...

마늘빵 2007-08-0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재밌군요. <달려라 아비> 쓴 김애란씨도 80년생으로 어리던데, 이야 이분은 더. '언젠간' 읽어봐야겠단 생각합니다. 정이현 소설이나 주문해야겠습니다. 우선순위가 있지. :)

로쟈 2007-08-03 22:26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들도 꼬박꼬박 챙기시는군요.^^

나비80 2007-08-0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겨울 몇 번 같이 모임을 하다가 소설 쓴다고 시골로 내려가더니 떡 하니 문학동네작가상 수상해서 나타나더라구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에 대산문학상에서 실력을 인정 받긴 했습니다만.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건 제대로 보신 듯 합니다. 술도 곧잘 하더군요.

로쟈 2007-08-03 22:27   좋아요 0 | URL
오랜만인 듯한데요! 소이부답님의 정체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8-0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준에선 흑백이 좀 더 나은 듯... ㅎㅎ
이 소설은, 책 뒷부분의 심사위원들이 과찬한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어느 순간 '거짓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에잇, 그래도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했어요. 문장도 별로고...

로쟈 2007-08-04 14:16   좋아요 0 | URL
리뷰도 곧 써주시나요?^^
 

이번 아프간 사태에 관한 칼럼을 아침에 읽고 늦게서야 시간을 내 옮겨놓으려 하다가 그만 딴데 눈길을 팔게 되었다(칼럼은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7/h2007073017584024400.htm). 강렬한 원색이 잠시 뒤숭숭한 상념과 착잡함을 잊도록 해준 탓인 듯하다. '텍스트 인 바디스케이프'란 전시회 소식을 대신 옮겨놓는다(그러고 보니 같은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모네 전시회에도 못 가봤군)...

경향신문(07. 08. 01) 작가 27명의 ‘텍스트 인 바디스테이프’ 전

미술작품들은 대부분 다양한 소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드러낸다. 문학이나 음악 등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화가나 시인, 음악가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한길 사람 속’을 나름대로 표현한다. 그 작품들로 관객, 독자, 청중들은 감동하고, 느끼고, 비판과 공감을 통해 또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텍스트 인 바디스케이프(Text in Bodyscape)’전은 작가들이 인간의 몸, 신체를 통해 이야기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끝 없는 욕망이나 욕구, 기억, 지울 수 없는 상처, 꿈이나 희망, 고민, 향수, 불안한 심사 등이 다양한 신체의 풍경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술관 본관 1층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모두 27명의 작가가 회화, 영상, 사진, 조각, 설치작품 8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마다 독특하게 드러내는 다채로운 내면세계가 한 여름의 한 때를 뜻깊게 한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선보이면서 매체 간의 특성들도 비교해 흥미롭다.

김윤경은 인도에서 기증 받은 많은 옷들을 큰 하나의 옷으로 재구성한 설치, 곽윤주는 징그러운 칼자국의 상처를 여자의 등에 표현하고 이를 찍은 사진을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과거의 사건과 그 흔적을 이야기한다. 한 켤레의 하이힐과 흑백의 여행지 풍경을 담은 안경 등으로 구성된 영상(황혜선)에서도 기억과 연결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느껴진다. 밥그릇을 머리맡에 놓고 바닥에 엎드린 인물상의 조각작품(이종빈)은 배고픈 시절의 한 장면. 녹이 잔뜩 낀 밥그릇에 관객들은 동전과 지폐까지 던져넣고 있어 작품과 관객이 잘 소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속에 사진작업 당시 상황을 쓴 설명 팻말을 삽입한 김나음의 작품은 촬영 당시의 한 순간을 관객으로 하여금 되살리게 한다.

안재홍의 구리선으로 만든 거대한 인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어쩌면 불안정한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것 아닐까. 젖병의 고무 젖꼭지를 활용한 김주연의 설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벌거벗은 몸 위에 화려한 문신을 그려넣은 김준의 사진, 무한정한 번식을 괴기스럽게 담아낸 이희명의 설치 등은 원초적인 욕망, 욕구의 표현이다.

전시장에는 또 가는 스프링 줄에 인체 일부를 프린트해낸 설치(홍성철), 센서를 통해 관객의 몸짓을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 영상작업(전인혁) 등 작가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재료 등도 눈길을 끈다. 이종구 구경숙 민재영 이윤태 이배경 정소영 박진호 김병직 송은영 이건용 이수경 김선주 백기은 박수만 전수경 김재옥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이은주 큐레이터는 “몸, 신체 담론이 풍성하다”며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몸 담론과 관계된다기보다는 작가들이 몸이 담고 있는 내면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12일까지.(도재기 기자)

07.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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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의 '오늘의 책' 연재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란 이름을 접하고 바로 스크랩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소설들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어느 세계문학전집에 <치인의 사랑> 같은 작품이 들어 있었던 듯도 하지만 박스도서인지라 확인이 되진 않는다) 일본 작가들 가운데 마땅히 가장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어야 할 작가라는 평판 정도는 듣고 있었다.

개인적인 인연을 꺼내자면 재작년초 모스크바 체류를 끝내고 귀국할 무렵에 가장 마지막까지 만지작거렸던 책 중의 하나가 다니자키의 <그늘에 대하여>(<그늘 예찬>)였다(클래식 문고본이라 책값은 3,000원도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국역본이 있을 듯하여 손에 들지는 않았는데, 찾아보니 <음예공간 예찬>(발언, 1996)이라고 나온 적이 있었고 고운기 교수의 새번역본이 나온 건 그해 겨울이었다. <그늘에 대하여>(눌와, 2005). 책은 바로 구해서 연구실에 꽂아두었다가 이번에 생각이 나서 집으로 옮겨왔다(어제 전철에서 '연애와 색정'을 읽었다). 다니자키와 그의 작품들을 영어로 옮긴 사이덴스티커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7. 30) [오늘의 책<7월 30일>] 그늘에 대하여

1965년 7월 30일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가 79세로 사망했다. 3년 후,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두 작가의 작품을 서구에 소개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다니자키가 1968년까지 살아 있었다면 노벨문학상은 그가 받았을지도 모른다며 다니자키 없는 일본 근대문학은 '꽃 없는 정원'이라고 했다.

그는 그만큼 중요한 작가였다. 영국 신문 타임즈는 그의 사망에 "성과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을 118편이나 발표해 '동양의 D H 로렌스'로 불린다"는 부고 기사를 실었다. 타임즈의 보도처럼 다니자키 문학은 여체, 관능, 변태 같은 단어로 요약됐고 그는 종종 탐미주의 혹은 악마주의 작가로 불렸다. 잘 알려진 <치인(痴人)의 사랑>이나 <후미코의 발> 등은 그 계열의 대표작이다.

<그늘에 대하여>는 다니자키의 소설과 달리 국내에 비교적 덜 소개됐던 그의 산문집이다. 표제작과 '게으름을 말한다' '연애와 색정' '뒷간' 등 흥미로운 주제의 산문 6편이 실려있다. 산문이라는 형식에 그는 한층 세심하고 유려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아름다운 문장을 위해 하루에 원고지 3~4매 이상은 쓰지 못했다는 다니자키 글의 진수이기도 한 셈이다.

'그늘'은 일본적인 미를 설명하려는 그의 개념이다.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럼한 어떤 모습. '연애와 색정'에서는 '색기(色氣)'를 이렇게 풀이한다. "방종하여 노골적인 것보다도, 내부로 억제된 애정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서, 때로 무의식적으로 말씨나 몸짓 끝에 드러나는 것이 한층 남자의 마음을 이끈다. 색기라는 것은 대개 그런 애정의 뉘앙스이다."(하종오 기자)

서울신문(04. 10. 09)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지음

한국은 언제쯤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도 한국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이덴스티커는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해 그가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사이덴스티커는 1974년 외교관 자격으로 일본에 오지만,이내 갑갑한 외교관 생활을 접고 도쿄에 머물며 프리랜서 작가 겸 번역가로 활동한다.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다니자키 준이치로,미시마 유키오 등 일본 현대문학 3대 거장의 소설을 처음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일본인들도 현대어 번역 없이는 읽을 엄두를 못내는 고전 ‘겐지 이야기’를 10여년간의 고투 끝에 번역해내기도 했다.‘설국’에 대한 유려한 번역은 지금까지도 화제다.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원제 Tokyo Central,권영주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는 미국 최고의 일본문학 번역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자서전이다. 사이덴스티커는 1921년 2월11일 미국 콜로라도주 더글러스 카운티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2월11일은 일본의 건국기념일. 이 때문에 그는 전생에서부터 일본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병역문제로 고민하다 우연히 해병대 일본어 통역 요원으로 입대한 것이 계기가 돼 일본 문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책에는 전후 일본 문단의 풍경,번역에 대한 저자의 소신 등이 담겨 있다. 한국의 도자기와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장준하에 대한 일화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전통적인 일본의 미를 추구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자가 일본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는 탐미주의 경향의 다니자키 준이치로, 국수주의 색채를 보이다 결국 할복으로 생을 마친 미시마 유키오(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 등 전후 일본 문학을 이끈 이들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사이덴스티커는 번역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좋은 번역의 요령에 대해 한마디 조언한다. “작품을 시작하고 끝맺는 단락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고 흠을 잡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나도 ‘설국’의 서두를 보다 직역에 가깝게 했을 텐데….” 그는 “번역이란 끊임없이 뭔가를 내버릴 것을 요구하는,마구잡이에다가 가차없는 작업”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저자는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도 관심을 갖고 좋은 인연을 맺었다. 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 슬쩍 밀반출한 한국 도자기를 평생을 옆에 끼고 살았다고 멋쩍게 회고하는가 하면 장준하를 가리켜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의 전형이라고 격찬하기도 한다. 장준하에 대한 추억 한토막.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시끄럽고 싸움을 좋아하며 마늘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하지만, 장준하는 그런 일본인들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태도와 부드러운 말씨를 지니고 있었고, 매우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

07. 07. 30 - 08. 01.

P.S. 다니자키의 책들은 영어로는 물론이겠지만 러시아어로도 다수 번역/소개돼 있다. <열쇠>의 러시아어본 표지.

Ключ

P.S.2. <세설>(열린책들, 2007)의 한국어본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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