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의 '오늘의 책' 연재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란 이름을 접하고 바로 스크랩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소설들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어느 세계문학전집에 <치인의 사랑> 같은 작품이 들어 있었던 듯도 하지만 박스도서인지라 확인이 되진 않는다) 일본 작가들 가운데 마땅히 가장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어야 할 작가라는 평판 정도는 듣고 있었다.

개인적인 인연을 꺼내자면 재작년초 모스크바 체류를 끝내고 귀국할 무렵에 가장 마지막까지 만지작거렸던 책 중의 하나가 다니자키의 <그늘에 대하여>(<그늘 예찬>)였다(클래식 문고본이라 책값은 3,000원도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국역본이 있을 듯하여 손에 들지는 않았는데, 찾아보니 <음예공간 예찬>(발언, 1996)이라고 나온 적이 있었고 고운기 교수의 새번역본이 나온 건 그해 겨울이었다. <그늘에 대하여>(눌와, 2005). 책은 바로 구해서 연구실에 꽂아두었다가 이번에 생각이 나서 집으로 옮겨왔다(어제 전철에서 '연애와 색정'을 읽었다). 다니자키와 그의 작품들을 영어로 옮긴 사이덴스티커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7. 30) [오늘의 책<7월 30일>] 그늘에 대하여

1965년 7월 30일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가 79세로 사망했다. 3년 후,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두 작가의 작품을 서구에 소개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다니자키가 1968년까지 살아 있었다면 노벨문학상은 그가 받았을지도 모른다며 다니자키 없는 일본 근대문학은 '꽃 없는 정원'이라고 했다.

그는 그만큼 중요한 작가였다. 영국 신문 타임즈는 그의 사망에 "성과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을 118편이나 발표해 '동양의 D H 로렌스'로 불린다"는 부고 기사를 실었다. 타임즈의 보도처럼 다니자키 문학은 여체, 관능, 변태 같은 단어로 요약됐고 그는 종종 탐미주의 혹은 악마주의 작가로 불렸다. 잘 알려진 <치인(痴人)의 사랑>이나 <후미코의 발> 등은 그 계열의 대표작이다.

<그늘에 대하여>는 다니자키의 소설과 달리 국내에 비교적 덜 소개됐던 그의 산문집이다. 표제작과 '게으름을 말한다' '연애와 색정' '뒷간' 등 흥미로운 주제의 산문 6편이 실려있다. 산문이라는 형식에 그는 한층 세심하고 유려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아름다운 문장을 위해 하루에 원고지 3~4매 이상은 쓰지 못했다는 다니자키 글의 진수이기도 한 셈이다.

'그늘'은 일본적인 미를 설명하려는 그의 개념이다.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럼한 어떤 모습. '연애와 색정'에서는 '색기(色氣)'를 이렇게 풀이한다. "방종하여 노골적인 것보다도, 내부로 억제된 애정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서, 때로 무의식적으로 말씨나 몸짓 끝에 드러나는 것이 한층 남자의 마음을 이끈다. 색기라는 것은 대개 그런 애정의 뉘앙스이다."(하종오 기자)

서울신문(04. 10. 09)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지음

한국은 언제쯤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도 한국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이덴스티커는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해 그가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사이덴스티커는 1974년 외교관 자격으로 일본에 오지만,이내 갑갑한 외교관 생활을 접고 도쿄에 머물며 프리랜서 작가 겸 번역가로 활동한다.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다니자키 준이치로,미시마 유키오 등 일본 현대문학 3대 거장의 소설을 처음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일본인들도 현대어 번역 없이는 읽을 엄두를 못내는 고전 ‘겐지 이야기’를 10여년간의 고투 끝에 번역해내기도 했다.‘설국’에 대한 유려한 번역은 지금까지도 화제다.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원제 Tokyo Central,권영주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는 미국 최고의 일본문학 번역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자서전이다. 사이덴스티커는 1921년 2월11일 미국 콜로라도주 더글러스 카운티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2월11일은 일본의 건국기념일. 이 때문에 그는 전생에서부터 일본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병역문제로 고민하다 우연히 해병대 일본어 통역 요원으로 입대한 것이 계기가 돼 일본 문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책에는 전후 일본 문단의 풍경,번역에 대한 저자의 소신 등이 담겨 있다. 한국의 도자기와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장준하에 대한 일화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전통적인 일본의 미를 추구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자가 일본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는 탐미주의 경향의 다니자키 준이치로, 국수주의 색채를 보이다 결국 할복으로 생을 마친 미시마 유키오(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 등 전후 일본 문학을 이끈 이들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사이덴스티커는 번역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좋은 번역의 요령에 대해 한마디 조언한다. “작품을 시작하고 끝맺는 단락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고 흠을 잡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나도 ‘설국’의 서두를 보다 직역에 가깝게 했을 텐데….” 그는 “번역이란 끊임없이 뭔가를 내버릴 것을 요구하는,마구잡이에다가 가차없는 작업”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저자는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도 관심을 갖고 좋은 인연을 맺었다. 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 슬쩍 밀반출한 한국 도자기를 평생을 옆에 끼고 살았다고 멋쩍게 회고하는가 하면 장준하를 가리켜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의 전형이라고 격찬하기도 한다. 장준하에 대한 추억 한토막.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시끄럽고 싸움을 좋아하며 마늘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하지만, 장준하는 그런 일본인들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태도와 부드러운 말씨를 지니고 있었고, 매우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

07. 07. 30 - 08. 01.

P.S. 다니자키의 책들은 영어로는 물론이겠지만 러시아어로도 다수 번역/소개돼 있다. <열쇠>의 러시아어본 표지.

Ключ

P.S.2. <세설>(열린책들, 2007)의 한국어본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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