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다 별달리 즐거운 일이 없던 차에(물론 반대로 착잡하고 짜증나는 일들은 차고 넘친다) 모처럼 '즐거운' 기사를 읽었다. 한 신인 작가의 등장을 소개하는 기사들이다. 이번에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정한아씨가 그 '신인 작가'인데 소설이야 안 읽어봤으니까 평가 유보이고(장편이라고 하지만 중편 분량의 경장편이 아닌가 싶다) 다만 소설을 쓰는 일이 너무 즐겁다는, 소설을 쓰는 자세가 즐겁다. “서울 집을 떠나 대전의 시골 마을에서 집필했는데, 작업실 밖에 나와 춤출 때마다 촌로들이 경운기를 멈추고 빤히 쳐다봤다”는 고백마저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스럽지만, 그렇더라도 여하튼 '즐거운' 거짓말이다. 그 즐거움이 사진에서도 묻어나는군...

한국일보(07. 08. 01) 문학동네작가상 받은 소설가 정한아
“거짓말이란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늘 생각해요. 진심이란 건 이해받을 수도 없고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은 가장 인간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자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죠. 제게 있어 소설은 바로 거짓말입니다.”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자인 정한아(25)씨가 낭랑한 목소리로 밝힌 문학관이다. 수상작 <달의 바다>는 바로 그 ‘아름다운 거짓말’에 관한 장편소설이다. 혼외로 낳은 아이를 친정에 버리듯 맡기고 훌쩍 미국으로 떠난 고모는 할머니에게만 몰래 항공우주국의 우주비행사가 됐노라며 편지를 보내온다. 원형 탈모증에 걸린 취업 재수생 ‘나’는 할머니의 은밀한 부탁을 받고 고모를 만나러 미국으로 간다. 소설은 고모가 쓴 일곱 통의 편지와 ‘나’가 목격한 고모의 비루한 현실을 교차 편집한다.

31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정씨는 자신의 첫 장편이자 수상작을 “한 호흡에 쓴다는 생각으로 보름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자이기도 한 그는 “단편을 쓸 땐 작업 내내 신경에 날이 서는데 반해, 장편은 어깨춤이 절로 나올 만큼 글이 술술 풀렸다”고. “서울 집을 떠나 대전의 시골 마을에서 집필했는데, 작업실 밖에 나와 춤출 때마다 촌로들이 경운기를 멈추고 빤히 쳐다봤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는 후문이다.
작품 속 ‘나’의 가족처럼 정씨는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의 장녀다. 고모, 할머니 등 등장 인물의 성격과 이미지도 실제 가족 구성원의 그것과 많이 겹친다고 정씨는 설명한다. ‘나’의 미국 여행 동행자로 등장하는,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남자 친구 ‘민이’도 여성적 성향이 다분한 친구를 모델로 삼았다.
이것이 꼭 경험이 일천하기 마련인 젊은 작가의 손쉬운 선택인 것 같지는 않다. 정씨가 가장 본받고 싶은 작가로 폴 오스터를 꼽으면서 “읽고 있으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좋다”는 이유를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심사위원들은 “구조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평론가 김화영), “생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 느껴진다”(소설가 이혜경)는 호평과 함께, 특히 편지글 부분에서 보여준 문장의 밀도와 긴장감을 한목소리로 칭찬했다. 우주비행사로서의 경험을 실감나게 묘사한 편지글은 정씨가 우주, 달 탈험 등 관련 전문서 여러 권을 탐독하며 일궈낸 결실이다.
혼자서 글 공부를 하다가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이후부터 소설가 구효서씨를 사사하고 있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김애현씨도 한때 동학이었다. 대산대학문학상 상금 500만원에 이어 이번 수상으로 받은 2,000만원도 모두 할아버지를 드렸다는 정씨는 “작년 겨울 동문(건국대) 모임에서 만난 김홍신 선배에게 등단 작가라고 소개했더니 한숨을 푹 쉬며 가여워 하더라”며 웃었다. 물론 이 당찬 스물다섯살 소설가에게 ‘거짓말’의 즐거움은 창작의 고행에 비할 바가 아닐 듯싶다. 그의 다음 작품은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서 만날 수 있다.(이훈성 기자)

세계일보(07. 08. 01) 소설이 정말 좋다는 25세 ''명랑작가'' 정한아씨
장편소설 ‘달의 바다’로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에 선정된 정한아(25·사진)씨가 31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젊은 소설가답게 명랑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소설론을 밝혔다. “소설은 거짓말인데 세상을 아름답게 해요. 거짓말은 인간적인 의사소통 수단인 것 같아요.”
‘달의 바다’는 꿈이 좌절된 이에게 건네는 위로다. 주인공 은미는 오랜 백수 생활 탓에 집안의 애물 취급을 받는다. 무직자의 우울한 생활은 고모와 만남으로 일대 변화를 맞는다. 15년 전 소식이 끊긴 고모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가 돼 있다. 소설은 은미의 일상과 고모의 비밀스러운 삶을 교차시키며 인생을 긍정한다. 우주생활을 묘사한 고모의 편지와 가벼운 반전이 소설의 재미를 높인다.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를 존경한다는 그는 대학 2년 때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정씨는 “미래를 고민하느라 6개월 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며 “그때 ‘소설가 아니면 되고 싶은 게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회상한다. 2005년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은 단편 ‘나를 위해 웃다’로 문단에 나왔다. 지난 5월, 처음 써본 장편 ‘달의 바다’가 문학동네작가상에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나선 셈. ‘달의 바다’를 쓸 당시, 대전에서 전원 생활을 했는데 “원고 쓰는 일이 무척 즐거워 간간이 디스코까지 췄다”고 말한다.
소설가가 된다고 했을 때, 할머니는 손녀의 앞길이 막막하다고 하셨다. 정씨가 잇달아 문학상을 수상하자 할머니는 “한아가 글 쓰는 동안 가족 모두 조용히 생활해라”며 집필 분위기를 만드신단다. 그는 젊은 소설가 중에서도 최연소 군에 속한다. 앞으로 70, 80년대 출생 소설가들과 한데 묶이거나 비교될 가능성이 크다. “젊은 소설가들과 겨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은연중에 표현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제겐 없어요. 저는 저만의 소설을 쓸 뿐입니다.”(심재천 기자)
07. 08.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