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강의가 끝나서 4월엔 한숨 돌리게 됐지만(5월 강의 이전에 재충전이 될까?), 3월에 마무리 못 지은 일들이 고스란히 이월됐기에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내내 부조리극을 연출하고 있는 천안함 침물 사건도 물론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고.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4월의 책장을 펼친다. 무엇이 보이나?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추천한 문학분야의 책은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소설집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현대문학, 2010)로 박완서 선생 외 여덟 작가의 자전적 단편을 모았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함께 펼쳐지는 박완서의 자전이나 전쟁 통에 홀로 떨어져 피난 가는 소년 이동하의 모습에서는 우리 역사가 만들어낸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윤후명, 사람 속에 섞이지 못하고 자신 속으로만 파고드는 여자의 내면을 고백 투로 펼쳐낸 김채원, 누구보다 뛰어난 예술가의 자질을 펼쳐보지 못하고 투신해버린 오빠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 양귀자를 비롯한 최수철, 박성원, 조경란, 김인숙의 자전 속에서는 작가로서의 그들의 삶만 보이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 작가의 삶속에 비쳐지는 우리 역사와 지금의 현실이 보인다.

생각난 김에 <얼룩 - 2010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현대문학, 2009)과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작가, 2010)도 같이 묶어볼 만하다.    

세계문학의 고전들도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데, 일단 눈에 띄는 건 작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헤르타 뮐러의 작품들이지만, 1930년대 미국작가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소설들을 골라본다. 그건 <거금 100만 달러>(마음산책, 2010)이 출간됨으로써 39살에 교통사고로 요절한 이 작가의 '전집'이 소개된 셈이기 때문이다. <메뚜기의 하루>와 <미스 론리하트>, 그리고 이번에 묶여서 나온 <거금 100만 달러>와 <발소 스넬의 몽상> 등 네 편이 그가 남긴 작품의 전부라 한다. 그럼에도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면 대단하지 않은가! 해럴드 블룸은 <거금 100만 달러>에 대해 "이 혼란의 시대의 정전"이라고 평했는데, 그게 어떤 시대인지는 작품의 에피그라프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말했잖아요. 저는 죄가 없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걸 입증할 돈이 없지 않은가." 

'1930년대 암울한 미국사회의 축소판'을 그려냈다고 하지만,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성싶지 않다. 고전은 그래서 언제나 '우리시대의 고전'이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의 추천작은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2010). 제목의 암시대로 '노비제', 특히 '노비 소송'이라는 프리즘으로 조선시대를 들여다보는 게 핵심. 부제는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다.    

저자는 노비제가 조선시대의 신분제, 나아가 사회의 얼개를 규명하는 핵심 관건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노비에 대한 연구는 극히 소략하다. 저자는 “신분이라는 것이 지극히 법률적인 개념인데도 노비의 법적 성격에 대해 거의 외면한 채 진행된 것은 따져 볼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물론 중국과도 달랐던 조선의 노비소송을 들여다보면 조선의 시스템이 보이는 듯하다. 이 책은 노비 소송을 통해서 바라본 조선 사회의 생생한 속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흑인 노예의 역사를 다룬 정상환의 <검은 혁명>(지식의숲, 2010)도 우리와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노예제에 관한 이론적 저작으론 모시스 핀리의 <고대 노예제대와 모던 이데올로기>(민음사, 1998)가 있다. 현재는 절판된 책인데, 다시 나오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작년에 핀리의 책을 모아놓고 조금 읽다가 만 적이 있다. 여차하면 다시금 시도해봐야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최훈의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뿌리와이파리, 2010)이다. 철학 입문서인데, 책소개에 따르면, "기존 책들이 대부분 사고실험을 단순히 흥미 위주로 쭉 나열해놓았을 뿐이어서 특정한 사고실험이 철학사의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보였다면 논리학을 전공한 최훈 교수가 쓴 이 책은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과학철학 등 철학의 주요 분야들에서 골고루 선택한 117가지 사고실험을 통해 철학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고. 청소년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은데, 원조를 따지자면 양운덕의 <라쁠라스의 악마는 무엇을 몰랐을까?>(창비, 2001)도 있었다. 영어권 철학 입문서로는 로젠버그의 <철학의 기술>(서광사, 2009)도 소개돼 있다. 원제대로 하자면 '철학실습'이 딱 어울린다.   

 

개인적으론 라캉과 정신분석 관련서들이 몇 권 출간돼 반가운데, 모두 4월에 손에 들려고 하는 책들이다. '라캉 정신분석의 쟁점들'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맹정현의 <리비돌로지>(문학과지성사, 2010)는 라캉의 사위이자 상속자 자크-알랭 밀레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저자의 '인간 정신의 지형도'. 국내 저자의 책으론 <라깡의 재탄생>(창비, 2002) 이후의 성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만화책 <라캉>(김영사, 2002)을 통해서 처음 소개됐던 영국의 정신분석가 대리언(다리언) 리더의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문학동네, 2010)도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다. 어인 일인지 나는 저자를 여자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책은 "우아하고, 지적이고, 명쾌하다!"는 알랭 드 보통의 추천사도 싣고 있는데, 거기에 보태진 뒷표지의 문구는 이렇다. "알랭 드 보통보다 대담하고 지젝보다 친절하다!" 보통보다 어렵고 지젝보다 쉽다, 고 읽힌다.

     

덧붙여, 카자 실버만의 <월드 스펙테이터>(예경, 2010)도 소리소문 없이 나온 라캉주의 철학서다. 부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 저자는 기호학과 정신분석, 페미니즘을 이론적 기반으로 하여 영화와 사진을 분석한다. 이번엔 진짜 여자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한번 소개한 바 있는 박지희, 김유진의 <윤리적 소비>(메디치, 2010)다. 이젠 많이들 아는 내용인데, 책의 핵심은 '합리적 소비 VS 윤리적 소비'다.    

자급자족적인 농업문명 시대와 달리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의 거의 모든 활동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여 활용하는 소비행위를 수반한다. 그런데 소비활동의 중요 요소인 구매 과정은 전형적인 경제활동으로서 ‘현명한’ 소비자로서 활동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상품이나 서비스의 제조나 제공 과정을 살펴보지 않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기 위해 구입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소비자의 최고 덕목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찬양받는 ‘합리적’ 소비의 ‘비윤리성’을 고발하고, 대신 ‘윤리적’ 소비를 주장한다. 우리의 소비활동을 생태계 보존, 동물의 복지, 노동자와 제1차 생산자의 복지, 그리고 (여행과 같은 문화적 소비의 경우) 현지인들의 복지 등과 연관시켜 윤리적으로 사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없지는 않은데,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실천문학사, 2010)이 대표적이다. 관련 페이퍼로 '윤리적 소비에 관한 두 권의 책'(http://blog.aladin.co.kr/trackback/mramor/3451490) 참조.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의 추천작은 <토요타의 어둠>(창해, 2010)이다. 얼마전 언론에서 크게 다루었던 책인데, '품질경영'의 대표적 브랜드로 인식됐지만 자사 자동차의 결함에 대한 은폐로 위기에 몰린 도요타의 문제를 짚고 있다. 알고 보면, 1년에 광고비만 1천억 엔 이상씩 쓴 광고빨이었다는 것.    

이 책을 쓴 사람들은 토요타 자동차의 성능이 좋다는 이미지가 허구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은 자동차 판내대수와 리콜대수가 거의 똑같을 정도로 결함이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2004년에서 2006년의 기간 동안 512만 대를 팔고 511만대를 리콜해 결함률 99.9%를 기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소중하게 키운다는 기업이 과로사한 사람에게 산재 처리조차 해주지 않는 매정함을 보이고 있다. 토요타의 사례는 기업의 덩치가 통제불능의 수준까지 커지는 공룡화의 현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토요타의 교훈을 새겨들어야 할 기업이 많을지 모른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어떤 시사점인가? <삼성과 도요타, 왜 최강인가?>(열매출판사, 2006)란 책 제목이 반어적으로 말해주는 듯싶다.   

 

개인적으론 자본주의 해부서 몇 권이 관심도서다. 짐 스탠포드의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부키, 2010)은 "노동자나 자영업자 같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쉽게 풀어 쓴 자본주의 경제학 입문서"이고,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은 J.P. 모건과 록펠러가라는 독점재벌이 미국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를 어떻게 '주물렀는가'를 폭로한다. 히로세 다카시 버전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문화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돌베개, 2010)는 자본주의를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해준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김병호의 <과학인문학>(글항아리, 2010)이다. 시인이 쓴 과학이야기란 점에서 <시인을 위한 물리학>(에코리브르, 2006)과는 거울상을 이루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장점을 지녔을까? 

“질량이 뭐야, 아빠”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물리를 전공한 시인의 관점으로 물리학에서 필요한 근본이론을 설명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저자는 시인이 생각하는 삶의 관점에서, 고민 많은 청소년의 경험의 관점에서, 우리의 주변 일상생활에서 어려운 물리학의 개념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로는 철학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인 예를 들어 설명의 지루함을 피하게 한다. 

요즘은 뇌과학이 대세이므로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동녘사이언스, 2009)도 같이 꼽아볼 수 있겠다. 모두 지난달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은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지호, 2010)와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김동규, 정해진의 <이 장면을 아시나요?>(생각을담는집, 2010)이다. 오페라 가수의 오페라에 관한 책이다. "오페라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 열다섯편이, 마치 그 인물들이 옆에서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쓰여진 책이 나왔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곡을 불러 인기를 한몸에 안고 있는 성악가 김동규씨가 자신의 입담대로 이야기하듯이 책을 엮어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소개를 보니, 라디오 프로그램의 인기코너를 엮은 것이다. 

CBS-FM <아름다운 당신에게> 최고 인기 코너 ‘이 장면을 아시나요’에서 소개된 오페라만 해도 무려 30여 편. 한 장면 한 장면이 아닌, 오페라 전체를 들려주고 싶은 욕구로 바리톤 김동규는 “아니, 오페라가 뭐하는 데 쓰는 물건이여?”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오페라가 별 게 아녀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오페라의 황홀한 세계로 안내한다.

오페라 애호가라면 돌라르와 지젝의 <오페라의 두번째 죽음>(민음사, 2010)도 같이 꽂아둘 만하다. 오페라 광팬이라는 두 저자가 각각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오페라를 철학적으로, 정신분석학적으로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짐작엔 오페라에 관한 가장 고난도/고감도의 책이지 않을까 싶다. 지젝이 밝힌 취지는 이렇다.    

“근대기 주체성의 시대와 대체로 일치하는 시대에, 어떤 극적 사건을 상연하는 일부로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이 가능했다. 따라서 우리는 오페라의 역사에서 주체성의 역사를 구성하는 추세들과 변동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싶은 것이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랠프 네이더의 <열일곱 개의 전통>(재인, 2010)이다. 랠프 네이더? 소비자-시민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랠프 네이더, 우리에게는 미국의 대표적인 소비자운동의 선구자 정도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레바논계 부모님으로 받은 교훈을 아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네이더는 당당하게 말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둘 다 거의 백 년을 살았다.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풍부한 경험에 바탕을 둔 통찰과 지혜의 도움을 받았다.” 어머니는 늘 네이더 형제들에게 듣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경청의 전통, 가족식탁의 전통, 자녀평등의 전통, 독립적 사고의 전통, 애국의 전통, 시민생활의 전통 등 부모와 자연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익힌 17개의 자랑스러운 덕목을 마치 곁에서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결들여, 요즘 사회-시민운동엔 전통 대신에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앤디와 마이크의 <예스맨 프로젝트>(빨간머리, 2010)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관련기사는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6931.html 참조). 광고카피였던 '유쾌-상쾌-통쾌'는 이들의 작업에도 더없이 유효한데, 이런 사진은 어떤가. 



예스맨이 어떤 천재지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버볼’을 입고 해변을 거닐고 있다. 테러 방지에 안달한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의 한 장면.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실용서는 김효정의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일리, 2010). 저자는 영화프로듀서인데, 특이한 것은 사막 횡단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그녀가 구른 것은 영화판만이 나니었다. 사막의 모래밭을 굴렀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고비(중국),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칠레), 가장 뜨거운 사하라(이집트), 가장 바람이 세게 부는 남극 대륙을 달렸다. 이 네 곳의 사막 레이스를 완주한 사람을 그랜드 슬래머라고 한다. 여성으로서는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는 세번째란다. 나는 이 그랜드 슬래머를 줄여 ‘글래머’라고 부르고 싶다.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실용서'가 아니라 '모험서'로 분류해야 될 듯싶지만, 여하튼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젊음'이란 이미지에 잘 맞는 이야기가 펼쳐질 듯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늘도'의 컨셉이 그런 것이겠다. 덩달아 <나는 오늘도 유럽출장간다>(부키, 2008), <나는 오늘도 춤추러 간다>(마젤란, 2007) 등의 타이틀에도 눈길이 간다. '실용서'가 무엇인지도 감이 좀 잡힌다.   

10. 오늘의 영화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오늘의 영화'다. 계기가 된 건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강, 2010). <씨네21>의 편집장을 역임한 저자의 영화평은 자주 읽어봤지만 한데 묶어놓으니 중럄감이 다르다. 그의 비평은 '표준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개성적'인 쪽에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저널리즘적 비평에 몸담고 있었지만 별로 구애받지 않았다는 의미다. 말미에는 동료 평론가인 정성일, 김혜리의 유익한 발문도 수록돼 있다. 더불어 '오늘의 영화'에 대한 흥미도 자극한다. '강의 영화' 시리즈에는 '우리시대의 감독'도 예고돼 있는데, 임권택, 김기덕 감독과의 대담은 정성일, 그리고 홍상수 감독과의 대담은 허문영, 박찬욱 감독과의 대담은 김영진 평론가가 각각 맡고 있다. 기대가 되는 근간들이다.  

10. 04. 01.  

P.S. 이달의 '의무방어전'을 치른 기분이다.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만을 덧붙인다. 이달의 고전작가라고 해도 되겠다.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로 꼽히는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들이다.  

"니콜라이 레스코프, 그야말로 진정한 작가다"라고 톨스토이는 평했는데, 톨스토이가 남을 칭찬한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대표적인 중단편을 묶은 <왼손잡이>(문학동네, 2010)가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됐고, <괴물 셀리반>(닮, 2006)과 <러시아의 맥베스부인>(소담출판사, 2006)은 수년 전에 출간됐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이야기꾼'이기도 한 레스코프의 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겠다. 발터 벤야민의 레스코프론은 유명한데,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꾼이 지닌 재능은 그의 전 생애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야기꾼이란 그의 삶의 심지를, 조용히 타오르는 그의 이야기의 불꽃에 의해서 완전히 연소시키는 사람이다. 레스코프와 같은 이야기꾼을 둘러싸고 있는 비교할 수 없는 아우라는 바로 여기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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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3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3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약칭 '인사회')에서 발행하는 <아름다운 서재>(통권 제5호)에 실린 추천사를 옮겨놓는다. 인사회 소속 출판사들의 추천도서 목록과 인사회 선정 '2009 올해의 책' 목록이 포함돼 있는 비매품 책이다. 과분한 자리에 초대를 받아 추천의 소견을 남기게 됐다.    

아름다운 서재(통권 제5호) 추천사 

“난 적어도 책 한 권에 인생이 변했노라고 말하는/ 비열한 인간은 되기 싫었던 것이다.”(이응준, 「어둠의 뿌리는 무럭무럭 자라나 하늘로 간다」)

오래 전에 읽은 시의 한 구절입니다. 보통 ‘내 인생의 책’이니 ‘나를 바꿔준 한 권의 책’ 같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생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인간이 그렇게 쉽게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공감한 대목입니다. 책에 매혹된 이후로 책을 읽는 일이 제 주업처럼 돼 버렸지만, ‘책이 전부야!’란 말만큼은 피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앉은 자리에서 ‘비열한 인간’이란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았지요.  

인생은 ‘책 한 권’ 따위에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책이라곤 읽지 않아!’라고 자랑스레 말해야 할까요? 적어도 이 <아름다운 서재>를 손에 든 분들이라면 그런 ‘아Q’적 발상을 선택지로 꼽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지요. 맞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러 권’입니다. 우리가 좀 ‘덜 비열한 인간’이 되거나 더 나아가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면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 다수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인생이 아직도 비열한 인생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가 ‘책만 읽어서’가 아니라 ‘책을 덜 읽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충분히 읽지 않아서’라고 말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이 ‘한 달에 한 권’ 정도라고 합니다. 책읽기에 관해서 우리는 ‘한 권 읽기’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굳이 각 나라별 비교수치를 갖고 오지 않더라도 우리의 독서량과 독서문화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건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온갖 종류의 책들을 다 포함한 통계치라서 그 ‘한 권’도 ‘인문사회과학서적’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시인의 기준을 조금 비틀어서 이렇게 말해보고도 싶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인문사회과학서적을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으면서 책을 읽었노라고 말하는” 비열한 인간, 비열한 독서가는 되지 말아야겠다고요. 개인적 차원에서나 사회적 차원에서나 다수의 책을 읽는 일, 그건 독서가 습관이자 문화일 때 가능하겠지요. 우리가 그런 습관과 문화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책 읽는 뇌>란 책의 저자가 말해주는 바에 따르면, 인간에게서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곧 인류가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따지고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기는 합니다. 인류가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체 인류사에 견주어 보면 극히 최근의 일이며, 진화적 적응이라고 보기엔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독서는 후천적으로 개발되는 능력이고, 한 과학자의 표현을 빌면 ‘옵션 액세서리’입니다. 그러니 “나는 독서에 흥미가 없어”거나 “나는 책을 못 읽겠어”라는 투정이 특별히 이상하거나 부자연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독서 능력은 ‘옵션’이니까요. 하지만 강조해야 할 것은 그것이 ‘특별한’ 옵션이란 사실이지요.  

불과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대중적 독서’는 불과 1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따름입니다.) 독서능력이라는 ‘발명품’은 인간의 뇌 조직을 재편성하고 사고능력을 확대시켰으며 역사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러한 인류사적 대전환은 한 개인의 역사에서도 반복됩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다른 세계, 또 다른 우주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니까요. 흔히 인간을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로 정의하면서, 인간이 똑똑해서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똑똑해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한 사정은 독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듯싶습니다. 즉 우리는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집니다. 따라서 독서능력이라는 ‘옵션 액세서리’는 있으나 마나한 장신구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물론 독서 능력 자체는 오늘날 표준적이며 어느 정도 보편화된 능력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오징어나 말미잘과는 다른 존재로 구분해주지만 똑같이 책을 읽을 줄 아는 다른 사람과는 구별해주지 못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이 독서능력 또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아니 지속적으로 발달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발달은 무엇보다도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서 이루어질 터입니다(그리고 여기 그렇게 읽을 만한 책들의 목록이 수록돼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인간의 단순한 생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말입니다. ‘단순한 생명’을 ‘생존’이나 ‘목숨’으로 바꿔 넣어도 좋겠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생명’으로서 그저 ‘자연사적 삶’만을 영위하는 존재는 아니지요. 간단히 말하면,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아니 그렇게 사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우리가 연어나 날치보다 뭐 그렇게 대수로운 존재인가 의심해볼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러한 의심 자체,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우리가 ‘단순한 삶’이나 ‘자연사적 삶’을 넘어서는 차원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축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외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떤 인간이어야 하는가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존재입니다. 물론 이 질문은 인간 문명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것이기도 합니다. 독서는 이 질문의 연속성을 상기시켜주면서, 우리를 그러한 질문의 공동체로 묶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혼자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독서경험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우리’로 확장시켜주면서, 사회역사적 존재로 거듭나게 합니다. 따라서 당위적인 독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필연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책을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읽습니다.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는 책들의 목록을 마주하면서 긴장과 축복을 동시에 느낍니다.  

10.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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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4-0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도 아주 가끔씩은 하기도 해요. 책 한권으로 바뀌는 인생 얼마나 줏대없는 인생인가..라는 말도 안되는 궤변을요..^^

로쟈 2010-04-01 10:00   좋아요 0 | URL
더불어 좀 게으른 인생이란 생각도 들지요...

구보 2010-04-0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 아이 독후감 숙제에 <아침형인간>이 있는 걸 봤습니다.독후감까지 써야할 수고를 생각하면 그 책을 대체하고도 남을 많은 책들 때문에 가슴이 쓰립니다.존경하는 인물에 박정희와 김대중이 나란히 있는 모 연예인 네어버책추천 블러그를 봤을 때만큼이나 뜨악하기도 합니다.수많은 중고생들 서가에 꽂혀있는 추천도서들 선정기준도 궁금하기만 할 때가 많습니다.

로쟈 2010-04-02 10:17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서재'는 일종의 자가-추천입니다. 각 출판사에서 내놓을 만한 책들을 골랐더군요. 중고생 추천도서 같은 경우는 경험과 피드백이 돼야 할 거 같아요. 추천받아서 읽어보니 괜찮더라, 아니더라 하는...

비로그인 2010-04-0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의 진화를 읽으면서 생각해 봤어요. 책읽는 뇌와 그렇지않은 뇌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로쟈 2010-04-02 10:18   좋아요 0 | URL
진화의 산물이 되기엔 기간이 너무 짧구요. '훈련' 문제 같습니다.^^

꼬마별 2010-04-0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도서는 누가 정할까 항상 궁금해하는 한사람입니다
아이들 추천도서 보면 나이에 비해 좀 어렵다 싶은 것도 많은데
목록은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어요..

로쟈 2010-04-02 10:19   좋아요 0 | URL
어린이책은 저도 모르겠어요.^^;

비로그인 2010-04-0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트에게 영혼, 신, 자유가 있었다면 로쟈님께는 책이 있었다는... 아마 무덤까지 책을 가지고 가실 분이세요. ㅎㅎ

로쟈 2010-04-05 11:29   좋아요 0 | URL
책에 파묻혀 죽을 거라는 얘기는 종종 듣지요.--;
 

내일자 경향신문에 실리는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나는 한 가지 주제만을 반복적으로 쓰고 있다). 보통 월초에 나가다가 이달엔 월말에 나가게 됐는데, 낮에 천안함 구조 속보를 계속 클릭해가며 쓴 것이다(끝내 원고를 보낼 때까지 좋은 소식은 뜨지 않았다). 칼럼의 제목은 '행복은 경제성장과 무관하다'로 나갔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행복'은 정치적 공약이 되기에는 너무 모호하다는 점이다. 정치의 장에서 행복은 언제나 계량화된 행복, 정량적인 행복일 수밖에 없으며(행복의 비교급은 그런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것은 곧 '행복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 미처 거기까지 다 쓰지 못한 탓도 있다...    

경향신문(10. 03. 30) [문화와 세상]행복은 경제성장과 무관하다 

중국의 부유층 사이에서 티베트의 토종개 ‘짱아오’ 열풍이 불고 있다 한다. 사자의 갈기처럼 긴 털로 덮여 있어서 일명 ‘사자개’라고도 불리는 이 희귀종 개는 원래 유목민들의 양치기개였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의 신흥부자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육하면서 몸값이 한국 돈으로 십수억원까지 치솟았고, 중국의 고가품 10대 아이템에서도 1위로 꼽혔다는 소식이다. 사치품 과소비의 전형적 사례로 이제 자본주의 중국도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진입했다는 의미일까. 

소비사회란 상품의 사용가치, 곧 도구적 용도보다는 행복이나 위세 같은 기호적 가치가 소비의 고유한 영역이 되는 사회다. 사람들은 과시적 소비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남들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는 걸 인정받고 싶어한다. 더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한다. 소비사회에서 행복은 구원과 동의어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이런 갈망은 인간의 타고난 성향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조건에 의해 배태된 것이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1970)에서 내민 통찰에 따르면, 행복의 신화는 근대의 정치혁명이 표방한 평등의 신화를 구체화한 것이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는 이념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전이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평등이 실현되기 위해 행복이 계량 가능한 것이 되어야 했다는 점이다.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즐거움은 평등의 척도로 부적합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행복은 무엇보다도 측정 가능한 복리와 물질적 안락이라는 내용을 갖게 되었다. 모든 인간이 욕구와 충족의 원칙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 그 전제다. 그렇게 해서 똑같이 유행하는 옷을 입고 똑같은 TV프로그램을 보고 하는 생활수준의 민주주의가 형식적 민주주의의 짝이 되었다. 더 높은 성장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보장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행복의 신화’는 한갓 ‘신화’에 불과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멜라네시아의 원주민들은 미군의 보급기지를 본떠 어설픈 활주로를 만들었다. 물자를 잔뜩 싣고 드나들던 화물기가 자신들의 ‘비행장’에도 착륙하기를 고대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의 ‘화물 숭배’는 아무런 효력을 보지 못했다. 원주민들의 주술적인 미신이었을 뿐일까? 하지만 이것은 소비라는 활주로를 만들어놓고 그곳에 행복이 착륙하기를 필사적으로 기다리는 소비사회의 우화이기도 하다고 보드리야르는 꼬집는다. 개발과 풍요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대책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은 최빈국의 하나인 방글라데시 국민의 행복지수가 언제나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입증된다. 그들은 쓰레기를 뒤지며 살더라도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있으면 감사하며 행복해한다고. 이것은 ‘행복지수’란 말 자체가 난센스이면서 동시에 행복은 경제성장이나 정치적 진보와는 무관하다는 걸 시사해준다. 



절판 유언에 따라 품귀 현상이 벌어진 법정 스님의 대표작 <무소유>의 중고판이 20억원대까지 경매가가 치솟았다가 110만5000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무소유’라는 가치조차도 소유의 대상이 되는 소비사회의 자연스러운 풍경이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소유에 대한 이러한 붐이 행복에 대한 ‘무관심’으로도 이어진다면,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에 혹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도 해본다. 적어도 ‘7·4·7’ 같은 구호에는 더 이상 현혹되지 않으리란 기대다. 사회적 진보는 오히려 행복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10. 03. 29. 

 

P.S.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문예출판사, 1991/2002)는 강의를 할 기회가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본 책인데, 그의 중요한 논쟁상대가 <풍요한 사회>(한국경제신문, 2006)의 저자 갤브레이스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풍요한 사회>의 초판은 1958년에 나왔으며, 보드리야르는 갤브레이스의 성장사회론에 대한 검토와 비판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갤브레이스의 책으론 1967년에 나온 <새로운 산업국가>(홍성사, 1979)도 다뤄진다. 모두 당시에 불어로 번역된 책들이다. 전에 포스팅한 바 있지만, 리포베츠키의 <행복의 역설>(알마, 2009) 또한 <소비의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 같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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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3-29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요한 사회>가 요즘도 나오는군요.우리나라에는 예전에 갤브레이스의 책이 꽤 번역이 된 편이지요.

로쟈 2010-03-29 20:46   좋아요 0 | URL
지금은 거의 씨가 말랐습니다. 지금의 <풍요한 사회>는 98년에 나온 40주년 기념판을 옮긴 거네요...

구보 2010-03-3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적 진보가 오히려 행복에 대한 무관심에 비롯되지 않을까"란 구절이 번쩍 들어오네요. '행복(웰빙)강박증사회'로 진입한 듯 합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백치의 언어일 터,진정한 행복을 전유하는 길은 원래 있었던,그러나 우리가 체험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행복의 순간들을 다시 사후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벤야민>-마침 아침에 이 구절을 읽고 있었습니다.

로쟈 2010-04-01 09:46   좋아요 0 | URL
네, 벤야민을 읽게 되면 '진보'란 말을 조심스럽게 쓰게 되죠...

비로그인 2010-03-3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에게 행복추구는 '자연스러운' 동기일 텐데요, 과연 그에 대해 무관심해질 수 있을지... 각자 자신의 행복의 정의와 기준을 명확히 하든지, 공동체 혹은 사회가 행복을 대신할 가치와 동기를 제시하든지 해야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몸이든 마음이든 '빈 상태'를 견디지 못하니까요...

로쟈 2010-04-01 09:47   좋아요 0 | URL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란 말도 있는 것처럼, 저는 '행복'이 무의미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정치적 수사로는 계속 애용되겠지만...

비로그인 2010-04-01 17:00   좋아요 0 | URL
여전히 '행복에 관한 한 무신론자'시군요... 기표의 무의미함으로 치자면 '사랑'만큼 기만적인 것도 없겠지만요.

로쟈 2010-04-01 20:5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사랑'은 정치적 구호로 남용되진 않지요.^^

비로그인 2010-04-02 21:26   좋아요 0 | URL
종교의 정치적 측면은 그렇다 쳐도 '나라 사랑'은 충분히 남용되었지 않나요?
여담이지만 언젠가 지나가며 언급하신 로쟈님의 네 가지 키워드 중에 사랑이 있던 것 같은데, 언제쯤 그 사랑관 혹은 사랑론을 접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kumun 2010-03-30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 였다는게 꽤나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것을 보니... 그러나 조사방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또한 실제로 수많은 조사결과에서 국가간 행복정도에 차이는 거의 경제발전도와 비례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조사결과까지 가지 않더라도 실제로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대체적으로 좀 더 잘사는 아이들이 안정적이고 행복한 자아와 인생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죠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로쟈 2010-04-01 09:49   좋아요 0 | URL
칼럼은 중학생 독자까지 염두에 두어야하기 때문에 눈높이를 조금 낮춰야 합니다. 그리고 잘사는 집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건 너희들이 행복한 거란다고 주입하기 때문이겠죠. 아이들이야 맛있는 걸 먹고, 자기들끼리 맘껏 놀 수 있다면 행복해하죠...

코나투스 2010-03-3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소유' 책에 대한 "이러한 붐이 행복에 대한 ‘무관심’으로도 이어진다면..."이라고 기대해 보셨는데, 이 문장이 좀 맘에 걸렸습니다. '무소유' 책에 대한 붐은 위에 언급하셨던 듯이 품절되는 무소유 책 조차 소유함으로써 소유를 통한 행복의 경쟁에 나선 사적 소유, 사적 소비의 극단을 보여주는 아이러니 일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법정스님의 타계로 새삼 궁금해진 무소유 사고를 접해 봄으로써, 소유/소비 그리고 이를 위한 경쟁의 끊임없는 연쇄고리를 벗어나 행복을 추구해보고 싶은 현대인의 절박한 심정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이 되었든 행복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거나 추구되는 것이지, 행복에 대한 무관심으로 기대해보는 것은 상당히 거리가 먼 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행복은 경제성장이나 정치적 진보와는 무관하다는 걸 시사해준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이 말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으로도 그리고 보수적으로도 역시 쉽게 차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행복에 대한 무관심' 역시 진보적일 수도 보수적일 수도 있습니다. 왠지 로쟈님의 말씀 속에서 '행복에 대한 관심' 자체가 본질적으로 문제를 지닌다는 것으로 오해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마도 지적하신 점은 소비를 통한 행복의 추구, 계량화된 행복에 대한 환상에 대한 비판이셨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행복에 대한 관심인가 무관심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행복으로 보는가와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따라 환상일수도 희망일수도 있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10-04-01 09:57   좋아요 0 | URL
원래는 초점을 '행복은 진보와 무관하다'는 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행복 담론'은 '성장 담론'과 마찬가지로 진보의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요(상상력이란 이럴 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진정한 행복'론도 별로 효과적이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행복에 대한 무관심' 역시 진보적일 수도 보수적일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행복은 일반적으로 '보수적 가치화'의 경향이 있는 만큼 방향을 좀 트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픽션들 2010-04-01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소유' 책에 대한 "이러한 붐이 행복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면...">,

과도하게 형성된 '무소유'라는 집단무의식적 코드를 통해서라도, 현대인들의 과도한 행복찾기가 와해되는, 그런 경험이 주어진다면 의미가 있겠지요.

저는 로쟈님의 글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로쟈 2010-04-01 09:58   좋아요 0 | URL
네, 소유에 대한 무관심이 행복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물질적 소유(경제성장)가 행복의 중요한 척도로 돼 있으니까요...
 

<인간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읽고 있다. 거의 20년만이 아닌가 싶다. 강의를 위해서 예전에 소개되지 않았던 데뷔작 <만년>과 <사양>, <인간실격> 정도를 읽어보는 것인데, 참고로 몇 권 더 읽을지도 모르겠다. 나쓰메 소세키와는 달리 국내에 연구논문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거기에 출간된 연구서는 한권도 없어서 의외다(국내 출판사에서 펴낸 일본어로 쓰인 연구서는 있다). 다자이 오사무 이후에 다룰 미시마 유키오의 경우는 좀 나을지 모르겠다. 똑같이 자살하긴 했지만, 상극이었던 두 작가.   


1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자화상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인생에 대한 친밀한 고백의 기록
유숙자 지음 / 살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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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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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소화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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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소한 일상-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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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3-28 14:54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사람들이 은근히 좋아하는 다자이 오사무.왜 그럴까요? 퇴폐주의에 대한 호감때문일까요?

로쟈 2010-03-28 19:59   좋아요 0 | URL
죄의식이나 부끄러움 등을 건드리고 있어서 같은데요. 일본에서도 호오가 분명히 갈리는 작가로 돼 있습니다...

2010-03-28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8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3-30 10:49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를 머리는 좌파, 몸은 우파로 살았던 사람으로 살펴봐도 좋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엔 그의 정사(情死)만 기억되는데 소설 속 사상의 진폭도 꽤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양> 같은 소설은 참 좋은데 편폭을 늘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사양>에서 미처 마치지 못한 가족사 소설을 그의 딸인 쓰시마 유코가 <불의 산>에서 해냈다는 생각도 하구요.

로쟈 2010-03-30 09:38   좋아요 0 | URL
재산가에서 태어났지만 4남이었기 때문에 '우파'라고 해도 주변부지요. 공산주의에 잠시 투신했던 것도 심정적인 것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시고 2010-04-01 12:57   좋아요 0 | URL
리스트와는 관계없는 내용입니다만, 질문 하나 드려도 될런지요...

평소 로쟈님의 서재를 통해 인문서적을 읽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때때로 이렇게 리스트를 만들어 올리시거나 특정 작가와 분야에 대해 소개글을 적으실 때 언급하는 책이 다양한 판본인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문예판 사양, 소화판 사양 이런 식으로-)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로쟈님은 같은 책이라도 판본이 다르면 일단 읽어보시는 건가요? (강의때문이든 아니든) 제 경우 같은 책을 다른 판본으로 두 번 읽을 땐 대체 어떤 점에 중점을 두면 좋을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가 여러번 있어서... 로쟈님의 경험담이 살짝 듣고 싶기도 하구요.

로쟈 2010-04-02 10:20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여러 번역본으로 읽는 걸 선호합니다. 그게 같은 노래라도 여러 가수가 각기 다르게 부르는 것과 비슷해서요. 그럴 때 줄거리보다 디테일이 중요하죠. '오역'인 듯싶어서 대조해보는 경우도 있고요...
 

'감각의 독서가 정헤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란 부제로 나온 책이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민음사, 2010)이다. 눈에 띄는 제목이고 표지다(개인적으로 <런던을 속삭여 줄게>의 표지는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언젠가 저자를 한번 만났을 때, 연재중인 원고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걸 묶어낸 것이다. 책은 <위대한 개츠비>부터 <위대한 유산>까지 15편의 고전에 대한 독서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나도 이런 유형의 책을 기획하고 있기도 해서 많은 참고가 된다. 서평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0. 03. 27) 고전 속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 

똑똑! 누군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새벽 3시다. 마음문을 열어보니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약혼자가 있는 여인 로테를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베르테르’다.

‘감각의 독서가’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시비에스 라디오> 프로듀서 정혜윤씨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은 독특한 고전 읽기 책이다. <세계가…>에는 지은이가 2008년 10월부터 온라인 서점 예스24 웹진과 민음사 누리집에 연재해온 독서 칼럼 중 가려뽑은 15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겨레>에 ‘정혜윤의 새벽 3시 책읽기’를 연재하고 있는 그의 고전 읽기는 마치 고전 속의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 같다. 그의 글에 유난히 슬픔, 기쁨, 분노, 안타까움 등 감정의 묘사가 많은 것도, 지은이가 고전 속 주인공과 이렇게 감정적 교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얼른 달려나가 가련한 청년 베르테르를 껴안는다. 그 또한 “흠모하는 이의 가벼운 뿌리침 한번만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는, 너무나 가련하고 나약한 몸뚱이가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관능 그 자체였던, 그런 어린 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베르테르뿐이랴. 그는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 <마담 보바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984>, <설국>, <주홍글씨> 속의 상처 입은 주인공들에게도 문을 열고 손을 내민다.

이 주인공들과의 만남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15살에 처음 <폭풍의 언덕>을 대했을 때, 그는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히스클리프가 죽기만을 바라면서 책을 읽어나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다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만났을 때, 그는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지 깨닫는다. 아니, 적어도 그 열정에 매혹된다. “지상에 있는 동안 한번만이라도 내가 시작한 일을 끝까지 끌고 가보고 싶기 때문”인데, 이런 변화는 아마도 두 번의 만남 사이에 그 자신이 “격렬하고 쓰라린” 세상살이와 사랑을 겪었던 탓이었으리라.

그가 만나는 주인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금 되돌아보라고 조언해주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통제된 빅브러더의 세계 <1984>에서 과거 기억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윈스턴 스미스와의 만남에서 그는 “사상경찰, 통제, 전쟁, 권위주의, 전체주의” 등 소설 속 세계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 지은이는 오히려 “우리가 이미 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윈스턴이 어딘가에 끌려가 경험했던 것은 전기고문과 약물 투여, 벌거벗겨짐, 그리고 얼굴을 물어뜯으려는 쥐의 위협인데, 우리는 쥐보다 무서운 개가 위협하는 관타나모 수용소라는 현실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새벽 어스름이다. 마음의 문을 두드렸던 고전 속 주인공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고전 속 주인공은 떠나가더라도, 그와 나누었던 대화는 지은이를 이미 바꾸어 놓았다. 그 깊은 절망과, 그 벅찬 기쁨과, 그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지은이의 가슴속에 계속 울림으로 남아 그를 ‘어제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출근길 북적이는 사람들은 어제와 같아 보여도, 이미 세상 또한 어제의 그 세상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고전 읽기를 통해 날마다 세상을 두번 살아간다.(김보근 기자) 

10. 03. 27. 

P.S. 기자의 지적대로 "그의 고전 읽기는 마치 고전 속의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 같다." 내 생각엔 그게 저자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 같다. 그는 고전과 그 주인공들에게 너무 관대하다. 그래서 인용이 많아진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다 보니 저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새벽 3시'의 책읽기라면 크게 떠들지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개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몇 편의 '읽기'를 읽어봤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저자의 프롤로그다. 가령 이런 저자의 고백들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때부터 고독은 시작되었다. 말 못 하는 고민 때문에 나는 집을 빠져나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거의 매일 두 코스를 달렸다. 하나는 학교 운동장, 하나는 겨울이면 겨울이면 미끄러지지 말라고 늘 연탄재를 뿌려 두던 지독히 가파른 언덕.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동안 서서히 해가 지고 완전히 어둠이 내리면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없는 뭉클한 기운이 밀려오고 심장이 뛰었다. 아직 어린 여자아이의 조그만 입으로 아름답다 조아리며 멈춰 서서 지켜볼 때 이미 아름다움은 육체적 감각에 속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달리는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번도 달리기를 좋아해본 적이 없는 나로선 100미터를 13초대에 뛴다는 저자의 달리기 얘기가 무용담처럼 들린다.  

언덕을 달리는 것은 좀 더 힘들었지만 오랜 연습 끝에 꽤 긴 언덕을 단숨에 뛰어오를 수 있게 되었다. 언덕 정상에 거대한 보름달 대신 그보다 유혹적인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렇게 뛰고 난 다음 구멍가게의 온갖 물건들, 우유, 보름달 빵, 두부, 빗자루, 쓰레받기, 고무장갑, 세탁비누 같은 것을 천천히 구경하다 보면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서 집에 돌아갔다. 그때 구멍가게의 물건들이 언덕 밑 나의 집으로 끌어주는 나만의 중력이었다.

달리는 것만 빼면 나도 그렇고 다들 비슷한 체험을 갖고 있을 법하다. 하지만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체험도 저자는 갖고 있다.  

체육 시간 전날이면 서점에 가서 얇은 문고판 책 한 권을 사고 엄마의 커다란 팬티를 한 장 빼돌렸다. 체육 시간엔 체육 선생의 작고 예리한 눈을 피하기 위해 엉덩이와 헐렁한 엄마 팬티 사이에 문고판 책 한 권을 끼워 넣고 그 위에 체육복을 입고는 운동장에 나갔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친구들이 편을 가르고 공놀이를 시작할 때 나는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엉덩이 아래서 책을 꺼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이 말하자면 독서가 정혜윤의 독서 편력의 시작이었다. 핵심은 엉덩이로 하는 독서였다는 것.  

나는 아직도 엉덩이의 힘을 믿는다. 세상의 어떤 자리에 앉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엉덩이로 앉아야 하는 것니까. 그렇게 읽은 책이 대개 고전이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책이 엉덩이 밑에 숨기기게 좋았느냐. 즉 사이즈의 문제가 나의 독서 방향을 결정했다.  

독서가 정혜윤의 개성이 어디에서 기원하는가를 알게해주는 대목이다. 한데, 저자는 그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읽고 쓰고 배우는 것이야말로 한 번뿐인 인생의 쓸쓸한 일회성, 혹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내려는 '의지'와 관련된 문제 같다"는 문제의식을 철저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한 번뿐인 인생의 가벼움을 다루고 있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저자의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건 좀 기이한 일이다. 저자의 '고전'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독서의 흥미를 돋우는 저자의 대범한 주장.

만약 우리에게 세계가 한 번만 진행된다면(보이는 그대로만 보는 데서 멈춘다면) 우리는 매 순간 과거의 자신이다. 확실히 우리는 한 몸 안에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 순간에도 과거와 미래를 산다.  

하지만 여기에 이어지는 건 좀 평범한 문장이고 통념이다(징후적이게도 문장 또한 늘어지고 있다). 즉, 그는 더 진행하지 않고 멈춘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무너가 읽고 써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 고전인데, 어떤 고전이 지금의 우리에게 적합한 대화 상대인가는 너무나 상대적인 것 같다.

 그리하여 주저앉는 문장들. 

어쨌든 정말 좋아하는 책을 만나는 것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살갗을 부비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똑같은 쾌감을 줄 테니 그런 순간을 놓치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린 모두 지독한 쾌락주의자로 사는 시기를 겪을 테니까.

사실 내가 기대하는 건 '극복의지'이지 '쾌감'이나 '쾌락주의'가 아니다. 책읽기가 "한 번뿐인 인생의 쓸쓸한 일회성, 혹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내려는 '의지'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과 책읽기란 "살갗을 부비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란 주장은 과연 같은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건 나의 취향이 아니다. '어쨌든'이란 부사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어쨌든'은 우리를 관대하게 만들고 게으르게 만든다). 나는 저자가 겹쳐읽는 감각보다는 엉덩이의 힘을 '실제로' 더 신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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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2010-03-27 21:24   좋아요 0 | URL
ㅋㅋ 엉덩이로 하는 독서라니요.. 주저앉는 문장이란 평을 보니 왠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글쎄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제 자신도 석연치 않게 끝나는 문장들... 이 있지요.

비로그인 2010-03-28 00:44   좋아요 0 | URL
지성적 둔부와 심미적 복부를 양립시키려면 달리기라는 실천의지가 필요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