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달인 12월에 접어들면 저마다 느끼는 감회가 다르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신춘문예'의 계절로 다가서는 듯하다. 아마도 이번 주말 정도가 대부분의 신문에서 원고마감일 듯한데 그런 탓인지 한 오늘 아침신문에서도 이와 관련한 칼럼을 두 개나 읽을 수 있었다. 신춘문예라, 아주 오래전에 나도 한번 응모한 기억이 있지만 이제는 거의 '전설'로만 남아있다. 다시금 열정을 되살리기에는 '학기말'이라는 게 너무 할일이 많다(리포트와 시험 채점에 성적처리, 그리고 원고와 논문 들 마무리까지). 대신에, 지난주말에 읽은 기사들 중에 우리와는 또다른, 미국의 '글쓰기붐'을 다룬 것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이 시각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을 시인/작가지망생 분들의 행운을 빌면서...   

경향신문(06. 12. 02) 도전하세요 ‘30일간의 소설쓰기’

모두들 ‘소설의 위기’라고 하지만 돌파구는 엉뚱한 곳에서 나올 수도 있다. 11월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 연휴와 1년중 가장 극성스러운 쇼핑 기간이자 소설 마라톤이 열리는 시즌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이 참여해 30일 동안 5만단어 분량(175쪽)의 소설을 쓰는 ‘나노라이모(NaNoWriMo)’ 모임이 미국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나노라이모(이하 나노·www.nanowrimo.org)’는 ‘전국 소설쓰는 달(National Novel Writing Month)’의 준말(http://www.nanowrimo.org/). 1999년 21명이 발족한 온·오프라인 모임이지만 지난해 5만9천명, 올해는 9만3천명으로 참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지금 같은 속도로 가입자가 늘어난다면 2027년쯤에는 전 미국인이 소설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이감을 표했다. 흥미로운 문화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반인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하루 평균 1,667개의 단어로 글을 쓰기란 얼핏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소설쓰기의 혹독한 고행에 뛰어들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편하게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설쓰기에 덧씌워져 있는 일부 선택된 먹물들의 치열한 지적작업이라는 고정관념을 벗겼다.



7년 전 7월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발기인 21명은 ‘플롯이 없어도 문제될 건 없다(No Plot?, No Problem!)’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같은 제목의 간단한 소설교본을 출판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곧바로 집필에 돌입하는 무모한 방식이었다. 모임 장소에는 햄버거를 비롯한 정크푸드와 커피가 널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고통스러울 줄 알았던 소설쓰기가 TV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야기가 누에에서 실을 뽑아내듯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다음해 웹사이트와 함께 야후에 동아리모임을 발족시키면서 회원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행사 시기도 우중충한 날씨로 외출을 자제하게 되는 11월로 옮겼다. 처음엔 정해진 분량이 없었지만 “우선 쓰고, 생각은 나중에 한다”는 모토에서 5만단어를 목표치로 정했다. 나노의 프로그램 담당인 크리스 배티는 이를 ‘소설의 혁명’이라고 지적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분량이 지배하는 것으로 환치시킨 셈이다.

나노 측은 이 때부터 매년 10월 말 출정파티를 가진 뒤 11월 한달 동안 각자 집필에 돌입해 12월1일 5만단어를 채운 참가자를 우승자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해 참가자 140명 중에서 21명이 결승테이프를 끊었다. 배티는 “편집장 경험에서 볼 때 (분량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규칙과 무자비한 데드라인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집중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지역별로 도우미를 두게 됐고 주말에는 함께 모여 각자 노트북을 폄으로써 고통과 즐거움을 나눈다.

워싱턴 근교에서 사는 댄 폴크스(28·국방부 공무원)는 출근 길 녹음기에 이야기를 구술하고 퇴근 뒤 정리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집 컴퓨터에는 음성을 글자로 전환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깔아놓았다. 그가 매일 아침 고속도로 위에서 구술하는 이야기의 분량은 2,000단어 정도. 그는 “개인 시간을 희생해야 하지만 일상 속에서 전혀 새로운 전망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나노 측이 아마추어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최상의 충고는 “빨리, 멋대로 쓰라”는 것이다. 11월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많은 시간을 소설 집필에 할애하는 변호사 피터스는 “좋은 문장도 있고, 저속한 문장도 있지만 일단 쓰고 나서 돌아보면 달라진다”고 전했다. 두아이를 키우는 안젤라 필드(32)는 “일주일에 두번 출근하는 싱글맘이 소설을 쓸 수 있다면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물론 탄탄한 구조의 정통 문학작품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추리소설이나 공상소설은 물론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꿔놓은 자서전적 소설도 있다.

그렇다면 막무가내로 늘어놓은 5만단어 소설을 누가 읽을까. 많은 경우엔 읽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일부는 출판하기도 한다. 엄격한 규율과 인내 속에 30일이 지나면 참가자들 중에서는 윤문작업에 매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과정에서 옥고가 탄생하기도 한다. 기성 출판사에 작품을 보냈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지만 주문형 출판 시스템을 택하기도 한다. 서커스 극단 광대 경험을 4부작으로 엮은 매어리 와이즈(54)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주문형 출판사(www.lulu.com)를 통해 2년 간 300부를 팔았다. 비록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ISBN(책 뒤의 바코드)을 소유한 소설가가 된 셈이다.



미 전국적으로 나노 회원들이 모여 작업을 하는 오프라인 카페는 20개가 가동중이다. 커피를 홀짝이면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각자 하루치 분량을 채우는 회원들의 노트북 배낭마다 ‘No Plot?, No Problem!’ 스티커가 붙어있다고 한다. 나노는 매년 12월 첫주에 지역 별로 쫑파티를 한다. ‘30일 속도전’에 지친 심신을 한잔 술로 푸는 자리다. 이들에게 쥐어지는 최고의 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는 만족감이라고 아이오와 라디오는 전했다.

나노 홈페이지에 따르면 29일 오전까지 2,400명이 결승점을 통과했고 1만5천명이 골라인에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나노 회원들이 11월 한달 동안 ‘생산한’ 단어는 8억2천2백75만9천6백26개라는 현황 수치도 올려져 있다. 모두가 걸작을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소설 집필이라는 부르주아들의 고상한 작업이 상업출판시대를 맞으면서 ‘타락한 사회에 타락한 방법’으로 적응했듯이 인터넷과 대량소비시대에 나노와 같은 모임이 대안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워싱턴|김진호특파원)

경향신문(06. 12. 02)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조언

어느 나라에서건 처음부터 전업소설가로 시작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생업을 갖고 있으면서 과외의 시간을 쪼개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나노 회원들에게 주는 충고는 우선 ‘자기 규율’에 투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나잇 가드너’를 비롯한 14편의 범죄소설로 대박을 터뜨린 조지 펠레캐노스는 31세가 될 때까지 단 한줄도 써본 적이 없었다. 처음 8편의 소설을 쓸 때까지는 전업 샐러리맨이었다. 그는 “그 때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작업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하루에 5쪽을 쓰는 것을 규칙으로 정해놓고 있다.

추리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라 리프먼은 첫 7개의 소설을 쓸 때까지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생활을 했다. 그는 소설집필을 헬스클럽에 다닌 것에 비유하면서 “충분히 자고 잘 먹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완벽주의는 적”이라면서 “일단 가급적 빨리 쓰는 작업을 마친 뒤 뒤돌아보면서 수정하는 것이 낫다”고 충고했다. 하루 1,000단어가 그의 규칙이다.

마리타 골든은 5편의 소설만을 쓴 비교적 과작의 작가였다. 그는 하루에 1~2시간, 일주일에 몇차례 집필한다는 느슨한 규칙을 갖고 있다. 교사이자 아기 엄마이기도 한 작가 태미 그린우드는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 집필시간을 정하는 게릴라형이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작가센터의 교사 태미 그린우드는 “스스로 타협 불가능한 집필 일정을 세우는 게 첫걸음”이라면서 “달력에 매일 소화할 집필 분량을 적어놓고 실행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역시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강조했다.

나노 사이트 편집장 크리스 배티는 ‘2만단어의 한계’를 가급적 빨리 벗어날 것을 권하고 있다. 한글과 영어의 차이가 있지만 70쪽 정도 되는 분량이다. 어느 경우에도 글쓰기는 해볼 만한 도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권고다. 성공하면 전업 작가로 ‘인생 후반전’을 뛸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지만 실패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노와 비슷한 발상에서 매년 6월 영화대본을 집필하는 ‘광란의 대본(www.scriptfrenzy.org)’ 모임도 있다. 30일 간 대본 1편을 완성하는 모임이다. 이들을 겨냥한 듯 반즈 앤 노블즈나 보더스 등 워싱턴 시내 주요 서점 한 쪽에는 ‘웨스트 윙’을 비롯한 드라마 또는 영화 대본 원본을 비치해 놓고 있다.(워싱턴|김진호특파원)

06. 12. 06.

 

 

 

 

P.S. 문예창작을 따로 배우지 않은 경우에 소설을 쓰기 위해서 참조할 수 있는 '작법' 책들은 비교적 한정돼 있다. 물론 이번주가 마감일 신춘문예는 이미 물건너갔고, 내년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소설작법' '소설창작' 혹은 '소설쓰기'란 타이틀을 단 책들을 기웃거려볼 수 있겠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나도 시중에 나와 있던 '시작법' 책들을 두루 섭렵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시를 쓰는 데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익한 착안점들을 많이 챙겨볼 수 있었다. 그러니 "실패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는 장사이다. 해서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한다(물론 나는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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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전철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디파티드>에 대한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리뷰를 읽었다. 알다시피 홍콩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들에 대한 반론을 겸하고 있었다('비열함'을 내세운 영화에서 '비장함'을 찾지 말라는 것). 나로선 두 영화 모두 아직 보지 못했지만 내주쯤에는 시간을 낼 수도 있을 듯하다. 더불어 생각난 것이 얼마전 2006 한국영화를 결산한 기사였다. 역시나 '조폭영화'가 올해도 대세였다는 것인데, 겸하여 읽어보면서 한해를 결산하기로 한다. 조폭영화의 원조인 홍콩/헐리우드 영화 두 편의 코드를 빌려서 말하자면, '무간도' 혹은 '디파티드'의 세상이 한국사회의 체감 현주소일까? 비장하거나 혹은 비열하거나...

 

 

 

 

경향신문(06. 12. 01) 2006 한국영화 ‘조폭’ 올해도 스크린 ‘접수’

2006년 한국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11월30일 ‘그해 여름’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아주 특별한 손님’이 개봉함으로써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편수가 101편에 이르렀다. 경향신문 영화팀이 이들 101편의 키워드를 분석, 집계한 결과 올해 한국영화는 ‘조폭’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키워드로 나타났다. ‘코믹’ ‘경찰’ ‘가족’ ‘살인’ 코드가 순서대로 그 뒤를 이어 ‘조폭·코미디’로 대표되는 충무로의 편식성이 통계로 확인됐다.(표 참조) 키워드 분석 결과가 우리 사회의 비루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사회 모순 비추는 조폭 코드=올해 한국영화 중 ‘조폭’이 등장한 작품은 ‘야수’ ‘짝패’ ‘투사부일체’ 등 23편. 조직폭력배는 등장하지 않지만 ‘학원폭력’ ‘싸움’ 등의 키워드를 내재한 ‘방과후 옥상’ ‘플라이 대디’ 등을 포함시키면 28편으로 늘어난다. 전체의 30%에 가까운 영화들에서 폭력배와 싸움이 등장한 것이다. 본격 누아르영화인 ‘사생결단’ 같은 작품뿐 아니라 실향민의 아픔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폐쇄성을 묘사한 ‘비단구두’에도 조폭이 나왔다.

2위를 차지한 키워드는 19편에 걸쳐 나타난 ‘코믹’. 역시 ‘조폭코미디’ ‘학원코미디’로 구분되는 영화들이 다수였다(‘학교’ 키워드 14편으로 7위). 18편에 등장한 ‘경찰’과 15개 영화에 나온 ‘살인’ 키워드 역시 ‘조폭’과 맞물려 우위를 점했다. 이들 중에는 ‘비열한 거리’ ‘폭력써클’ 등 장르를 스스로 비틀면서 폭력을 반성하고 사회 불안을 성찰하려는 노력을 통해 한국누아르의 장르적 성장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도 여러편 포진해있다.

반면 2001년 ‘친구’와 ‘두사부일체’의 흥행 이후 그 소재만을 빌려 재생산하려는 상업적 시도도 계속됐다. ‘투사부일체’와 ‘가문의 부활’ 등 조폭코미디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흥행세를 이었다. 세상을 들여다보는 수단으로 기능하든, 관객을 유인하기 위한 상업전략이든 한국영화들이 여전히 ‘조폭’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 없고 빈부차 심한 사회 모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채업자’와 ‘부동산개발’이 상징하는 것=이같은 현상은 올해 한국영화들의 내부로 들어가보면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다. 101편 중 ‘사채업자’가 주요인물로 등장한 영화가 10편(‘잔혹한 출근’ ‘예의없는 것들’ 등)이고 ‘부동산 개발’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영화가 6편(‘짝패’ ‘비열한 거리’ ‘해바라기’ 등)에 달한 것이 그 방증이다. 과거 영화속 조폭들이 영역 다툼, 업소관리 과정에서 암투를 벌이며 일반 시민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지하세계를 묘사하는 데 동원됐다면 최근 들어서는 채무에 시달리고 집값에 눈물 짓는 서민들의 삶을 헤집는 인물들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철거촌 주민들과 용역깡패의 충돌이 영화에 종종 등장했지만 최근 영화 속 부동산 문제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둘러싼 잔혹한 이권다툼에 초점이 있다. 불황일수록 대출업이 호황을 누리고 평생 일해 벌어봐야 부동산투자 한번 제대로 하는 것에 못미친다는 현실의 상실감, 그리고 현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인 문제들이 시나리오에 반영되고 영화에 대한 관객의 공감대로 이어질 것으로 충무로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을 반영하는 키워드들=이전에 보기 드물었던 ‘인터넷(커뮤니티)’(5편) ‘뮤지컬’(4편) ‘동성애’(4편) 코드가 늘어난 것도 흥미로운 현상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자살 커뮤니티가 극의 발단이 되는 ‘무도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아랑’, 인터넷 야설·야동을 사극에 편입시킨 ‘음란서생’ 등이 화제를 모았다.

동성애가 부담스럽지 않은 소재로 받아들여지면서 이를 직접적으로 다룬 ‘후회하지 않아’가 현재 흥행에 성공하고 있고 ‘천하장사 마돈나’ 등 퀴어 코드 영화도 호평받았다. 뮤지컬을 중심으로 한 쇼비즈니스가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소재 삼은 영화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박정희 정권기 중 1960년대 말~70년대 초에 집중한 시대배경의 영화가 ‘아이스케키’ ‘잘살아보세’ ‘길’ ‘그해 여름’ 등 4편으로, 80년대 등 다른 과거를 배경삼은 영화보다 많았던 점은 해석의 여지가 많지만 현재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이밖에 ‘달콤, 살벌한 연인’ ‘내 청춘에게 고함’ 등 5편에 걸쳐 등장한 키워드 ‘어설픈 지식인’과 ‘괴물’ ‘모두들, 괜찮아요?’ 등에서 나타난 ‘백수’ 키워드도 같은 맥락에서 현재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화일보(06. 12. 05) 오동진의 동시상영관 - 디파티드

마틴 스코세이지가 생애 처음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디파티드’를 두고 평단 일부에서는 원작이 되는 홍콩의 ‘무간도’ 시리즈와 비교하며 ‘주인공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연기가 양차오웨이의 눈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좀 잘못된 비교라는 생각이 든다. 두 영화를 굳이 주연배우의 연기를 기준으로 삼아 비교하는 것도 수준이 좀 뭣하다는 느낌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작품은 아예 비교대상이 되는 영화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리메이크이기는 하지만 ‘디파티드’는 ‘무간도’ 시리즈와 다른 선상에 서있는 작품이다.

‘무간도’ 시리즈는 홍콩 누아르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작품인 만큼 한마디로 비정함과 비장함으로 가득차 있는 영화다. 갱단인 삼합회와 홍콩 경찰조직에서 각각 10년 넘게 언더커버로 살아가고 있는 두 남자 진영인(양차오웨이)과 유건명(유더화)을 중심으로 역시 이들의 존재를 각각 유일하게 알고 있는 갱단 두목 한침(쩡즈웨이)과 경찰국장 황 국장(황추성)의 기묘한 심리전의 파노라마가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진영인, 유건명 두 남자 모두 오랜 세월을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감으로써 극도의 혼란에 빠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비극과 통한의 사정을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는 동일시의 관계로 빠져든다. 삼합회 두목과 경착국장은 이들의 정신적 아버지로서 모두의 비극을 조종하고 동참한다. 네 사람은 마치 각각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피할 수 없는 두 가문의 대결을 펼치는 것처럼 보인다.

‘비정도시’의 이미지를 스타일리시하게 펼쳐 놓았던 ‘무간도’ 시리즈에 비해 마틴 스코세이지의 ‘디파티드’는 비정함이나 비장함 같은 분위기는 거의 삭제해 버렸다. 대신 스코세이지는 자신이 지금껏 만들어 왔던 갱스터 영화들 -‘비열한 거리’나 ‘좋은 친구들’‘카지노’-의 특유함 그대로, 인물 모두에게 ‘비열함’을 가득 부여한다. ‘디파티드’의 모든 캐릭터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각자의 생존만을 유일한 목표로 살아가는, 비열한 거리의 비열한 인물들로 그려질 뿐이다. 삼합회에서 언더커버 생활을 하는 디캐프리오 역시 공황에 가까울 만큼 정신적 공포에 시달리는 캐릭터가 강조되는 쪽으로 묘사되고 있다. 경찰조직에 들어 간 갱단원 맷 데이먼의 비열함은 ‘무간도’의 유더화와 가장 확실한 차별성을 보인다.

디캐프리오를 사지로 내몬 경찰국장 마틴 쉰이나 맷 데이먼을 조종하는 조직의 두목 잭 니컬슨에게서 홍콩영화에서의 파더 피규어(아버지상)를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다. 한 사람은 상사로서의 카리스마를 잃고 우유부단하게 굴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이 수십년간 자식처럼 키운 인물을 스스럼없이 FBI에 넘기려고 할 정도다. ‘디파티드’에선 아버지와 아들 간, 혹은 적이지만 가장 가까운 남자 두 사람 간의 기묘한 우정 따위란, 그래서 더욱 비장하고 비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비열하고 남루한, 3류인생의 끝자락들만이 펼쳐질 뿐이다.



비장한 매력이 철철 넘치던 ‘무간도’에 비해 새로 만들어진 ‘디파티드’는 그 매력이 다소 반감됐을지언정 보다 현실의 삶에 가까워진 느낌을 준다. 실제로 우리들 삶의 방식은 비장함보다는 비겁함 쪽에 더 가까운 법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역시 그 점을 가장 많이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디파티드’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우리들 삶의 치졸함이 느껴진다. 새삼 이 세상이 비열한 거리로 가득 차 있음이 느껴진다. 그 더럽고 스산한 풍경이 오히려 옆에 앉은 사람에게 몸을 더 가깝게 붙이도록 만든다. 진정한 리메이크는 이런 것이다. ‘디파티드’를 ‘무간도’와 같으면서도 다른 영화라고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06.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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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2-06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동진 기자가 잘못 안 듯해요. <케이프 피어>는 62년 로버츠 미첨과 그레고리 팩이 나왔던 동명 흑백 영화의 리메이크판이라고 하네요.

로쟈 2006-12-0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억이 나네요. '생애 처음으로 리메이크한 홍콩영화'라고 해야겠네요.^^
 

북데일리에서 신경림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온다. 신경림 시인의 앤솔러지 시집 출간과 관련한 것이다. 예전에 종로에 나가면 간혹 도심을 걷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갈대'의 시인이 어느덧 칠순에 이르셨다고 하니 세월 무상이다.

북데일리(06. 12. 04) 앤솔러지 '처음처럼' 펴낸 시인 신경림

초로의 노인이 아이의 눈을 지녔다. 모진 풍파 속에 탁해져도 한참을 탁해졌을 법한 눈망울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마냥 영롱하게 빛난다. 왜일까, 그 오랜 궁금증을 시인 신경림(70)을 만나고서야 드디어 풀었다.

시인은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져 큰일이라고 했다. 며칠 전 그는 홀로 극장을 찾아가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다가, 눈물이 쏟아져 '혼쭐'이 났다. 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2004)를 읽다가도, 울음이 솟구쳤단다. 긴 세월 지녀온 시름과 회한을 눈물에 씻겨 보냈으니, 남은 건 어릴 적 순수함일 수밖에. "다 큰 어른이 울기나 하고, 주책이지" 얼굴 붉히는 신경림의 눈 역시, 아이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동심을 찾은 시인은, 시에서도 본연의 순수성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최근 펴낸 앤솔러지 <처음처럼>(다산책방. 2006)은 그 의지의 결과물. "시란 본디, 눈보다는 입으로 읽어야 제대로 맛이 나는 문학"이기에, 그가 평소 애송하던 시 50편을 엮었다.

"사람들이 요즘 좀처럼 시를 읽지 않는데 그게 읽는 맛,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려서 그래요. 시는 눈, 입, 귀,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되는 거거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쉽고 재미있는 시, 암송하기 좋은 시가 정말 좋은 시죠." 그는 요즘 시인들이 뜻을 알 수 없는 난해함으로 독자와 시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며, 고개 숙여 반성해야 한다는 '따끔한' 일침을 덧붙였다.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등이 추천돼 문단에 입적한지도 어언 50년. 반세기를 시작(詩作)에 투신한 신경림은, '현대시의 산증인' 답게 시가 걸어온 역사를 <처음처럼>을 통해 되살려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그린 시부터, 7.80년대를 관통한 저항의식이 담긴 시, 개인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시까지. 시인은 어떠한 구분 없이 오로지 작품만으로 시를 해설했다.

"시는 독자에게 읽혀지는 순간, 작가의 품을 떠나 읽은 이의 것이 된다." 시인의 지론이다. 그는 최근 <나의 고전읽기>(북섬. 2006)에서 시인 정지용을 평가하며, 친일 시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차별적인 단죄 풍토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친일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작품이, 시인이 벌인 행위와 싸잡아 매도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를 향한 열정 하나로 살아온 신경림은 작품이 외면당하는 일이, 자식이 상처 입는 것 마냥 안쓰러운 모양이다.

우리시대의 '큰 작가' 조정래는 시를 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시인 부인을 '떠받들고' 산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도대체 시가 무엇이기에, 20년 동안 써내려간 원고지만 5만장이 넘는다는 그조차도 풀 수 없는 난제인 걸까. 발표작만 900여 편인 우리시대의 '큰 시인' 신경림은 "시인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질 줄 알아야 시인이란다. 이를 확실하고 힘 있게 전달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니, 보통 사람은 꿈조차도 못 꾸겠다.

그래서 시인은 독자를 대변해야 한다. 과거, 사회 문제에 대해 방관하는 건 시인의 직무를 유기하는 일이었다. 신경림이 7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시 '농무'를 통해, 당대 농촌 현실을 꾸밈없이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현대는 개인적인 문제가 더욱 우세. 이제 시는 개인과 사회를 조화롭게 다루어야 한단다. "시인은 결국 시로 이야기해야 돼요. 사회를 향한 목소리도 개인에 대한 관심도 전부 시로 말해야지. 자기를 직접 드러내선 안 되는 사람이야. 시인은..."

시대는 바뀌었지만, 시인은 그대로다. 중도노선 지식인 모임을 표방하는 '화해상상마당', 남북 작가들만의 단일 조직 '민족문학인협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신이 시를 통해서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실천하고 있으니 같이 하자'는 권유를 받고 참여했을 뿐. 신경림은 여전히 시로써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리라고 다짐한다.

그가 애정을 쏟는 단체는, 지역주민 문화운동 모임인 '더불어 숲'과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마을'. 둘 모두 독자와 문학을 가깝게 하는 행사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일흔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시에 대한 '타는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은 듯하다. 인터뷰 말미, 그는 "죽기 전에 꼭 써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을 위한 동시나 동요를 집필하고픈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단다.

시는 억지로 짜내서는 안 되기에, 시인은 동시가 써질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쓰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입에 술을 대지도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니, 그가 두문분출 하는 날이 오면 분명 신작 준비에 들어간 것이라 짐작해도 좋을 듯하다.(고아라 기자)

06. 12. 04.

 

 

 

 

P.S. 단행본들 외에 <신경림 시전집>을 나는 따로 갖고 있지 않지만 <민요기행>의 예전 판본과 <시인을 찾아서> 등은 소장하고 있었다. 후자는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칠 때 참고하곤 했다. 아이들을 위한 동시/동요의 집필이 시인의 마지막 꿈이라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후배인 김용택 시인의 오히려 선배가 아닐까 싶다. 앤솔로지 시집도 사실 김용택 시인이 먼저 내기도 했었고(또다른 편자로 안도현 시인 등도 떠오른다).

 

 

 

 

이번에 검색해보니까 재판이 나온 모양인데, 동시집 중에 기억해둘 만한 건 김용택 시인의 <콩, 너는 죽었다>(실천문학사, 1998)이다. 표제작은 그맘때 벌이삼아 다니던 학원에서 초등학생들한테 암송하도록 시켰던 시이기도 한데(아예 이젠 노래로도 나와 있는 모양이다), "시는 눈, 입, 귀,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되는 거거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쉽고 재미있는 시, 암송하기 좋은 시가 정말 좋은 시죠."라는 신경림 시인의 요구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시가 어디갔나 싶어 찾아봤더니, 아하, 아예 교과서로 쏙 들어가버렸구나!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이런 게 시이다. 아이들이 웃고 즐기면서 암송할 수 있는 시, 가 그래서 더 많아져야 한다. 신경림 시인의 동시도 그런 의미에서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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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에 잠깐 들렀다가 발견하고 다소 놀란 책은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안티쿠스, 2006)이다. 흔히 '바보들의 배'라고 알려진 책인데, '1494년 출간된 세상 모든 바보들에 관한 원전'이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정말로 15세기말에 씌어진 책이다.  

나로선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푸코의 책 어디선가에서 제일 처음 읽어본 듯도 한데, 찾아보니까 '바보들의 배'라는 건 어떤 특정한 책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는 아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이렇다: "The ship of fools is an old allegory, which has long been used in Western culture in literature and painting. With a sense of self-criticism, it describes the world and its human inhabitants as a vessel whose deranged passengers neither know nor care where they are going. Ships of Fools featured as wagons in medieval Carnival Parades."  그러니까 지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태운 배가 '바보배'인 모양.

'바보배'란 말이 알레고리인 만큼 여러 작품들이 같은 이름으로 씌어졌는데, 이번에 번역돼 나온 브란트의 책은 그 '원조'쯤 되는 듯하다. 이후에 20세기 작가들이 여러 명 가세하고 있는 걸 보아 '현재진행형'이기도 하고. 아무튼 뜻밖의 고전이 출간되어 반가웠다. 아직 아무런 리뷰도 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난 주말에나 서점에 깔렸을 듯싶은데, 이번주말쯤에는 각 리뷰란의 한 꼭지를 확실히 카바하게 될 듯하다. 당장에 책을 구해볼 처지가 못되는지라 일단 리뷰들을 기다려본다. 역자는 미술사학자 노성두씨.

 

 

 

 

인용문에 보면 문학이나 회화에 자주 쓰이던 알레고리란 설명이 나오는데, 그 '회화'의 대표작은 히에로니무스 보쉬(보스)의 것이다(<보쉬의 비밀>이란 책도 지난 가을에 출간된 신간이다). 보쉬가 그린 <바보들의 배>(1490-1500)는 아래와 같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In The Ship of Fools Bosch is imagining that the whole of mankind is voyaging through the seas of time on a ship, a small ship, that is representative of humanity. Sadly, every one of the representatives is a fool. This is how we live, says Bosch--we eat, dring, flirt, cheat, play silly games, pursue unattainable objectives. Meanwhile our ship drifts aimlessly and we never reach the harbour. The fools are not the irreligious, since promiment among them are a monk and a nun, but they are all those who live ``in stupidity''. Bosch laughs, and it is sad laugh. Which one of us does not sail in the wretched discomfort of the ship of human folly? Eccentric and secret genius that he was, Bosch not only moved the heart but scandalized it into full awareness. The sinister and monstrous things that he brought forth are the hidden creatures of our inward self-love: he externalizes the ugliness within, and so his misshapen demons have an effect beyond curiosity. We feel a hateful kinship with them. The Ship of Fools is not about other people, it is about us."

자료를 검색해보면,  영화화된 작품도 눈에 띄는데, 브란트의 책을 원작으로 한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바보들의 배(Ship of Fools)>(1965)가 그것이다.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내용은 이렇다고(비비안 리 출연작이다).

"전쟁과 가깝고도 먼 1930년대. 멕시코의 베라크루스에서 독일의 브레머하펜으로 가는 여객선, '그랜드 호텔'에 승선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난쟁이 마이클 던이다. 마이클 던은 시청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던지는 내레이터로서 영화 내내 그리스의 코러스단으로 등장한다. 여객선에 탄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는 여객선의 의사 오스카 워너, 스페인이 정치 활동가 시몬느 시뇨레, 나이 든 요염한 여자 비비안 리, 쾌락주의적인 야구 선수 리 마빈, 철학적인 유태인 하인즈 루만, 그리고 젊은 연인들인 조지 시갈과 엘리자베스 애쉴리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끊임없이 말을 해댄다. 비비안 리는 늙어 가는 중년 여성으로 잃어버린 청춘을 회복시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것은 결국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바보들의 배'가 애당초 알레고리의 의미를 갖는 만큼 오늘날의 상황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바보들'이란 세상에 차고도 넘쳐나니 말이다...

06.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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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6-12-05 00:08   좋아요 0 | URL
푸코의 <광기의 역사> 도입부에서였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저 그림을 언급하면서요. 그냥 <바보들의 배>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로쟈 2006-12-05 00:12   좋아요 0 | URL
제 생각도 그런데, <바보배>라고 좀 특이한 선택을 했네요...

산손 2006-12-05 01:54   좋아요 0 | URL
헉, 이런 책이 번역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노성두 씨라니 그럴 법 하네요 ^^ 찾아보니 삽화가 포함된 독어(중세독일어인듯 ;)판도 인터넷에 있네요(http://www.fh-augsburg.de/~harsch/germanica/Chronologie/15Jh/Brant/bra_n000.html). 노성두 씨는 라틴어에서 한 건지 독어에서 한 건지 얼렁 책을 구해봐야겠습니다. 언제나 발빠르고 예리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

castrato 2006-12-06 16:45   좋아요 0 | URL
"독일 레클람Reclam 사의 1992년도 판과 마릭스Marix Verlag GmbH(Wiesbaden) 사의 2004년도 판을 비교하며 번역"했다고 밝혀져 있군요. 오늘 교보에서 샀습니다.

로쟈 2006-12-06 16:56   좋아요 0 | URL
반기시는 분들이 많군요. 저는 독후감이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랜만에 교수신문의 기획기사를 옮겨놓는다. '기억연구의 르네상스'란 특집기사인데, 최근에 유사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쓸 기회가 있어서 관심을 가져보았던 주제이기도 하다. 시의적절한 학술동향기사라는 생각이 든다. 기획의 변은 이렇다:

"기억연구가 붐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기억 연구는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연구의 커다란 지류를 형성해가고 있다. 하지만 한 호흡 멈춘 상태에서 국내외의 기억연구 동향과 한계를 내밀하게 점검해 보는 작업은 아직 미흡해 보인다. ‘극단의 시대’, 무너진 역사의 이념적 권위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겨난 기억연구의 흐름을 국내와 국외를 넘나들며 짚어봤다."

한데, 그냥 '기억연구의 르네상스'라고 하면 심리학쪽 테마로 오인될 소지도 있어서 페이퍼의 제목은 '기억과 재현의 정치학'으로 바꿔달았다. 그때의 '기억'은 '역사적 기억'이고 또  이는 항상 재현의 정치학과 연루되기 때문이다. 참고할 만한 자료와 이미지들을 덧대놓도록 한다.

기억연구의 르네상스(1) 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기억에 대한 강박증적인 몰두"는 전적으로 서구적인 현상이다. 문화비평가 호이센(Andreas Huyssen)은 그의 저서 ‘황혼의 기억들’에서 근간에 만연되고 있는 기억 담론이 시간 질서의 와해로 말미암은 일반적 위기의 증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질성과 비공시성, 과도한 정보”로 넘치는 혼잡한 세계에서 각 개인은 더 이상 외부의 시간 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고자한다. 사회학자 벡(Ulrich Beck)이 역설적으로 표현했듯이, “자기 고유의 삶을 위한 일상적 투쟁이야말로 서구 세계의 집단체험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한국의 기억 담론은 그 성격과 위상이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강고한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다. 과거의 ‘진실’을 억압하는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방법적 객관성에 고착된 기존의 역사학으로는 충분치 않으므로 기억이 진실 규명의 과업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기억 담론은 역사에 대한 전면적 거부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보완하는 성격을 띤다.

서구에서는 역사적 진실이 근본적 회의에 직면한 반면, 한국에서는 반대로 역사적 진실이 더욱 강력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 문제 의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소통가능성은 열려 있다. 기억은 어떠한 차원에서 제기되었든 역사적 진실의 본성에 대해 검토하도록 촉구한다. 역사는 객관성, 주체성, 일체성 등을 근본원리로 삼아왔다. 그것은 학문으로부터 정치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근대적 활동영역에 결코 고갈되지 않을 이념적 원천을 제공했다.

그러나 확고부동해 보이던 역사의 이념적 권위도 파란 많은 20세기를 거치며 점차 와해되는 양상을 빚었다. 세계대전이나 홀로코스트 등과 같은 미증유의 경험으로 인해 종래의 ‘진보사관’이 의심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자체가 불편부당하기는커녕 특정한 민족들, 더구나 그중에서도 일부 지배세력의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자기정체성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각기 맥락은 다르지만 서구와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기억 담론의 성행은 바로 이러한 경향의 일부이다.

기억은 근대성의 자기확실성을 뒷받침해오던 진리와 주체의 일원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주체가 진리를 독점하는 권력으로, 또는 한 발 더 나아가 ‘진리의 효과’로 강등됨으로써 역사적 진실에 대한 소유권도 다양한 주체들에게로 이전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제 과거는 더 이상 ‘역사’의 이름으로 일원화되기 힘들어지며 갖가지 과거, 즉 편향적이고 분산적이며,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과거들 나름의 권리가 인정받게 된다.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지식-권력’으로서의 역사는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과거가 ‘재현’되는 방식, 즉 ‘진리의 효과’가 산출되고 발휘되는 근본 형식보다는 과거의 진실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갈등에 논의의 초점이 두어졌다. 물론 과거의 재현에 개입되는 권력의 문제를 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사적 진실의 가능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의 기억 담론 형성에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다름 아닌 ‘과거청산’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다. 시급한 정치적 요청에 의해 촉발된 만큼 이른바 ‘기억의 정치학’이 한국의 기억 담론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기억의 정치학은 억눌리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대항기억(countermemory)’을 발굴하여 이를 ‘억압’해왔던 기득권 세력의 주류 기억을 비판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기억투쟁에 실천적으로 복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실천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겠지만, 이분법적 대립구도에 경도된 점은 지적받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적 기억 담론의 한계는 한 특징적 번역어에서 징후적으로 드러난다. ‘기억의 정치학’을 설파한 대표적 논자 김영범은 기억이론의 선구자 알박스(Maurice Halbwachs)를 소개하면서 그의 대표적 용어인 ‘collective memory’를 ‘집합기억’으로 번역했고 이는 이후 널리 통용되었는데, 필자의 소견으로는 개별 기억을 수렴하여 집단정체성을 구축하는 알박스식 기억은 ‘집단기억’으로 번역되어야 마땅하며 ‘집합기억(collected memory)’과는 구별되어야한다.

한 사회의 기억이 개별 기억들의 느슨한 ‘집합’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관점이 배제된 채 지배기억과 대항기억의 단선적 대결구도에 치우친 한국식 ‘기억의 정치학’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개별 기억들이 통합되고 갈등하면서 집단기억을 형성, 전수,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매체’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문화적 재현’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관심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다른 지면에서 이를 ‘기억의 정치학에서 기억의 문화사로의 패러다임 교체’라고 진단한 바 있는데, ‘패러다임 교체’라는 단정적인 용어 사용 때문에 필자의 관점이 자칫 ‘문화(환원)주의(culturalism)’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된다. 그러나 필자가 지향하는 이른바 ‘신문화사(new cultural history)’의 문제의식은 흔히 오해되고 있듯이, 단순히 문화적 소재에 대한 탐닉이나 또는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의 전환으로 오인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역사방법론상의 퇴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 재현에 대한 신문화사적 연구는 오히려 기억대상과 기억주체들 간의 모순, 갈등, 착종, 전이에 주목함으로써 기억을 고정된 실체로 ‘물화’하거나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저항하고자 한다. 문화란 본래 주관적 의미의 영역과 객관적 대상세계의 간극을 표상하는 개념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기억의 신문화사 연구는 단지 새로운 분야의 연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관점’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억 연구는 진리의 절대성을 깨뜨리고 다양한 재현 방식과 정체성들을 인정하는 길로 나아갈 때 비로소 본연의 문제의식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문화적 재현’에 대한 연구는 자칫 기억을 재현의 ‘체계’안에 폐쇄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정연한 내러티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어떤 미지의 목소리, 라깡(Jacques Lacan)이 말한 이른바 “대상-원인”의 (비)존재는 섣부른 기억의 재현에 제동을 가한다. 포스트구조주의적 재현 이론은 과거의 경험이 ‘지시’하는 고통의 심연에 직면할 때, 무력해지고 만다. 재현은 타자를 전유하여 자신의 체계 내에 배치시키는데 익숙하지만, 타자의 낯설음이 정도를 넘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타자의 ‘他異性’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트라우마(trauma)이다.

그렇다면 트라우마적 증상에서 울려나오는 타자의 외침을 어떻게 재현해낼 것인가. 그것은 과연 재현되어야 마땅한가. 라깡은 트라우마가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트라우마의 (비)존재는 우리가 과거를 단지 인식의 대상으로만 ‘전유’할 수는 없음을 일깨워준다. 트라우마가 전달하는 것은 오히려 윤리적 정언명령이다. 단순한 앎이 아니라 긴급한 책임의 문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억 연구의 실천적 의의를 거론할 수 있게 된다. 기억 연구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차원의 내러티브들이 경쟁하고 공존할 수 있게 함으로써 특정한 기억이 여타의 힘없는 기억들을 ‘억압’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반사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내러티브의 바깥에서 울려나오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는 윤리적 가치를 갖기도 한다. 결국 기억 연구가 갖는 실천적 의의는 너무나 소박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전복적인 다음과 같은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기억인가.(전진성 / 부산교대·서양사)

 

 

 

 

기억연구의 르네상스(2) 한국 기억연구의 흐름과 과제

인간의 기억은 개별적 사실이 퇴적되어 보존된 결과가 아니다. 기억의 주체가 처한 상황과 현재적 관심 등에 따라 그 편차는 천양지차다. 기억은 다층적 차원의 현재, 심지어 기억주체가 과거를 회상하는 그 순간의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성·변화한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기억은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점차 국가에 의해 관리되어 왔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국가의 출현을 계기로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거대한 이미지 체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흔히 이를 공식기억이라고 말하며, 교과서는 공식기억을 담아내는 가장 상징적인 기억물이다. 

한국에서 공식기억 내지는 교과서적 기억에 대항하는 기억의 본격적인 구성작업은 1987년 6.10 민주화 운동 전후부터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좌파와 사회주의운동처럼 지난 시기 소외되었던 역사를 규명하고, 4.3과 5.18처럼 강요된 침묵으로 인해 탄식만을 내뱉어 왔던 역사에 대한 사실을 복원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은 민주화운동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냉전의 그늘에 가려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북한을 실사구시 차원에서 바로 알려는 학문적 접근도 본격화되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고, 이듬해 사회주의권의 맹주 소련이 몰락함으로써 냉전은 해체되었다. 이념의 장벽이 허물어지자 기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바다를 건너 일본에까지 미쳤다. 1990년 김학순 할머니의 자기고백으로 본격화한 일본군 ‘성노예’문제 등 전후 보상 재판이 바로 그것이다.

 

 

 

 

안팎에서 기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원인과 전개과정 등 사실을 드러내는 작업부터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는 작업까지 공식기억을 생산하는 작업방식과 동일하였다. 문헌자료에 근거한 진실규명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접근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항기억을 만들어내는 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동춘의 표현대로 오랜 세월 동안 ‘조직적 은폐와 강요된 망각’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전쟁과 사회’).

이때 대항기억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구술이었다. 드러난 한국역사의 새로운 이면을 파헤치려는 구술 작업이 집단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참여자에 대한 구술 채록 작업부터였다. 뒤를 이어 4.3과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구술 작업이 이루어졌다. 최근 들어서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2004년부터 구술 아카이브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과거청산 관련 각종 위원회에서도 구술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구술 작업은 면담자와 증언자의 권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구술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하고 싶은 말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 인생 선배로부터의 삶을 배우려는 자세를 포기한 채 ‘약탈적 수집방법’을 반복해 왔다. 때문에 구술자가 면담자의 질문에 따라 단순히 과거경험을 말하는 것을 넘어 이를 해석하면서 재생산해내는 과정에서 기억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민중의 기억을 재현하여 민중사를 쓰겠다는 연구에서조차 이 한계는 극복되지 않았다. 기억의 민주화를 가로막는데 구술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구술사 연구는 소개된 서구의 이론을 섭취하면서 10여년 이상 발로 뛴 경험의 결과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농경사회이자 역동적인 한국사회의 특징에 맞는 한국적 구술사 방법론을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이산가족’, ‘구술사 : 방법과 사례’).

21세기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과거의 대항기억이 공식기억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은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에서부터 진보대 보수의 구도로까지 이어지는 태생적인 제한성 때문에 현재적 정치투쟁차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각종 위원회가 주도하는 과거청산작업이 지속되고 있어 기억투쟁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런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기억연구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데서 여전히 적극적인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의 기억연구는 사실 규명 못지않게 과거가 기억되고 그 기억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며 개개인의 일상으로까지 이월되는 전승체계 또는 재현체계를 연구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어 희망적이다(‘항쟁의 기억과 문화적 재현’).

 

 

 

 

전진성의 표현대로 한국의 기억연구는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 기억의 문화사로’ 나아가고 있다. 이항대립적인 기억연구가 지양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의 문화사 연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사 연구에서까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기억의 주체로 내세우려는 증언자 중심주의도 더욱 뿌리를 내려 한다(정혜경, 이용기, 양현아). 기념물과 문화매체, ‘임시적 정체성’과 관련된 기억연구처럼 다양한 연구영역을 개발하고 있으며(‘전쟁과 기억’), 더 나아가 근현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간성, 남한을 벗어난 공간성을 확보하는 비교연구쪽으로 나아가고 있다.(‘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과거’, ‘분단의 두 얼굴’,‘8·15기억과 동아시아적 지평’).(신주백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기억연구의 르네상스(3) 서구 기역연구 동향

기억 연구는 진정한 학제 간 연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다.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영역에 국한시켜볼 때, 기억 연구의 호황을 가져온 결정적 계기는 “기억의 터” 연구의 등장이었다.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가 기획하여 1984년부터 1992년에 걸쳐 총 7권으로 출간된 대작 ‘기억의 터’는 좁은 의미의 ‘기억의 장소’를 넘어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적 행위와 기호, 그리고 기억을 구축하고 보존하는 기능적 기제들을 총 망라하여 프랑스 민족의 기억을 집대성했다.

노라의 ‘기억의 터’는 사회심리학자 모리스 알박스의 선구적 업적으로부터 영향 받았다. 알박스는 1925년 ‘기억의 사회적 구성틀’을 출간한 이래 특유의 “집단 기억” 이론을 펼치며 기억의 사회적 조건과 형성구조 그리고 기능방식을 규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지녔던 알박스는 기존의 ‘역사’ 이데올로기가 은폐해 온,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폭로하는데 주된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집단기억에 ‘수렴’되지 않는 개별 기억들을 간과하는 한계를 보였지만, 집단기억이 특정한 ‘공간’을 매개로 구축된다는 그의 학설은 후대의 기억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알박스와 노라의 선행 연구를 새로운 경지로 승화시킨 것은 독일의 문화과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가 정립한 “문화적 기억” 이론이었다. 그것은 개별 기억들이 통합되고 갈등하면서 집단기억을 형성, 전수,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위해 문학 작품을 비롯한 각종 텍스트, 신화와 종교적 제의, 기념물 및 기념 장소, 문서보관소 등 다양한 재현의 ‘매체’를 통해 기억이 제도적으로 공고화되고 조직적으로 전승되는 형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국역된 알라이다 아스만의 저서 ‘기억의 공간’(경북대학교출판부, 2003)은 기억 연구의 문화과학적 확장을 위해서는 필독서다. 여기에 사이먼 샤마(Simon Schama)의 미술사 연구서 ‘풍경과 기억’(New York, 1995)과 제임스 영(James E. Young)의 홀로코스트 기념물 연구서 ‘기억의 직물’(New Haven, 1993) 까지 곁들이면 기억과 예술적 재현의 문제에 대한 일정한 식견을 얻을 수 있다.

기억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 기억의 윤리적 차원에 대한 연구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 특히 ‘트라우마’ 증상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재현의 체계 내에 쉽게 편입될 수 없는 고통의 심연에 대한 진지한 공감과 책임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트라우마적 기억에 관한 논의는 주로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관련해 이루어졌는데, 이중 미국 역사 이론가 라카프라(Dominick LaCapra)의 저서 ‘역사 쓰기, 트라우마 쓰기’(New  (Baltimore and London, 2001)는 그 문제 의식의 깊이로 인해 돋보인다. 기억 연구의 ‘윤리적 전환’은 포스트식민주의의 문제의식과 만난다.

식민주의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이른바 ‘서발턴(subaltern)’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데 있다. 국역된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저서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갈무리, 2005)은 이러한 문제 의식의 보고이다.(전진성 / 부산교대 · 서양사) 

06.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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