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달인 12월에 접어들면 저마다 느끼는 감회가 다르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신춘문예'의 계절로 다가서는 듯하다. 아마도 이번 주말 정도가 대부분의 신문에서 원고마감일 듯한데 그런 탓인지 한 오늘 아침신문에서도 이와 관련한 칼럼을 두 개나 읽을 수 있었다. 신춘문예라, 아주 오래전에 나도 한번 응모한 기억이 있지만 이제는 거의 '전설'로만 남아있다. 다시금 열정을 되살리기에는 '학기말'이라는 게 너무 할일이 많다(리포트와 시험 채점에 성적처리, 그리고 원고와 논문 들 마무리까지). 대신에, 지난주말에 읽은 기사들 중에 우리와는 또다른, 미국의 '글쓰기붐'을 다룬 것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이 시각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을 시인/작가지망생 분들의 행운을 빌면서...   

경향신문(06. 12. 02) 도전하세요 ‘30일간의 소설쓰기’

모두들 ‘소설의 위기’라고 하지만 돌파구는 엉뚱한 곳에서 나올 수도 있다. 11월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 연휴와 1년중 가장 극성스러운 쇼핑 기간이자 소설 마라톤이 열리는 시즌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이 참여해 30일 동안 5만단어 분량(175쪽)의 소설을 쓰는 ‘나노라이모(NaNoWriMo)’ 모임이 미국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나노라이모(이하 나노·www.nanowrimo.org)’는 ‘전국 소설쓰는 달(National Novel Writing Month)’의 준말(http://www.nanowrimo.org/). 1999년 21명이 발족한 온·오프라인 모임이지만 지난해 5만9천명, 올해는 9만3천명으로 참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지금 같은 속도로 가입자가 늘어난다면 2027년쯤에는 전 미국인이 소설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이감을 표했다. 흥미로운 문화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반인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하루 평균 1,667개의 단어로 글을 쓰기란 얼핏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소설쓰기의 혹독한 고행에 뛰어들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편하게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설쓰기에 덧씌워져 있는 일부 선택된 먹물들의 치열한 지적작업이라는 고정관념을 벗겼다.



7년 전 7월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발기인 21명은 ‘플롯이 없어도 문제될 건 없다(No Plot?, No Problem!)’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같은 제목의 간단한 소설교본을 출판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곧바로 집필에 돌입하는 무모한 방식이었다. 모임 장소에는 햄버거를 비롯한 정크푸드와 커피가 널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고통스러울 줄 알았던 소설쓰기가 TV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야기가 누에에서 실을 뽑아내듯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다음해 웹사이트와 함께 야후에 동아리모임을 발족시키면서 회원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행사 시기도 우중충한 날씨로 외출을 자제하게 되는 11월로 옮겼다. 처음엔 정해진 분량이 없었지만 “우선 쓰고, 생각은 나중에 한다”는 모토에서 5만단어를 목표치로 정했다. 나노의 프로그램 담당인 크리스 배티는 이를 ‘소설의 혁명’이라고 지적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분량이 지배하는 것으로 환치시킨 셈이다.

나노 측은 이 때부터 매년 10월 말 출정파티를 가진 뒤 11월 한달 동안 각자 집필에 돌입해 12월1일 5만단어를 채운 참가자를 우승자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해 참가자 140명 중에서 21명이 결승테이프를 끊었다. 배티는 “편집장 경험에서 볼 때 (분량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규칙과 무자비한 데드라인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집중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지역별로 도우미를 두게 됐고 주말에는 함께 모여 각자 노트북을 폄으로써 고통과 즐거움을 나눈다.

워싱턴 근교에서 사는 댄 폴크스(28·국방부 공무원)는 출근 길 녹음기에 이야기를 구술하고 퇴근 뒤 정리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집 컴퓨터에는 음성을 글자로 전환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깔아놓았다. 그가 매일 아침 고속도로 위에서 구술하는 이야기의 분량은 2,000단어 정도. 그는 “개인 시간을 희생해야 하지만 일상 속에서 전혀 새로운 전망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나노 측이 아마추어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최상의 충고는 “빨리, 멋대로 쓰라”는 것이다. 11월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많은 시간을 소설 집필에 할애하는 변호사 피터스는 “좋은 문장도 있고, 저속한 문장도 있지만 일단 쓰고 나서 돌아보면 달라진다”고 전했다. 두아이를 키우는 안젤라 필드(32)는 “일주일에 두번 출근하는 싱글맘이 소설을 쓸 수 있다면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물론 탄탄한 구조의 정통 문학작품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추리소설이나 공상소설은 물론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꿔놓은 자서전적 소설도 있다.

그렇다면 막무가내로 늘어놓은 5만단어 소설을 누가 읽을까. 많은 경우엔 읽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일부는 출판하기도 한다. 엄격한 규율과 인내 속에 30일이 지나면 참가자들 중에서는 윤문작업에 매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과정에서 옥고가 탄생하기도 한다. 기성 출판사에 작품을 보냈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지만 주문형 출판 시스템을 택하기도 한다. 서커스 극단 광대 경험을 4부작으로 엮은 매어리 와이즈(54)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주문형 출판사(www.lulu.com)를 통해 2년 간 300부를 팔았다. 비록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ISBN(책 뒤의 바코드)을 소유한 소설가가 된 셈이다.



미 전국적으로 나노 회원들이 모여 작업을 하는 오프라인 카페는 20개가 가동중이다. 커피를 홀짝이면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각자 하루치 분량을 채우는 회원들의 노트북 배낭마다 ‘No Plot?, No Problem!’ 스티커가 붙어있다고 한다. 나노는 매년 12월 첫주에 지역 별로 쫑파티를 한다. ‘30일 속도전’에 지친 심신을 한잔 술로 푸는 자리다. 이들에게 쥐어지는 최고의 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는 만족감이라고 아이오와 라디오는 전했다.

나노 홈페이지에 따르면 29일 오전까지 2,400명이 결승점을 통과했고 1만5천명이 골라인에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나노 회원들이 11월 한달 동안 ‘생산한’ 단어는 8억2천2백75만9천6백26개라는 현황 수치도 올려져 있다. 모두가 걸작을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소설 집필이라는 부르주아들의 고상한 작업이 상업출판시대를 맞으면서 ‘타락한 사회에 타락한 방법’으로 적응했듯이 인터넷과 대량소비시대에 나노와 같은 모임이 대안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워싱턴|김진호특파원)

경향신문(06. 12. 02)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조언

어느 나라에서건 처음부터 전업소설가로 시작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생업을 갖고 있으면서 과외의 시간을 쪼개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나노 회원들에게 주는 충고는 우선 ‘자기 규율’에 투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나잇 가드너’를 비롯한 14편의 범죄소설로 대박을 터뜨린 조지 펠레캐노스는 31세가 될 때까지 단 한줄도 써본 적이 없었다. 처음 8편의 소설을 쓸 때까지는 전업 샐러리맨이었다. 그는 “그 때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작업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하루에 5쪽을 쓰는 것을 규칙으로 정해놓고 있다.

추리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라 리프먼은 첫 7개의 소설을 쓸 때까지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생활을 했다. 그는 소설집필을 헬스클럽에 다닌 것에 비유하면서 “충분히 자고 잘 먹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완벽주의는 적”이라면서 “일단 가급적 빨리 쓰는 작업을 마친 뒤 뒤돌아보면서 수정하는 것이 낫다”고 충고했다. 하루 1,000단어가 그의 규칙이다.

마리타 골든은 5편의 소설만을 쓴 비교적 과작의 작가였다. 그는 하루에 1~2시간, 일주일에 몇차례 집필한다는 느슨한 규칙을 갖고 있다. 교사이자 아기 엄마이기도 한 작가 태미 그린우드는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 집필시간을 정하는 게릴라형이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작가센터의 교사 태미 그린우드는 “스스로 타협 불가능한 집필 일정을 세우는 게 첫걸음”이라면서 “달력에 매일 소화할 집필 분량을 적어놓고 실행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역시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강조했다.

나노 사이트 편집장 크리스 배티는 ‘2만단어의 한계’를 가급적 빨리 벗어날 것을 권하고 있다. 한글과 영어의 차이가 있지만 70쪽 정도 되는 분량이다. 어느 경우에도 글쓰기는 해볼 만한 도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권고다. 성공하면 전업 작가로 ‘인생 후반전’을 뛸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지만 실패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노와 비슷한 발상에서 매년 6월 영화대본을 집필하는 ‘광란의 대본(www.scriptfrenzy.org)’ 모임도 있다. 30일 간 대본 1편을 완성하는 모임이다. 이들을 겨냥한 듯 반즈 앤 노블즈나 보더스 등 워싱턴 시내 주요 서점 한 쪽에는 ‘웨스트 윙’을 비롯한 드라마 또는 영화 대본 원본을 비치해 놓고 있다.(워싱턴|김진호특파원)

06. 12. 06.

 

 

 

 

P.S. 문예창작을 따로 배우지 않은 경우에 소설을 쓰기 위해서 참조할 수 있는 '작법' 책들은 비교적 한정돼 있다. 물론 이번주가 마감일 신춘문예는 이미 물건너갔고, 내년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소설작법' '소설창작' 혹은 '소설쓰기'란 타이틀을 단 책들을 기웃거려볼 수 있겠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나도 시중에 나와 있던 '시작법' 책들을 두루 섭렵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시를 쓰는 데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익한 착안점들을 많이 챙겨볼 수 있었다. 그러니 "실패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는 장사이다. 해서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한다(물론 나는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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