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에 잠깐 들렀다가 발견하고 다소 놀란 책은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안티쿠스, 2006)이다. 흔히 '바보들의 배'라고 알려진 책인데, '1494년 출간된 세상 모든 바보들에 관한 원전'이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정말로 15세기말에 씌어진 책이다.  

나로선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푸코의 책 어디선가에서 제일 처음 읽어본 듯도 한데, 찾아보니까 '바보들의 배'라는 건 어떤 특정한 책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는 아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이렇다: "The ship of fools is an old allegory, which has long been used in Western culture in literature and painting. With a sense of self-criticism, it describes the world and its human inhabitants as a vessel whose deranged passengers neither know nor care where they are going. Ships of Fools featured as wagons in medieval Carnival Parades."  그러니까 지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태운 배가 '바보배'인 모양.

'바보배'란 말이 알레고리인 만큼 여러 작품들이 같은 이름으로 씌어졌는데, 이번에 번역돼 나온 브란트의 책은 그 '원조'쯤 되는 듯하다. 이후에 20세기 작가들이 여러 명 가세하고 있는 걸 보아 '현재진행형'이기도 하고. 아무튼 뜻밖의 고전이 출간되어 반가웠다. 아직 아무런 리뷰도 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난 주말에나 서점에 깔렸을 듯싶은데, 이번주말쯤에는 각 리뷰란의 한 꼭지를 확실히 카바하게 될 듯하다. 당장에 책을 구해볼 처지가 못되는지라 일단 리뷰들을 기다려본다. 역자는 미술사학자 노성두씨.

 

 

 

 

인용문에 보면 문학이나 회화에 자주 쓰이던 알레고리란 설명이 나오는데, 그 '회화'의 대표작은 히에로니무스 보쉬(보스)의 것이다(<보쉬의 비밀>이란 책도 지난 가을에 출간된 신간이다). 보쉬가 그린 <바보들의 배>(1490-1500)는 아래와 같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In The Ship of Fools Bosch is imagining that the whole of mankind is voyaging through the seas of time on a ship, a small ship, that is representative of humanity. Sadly, every one of the representatives is a fool. This is how we live, says Bosch--we eat, dring, flirt, cheat, play silly games, pursue unattainable objectives. Meanwhile our ship drifts aimlessly and we never reach the harbour. The fools are not the irreligious, since promiment among them are a monk and a nun, but they are all those who live ``in stupidity''. Bosch laughs, and it is sad laugh. Which one of us does not sail in the wretched discomfort of the ship of human folly? Eccentric and secret genius that he was, Bosch not only moved the heart but scandalized it into full awareness. The sinister and monstrous things that he brought forth are the hidden creatures of our inward self-love: he externalizes the ugliness within, and so his misshapen demons have an effect beyond curiosity. We feel a hateful kinship with them. The Ship of Fools is not about other people, it is about us."

자료를 검색해보면,  영화화된 작품도 눈에 띄는데, 브란트의 책을 원작으로 한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바보들의 배(Ship of Fools)>(1965)가 그것이다.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내용은 이렇다고(비비안 리 출연작이다).

"전쟁과 가깝고도 먼 1930년대. 멕시코의 베라크루스에서 독일의 브레머하펜으로 가는 여객선, '그랜드 호텔'에 승선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난쟁이 마이클 던이다. 마이클 던은 시청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던지는 내레이터로서 영화 내내 그리스의 코러스단으로 등장한다. 여객선에 탄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는 여객선의 의사 오스카 워너, 스페인이 정치 활동가 시몬느 시뇨레, 나이 든 요염한 여자 비비안 리, 쾌락주의적인 야구 선수 리 마빈, 철학적인 유태인 하인즈 루만, 그리고 젊은 연인들인 조지 시갈과 엘리자베스 애쉴리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끊임없이 말을 해댄다. 비비안 리는 늙어 가는 중년 여성으로 잃어버린 청춘을 회복시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것은 결국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바보들의 배'가 애당초 알레고리의 의미를 갖는 만큼 오늘날의 상황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바보들'이란 세상에 차고도 넘쳐나니 말이다...

06.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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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6-12-05 00:08   좋아요 0 | URL
푸코의 <광기의 역사> 도입부에서였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저 그림을 언급하면서요. 그냥 <바보들의 배>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로쟈 2006-12-05 00:12   좋아요 0 | URL
제 생각도 그런데, <바보배>라고 좀 특이한 선택을 했네요...

산손 2006-12-05 01:54   좋아요 0 | URL
헉, 이런 책이 번역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노성두 씨라니 그럴 법 하네요 ^^ 찾아보니 삽화가 포함된 독어(중세독일어인듯 ;)판도 인터넷에 있네요(http://www.fh-augsburg.de/~harsch/germanica/Chronologie/15Jh/Brant/bra_n000.html). 노성두 씨는 라틴어에서 한 건지 독어에서 한 건지 얼렁 책을 구해봐야겠습니다. 언제나 발빠르고 예리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

castrato 2006-12-06 16:45   좋아요 0 | URL
"독일 레클람Reclam 사의 1992년도 판과 마릭스Marix Verlag GmbH(Wiesbaden) 사의 2004년도 판을 비교하며 번역"했다고 밝혀져 있군요. 오늘 교보에서 샀습니다.

로쟈 2006-12-06 16:56   좋아요 0 | URL
반기시는 분들이 많군요. 저는 독후감이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